246. 새우등 - 1.
도훈의 팬카페는 따로 홍보하지 않음에도 꾸준히 회원이 늘었다.
물론, 정회원 숫자보다 준회원의 숫자가 많았지만, 도훈이 아무리 언론이나 방송에 여러 번 소개됐더라도 무소속인 일개 지방 소도시 시장인 걸 고려하면 예상 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팬카페 회원이 늘어감에도, 도훈은 짤막한 감사의 인사를 글로 전한 것 이외에 다른 접촉을 하지 않았다.
팬카페가 어느 정도 체계를 잡은 다음에 접촉하는 게 좋겠다는 게 혜란의 판단이었고, 이에 도훈도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0월 중순의 토요일, 시장실에 출근한 도훈이 비서실 소파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달칵.
시장실에서 나온 사람은 영배였다.
그는 도훈과 함께 출근해 업무를 보다 혜란과 전화통화를 하러 시장실에 들어갔었다.
비서실 홍보 담당이 영배이니, 팬카페와의 소통 책임도 영배가 담당했다.
“선배가 뭐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기쁜 소식? 뭐?”
“어제부로 네 팬카페 정회원이 250명이 넘었대.”
“... 하하. 빠르네.”
“그러게 말이야.”
싱글벙글하는 영배의 모습에 도훈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인마, 네가 아직 실감이 안 나나 본데 지역 유권자 중 네 팬을 자처하는 사람 250명 모으는 게 쉬울 것 같냐?”
“당연히 어렵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 카페 회원들이.”
“난 좋다기보다는 좀 무서운데.”
“무섭다니? 아, 네가 조금이라도 뭔가를 잘못하면 마음이 돌아설 수도 있으니까?”
“응. 좋다가 싫어지면 그건 되돌리기가 정말 어렵잖아.”
도훈의 말에 영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일단 팬이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렇기야 하겠지.”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네게 큰 힘이 될 사람들인 것도 맞고.”
“알지. 그러니까 형한테 소통을 꾸준히 자주 하라고 일을 맡긴 거고.”
“아, 깜빡했다. 혜란 선배가 너와 미팅을 한 번 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
“미팅?”
“응. 먼저 정회원 전부를 초청해서 너랑 인사하는 자리를 갖고, 그 자리를 통해 팬카페 운영진도 좀 체계적으로 다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더라고.”
도훈이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혜란 선배랑 논의해서 일정 잡아 봐.”
“정말?”
“응.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갈 테니까 그 정도는 해야지.”
“오케이.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기다?”
“다른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 노래를 시킨다거나 장기자랑 시킨다는 등은 꿈도 꾸지 마.”
“... 전혀 안 돼?”
“응. 절대 안 돼.”
단호한 도훈의 말에 영배가 뭐라 구시렁거리던 순간, 도훈의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의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장님. 저 도지사님 비서실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 협조를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게요?”
- 네.
도훈이 표정에 의구심이 더 짙어졌다.
강정문 도지사와 심심찮게 만나는 도훈이다 보니, 도지사 비서실장이나 다른 비서실 직원들과도 대개 안면이 있었다.
하지만, 강정문을 제치고 비서실장이 이렇게 도훈에게 직접 연락하는 적은 처음이었다.
“우선 무슨 일인지 말씀을 듣겠습니다.”
- 음, 이달 말에 회의 장소 관련한 건입니다.
“... 시장, 군수 회의요?”
- 네.
빠르면 두 달, 보통 석 달에 한 번 정도 이루어지는 충청남도 시장, 군수 회의가 이달 말에 열릴 계획이었다.
충남에 있는 모든 기초자치단체에서 최소 1번 이상씩의 회의가 열렸고, 이달 말 회의는 대흥시 바로 옆의 OO 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 장소를 대흥시로 변경했으면 하는데 혹시 가능하시겠습니까?
“... 딱히 저희가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까?”
- 아뇨. 평소처럼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별로 문제 될 게 없긴 합니다만···, 갑자기 왜···?”
회의가 열리는 자치단체에서 준비할 거라고는 회의 장소와 회의 장소를 섭외하고, 도청에서 나오는 준비팀의 편의를 봐주는 수준이었기에 장소변경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 그쪽 사정이 좀 복잡한 모양이어서요.
“......”
- 제가 전화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당내 문제가 섞여 있기도 해서요.
“아, 네.”
- 괜찮으시면, 회의와 관련한 건은 월요일 아침에 비서실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이 묘한 표정을 하고 있자 영배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시장, 군수 회의 말이야. 그걸 여기서 하고 싶대.”
“갑자기 왜?”
“당내 문제 어쩌고 하는데 자세하게는 얘기를 안 해 주네. 혹시 형 뭐 아는 거 있어?”
“그래? 금시초문인데?”
“... 흐음.”
도훈이 최근에 OO 시나 그곳 시장과 관련해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겨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생각에 잠긴 도훈에게 영배가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야. 그건 그거고 팬카페 모임 때 노래 한 곡 정도는···.”
“절대 안 돼.”
“... 쩝.”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도훈의 답은 즉각적이고 여전히 단호했다.
은근슬쩍 노래를 시키려는 영배를 째려본 도훈이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궁금증이 다른 이를 통해 풀릴 거라는 걸 도훈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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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도훈과 영배는 점심을 먹으러 청사 앞 상가 국밥집에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선 사람 둘과 점심을 먹고 있던 안준식 의원과 우연히 마주쳤다.
“아, 시장님. 오늘도 나오셨습니까?”
“네. 의원님도 그러신 것 같은데요?”
“저야, 뭐 어쩌다 그러는 거죠.”
도훈은 그냥 지나치려는데, 안준식이 동행을 소개해줬다.
“인사하시죠. 이분들은 OO 시 민의당 소속 시의원들입니다.”
“아, 그래요? 안녕하세요. 김도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시장님. 황성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OO 시 시의원 송은석입니다.”
도훈과 영배는 OO 시 시의원들과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훈은 안준식과 일행을 등지고 앉아 그쪽 테이블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마주 앉은 영배가 가만히 그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저쪽 되게 심각한 분위기인데?”
“그래?”
“응. 장난 아니게 심각한 표정으로 소곤거리고 있어.”
“신경 꺼, 형.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응.”
둘은 더는 그쪽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곧 주문한 국밥이 나왔다.
국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그 시장, 군수 회의 말이다. 다다음 주인 거지?”
“응. 우린 딱히 준비할 거 없잖아. 준비팀 도와주고 뒤풀이 장소나 예약하면 될 테지.”
“이번에도 술 마시려나?”
“글쎄. 웬만하면 그냥 밥만 먹고 끝냈으면 좋겠는데···. 거기 오는 양반들이 다 말술이라서···.”
“하하. 네가 막내라서 더 그런 거겠지.”
갑자기 도훈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저기, 죄송합니다.”
“네? 아, 네.”
도훈이 고개를 돌리니 황 모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OO 시 시의원이 서 있었다.
“뜻하지 않게 듣게 됐는데, 다다음주 시장, 군수 회의가 대흥시에서 열리나요?”
“아, 그럴 것 같습니다.”
“저기···. 제가 알기로는 우리 OO 시에서 열리는 것으로 아는데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까 도지사 비서실에서 전화 와서 장소를 대흥시로 바꿔달라고 하더라고요.”
“... 이런···.”
황 모 씨가 갑자기 낭패한 표정을 했기에 도훈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저만치서 이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다른 시의원도 벌떡 일어나 다가와 물었다.
“시장님은 그걸 승인하셨고요?”
“... 네.”
“......”
“... 왜 그러시는 겁니까?”
OO 시 시의원 둘 다 낭패하고 당황한 표정이었기에 도훈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 그게···.”
황 모 시의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데, 안준식이 이쪽으로 가까이 오더니 끼어들었다.
“시장님. 이분들에게 나름 중요한 사정이 있는데, 그걸 여기서 말씀드리는 건 좀 그렇습니다.”
“... 네.”
“괜찮으시면 이따가 시청으로 찾아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 네.”
안준식이 도훈에게 인사하고 눈짓하자 OO 시 시의원 두 사람도 도훈에게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
“... 저 사람들 밥도 다 안 먹고 그냥 나갔네.”
“그래?”
“응.”
영배의 말에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무슨 일인데 저러는 거지? 회의 장소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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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뒤, 시청 비서실.
도훈은 식당에서 만났던 안준식과 OO 시 시의원 두 사람과 마주 앉아있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얘기를 담담히 듣던 도훈.
이야기의 마지막에 황성연이 예상 못 한 부탁을 했다.
“...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회의 장소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흐음.”
도훈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승낙하기도 뭐하고 거절하기도 뭐한 요청이었으니까.
OO 시 대머리 시장 조민구는 민의당 소속이지만, 민의당 지역위원회 내부에서도 구시대적 인물로 비판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중앙정부 시책에 역행하는 일을 했다가 지역 당원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산 적도 있고, 시청 소속 비정규직 직원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시민이나 당원들의 비판을 받고 잘못을 바로잡거나, 최소한 성의 있게 대화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으면 얘기는 다를 터.
하지만, 조민구 시장은 자기 뜻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뿐, 비판의 목소리를 일절 들으려 하지 않았고 시의원을 비롯한 민의당 지역 당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할 지경이 됐다.
현 시장인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민의당 OO 시 당원들 사이에는 다음 시장 후보는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단다.
시장, 군수 회의는 도지사부터 충남의 모든 기초자치단체장이 모이는 자리.
현 조민구 시장을 다음에 후보로 공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때마침 OO 시에서 열리는 시장, 군수 회의를 기회로 모종의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회의 장소가 대흥시로 바뀌게 생긴 판이었다.
“답하기 전에 제가 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도지사님도 이런 상황을 아십니까?”
“네. 저희의 뜻은 이미 여러 번 김용진 의원에게 전했습니다. 당연히 도지사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 흐음.”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진 도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 하긴 비서실장님이 당내 문제 어쩌고 했었지. 이 정도면 당 밖으로는 흘러나가지 않게 쉬쉬할 수 있어도 충청남도 민의당 대장과 그 비서실장인데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회의 장소를 바꾸려 한다는 건···.’
민의당 OO 시 지역위원회 사람들의 마음도 알겠지만, 강정문 도지사의 고민도 얼핏 이해가 가는 도훈이었다.
시장, 군수 회의는 도와 각 시, 군의 유기적 협조를 위한 자리이지, 민의당 당내 문제를 고발하거나 호소하는 자리로는 부적합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제가 도지사 비서실장님 말씀을 거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다고 회의가 OO 시에서 열린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
“OO 시, 대흥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릴 수도 있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
두 시의원은 도훈의 질문에 답을 못하다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또 다른 장소를 섭외하면, 그곳 시장님이나 군수님께 다시 부탁을 드려봐야죠.”
“네. 그런 식으로 조민구 시장의 문제를 다른 단체장님들께도 호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두 시의원에게 도훈이 담담히 물었다.
“... 그게 최선의 방식일까요?”
“......”
“제가 민의당 소속도 아니니 이 일에 참견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
“하지만, 그런 방법을 택하기 전에 먼저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게 현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
시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었고, 도훈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니, 이번 회의가 대흥시에서 열리는 건 거부하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하지만, 여러분도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대처하시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준식과 OO 시 시의원들과의 대화는 끝났다.
“정말 거절할 거야?”
“... 그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은데? 회의 열 장소가 우리 시청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다른 시장, 군수들이 거절해도 도청에서 열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도지사 비서실장이 네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민의당 당내 일에 휘말려 들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 쩝. 뭐, 네 판단이 맞겠지.”
도훈은 업무용 핸드폰을 들고 시장실로 들어갔고,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부터 어떤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걸 도훈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