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44화 (245/279)

244. 열정, 그 자체 - 2.

도훈, 영배와 윤혜란 부부의 만남은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성사됐다.

“반가워요, 시장님.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도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영배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혜란과 그녀의 남편 이성윤과 도훈, 영배가 만난 곳은 중국관.

대흥시 맛집도 소개할 겸 중국관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윤혜란 부부가 무척 좋아했다.

서로 잘 아는 도훈과 혜란 말고 초면인 영배와 이성윤이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했고, 이성윤의 이야기가 끝나자 도훈이 말했다.

“말씀 편히 하세요. 한참 선배님이신데요.”

“하하. 차차 그리합시다.”

도훈과 영배보다 8학번 위인 혜란도 까마득한데, 그녀의 남편인 이성윤은 11학번 위.

어른 ‘티’를 낼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고 한참 후배인 두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장인어른이 대흥시가 좋다는 말씀을 전부터 여러 차례 하셨었어요.”

“교수님이요?”

“네. 그분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다른 데 알아볼 생각은 못 하고 그냥 대전에 집 구했을 텐데 우리한테는 참 다행이죠.”

“그러셨군요. 저희도 도시 발전계획 논의하면서 교수님께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 그 얘기도 좀 들었어요. 하하! 오래간만에 보람 있는 일 하신다고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윤종일 교수라는 공통 화제가 있어서, 다행히 초반에는 ‘논쟁 거리’가 될만한 이야기를 삼갈 수 있었다.

도훈과 영배가 이 자리에 오기 전, 다짐하고 또 다짐한 것이 혜란의 ‘토론 근성’을 절대 자극하지 말자는 것이었으니까.

“와! 여기 뭐야? 국물이 정말 죽이는데?”

“그렇죠? 여기가 대흥시 맛집이에요, 선배님.”

“오호! 좋네. 이 정도면 네 입맛을 믿어도 되겠는데? 도훈이 너 대흥시 맛집 많이 알지? 그것부터 소개받아야겠다.”

“하하. 네. 얼마든지요.”

그다음으로는 중국관 음식 맛에 반색하는 혜란 덕분에 도훈과 영배의 맛집 리스트로 화제가 옮겨가 역시 토론이 이어질 틈이 없었다.

“거기는 돈가스가 죽여 주는데요. 어떤 수준이냐면···.”

“아, 겨울에 꼭 가봐야 하는 곳도 있어요. 국물이 아주···.”

도훈과 영배는 각기 알고 있던 맛집을 아주 ‘공들여’ 설명했다.

그래서 네 사람이 적당히 술을 주고받으며 30분이 넘게 시간이 흘렀을 때까지 혜란 부부는 도훈과 영배의 이야기를 듣기에 바빴다.

“와, 너희 무슨 맛집 책이라도 쓰니?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알아?”

“하하. 그냥 맛있는 걸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그래? 어쨌든 고마워. 덕분에 찾아가 볼 맛집 리스트를 잔뜩 확보했네.”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마세요. 저희 입맛에 맞는 곳들이니까요.”

“후후. 두고 보면 알겠죠. 하지만, 오늘 이 중국집 음식만 봐서는 정말 기대가 되네요.”

혜란과 이성윤은 도훈과 영배의 맛집 브리핑에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이내 다른 화제를 꺼내려 했다.

“이제 네 얘기 좀 해 봐. 어떻게 지냈고 어쩌다 시장이 된 거야?”

“하하. 그게 말이죠.”

도훈은 간략하게 제대 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10년이 넘는 시간의 이야기이니 제대로 하면 꽤 길어질 테지만, 뭐가 됐든 장황한 건 도훈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영배가 ‘좀 더 길게’를 연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매정하게도 도훈의 이야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호호. 홧김에 시장에 출마했다고? 그리고 당선까지 되고?”

“네.”

“네가 그렇게 충동적인 줄은 몰랐는걸?”

“저도 몰랐는데요, 뭐.”

“호호!”

“하하하!”

윤혜란과 이성윤은 도훈, 영배와의 대화가 무척 즐거운 듯 연신 소리 내어 웃었다.

“네가 시장 된 거 알고 내가 이따금 네 기사 유심히 살펴봤거든?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과찬이세요.”

“과찬은? 집 구할 때부터 너에 대한 평가가 어떠냐고 복덕방 사람이나 집주인들한테도 물어보고 그랬어. 호평이 훨씬 많던데.”

“... 하하.”

도훈이 멋쩍게 웃었고 혜란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호기심이 동해서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네가 시장 되고 추진한 사업들도 좀 찾아보고 그랬거든? 파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심하게 서민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들이 많더라?”

“감사합니다.”

“그중에서도 정책 수립이나 실행 과정에 시민 의견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

“... 하하.”

멋쩍게 웃으면서도 도훈은 속으로 바싹 긴장의 끈을 조였다.

아무래도 혜란의 토론 근성이 슬슬 발동되기 시작하는 눈치였으니까.

옆의 영배도 비슷한 상황인데, 의외인 건 혜란 옆의 이성윤은 담담히 웃기만 할 뿐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것.

‘... 설마 저분도 토론을 즐기나? 부부가 나란히···. 윽,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혜란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눈을 반짝이며 시정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하는 혜란.

그녀 한 사람을 두고 도훈과 영배가 속으로 잔뜩 긴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

일요일 정오가 넘은 시각.

- 살아 있냐?

“... 응.”

- ... 다행이다. 나 어제 집에 어떻게 왔냐?

“... 내가 업어다 줬지.”

- ... 휴우. 선배님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냐?

“... 선배들 앞에서는 안 그랬지.”

- 하아, 다행···.

“내 앞에서만 그랬지.”

- ......

어제 혜란 부부와의 술자리는 1차 중국관에서 2차 비서실 단골 회식장소인 실내 포차로 이어졌다.

혜란도 술을 잘하는 편인데, 그녀의 남편 이성윤은 말 그대로 말술이었다.

2차로 옮겨 1시간도 못 버티고 영배가 횡설수설하다가 전사한 뒤, 도훈은 홀로 혜란과 이성윤을 상대하느라 엄청나게 소주를 마셔야 했다.

술자리를 마칠 즈음에는 어디 가서 술 못 마신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도훈이 자기 혀가 꼬인다는 걸 느꼈을 정도였다.

그러고서도 밤 10시경에 포장마차를 나왔을 때, 혜란과 이성윤은 집에 돌아가 부부끼리 가볍게 한잔 더하겠다며 맥주를 사 갈까, 소주를 사 갈까, 안주는 뭐로 할까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 그 선배님들이랑 술 마시려면 목숨 걸어야겠어.

“형은 그러는 게 좋겠어.”

- 에휴. 어제 나 때문에 고생했다니 미안하다.

“됐고. 오늘은 밀린 잠이나 푹 자. 술 냄새 때문에 애들도 가까이 안 갈 거 아니야?”

- ... 자식. 쓸데없는 분야에만 날카롭단 말이야. 안 그래도 애들이 아까 난리 쳤는데. 끊어. 내일 보자.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은 이부자리에 벌렁 누웠다.

“제대로 술 폭탄을 맞았지만, 나쁘지 않았지.”

술을 지나치게 마셨다는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윤혜란 부부는 후배들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지도 않았고, 선배라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도훈과 영배가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윤혜란 부부의 페이스를 따라가려다 그렇게 된 것일 뿐.

“두 분, 의외로 천생연분인 것 같던데···.”

혜란은 도훈이 기억하는 것처럼 활발하고 열정에 넘쳤고, 남편 이성윤은 차분하고 진중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아주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이성윤이 혜란이 토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어제 혜란은 2차 자리에서 도훈이 취임한 뒤 수정하거나 새롭게 도입한 시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화제로 올렸다.

언제 어떻게 알아봤는지 모르겠지만, 시 공무원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는 대흥시 시민도 아니었던 일반인치고는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본인이 느끼기에 어떤 건 아주 잘했고, 어떤 건 이러이러한 면에서 좀 방향성이 어긋났다거나 미흡하다는 등의 그런 이야기였다.

도훈과 영배는 중국관에서의 ‘탐색전’에 이어 본격적인 시작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는데, 의외로 이성윤이 ‘그 정도면 됐다’거나 ‘시장과 비서관이 알고 있으니 개선되거나 강화되지 않겠냐’는 등의 이야기를 하니 혜란이 더는 토론을 고집하지 않았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가 과하지 않다 보니 대화가 즐거웠고, 그래서 술자리 분위기가 좋아 도훈과 영배가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 순심이 데리러 가야지.”

어제 혜란 부부와의 술자리가 길어질 걸 대비해 녀석을 진주네 집에 맡겼었다.

“... 해장도 해야겠는데···.”

누운 채로 아랫배를 슬슬 문지르던 도훈은 집에 해놓은 밥이나 국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쩝.”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든 도훈이 진주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답은 금방 왔다.

- 염치없다만, 너희 집에 밥이랑 국 좀 있냐?

띠링.

- 네가 언제 나한테 염치 따졌냐? 너 어제 술 먹을 거라고 해서 콩나물국 끓여 놨다. 얼른 와서 쳐잡숴.

메시지를 확인한 도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몸을 일으켰다.

고양이 세수를 한 도훈이 추리닝에 티셔츠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위잉!

“... 어머!”

빌라 현관문이 갑자기 열리고 도훈이 나서자, 때마침 앞을 지나가던 젊은 여자 행인이 놀랐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푸석푸석한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후줄근한 차림새 때문인지 행인은 도훈을 알아보지 못하고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봐도 시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차림의 도훈이 진주의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

월요일 점심 무렵, 시장 비서실.

문이 열리고 도훈과 두진, 영배가 안으로 들어섰다.

“저희 왔습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어디서 연락온 것 없었나요?”

“네.”

“휴우. 그럼 잠깐 쉬었다가 점심 먹으러 가면 되겠네요.”

환경위생과 회의에 다녀온 세 사람이 비서실 소파에 앉았다.

도훈과 두진은 멀쩡한 얼굴인 데 반해, 영배는 피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안 좋은가?”

“하하. 네. 좀 울렁거리네요.”

희한하게도 폭음은 토요일 저녁에 했는데, 일요일 오후에 술병이 났단다.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하고 울렁거리는 느낌 때문에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잠도 잘 못 잤다는 영배였다.

“쯧쯧,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 안 그래도 오후에도 가라앉지 않으면 그럴 생각입니다.”

출근 직후에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이미 타박도 하고 걱정도 했기에 두진은 말을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위이잉.

말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배를 바라보던 도훈이 품에서 업무용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다.

“... 뭐야, 이거?”

“왜 그러십니까?”

“......”

“시장님?”

두진이 재차 부르고 나서야 핸드폰 액정에서 시선을 뗀 도훈.

“아, 그게··· 누가 제 팬카페를 만들었다고 해서요.”

“팬카페요?”

“네.”

도훈의 팬카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 당선된 직후, 혹은 그 이후 언론에 좋은 이미지로 소개된 뒤에 온라인에 팬카페가 만들어진 적이 두어 번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그런 온라인 팬카페에 일절 관심을 기울이지를 않았다.

팬카페를 만든 사람이 연락해 온 적도 있지만,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가 딱히 팬카페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는 도훈의 반응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렇게 도훈이 무반응이니 기껏 만들어진 팬카페도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고.

“이번엔 뭔가 다릅니까?”

“... 만든 사람이 다르네요.”

“네?”

“팬카페 만들었다고 제 SNS에 글 남긴 분이 제 선배님이거든요. 윤종일 교수님 큰딸이요.”

“아, 엊그제 만났다는 분이요?”

“네.”

힘없는 얼굴로 도훈과 두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배가 몸을 일으키더니 도훈의 옆으로 건너와 앉았다.

도훈은 말없이 핸드폰을 내밀었고, 영배가 액정을 터치해 열심히 내용을 읽어나갔다.

- 차분하지만 뜨겁고 진중하지만 거침없는 열정의 소유자 김도훈 시장을 응원합니다.

“... 거창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핸드폰에 집중한 영배의 말에 도훈이 맞장구를 쳤는데, 영배가 뭔가를 읽기 시작했다.

“본 카페의 정회원은 충남 대흥시 시민만이 될 수 있습니다. 대흥시 시민이 아니지만, 김도훈 시장을 응원하고 싶으신 분은 준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흐음, 이거 완전 본격적인데요?”

“... 그 선배, 예전에도 실행력이 장난 아니었거든요.”

“... 시장님?”

“왜요?”

“회원이 벌써 서른 명이 넘습니다.”

“예?”

“카페 개설한 게 세 시간 전인데, 회원이 서른넷이라고 나와요.”

“... 벌써요?”

“네.”

“......”

도훈과 영배가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토요일 저녁 도훈, 영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열정 어린 눈빛을 보이던 혜란.

살짝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계속 그렇게 해라’, ‘열심히 해라’, ‘잘 됐으면 좋겠다’, ‘응원하겠다’는 말을 하던 그녀.

“... 정회원 자격을 우리 시 시민으로 제한한 걸 보면, 팬카페를 정말 제대로 운영해볼 생각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진의 질문에 도훈이 살짝 질린 표정으로 답했다.

“... 그건 그것대로 또 겁납니다.”

“아니, 왜요?”

“그 선배가 뭔가에 꽂히면 전심전력을 다 하거든요.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모르겠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절대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고 교수님께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흐음. 그건 좋은 일 아닐까요?”

“두고 봐야죠.”

두진의 말에 쓰게 웃으며 답한 도훈.

‘어휴. 어쩌면 이렇게 문구도 닭살 돋게 썼담?’

영배에게 핸드폰을 받아든 도훈은 카페 소개 문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몸이 가렵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