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42화 (243/279)

242. 내가 선 자리 - 2.

“... 이거 정말 올여름도···.”

“... 죽여주게 덥네.”

“... 그러게.”

7월도 어느덧 하순에 접어든 주말.

도훈과 영배가 유서면 어느 마을 입구 나무 그늘에 앉아 ‘쮸쮸바’를 먹으며 잠시 쉬고 있었다.

“야, 그냥 차 안에서 에어컨 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늘이면 뭐해? 숨 쉬는 공기가 뜨겁고 끈적끈적한데···.”

“차도 쉬어야지. 쟤는 무슨 죄야? 날도 더운데 엔진도 쉬어가면서 돌려줘야지.”

“기계한테 뭔 소리 하는 거야?”

“기계도 애정을 주며 아끼고 예뻐해야 오래 쓰지.”

“... 하, 정말. 사람들이 이런 걸 좀 봐야 하는데 말이야. 그럼 우리 시장이 이런 ‘허당’이구나 하고 현실을 깨달을 텐데.”

“하하.”

우습지도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

도훈과 영배는 이제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면 의례 이루어지는 폭염 순찰을 하는 중이었다.

“저기 저거 수박인가?”

“어디? 아, 저기? 수박 맞네.”

“흐음. 다음 주에는 수박 좀 사서 지구대하고 소방서, 의용소방대에 돌려야겠다.”

“또? 너 지지난 주에 참외를 박스째로 사서 돌렸었잖아.”

“그건 지지난 주고.”

“하아. 맘대로 해라. 네 업무추진비 네가 쓰는 건데.”

영배가 심드렁하게 투덜거렸다.

점심 메뉴를 놓고 도훈과 툭탁거리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원하던 시원한 냉면이 아닌 매우 ‘따뜻한’ 칼국수로 배를 채운 뒤에 계속 저러고 있었다.

도훈이 영배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타박했다.

“애냐? 아직도 삐져 있어?”

“하아. 인마. 내가 아침부터 얼마나 시원한 물냉면이 생각이 났었는지 알기나 해?”

“... 저녁때 먹으면 되잖아.”

“후우. 냉면은 이글이글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낮에 먹는 게 제일이라고.”

“... 하하. 하여간 형도 참 이상한 데서 진지하다니까.”

“너만 하겠냐? 차한테 애정을 줘야 한다고 그늘에 세워놓고 쉬게 한다는 놈은 누군데?”

둘이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도훈이 뒤를 흘끔 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깜짝이야. 왜?”

“저기.”

영배가 바라보니 웬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들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얼른 걸음을 옮겨 다가가 냉큼 보따리를 받아 들고 할머니를 부축해 나무 그늘에 앉게 했다.

“고마워. 아이고, 덥네.”

“천만에요. 그런데 오래 걸으셨어요? 땀 많이 흘리셨네요.”

“오래? 아녀. 집에서 여기까지 잠깐 걸었는데, 땀이 이렇게 나네. 덥긴 무진장 더워.”

영배가 들고 있던 부채로 할머니 얼굴에 부채질을 해드렸고, 도훈이 입을 열었다.

“어디 가세요?”

“응. 시내에.”

“택시를 부르지 그러셨어요.”

“이달 치를 다 썼어.”

“아.”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오지 지역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이용자는 100원만 내고, 차액은 지자체가 책임지는 ‘100원 택시’라는 제도가 있다.

충남 아산시가 2012년 ‘마중 택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게 전국 최초인데 이후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했고 대흥시도 진즉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현 대통령이 농촌형 교통모델로 대선 때 공약으로 채택해 현재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기도 했다.

대흥시에서는 농촌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인 복지 차원에서 진행하던 이 사업은 도훈이 취임한 뒤 그 대상이 확대됐다.

어르신들은 물론 몸이 불편한 이들, 영‧유아가 있는데 차량이 없어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 등을 대상으로 매달 4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제공하는 데, 할머니는 이미 그걸 다 쓰신 모양이었다.

“저희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시장 양반, 바쁘지 않어?”

“하하. 바빠도 잠깐 할머님 모시고 시내 다녀올 여유는 있어요.”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하하. 네.”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하는 할머니에게 도훈도 마주 웃었고, 곧 세 사람은 그늘에서 잘 ‘쉬고’ 있던 도훈의 차에 올랐다.

운전대를 잡은 도훈 대신 조수석의 영배가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할머니, 한 달 택시 이용권 4장이면 부족하시죠?”

“항상 그런 건 아니데, 여름이나 겨울에는 좀 그런 편이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선선한 봄, 가을에는 아무리 할망구들이라고 해도 슬렁슬렁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 타도 괜찮아.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운동 삼아 걷는 게 나쁘지 않잖아. 다만,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이나 춥고 길 미끄러운 겨울은 좀 힘들지.”

“흐음. 그럼 여름, 겨울에는 이용권을 더 드리는 게 좋겠네요?”

영배가 진지하게 묻자 할머니가 웃으며 답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얘기 들어보니까 여름, 겨울에는 택시 기사들도 손님이 줄어서 힘들다는데 일석이조 아닐까?”

“오호?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에 사람들의 외부 활동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현상.

대도시라면 또 모르겠지만, 소도시인 대흥시는 날씨가 대중교통 승객 감소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도훈이나 영배가 모르지 않았다.

영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티를 내지 않고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할머니가 푸근히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가 됐든 물어봐. 차비 대신 대답해줄 테니까.”

“아, 예. 그럼 사양 않고 몇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시에서 어르신들 대상으로 하는 사업 중에···.”

영배는 ‘때는 이때다’는 모습으로 시에서 노인 대상으로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인 사업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냉면 못 먹었다고 투덜거리던 때와는 전혀 다른, 열성적인 모습이었다.

‘... 하여간···.’

운전하는 도훈이 영배를 흘끔 하고 피식 웃었다.

도훈이나 친한 지인들 앞에서는 때때로 실없고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긴 해도, 자신이 시장 보좌관임을 잊는 적이 없는 영배.

그가 비서관으로 맹활약해줬기에, 도훈이 지금처럼 좋은 평가를 많이 받는 시장일 수 있을 터.

‘그러고 보니··· 영배 형뿐만이 아니네.’

그렇게 도훈을 도와주는 건 영배 혼자가 아니었다.

두진도 그렇고 지연이나 영진도 그렇고 심지어 주민센터로 나간 뒤에도 도훈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정임도 있다.

그들 외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성실히 다해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도훈의 지난 3년여 시장생활은 많이 달랐을 터.

‘내가 운이 좋은 편인 거야.’

직원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극소수의 경우일 뿐.

모든 분야에 초짜였던 자신이 당당히 재선에 도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기까지, 시청 공무원들의 덕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도훈이었다.

- 선거 모드라는 것도 제대로 하자고. 뭐가 됐든, 제대로 하고 나서야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있는 거라네.

도훈은 얼마 전, 두진과 막걸리를 마시다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제대로···.’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외부조직’ 문제.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자연스레 생각이 연결됐다.

“... 뭐하십니까?”

“네?”

“신호 바뀌었습니다만?”

“아, 예.”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다 잠깐 정신이 팔렸던 도훈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뙤약볕 아래 도로를 도훈의 SUV가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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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마지막 월요일.

대흥시청 소속 공무원 전원은 뜬금없는 시장의 감사 메일을 받았다.

- ...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만 했던 제가 오늘 여전히 시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모두 직원 여러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이 났을 때, 그 마음을 전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고 이렇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주말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

“글쎄요.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요?”

“흐음.”

“시장님이 이런 인사 말씀 전하시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런데, 전에는 뚜렷한 계기가 있었잖아. 요즘엔 그럴만한 일이 별로 없이 조용하기만 했고.”

“뭐, 문득 생각이 나셨나 보죠.”

도훈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감사 메일을 보낸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대다수 직원의 반응은 ‘그냥 그런가 보다’면서도 기분은 좀 좋다는 식이었다.

일부는 갑작스러운 이번 메일의 원인을 무엇인가 추측해보기도 했다.

“혹시 저번 감사 때문인가?”

“아직 결과 안 나왔잖아요.”

“대충 예측되는 게 있잖아. 괜히 감사원 직원들이 웃고 다닌 게 아니었을 것 아니야.”

“뭐, 그랬을 수도 있죠. 여하튼 좀 뜬금이 없지만, 받고 나니 기분은 좋네요.”

그렇게 제일 출근하기 싫은 날이라는 월요일부터 직원들이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던 때, 시장실의 분위기는 시청 다른 부서의 그것과는 좀 달랐다.

“... 정말인가?”

“일단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도훈의 말을 듣는 두진의 표정은 조금 아쉽다는 정도.

하지만, 옆에 앉은 영배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게 마음에 안 들어도 단단히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쓴 채 말이 없는 영배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인상 좀 쓰지 마.”

“...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응.”

도훈이 고집하지 않겠다는 건 ‘외부조직’을 당장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당장 어떤 뚜렷한 역할을 하기도 어려운 그런 조직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불필요하고 거북스럽다는 이유였다.

“정작 나중에 필요할 때 급히 만들어 돌릴 수도 없는 거야, 이런 건. 여유가 될 때 미리미리 작업해야···.”

“형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우리가 여유가 있긴 해? 조직이네 뭐네 해도 다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그걸 맡길만한 적임자가 우리 주변에 있어?”

“... 찾아보면···.”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는 일이잖아. 월급 주고 고용할 수도 없고 말이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잖아. 안 그래?”

“... 쩝.”

시청 밖에 나가서 아무 시민이나 붙잡고 물으면 아마 과반은 도훈을 지지한다, 잘한다고 답할 터.

하지만, 시청 외부에서 도훈을 더 적극적으로 돕는 일을 책임질 열성 지지자를 뽑자니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친구인 진주나 영배 와이프 선아가 있지만, 안 그래도 학원을 운영하고 그 학원에서 가르치고 애들 돌보느라 정신없는 두 사람이 아닌가.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당장은 그런 사람도 없어. 그러니까 차근차근 생각하고 논의하자고.”

“... 쩝. 그런 일에 전문가를 고용하면 안 되는 거냐?”

“당장은 싫네.”

“......”

영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두진이 달래듯 말했다.

“아쉽지만, 당사자가 저런 마음인데 어쩌겠나? 그리고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맞으니 인상 펴게.”

“휴우. 네, 실장님.”

영배가 한숨을 내쉬고 팔짱을 풀었고, 두진이 영배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구만.”

“많지 않긴요. 많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죠.”

“... 지금 직원들 얘기하는 건가?”

“네.”

“하하. 그래. 그렇게 따지면 300명이 넘으니 많긴 하네. 아쉽게도, 다 시청 내부 사람들이지만 말이야.”

“하하. 그러게요.”

두진과 도훈이 웃었고, 영배도 피식 실소를 흘렸다.

다른 지자체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대흥시 역사상 도훈처럼 직원들에게 지지를 받는 시장은 처음인 게 분명했으니까.

“하아. 직원들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이라도 좋으니까 시민 중에 열혈 지지자 좀 안 나서려나?”

영배의 말에 도훈이 답했다.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야.”

“누가 아니래? 난 그냥 아쉽다는 거지. 너 대흥시에 내려온 다음에 사람 좀 많이 만나고 다니질 그랬냐. 기껏 아는 사람이라고는 탁구 동호회 회원 아니면 단골 식당 사장님들뿐이니.”

“내 성격이 그랬던 걸 어쩌겠어.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잖아.”

“달라져야지, 인마. 넌 더 달라져야 돼. 좀 느물느물하고 비위가 강한 쪽으로.”

“... 하하, 왠지 그것도 상상하기가 싫다.”

“싫은 것도 많아요.”

심드렁한 영배를 정성껏 달랜 도훈.

“뭐, 내가 선 자리가 지금 시청 안이니까 여기서부터 잘해야지.”

“그건 벌써 몇 번이고 다짐했던 거고.”

“한 번 더 다짐하는 거야.”

“쩝. 해되는 거 아니니까 다짐 많이 해라.”

도훈에게 툭 쏘아붙인 영배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 어디서 혜성같이 네 열혈 지지자가 한 명 뚝 떨어지지 않으려나?”

도훈과 두진은 그런 영배의 푸념에 피식 웃었고, 도훈이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일이나 합시다.”

“... 그려.”

세 사람이 아침 조회를 위해 비서실로 나갔다.

오늘도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대흥시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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