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감사 - 3.
화요일 오전, 시청 대회의실.
원래대로라면 소회의실에서 열렸을 정기 간부회의가 대회의실로 장소를 옮겨서 열렸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안건은 건설교통과 건설행정팀장이 설명하겠습니다. 팀장님.”
“네.”
어제 오후의 언론보도 때문에 시청 안팎이 뒤숭숭했고 간부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기미가 읽혔지만, 도훈은 원래 예정했던 의제부터 상정해 회의를 진행했다.
“다음은 운계면 감양리 인근 지적 정리 문제입니다. 민원봉사과장님. 설명 부탁합니다.”
“네, 시장님.”
도훈이 담담히 회의를 진행하자 어수선한 마음의 간부들도 안건에 집중했다.
예정된 의제를 모두 다루는 데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이걸로 대충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혹시, 따로 하실 말씀 있는 분 계십니까?”
도훈의 말에 한 사람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어제 언론보도 관련해서 혹시 상황 파악된 것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내내 회의에만 집중하던 부시장 전경완의 질문.
도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간부를 지목했다.
“자치행정과장님, 어제 늦게 제게 보고했던 내용 말씀해주세요.”
감사원 직원들을 상대하는 대흥시청의 공식 창구는 자치행정과장.
지목을 받은 과장이 발언했다.
“네, 시장님. 어제 오후에 갑자기 우리 시청의 감사 관련 뉴스를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건에 관해 제가 좀 알아봤습니다. 먼저, 어제 오전에 시청이나 관내 주민센터에 취재차 방문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가 우연히 알아내어 기사를 쓴 건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누가 우연히 사실을 알고 기사를 썼다면 그렇게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기사를 쓰지는 못했겠죠. 그럼 혹시 감사 나온 감사원 사람들이 흘린 겁니까?”
전경완 부시장이 묻자 과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많이 놀랐지만, 감사원 직원들이 더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자기들은 어디 언론사에 알린 적도 없고 기사가 나가기 전에 대흥시에 감사 나가느냐고 물어본 기자도 없었다더군요.”
“확실한 겁니까?”
“네. 제가 책임자를 직접 만나서 확인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게 언론사에 흘러간 게 여기 나와 있는 이들의 소행이 아니라 감사원 본원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건데···.”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리는 전경완의 말을 간부 대부분이 전경완과 비슷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는데, 다른 간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자치행정과장 판단에 동의하는 것이, 그 책임자뿐 아니라 다른 감사원 직원들도 굉장히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마침, 우리 안전총괄과 사무실이 소회의실 옆에 있어서 오다가다 얼굴을 마주쳤거든요. 아무리 봐도 정말 놀라고 당황스러운 모습이지 연극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흐음.”
전경완 부시장의 미간은 더 찌푸려졌고, 간부들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데 듣고 있던 도훈이 끼어들었다.
“우리 직원이 제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 설마요.”
“장담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 그렇긴 합니다만···.”
전경완이 뭐라 반박하려다 말았고, 다른 간부도 대개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어제 충남지역 신문사 여러 곳과 몇몇 중앙 언론사에서 마치 ‘대흥시청에서 비리 사건이라도 터져 감사원이 감사에 나섰다’는 뉘앙스로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낸 뒤 시청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은 별것 없는데도 자극적으로 기사 제목을 뽑아 시청에 문제가 있다는 오해를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당연히, 시청 직원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항의하거나 추궁하지는 않았지만, 감사원 직원 여섯 명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기사가 나온 뒤에도 잠잠하던 도훈은 그런 직원들의 분위기를 우려해 자치행정과장에게 감사원 책임자와 접촉해 자초지종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아무튼, 별것 아닌 이 소동이 지금 시청에 나와 있는 감사원 직원으로 인해 벌어진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려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도훈이 ‘별것 아닌 이 소동’이라 말하자 몇몇 사람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화가 나도 가장 크게 화날 사람이 다름 아닌 시장일 텐데, 그 시장이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직원들 잘 다독여 주세요. 감사원 사람들은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니까, 괜히 그 사람들 탓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
“감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언론에서 뭐라고 기사를 내든, 결과가 ‘문제없음’이라고 나면 다 해프닝으로 지나갈 것 아닙니까? 우리를 위해서도 감사가 잘 진행되는 게 좋은 겁니다. 그러니 감사 끝날 때까지 잘 협조하라고 전해주세요.”
“......”
“왜 다들 말이 없으세요? 그냥 제가 전 직원에게 호소문을 써서 이메일로 보낼까요?”
“아닙니다.”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시하겠습니다.”
간부들이 뒤늦게 답했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이걸로 회의 끝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도훈이 서류를 챙겨 먼저 회의실을 나섰고 굳은 표정의 영배와 두진이 뒤따랐다.
시장 일행이 자리를 뜨자 간부들이 작게 소곤거렸다.
“... 역시 우리 시장님은 보통 분이 아니라니까.”
“맞습니다. 저라면 도저히 저렇게 냉정하지 못할 건데요.”
“그러게. 아무튼, 직원들 잘 다독이자고. 여기 나온 사람들은 죄가 없는 것 같으니까.”
“...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 아닙니까? 시장님이 우리 직원이 알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괜히 하신 게 아닌 것 같은데···.”
언론보도의 소스는 감사원에서 나갔을 수도, 그게 아닌 다른 곳에서 흘러나갔을 수도 있었다.
감사원에서 흘러나갔다고 해도 문제지만, 다른 곳이라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간부는 도훈이 ‘시청 직원’을 언급한 게 ‘다른 곳’에 대한 섣부른 우려의 말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함이라고 여겼던 것이고,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경우는 생각하지 말자고.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 네.”
간부들의 대화를 들으며 전경완 부시장도 자리를 떴다.
‘... 느낌이 안 좋아.’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그 때문인지, 그의 발걸음은 자기 사무실이 아닌 도훈의 방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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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서울 모처의 사무실.
- 현장에 나간 직원들 말로는 문제 될 게 전혀 없답니다. 보도가 나간 뒤 잠깐을 제외하고는, 시청 직원들도 감사에 매우 협조적이라는군요. 별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또 알고 싶으신 게 있나요?
“아뇨. 이 정도며 됐습니다. 또 연락드리지요. 수고하세요.”
- 네.
뚝.
액정을 눌러 통화를 마친 손이 곧바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보좌관님.
“분위기 어떤지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 그게··· 딱히 변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 기사가 그렇게 나갔는데 별 변화가 없다고요?”
- 당일 잠깐 포털 메인에도 오르긴 했습니다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지 않습니까? 뒤이어 여러 언론에서 다뤘지만, 집중되지 않고 산발적이었고요. 거기에 기사 내용이 별다른 게 없으니 웬 호들갑이냐고 기자가 성토당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흠. 시청 분위기는 그렇다 치고 시민들 반응은 어떤가요?”
- ... 마찬가지입니다. 기사에 잠깐 놀란 사람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잠잠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기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이가 없으니···.
스피커폰 모드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보좌관’이라 불린 남자의 표정도 마찬가지.
보좌관은 소파에 앉아 묵묵히 통화 내용을 듣고 있는 정장 차림 남자의 눈치를 알게 모르게 살피고 있었으니까.
- 또 물어보실 게 있으십니까?
보좌관의 시선이 정장 차림의 남자를 향했고,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또 연락하죠.”
- 알겠습니다.
뚝.
통화가 종료되고 보좌관이 핸드폰을 집어 품에 넣고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
“... 어떻게 할까요, 의원님?”
“... 좀 더 지켜보죠. 나가 보세요.”
“네.”
보좌관이 정중히 묵례하고 나갔고, 방에는 의원 혼자만 남겨졌다.
피식.
싸늘한 실소를 흘린 의원이 중얼거렸다.
“... 자식, 역시 만만치 않네.”
지난 1주일간, 충남지역의 군소 언론사는 거의 모두 최소 1번 이상 대흥시의 감사 사실을 보도했고 일부 중앙 매체도 그 일을 다뤘다.
모든 언론사가 최초 보도 때처럼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은 아니었지만, 충남지역 그중에서도 대흥시 민심에 영향을 줄 정도는 될 거로 생각했다.
- 감사가 진행 중인 건 사실이다. 다만, 특정 사안이 문제시된 것은 아니다.
아주 짤막한 입장표명 외에 일절 언론보도에 대응하지 않았던 대흥시청.
지역 언론은 물론 일부 중앙 언론에서까지 다루었고 대흥시청 쪽의 대응이 소극적이어서 분명 영향이 있을 거로 예상했는데, 그간 도훈이 괜히 시민에게 칭찬받아 온 게 아니라는 걸 간과한 듯했다.
온라인에서 일부 사람이 ‘그렇게 나댈 때 알아봤다’며 도훈을 두고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정작 현지의 민심은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조금 전 확인했으니까.
“... 너무 쉽게 봤나.”
불순한 의도가 뻔히 보이는 언론보도의 최대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시장이 담담한 데 비해 직원들이 더 분노했다는 게 그런 뒤늦은 판단을 뒷받침해주었다.
“지역에 협력자를 만들지 못한 게 아쉽네.”
정보통이 언급했듯이, 대흥시에서 누군가가 언론 기사 제목의 뉘앙스대로 ‘시청 내부에 문제가 있어서 감사가 시작된 거 아니냐?’고 의심을 부추기는 작업을 했다면 좀 달랐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달랐을 거다.
때로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보다 내부의 작은 속삭임이 더 큰 파장을 끼치는 법이니까.
하지만, 대흥시에서 의원과 협력하거나 아니면 뜻대로 움직여 줄 이를 찾는 게 쉽지를 않았다.
심지어 당 지역위원회 사람들조차 도훈에게 호의적인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정도니까.
도훈의 지난 3년여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까?
“... 그도 그렇지만, 그간 그 녀석도 이런저런 일을 꽤 겪었지.”
시장이 된 이후, 도훈이 꼭 좋은 일로만 언론에 등장한 건 아니었다.
대개는 좋은 일이었지만, 터무니없는 이유로 조롱을 당한 적도 있고 잠깐이나마 비난을 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도훈은 잘 넘겼다.
도훈을 조롱하던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조롱거리가 됐거나 사실을 왜곡해 비난을 불러일으킨 이들은 끝내 공개적으로 두 손을 들고 말았으니까.
“그게 다 운은 아니었군.”
남자는 도훈을 웬만한 프로 정치인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 봤자···.’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다시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린 남자가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섰다.
보좌관이 얼른 가방을 챙겨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의원님?”
“국회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자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팬이에요, 의원님.”
“감사합니다.”
“사진 같이 찍어도 될까요?”
“하하, 물론이죠.”
찰칵.
보좌관이 핸드폰을 넘겨받아 사진을 찍었다.
세련되게 잘생긴 40대 남자와 정말 반가운 듯 조금 상기된 젊은 여자.
“고맙습니다!”
“뭘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지지자와 헤어진 남자가 건물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부르릉.
멀어지는 중형 승용차의 뒤로 건물 한쪽에 ‘국회의원 오정민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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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 충청남도 도청 도지사 집무실.
소파에 앉은 강정문 도지사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중이었다.
- 흠. 그 정도에서 그쳐도 괜찮다고요?
“네. 굳이 지금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표적이 된 김도훈 시장이 강 지사가 많이 아끼는 사람이라면서요.
“그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을 겪더라도 한결같이 시정에 집중할 테니까요. 문제는 우리 당 내부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을 해결하는 겁니다.”
강정문의 담담하고도 단호한 말에 상대방이 잠시 생각하더니 공감을 표했다.
- 하긴, 이제 3선이면 중진이고··· 더군다나 그쪽 핵심이라는 걸 고려해야죠.
“네. 그러니 신중해야 합니다.”
- 일단 알겠어요. 오 의원이 감사원에 압력을 행사한 건 확인했으니, 강 지사 말대로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통화를 마친 강정문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 어쩌다 그런 선택을 했는가.”
강정문이 벽에 걸린 큰 사진 하나에 시선을 줬다.
그의 도지사 당선이 확정되던 순간 찍은 사진.
중앙의 강정문이 담담히 웃는 가운데 환호하는 당과 캠프 관계자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 부디 더 엇나가지 마시게나.”
환하게 웃는 오정민에게 시선을 고정한 강정문이 복잡한 눈빛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