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34화 (235/279)

234. 컨설턴트 - 2.

- 한우리 기획은 연예 기획사나 홍보대행사 같은 게 아니고 정치인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아, 저는 기업 홍보 전문회사 출신이라 예전에 홍보전문가라고 소개했던 거지만요. 한우리에는 홍보, 정치, 심리, 경제 등 다양한 전문가가 일하고 있습니다.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자기 회사와 자기의 일에 관해 설명하던 이영은.

- 한우리 기획에는 세 개의 팀이 있고, 저는 그중 한 팀의 부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두 달간 제 일은 김도훈 시장님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죠. 물론 회사에 보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시장님께 보여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비서관께서 보고 있는 그 보고서요. 원래는 석 달로 예정했는데, 차 의원이 워낙 독불장군이라서 계획을 좀 앞당겼어요.

도훈은 물론이고 비서실 직원 모두가 금시초문인 ‘한우리 기획’이라는 회사.

이 회사뿐만 아니라 이 ‘업계’ 자체에 대해 도훈은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 우리나라에 정치 컨설팅 회사가 알게 모르게 제법 됩니다. 대부분 여의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죠. 물론 국회의원만 고객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시는 분 중에도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고, 때로는 당 내부의 선거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각 업체의 규모는 천차만별인데요. 1인 회사나 마찬가지인 곳도 많습니다만, 제법 시스템을 갖춘 곳도 몇 됩니다. 저흰 그중에서도 그렇게 시스템을 갖춘 곳 중에서도 꽤 실력 좋다고 인정받고 있답니다. 김용진 의원이나 강정문 도지사님 정도면 분명 잘 아실 거예요.

도훈과 김용진, 강정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알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사실 그게 비밀도 아니었기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도훈.

- 죄송하지만, 너무 그렇게 사기꾼 바라보듯 노려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시장님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건 아니잖아요? 제 용건은 이겁니다. 지방선거가 1년 정도 남았잖습니까? 그래서 선거를 대비해 시장님께 저희에게 컨설팅을 받아보시는 게 어떤가 하고 제안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도훈의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은 걸 알아챈 이영은은 이렇게 부연했다.

- 회사 자랑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한우리는 컨설팅해달라고 요청을 받는다고 무조건 응하는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 현직에 있는 분이라고 우대하는 것도 아니고 현직이 아니라고 박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보수가 많다고 무조건 응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높은 보수를 제안하고 컨설팅 요청하는 현역 정치인 중에 저희가 고사한 분이 여럿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보통, 저희는 컨설팅을 요청받지 컨설팅 해 드린다고 먼저 제안하지 않거든요. 지금처럼 저희가 먼저 제안하는 일이 과거에 몇 번 있었다는데, 최소한 저는 처음입니다.

명마는 주인을 가린다고 했던가?

한우리 기획이라는 곳이 명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도의 의미로 알아들은 도훈이었다.

이영은의 말이 우리한테 컨설팅 제안받은 걸 고맙게 여기라는 식은 아니었고 말과 태도가 무척 공손했기에, 도훈은 화를 내지 않았다.

김용진 의원이나 강정문 지사에게 물어보면 이영은의 말이 지나친 자화자찬인지 냉정한 평가인지 알 수 있겠지만, 왠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도훈이었다.

“의도는 모르겠고, 방식이 영···.”

차라리 차 의원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자신을 관찰하지 않고 직접 찾아왔다면 거부감은 좀 덜했을 터.

- 그게 옳다는 건 아는데···. 저희도 시장님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좀 무리수라는 건 분명합니다만, 시장님이 워낙 매체에 자신을 드러내길 싫어하시는 분이라··· 참고할만한 자료나 시장님을 잘 아는 기자도 없고 해서요. 호호,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저도 나름 힘들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영은이 ‘오늘은 인사만 드리려고 했다’며 얼른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도훈이 먼저 ‘싫다’고 답했을지도 모를 일.

“... 흐음.”

도훈이 명함을 붙들고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느새 순심이가 나타나 앞발로 도훈의 발등을 살짝 긁었다.

박. 박박.

“응? 아, 미안. 밥 달라고?”

왈! 왈왈!

“오냐. 얼른 나가자.”

명함을 던지듯 책상 위에 내려놓은 도훈이 방 밖으로 나갔고 순심이가 쪼르르 뒤를 따랐다.

- 한우리 기획 컨설턴트 이 영 은.

책상 위에 놓인 명함이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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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은이 작성한 보고서를 영배, 두진, 지연, 영진이 모두 읽은 건 다음 날 점심 무렵.

도훈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모두를 모이게 했다.

문제의 보고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도훈이 입을 열었다.

“다들 이 보고서 보셨을 텐데, 느낌이 어떻던가요?”

“전문가다운 보고서였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시장님의 강점과 약점이 정리된 게 이해하기 쉽더군요. 이해가 쉬우니 대응책을 고민하기도 좋겠고요.”

담담한 두진의 말에 지연과 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각기 소감을 보탰다.

“기본적으로는 실장님 말씀에 동의하는데요. 좀 기분 나쁜 것도 있어요.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약점으로 지칭한 것도 있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시장님이 직접 시민들과 만나는 일을 들 수 있겠네요. 시장님이나 저희나 그 일을 공들여 계속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보고서에는 이걸 최소화하고 좀 더 체계적인 과정을 갖춰야 한다더라고요.”

“그건 저도 원 주무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광역 단위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대흥시 정도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걸 굳이 시스템이니 체계화니 하면서 손대는 건···. 뭐랄까, 인간미가 없다고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좀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뒤이어 입을 연 영배.

“저도 그런 인상을 받긴 했는데, 그게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컨설팅 업체니까 아무래도 수공업적인 방식보다는 시스템이나 체계를 중요시하는 걸 테고요.”

각자의 평을 들은 도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이걸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읽는 게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도요. 어차피 시장님이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시는 분이 아니니까 이 보고서 보신다고 여기에 확 휩쓸리시거나 하지도 않으실 테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두의 평가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

혹시나 여기서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면, 도훈은 이영은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지 않고 그대로 파쇄해 버렸을 터였다.

“쩝. 다들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저도 읽어봐야겠군요.”

“나름 재미있을 겁니다, 시장님. 시장님과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 이가 관찰하고 분석한 거니까요. 보고서에 시장님에 대한 심정적 이해나 배려가 전혀 없다는 건 꼭 생각하고 보세요.”

장난기 어린 영배의 말에 말없이 피식 웃으며 대꾸한 도훈이 서류를 들어섰다.

“앞으로 30분 정도 시간 있죠?”

“다음 일정이 두 시니까 1시간 넘게 여유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 이것 좀 읽고 있을게요.”

“네. 급한 일이 아니면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시장실로 들어선 도훈이 책상에 앉아 서류를 펼쳤다.

“... 흐음.”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 타인이, 그것도 도훈을 정치가로 상정하고 작성한 문서.

이런 종류의 문서는 도훈도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아주 생소했다.

“... 읽어둬서 손해는 안 나겠지.”

간간이 도표나 그래프가 섞인 꽤 긴 서류에 도훈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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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어느 사무실.

넓진 않으나 고급스럽고 깔끔한 느낌이 나는 사무실 책상 앞에 이영은이 서 있었다.

책상 위에 ‘대표이사···.’라고 쓰인 명패가 놓여 있는 것이 이영은이 마주한 사람이 ‘한우리 기획’의 대표이사임을 짐작하게 했다.

“김 시장에게서 연락이 왔었다고?”

“네. 조금 전에요.”

“뭐래?”

“보고서 잘 읽었다고요.”

“... 그게 전부야? 좀 자세히 말해 봐.”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요. 보고서 잘 읽었고 어떤 부분은 공감이 많이 가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더라. 다만, 그거 쓰느라 고생 많이 했겠더라, 그런 얘기였어요. 아, 보고서 작성에 대한 수고비를 지급하고 싶다는 얘기도 하긴 했네요.”

“수고비?”

“... 네.”

의아한 표정으로 대표이사가 반문했고, 이영은이 좀 자존심 상했다는 듯 답했다.

대표이사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정식으로 컨설팅을 맡기겠다거나 더 얘기해 보겠다는 게 아니고 그 기초보고서에 대한 수고비를 내겠다?”

“... 네.”

“당장은 컨설팅 안 맡기겠다는 얘기네.”

“... 쩝. 그렇게 확인사살 안 해도 저도 알거든요?”

대표이사와 부팀장 사이의 대화라기엔 격식이 없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은 대표이사도 이영은과 그리 나이 차가 많아 보이지 않았고 이영은의 말과 태도에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건 회사가 주먹구구식이라서가 아니라 이영은이 회사 창립 때부터 함께 한 멤버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우리를 다른 사이비랑 같은 취급하는 눈치는 아니었어?”

“어제는 몰라도 오늘은 아니었어요. 시종일관 정중했거든요.”

“흐음. 과연 그럴까?”

“무슨 뜻이에요? 제 말 못 믿는다는 뜻이에요?”

“그런 게 아니고 그 김도훈이라는 친구, 웬만해서는 속내를 읽기 어렵다고 들었거든.”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 어제는 대놓고 의심했었거든요? 그때랑 아까랑은 느낌이 달랐다고요.”

“... 뭐, 이 부팀장 얘기가 맞겠지. 참, 그래서 수고비는 어쩐다고 했어? 받는다고 했어?”

“아뇨. 틀림없이 나중에 또 보게 될 테니까 그때 밥이나 한번 사라고 했어요.”

“하하. 못 말려.”

이영은에게 핀잔한 대표이사가 질문했다.

“자네 생각엔 나중에라도 연락할 것 같나?”

“... 솔직히 모르겠어요.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인구 5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잖아요. 그런 곳에서 선거 치르는데 우리한테 컨설팅을 요청할 필요가 있을까요? 거기 두 달 있어 보니까 시장 욕하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던데, 시장은 그런 거에 자만하지도 않고 이리저리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요.”

“그래?”

“네. 가기 전에도 평가가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는 경험 없는 초짜가 운이 무척 좋은가 보다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지지율 조사를 정식으로 해본 게 아니지만, 시민들 지지는 분명 높아요. 아마, 공무원들만 대상으로 조사하면 시민 지지도보다 훨씬 더 높을 거고요. 그 정도로 일 잘한다고 평가받더라고요. 실제 보기에도 그런 것 같고.”

“흐음. 알았어. 나가 봐.”

“어머? 왜 이러실까? 빠트린 게 있잖아요?”

이영은이 미간을 찌푸리고 묻자 대표이사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빠트리긴 뭘 빠트려?”

“굳이 절 거기 보내서 김 시장에게 컨설팅 제안하게 한 거요. 제가 가기 전에 물었을 때 다녀오면 얘기해준다고 하셔놓고는?”

“그랬나?”

“와! 지금 시치미 떼는 거예요?”

“쩝. 그냥 유망주라니까 관심이 갔던 거라고 치자고.”

“에이, 대표님 취향은 단타지 가치투자가 아니잖아요. 성질도 급한 분이 무슨?”

“아, 좀 봐주라. 진짜로 유망하다고 해서 관심이 갔던 거야.”

“흐음?”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이영은이 노려봤지만, 대표이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영은이 잠시 그렇게 대표를 노려보다 졌다는 듯 양손을 번쩍 들고는 투덜거렸다.

“내가 이렇게 또 당하지. 억울해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독립을 하든지 해야지, 원.”

“실없는 소리 말고, 나가서 일 봐.”

“네, 네. 부팀장 주제에 대표이사 지시에 따라야죠.”

이영은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고, 혼자 남은 대표이사가 잠겨진 책상 서랍을 열쇠로 열고 서류를 하나 꺼냈다.

서류 첫 장에 ‘OOO의 약점과 공략 포인트 연구’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에서 분석하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도훈이었다.

“오정민 그 자식이 이런 걸 만들어서 내 흥미가 동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

이영은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서늘하게 변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대표이사.

그는 서류를 다시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몸을 일으킨 대표이사가 창가로 가 밖을 바라봤다.

“... 조만간 대흥시에 가봐야겠네.”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대표이사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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