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31화 (232/279)

231. 묻어가기 - 2.

“이것 좀 봐라.”

“... 뭔데?”

“차 의원 SNS 계정이야. 새로 올라온 사진들 좀 보라고.”

“......”

주민과의 대화 행사가 열린 당일 저녁, 시청 비서실.

야근하며 서류를 읽고 있던 도훈에게 영배가 자기 스마트 폰을 내밀었고, 핸드폰을 받아든 도훈이 무덤덤하게 액정을 바라봤다.

“... 세 장뿐이네.”

“그래. 그렇게 사진 찍어대더니 올린 건, 겨우 세 장이다. 그런데 사진 구도가 참 마음에 안 들어.”

“......”

‘오늘의 의정활동’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짤막한 글과 사진.

낮에 유서면 주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세 장의 사진에는 모두 도훈과 차혜진이 함께 찍혀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는 도훈과 그 옆에서 뭔가 메모하는 사진, 주민과 악수하는 도훈 옆에 공손한 표정으로 선 사진, 주민과 악수하는 차혜진과 그 옆에 서서 미소를 머금은 도훈의 사진.

행사 내내 대화 한 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두 사람이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세 장의 사진만 놓고 보면 아주 긴밀하게 협력한다거나 사이가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홍보전문가라더니 사진으로 소설을 쓰고 있어.”

“......”

“특히, 이 세 번째 사진은 정말 그렇지 않냐?”

“... 글쎄.”

쌍심지를 켠 영배의 질문에 도훈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가 글쎄야, 글쎄는? 이거 네가 다른 사람하고 눈인사하는 건데 각도가 교묘해서 네가 인사하는 사람은 안 보이고 너랑 차 의원이 함께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

“... 그런 상황이었어?”

“그랬던 것 같아. 거의 확실해. 아니, 완전히 확실해.”

“... 하하.”

도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 건 사진 때문이 아니라 그 사진 속 상황을 기억하는 영배 때문이었다.

자신은 감도 안 오는데 영배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 홍보전문가라는 보좌관을 얼마나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길래···.

물끄러미 쳐다보는 도훈의 눈빛을 알아챈 영배가 투덜거렸다.

“하도 사진을 찍어대길래, 어디 기잔가 싶어서 계속 관찰했지. 실장님이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 확인하라고 하시지 않았으면, 행사 중간에 불러내서 확인했을 거야.”

“그랬어?”

“어. 보니까 주민센터 직원이랑은 안면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완전히 수상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했거든. 어쨌든, 아마 사진을 못 찍어도 한 50장은 넘게 찍었을 거다.”

“... 하하.”

“그런 사진 중에 고르고 골라낸 세 장이 저런 거라니···. 이거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잖냐?”

“... 흐음. 형 말이 맞겠지. 홍보전문가가 직접 찍어서 골라 올린 사진일 텐데.”

사정이 그럴 것 같기도 했지만, 얼른 얘기를 마치고 다시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도훈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영배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자기를 전문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홍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 의원의 장점을 홍보해야지. 왜 너한테 묻어가려는 거야?”

“......”

“차 의원이 행동도 사진 속에서처럼 한다면 얄밉지나 않지. 여전히 찬바람 쌩쌩 불었잖아. 말도 한마디 안 나누고 눈길 한 번 안 마주쳤는데 말이야.”

“......”

“우리 와이프가 자주 쓰는 말이 이럴 때 ‘딱’이야.”

“... 그게 뭔데?”

“별꼴이야, 정말.”

“... 하하.”

영배 부인 선아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기억이 도훈에게는 없었다.

아마, 영배가 뭔가 잘못했거나 실수했을 때 그에게만 쓰는 용어가 아닐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형.”

“신경 안 쓸 수가 있겠냐? 내가 명색이 비서실 홍보 담당잔데?”

“......”

영배가 비서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유일한 사람인 건 맞다.

틈만 나면 ‘홍보’ 노래를 부를 정도로 그쪽에 적극적인 것도 맞다.

하지만, 담당자인 영배가 홍보 관련해서는 할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도훈이 홍보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이었다.

영배가 하는 홍보 쪽 꾸준한 일은 단 하나.

도훈의 공식 SNS 계정을 관리하는 것뿐이었다.

여하튼, ‘홍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그쪽으로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영배의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나 ‘사진으로 소설을 쓴’ 홍보전문가.

‘... 욕구불만을 저쪽에다 대고 푸는 건가?’

영배가 좀 ‘오버’하는 것도 솔직히 이해가 가는 도훈이었다.

“형, 좀 진정하고 내 얘기 들어봐.”

“... 휴우. 일단 해 봐.”

“차 의원 보좌관 정말 홍보전문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들 몇 사람이나 볼 것 같아?”

“... 그리 많지는 않겠지.”

차혜진의 SNS를 찾는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전국적인 관심을 몇 번 받았던 도훈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일 터.

“그리 많지 않은 그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대흥시 시민이거나 대자당 관계자들이겠지?”

“... 아마도?”

“그 사람들이 나랑 차혜진 의원 관계를 설마 모르겠어?”

“... 아니겠지.”

“그래. SNS에 의도적으로 찍은 사진 몇 장 올렸다고 나와 차 의원의 관계를 오해할 사람은 애초에 거의 없어. 또 국회의원들은 정기적으로 의정 보고서라도 보내지만, 시의원들은 그런 것도 아니잖아. 말 그대로 홍보 효과를 노리고 작업할 통로가 거의 없다는 거야.”

“... 그, 그런가?”

“당연하지. 그리고 시청과 시의회는 물론, 우리 대흥시 공무원치고 작년 말에 내가 차 의원과 왜 틀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 ‘오죽하면 부처님이 열 받았겠냐?’고 직원들이 수군대던 것 잊었어? 직원들뿐인가? 시민들도 꽤 많이 알 걸? 차 의원이 괜히 쥐죽은 듯 지난 몇 달 보낸 게 아니잖아.”

끄덕끄덕.

영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홍보전문가가 나서서 ‘작업’한다고 해서 당장 영향이 있을 거로 생각해?”

“... 없을까?”

“물론 의외라고 생각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현실에서 차 의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데 그 영향이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 흐음.”

도훈이 말을 마치자 영배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러려나? 네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나랑 사이 안 좋은 다른 시의원들도 의회에서는 몰라도 최소한 카메라 앞에서는 그런 티 안 냈던 것 기억해?”

오래전 야인이 된 양상택, 야인이 되지 않기 위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서태기가 그랬다.

인지도도 인지도지만 대흥시민을 비롯한 일반인에게 도훈의 이미지는 대개 좋은 편이었으니까.

“... 그랬지. 장민호 의원도 비슷하니까.”

“차 의원은 이제야 겨우 그 정도 하는 거로 생각하면 마음 편해.”

“... 흠.”

“흥분 좀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봐.”

“... 알았어.”

“그리고 이제 일 좀 하자고. 괜한 일에 힘 빼지 말고.”

심드렁하게 말한 도훈이 영배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서류에 눈을 돌렸다.

도훈의 말을 되새기며 ‘그런가? 아닌가?’ 홀로 생각하고 있던 영배가 문득 다시 도훈을 바라봤다.

‘... 그러고 보니 열을 내도 저 녀석이 더 내야 하는 거잖아? 저 녀석이 당사자니까.’

당사자인 도훈은 차분히 서류를 읽으며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홍보담당자인 자신이 열을 내는 게 갑자기 우습게 느껴진 영배.

말없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간 영배가 서류를 끌어당기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 쩝. 괜히 그 홍보전문가란 말에 발끈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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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의 대화 이후에도 차혜진 의원은 자신이 끼어도 되겠다 싶은, 시장이 참여하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호호호!”

“... 안녕하세요.”

“......”

시민들에게는 아주 진정성 어린 접대성 미소를, 시 직원이나 관계자들에게는 그럭저럭 성의를 갖춘 표정을, 도훈이나 비서실 직원에게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건 여전했다.

그러면서도 기회만 닿으면 도훈과 가까운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찰칵! 찰칵! 찰칵!

홍보전문가라는 여자 보좌관이 부지런히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고, 그 사진 중 ‘잘 찍힌 것들’은 곧장 차혜진의 SNS 계정에 올라왔다.

“또 올라왔어요!”

“... 신경 끄라니까요.”

“그래도···!”

“릴렉스. 릴레~ 엑스.”

“휴우!”

SNS에 새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발끈하는 영배를 진정시키길 얼마.

SNS에 올리는 것만으로 모자랐는지 그녀의 사무실에도 도훈과 함께 찍힌 사진이 걸렸고, 시민의 왕래가 잦은 곳 근처에는 큼지막한 사진이 포함된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운계면 사거리 신호등에 걸린 순간, 도훈과 차혜진이 함께 찍힌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본 영배가 다시 벌컥 화를 냈다.

“릴렉스. 릴렉스.”

“후우, 후우!”

도훈의 말에 영배가 심호흡했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두진과 영진이 한마디씩 했다.

“집요하네, 정말.”

“그러게 말입니다. 좀 너무하는군요.”

창밖 플래카드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다음 일정 때의 자료를 보고 있던 도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들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요.”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공식적으로 항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차 의원이 계속 저런다고 득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시민들도 알 건 다 압니다.”

“... 그래도···.”

“우리가 반응하면 효과야 어쨌든 차 의원은 재미있어할 겁니다. 그걸 원하세요?”

“......”

도훈의 물음에 모두가 짧게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 그건 아니죠.”

“... 그건 더 싫네요.”

“안 쳐다보려고 애써보겠습니다.”

그렇게 직원들을 진정시킨 도훈은 차가 출발한 직후 플래카드를 남몰래 흘끔 했다.

아무리 무덤덤하게 직원들을 진정시켰지만, 자신과 차혜진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매우 이질적인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가지가지 하네, 정말.’

다시 서류에 시선을 준 도훈이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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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이 보좌관!”

“네, 의원님.”

“우리 언제까지 이 홍보전략 밀고 나가야 하는 겁니까? 오늘 내가 시청 구내식당에서 무슨 얘기 들었는지 알아요?”

“......”

얼굴이 붉어진 차혜진 앞에 다소곳이 선 보좌관 이영은.

묵묵부답인 그녀를 향해 차혜진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사이 나쁘기로 유명한 시장에게 묻어가려 하냐고 수군댑니다. 내가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기나 해요?”

“... 죄송합니다.”

“나 자부심, 자존심 없으면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이 보좌관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서 동의한 거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에요?”

“... 죄송합니다, 의원님.”

새 보좌관의 첫 임무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차혜진의 이미지 회복 혹은 쇄신이었다.

작년 말 개인사유를 이유로 전 보좌관이 그만둔 뒤, 차혜진은 백방으로 ‘참신한 인물’을 구하려 노력했으나 그녀에 대한 세평이 워낙 나빠서인지 아무도 지원하는 이가 없었다.

도당에다 추천을 요청했지만, 그쪽에서도 ‘지원자’가 없다며 난색을 보여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두 달 전 갑자기 나타난 지원자가 이영은.

“내가 그런 얘기까지 들어가며 이런 방식을 고수해야 해요? 네? 이 보좌관, 내 보좌관 맞냐고요! 지금 내 이미지가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단 말이에요!”

“... 죄송합니다, 의원님.”

차혜진이 계속 화를 냈지만, 이영은은 담담히 ‘죄송하다’ 답할 뿐이었다.

그게 더 차혜진의 성질을 돋웠지만, 어렵게 구한 보좌관에게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홍보전략, 새로 짜세요.”

“... 저기, 의원님.”

“뭐요?”

“조금만 더 추이를 보시는 게···.”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쾅!

책상을 치며 버럭 화를 낸 차혜진은 얼마간 더 이영은을 타박하다 ‘무조건 홍보전략을 다시 짜라’며 싸늘하게 내뱉고 사무실을 나갔다.

쿵!

“... 하여간, 성질은.”

문이 세게 닫히자마자 다소곳하던 이영은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미지 안 좋아지는 게 어떻게 다 내 탓이야? 그리고 홍보전략에는 분명 시장과 화해해서 좋은 관계인 ‘척’이라도 한다는 게 있었잖아? 이 홍보전략의 핵심은 바로 그거였다고. 그때는 알았다고 해놓고 정작 자존심 때문에 시장한테 말 한마디 안 붙이는 게 누군데?”

투덜대고 있었지만, 이영은의 표정에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자를 테면 잘라라.’ 는 그런 태도랄까?

“어차피 우리가 관심을 둔 건 당신이 아니니까 내가 참는다.”

중얼거리던 이영은의 시선이 벽에 걸린 차혜진과 도훈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진을 향했다.

“... 흐음. 역시 흥미로워.”

도훈에게 시선을 고정한 이영은의 눈이 의미 모를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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