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어떤 민원인 - 3.
삐뽀! 삐뽀! 삐뽀!
어둠이 내린 시간,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퇴근해 빌라 베란다에 선 도훈의 고개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있었다.
“무슨 일이 났나?”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폭설로 대흥시의 여러 사람이 고생했다.
시청 공무원을 비롯해 경찰관에 소방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자기 집 주변의 눈을 치우는 시민들까지.
시청 직원들도 고생했지만, 가장 분주하고 고된 시간을 보낸 건 역시 경찰관과 소방관이었다.
직원들이 쉬지 못하고 나와서 눈 치우느라 고생한 건 맞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대흥시 전역을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온갖 상황에 대처해야 했으니까.
그들의 존재 이유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이 현장에서 저 현장으로 달리고 또 달리며 위험 앞에서도 몸을 빼지 않는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 숙연해지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 누가 또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겠네.”
그간 많이 친해진 대흥시의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도훈이 중얼거렸다.
마지막에 새롭게 알게 된 얼굴 하나를 떠올린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 휴우. 다들 어찌 그리 한결같냐.”
- ... 건물 외부에서 계속 물을 방수해 상황을 봐가며 화재를 진압해도 되는 거였죠. 하지만,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진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대원들이 안으로 진입했고··· 결국에 사고가 났죠. 제가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 겁니다.
고필영 소방위와의 통화 내용을 되새기는 도훈.
도훈이 알아본 결과, 작년 가을 서천 건어물 공장에서 발생한 소방관 사망과 부상 사고는 사람이 불길에 휘말리거나 해서 생긴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지붕과 설비가 무너지면서 공장 내부에 진입했던 소방관들이 이 밑에 깔리며 발생했다.
외부에서 방수만 했더라면 고필영 소방위의 말처럼 사망자와 부상자는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 원인 조사결과는 물론 당시 상황을 평가한 거의 모든 사람이, 공장의 붕괴 우려가 적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주변이 공장밀집지대인 걸 고려해 불길을 빨리 잡아 피해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한 ‘적절한’ 지시였다는 판단을 내렸다.
불이 났으나 공장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그것도 여러 사람의 판단이 있었기에 내부 진입을 지시했을 터.
- 당시 현장책임자나 경력 많은 대원들도 고 소방위의 판단에 동의했었습니다. 그래서 진입을 하게 된 거고요. 고 소방위는 자신이 먼저 그런 판단을 내렸다고 괴로워하고, 강 소방교는 내부에서 좀 더 주의했어야 한다고 괴로워하는 겁니다.
도훈이 혹시나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 들은 서천 소방서장의 당시 사건에 대한 말.
담담히 말하려 애쓰는 게 느껴질 정도로 소방서장 역시 아직 그 사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듯했다.
예기치 않게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으니 간부와 책임자급에 대한 징계도 있었다.
징계를 내린다고 죽은 대원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신입 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하지만, ‘사고’가 왜 ‘사고’이겠는가.
“그런데도 다들 자기 책임이래···.”
소방서장도, 고필영 소방위도, 강철기 소방교도 모두가 책임감을 넘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 철기가 충격이 아주 컸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신입 후배가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후배가 죽어가는 모습을 무너진 지붕 아래 깔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요.
서천 소방서에서 화재 진압 중 소방대원이 사망한 건 몇십 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그로 인해 당시 출동했던 소방관 모두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아직 참여 중인 이도 있었다.
경태 아빠도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 과정을 마쳤지만, 뭔가 더 필요한 게 확실해 보였다.
“...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려나?”
컴퓨터 앞에 앉은 도훈이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해나가기 시작했다.
제설작업으로 피곤한 도훈이었지만, ‘방법’을 고민하는 도훈의 공부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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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 네. 아마 동료 소방관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부인도 물론이고요. 이런 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무척 중요하거든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메모를 하는 도훈.
마치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상대가 해주는 얘기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 소방관에게 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 음, 이건 의사로서의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나온 얘기라는 걸 전제로 들어주세요.
“네. 말씀하세요.”
- 제가 만나 본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은 대부분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무척 강한 분들이었습니다. 좀 아이러니하죠. 남다른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더 마음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니.
“... 그렇군요.”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보건소장을 통해 연락이 닿은 정신과 전문의.
그것도 심한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여럿 치료한 경험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경태 아빠를 돕기 위해 도훈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중이었던 것.
- 이런 분들은 스스로 빨리 극복해내야 한다는 마음도 강합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이란 노력과 의지만으로 빨리 극복되는 게 아니죠. 시간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 때로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와의 상담, 약물치료도 필요합니다.
“물론이겠죠.”
-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 혼자가 아니다···.”
- 네. 같이 싸우는 동료가 있고, 힘들어하는 환자를 사랑하고 보듬어 줄 가족이 있죠. 그리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숭고한 일에 나서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민이 있는 거고요.”
- 바로 그겁니다.
“... 네.”
도훈이 의사의 말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이는데, 의사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사실, 거의 모든 경찰관과 소방관이 신입 때부터 앓는 마음의 병이 하나 있답니다.
“마음의 병이요? 그게 뭡니까?”
- 자괴감과 싸우는 겁니다.
“... 아.”
- 시장님도 그런 영상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파출소에서 진상짓 하는 취객이나 구급차에서 자기를 치료하는 소방관에게 욕하고 때리기까지 하는 사람들이요.
“네. 본 적 있습니다.”
- 그들이 일부라고, 훨씬 더 많은 사람은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장의 경찰관과 소방관은 그렇게 자기 일에 회의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자주 접한다고 하더군요.
“... 네.”
도훈의 아버지도 경찰관, 그것도 파출소에서 오래 근무한 경찰관이었다.
당연히 도훈도 아버지가 겪은 어처구니없고 해괴망측한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일을 겪으며 느꼈을 자괴감, 혹은 모멸감을 아들이 짐작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테니까.
다른 경찰관, 소방관이라고 다르겠는가.
- 시민의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고 그런 짓 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있기도 하지만, 당장 싹 사라지는 건 아니고 아마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을 겁니다. 시기는 다르지만, 대부분 신입 때 한 번 크게 앓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평생 그런 자괴감과 싸우는 거죠. 그분들 말로는 몇 번 겪으면 ‘면역이 된다’, ‘익숙해진다’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 네.”
- 반면, 서구처럼 시민의식이 발달 된 사회의 경우에 경찰관이나 소방관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시선이 아주 강하고 매우 뚜렷합니다. 당사자들이 일상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 또한 시장님도 잘 아실 테죠.
“네.”
- 그런 환경이 경찰관과 소방관이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뒤에는 우리를 믿고 지지하는 시민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죠. 그런 믿음과 정신적 안정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합니다.
“... 그렇군요.”
- 우리나라의 경찰관과 소방관에게도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도훈은 정신과 전문의와 한참 더 이야기한 뒤 통화를 마쳤다.
인터넷이나 관련 자료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을 수 있었지만, 전문가가 직접 해주는 이야기는 체감의 정도가 달랐다.
“흐음.”
요 며칠, 인터넷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소방서장 등과 이야기하며 ‘방법’을 고민하던 도훈.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까지 들으며 자신이 어떻게 도와야 하고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감은 잡았다.
“대충 그림은 나왔는데···. 어떻게 판을 짠다?”
띠리리.
도훈이 중얼거리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네.”
- 시장님. 교육지원청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어떤 일로요?”
- 주말에 고물상 화재 진압에 공을 세운 아이들 표창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교육장님도 같은 생각이시라고 함께···.
“아!”
지연의 말을 듣고 있던 도훈의 머리에 ‘번쩍’ 하고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도훈은 지연과 통화하다 말고 그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했다.
- ... 저기···. 시장님?
“잠깐만요, 지연 씨.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네.
전화기를 얼굴에서 떼고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가린 도훈이 눈을 감았다.
시장이 되기 전 도훈은 작가였다.
대단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자기 소설을 유료화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작가.
그런 능력이 이 상황에 도움이 될 줄이야.
‘... 그렇게 하고···. 또, 이렇게···.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면 안 돼. 거기에다가···.’
전화기를 붙든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살을 붙이고 또 붙여 나가길 얼마.
번쩍.
눈을 뜬 도훈이 다시 전화기를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저기 지연 씨. 지금 교육장님 청에 계신대요?”
- 네? 그, 글쎄요. 그건 확인 못 했는데요.
“그럼 확인 좀 해주실래요? 그리고 혹시 계시면 제가 찾아가 상의드릴 게 있는데 괜찮으시냐고도 물어봐 주세요. 지금 바로요.”
- 바로 교육지원청에 찾아가신다고요? 표창과 관련한 일로요?
“네. 저 마침 지금 다른 일정 없잖아요?”
- 그, 그렇죠. 알겠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도훈은 새 메모지에다 조금 전 머릿속에서 정리한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일필휘지’로 뭔가를 적어 내려가는 도훈의 얼굴에는 작가일 때 뭔가 ‘필’을 받아 한참 글이 잘 써지던 순간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띠리리.
“네.”
- 교육장님 지금 청사에 계신답니다. 마침 시간 괜찮다고 하시네요. 기다리시겠답니다. 홍 주무관이 이미 차 대기시켰고요.
“알겠습니다. 바로 지원청으로 갑니다.”
- 네.
전화를 끊은 도훈이 메모지를 챙겨 몸을 일으켜 비서실로 나섰다.
“가시죠!”
“네.”
서둘러 걷는 도훈의 뒤로 영배와 두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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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의 어느 수요일.
날씨가 화창한 가운데 대흥시 운계면의 한 초등학교에서 갑작스럽게 비상벨이 울렸다.
때르르르르릉!
“불났다!”
“불이야!”
비상벨이 울리자 아이들이 호들갑스럽게 외쳤지만, 선생님들이 침착하게 말했다.
“자, 얘들아.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행동하는 거야. 알겠지?”
“네!”
답한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모였고, 교사가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더니 다시 말했다.
“자, 운동장으로 나가자.”
“네!”
“뛰지 말고 걷는 거야. 질서를 지켜서. 알지?”
“네!”
“가자.”
각 교실에서 교사들의 인솔 하에 아이들이 걸어 나왔고, 질서정연하게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소방차 한 대와 구급차 한 대, 순찰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게 아닌, 오늘의 긴급대피 훈련과 소방 교육을 위해 미리 대기해 있던 이들.
지금 이 상황은 진짜가 아니라 화재를 가정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자, 1학년 1반은 이쪽으로!”
“네!”
“2학년은 그 옆!”
“네!”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인도했고 교사들이 앞서는 가운데 건물을 벗어난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다만, 실전을 가장한 훈련이라고 모두가 진지한 건 아니었다.
“오늘 바로 집에 갈 거야?”
“그래야 하는데, 왜?”
“야! 네가 떡볶이 살 차례잖아.”
“그랬나?”
잡담하는 아이들에게 한 소방관이 주의를 시켰다.
“훈련 중에 잡담하는 거 아니에요.”
“네, 네. 야, 지난주에 내가 샀으니까 이번 주 네 차례···.”
“얘들아.”
“... 어, 아, 알았어요.”
소방관이 정색하고 있었기에 건성으로 답하며 바라보던 아이들은 잡담을 멈췄고 소방관의 시선은 이내 다른 아이들에게 옮겨졌다.
“... 애들이잖아. 적당히 해라. 웃어, 웃으라고.”
“... 네.”
다른 소방관이 정색한 소방관의 곁을 지나며 작게 말했지만, 소방관의 진지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런 경태 아빠의 모습을 도훈이 교육장과 함께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