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26화 (227/279)

226. 어떤 민원인 - 1.

우두두두.

길을 달리는 수십 명의 사람.

쌓였던 눈을 치웠다고는 해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하필 기울어진 경사로 위쪽으로 달려야 해서 사람들이 연신 미끄러졌다.

퍽! 철퍼덕!

“아이고.”

“조심하세요!”

“헉, 헉!”

맨몸으로 달리기도 힘든 미끄러운 길을 소화기까지 들고 달리는 사람들.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동료들을 일으켜가며 달리는 사람들이 건물 하나를 돌자 시야가 확 트였고, 저만치 앞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저긴 가보다!”

“빨리! 빨리 뛰어!”

줄지어 달리는 사람들 앞쪽으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과 운계면 시가지 사이의 거리는 무척 가까워 보였다.

다행히 시가지의 건물이나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한 건 아니었지만, 개발되지 않은 야산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사람들에게 산불을 생각나게 했다.

대흥시에서 가장 번화한 운계면 시가지와 딱 붙어있는 야산.

거기서 산불이 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더 빨리!”

“뛰어!”

그런 ‘사태’가 터지기 전에 막기 위해 도훈과 시청 직원들이 달리고 있었다.

“헉, 헉! 저기 고물상 아니야?”

“맞아요! 헉, 헉! 일단 뛰어요!”

연기는 고물상의 얇은 펜스 너머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 들어서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마지막 코너를 돌자 의외의 장면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더 던져!”

“얼른!”

“높이 던져!”

“빨리!”

저만치 펜스가 무너지고 불이 타오르는 곳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십여 명의 아이들이 눈을 뭉쳐 던지고 있었다.

“소화기! 소화기 앞으로!”

“뿌려!”

소화기를 들고 달려온 도훈이 먼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고, 영배와 다른 직원들이 뒤를 이었다.

푸확!

쉬이익!

열 대가 넘는 소화기에서 소화 분말이 쏟아졌고, 크기는 작지만 무섭게 넘실거리던 불길이 주춤했다.

“더! 더!”

“다른 소화기요!”

“다음 붙어!”

소화기 분말을 다 쓴 사람이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새 소화기를 든 사람이 채웠다.

어른들이 소화기로 불을 끄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계속 눈을 뭉쳐 불에 던지는 걸 계속했고, 어른들이 합세했다.

“우리도 붙죠!”

“던져!”

“놀고 있지 말고 눈이라도 던져요!”

그렇게 아이들 십여 명과 서른이 넘는 어른들이 5분간 전력을 다하자 불이 꺼졌다.

“휴우.”

“만세!”

“와아아!”

불길이 사라지고 김만 모락모락 솟아오르자 안도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만세를 불렀다.

삐뽀! 삐뽀! 삐뽀!

저만치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 현장으로 소방차가 출동하는 듯했다.

“조 비서관, 소방서에 전화해서 급한 불은 끈 것 같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하세요. 괜히 서두르다가 사고 나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영배에게 이른 도훈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너희가 고생 많았구나.”

“어? 시장 아저씨다!”

“진짜!”

“맞아!”

도훈을 알아보고 반색하는 아이들은 모두 열셋.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일 것 같은 아이들에게 도훈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혹시 다친 사람 없니?”

“없어요! 다 괜찮아요.”

“다행이구나. 불난 거 처음에 신고한 게 너희가 맞지?”

“네!”

주민센터 옥상에 올라갔던 직원 하나가 가늘게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주차장에 있던 동료들에게 알렸고, 멸치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던 이들이 곧장 119에 신고하고 센터의 소화기란 소화기는 다 손에 들고 이리로 달려왔다.

119에 전화를 한 직원이 ‘이미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었기 때문에, 도훈은 이 아이들이 그랬을 것이라 짐작했다.

“신고만 한 게 아니고 눈을 뭉쳐 던져서 불이 번지는 걸 막았구나?”

“네.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확 번질 것 같아서 눈이라도 던졌어요.”

“하하. 똑똑한데? 너희가 이 불 번지는 걸 막았다.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좀 해줄래?”

“그게 말이죠···.”

아이들은 모두 야산 아래 주택가에 사는 녀석들.

눈이 온 야산의 고물상 근처에서 경사길에서 푸대 자루를 타고 미끄럼을 타고 놀다가 갑자기 뭔가가 무너지며 내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달려왔단다.

고물상 벽에 붙었던 간이건물이 눈 무게를 못 견디고 무너진 모양인데, 합선이라도 됐는지 연기가 치솟아 119에 신고를 했단다.

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누군가가 눈이라도 던지자고 해서 계속 연기가 나는 지점에 눈을 뭉쳐 던졌다고 했다.

도훈의 말처럼 아이들이 불이 고물상 전체로 번지는 걸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훈이 아이들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불이 꺼진 발화지점을 살피고 온 직원이 부연설명을 했다.

“저기에 여기 고물상 사장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나무로 만든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이 지붕에 쌓인 눈 무게를 못 견디고 무너지면서 전기합선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얼마나 허술했길래 이 정도 눈에 무너졌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발화지점 옆으로 폐지가 쌓인 곳이 있던데,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이게 다 이 아이들 공입니다.”

“그러게요. 정말 큰일을 해냈습니다. 하하!”

다른 직원들도 몰려와 아이들을 쓰다듬거나 칭찬하기에 바빴다.

“이야, 대단한데? 우리 아들보다도 더 어린 것 같은데, 너희 몇 살이야?”

“열 살이요!”

“나는 아홉 살이에요.”

“저는 열두 살이에요.”

“초등학생이 벌써 이런 대단한 활약을 하다니, 나중에 크면 더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 하하하!”

아이들은 아홉 살에서 열두 살까지 다양한 나이였다.

어린아이들이 용감하게 해낸 일에 어른들이 감탄하고 있는데, 제일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가 키 작은 다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태네 아빠가 소방관이거든요. 경태도 나중에 소방관 되고 싶다고, 화재나 이런 거에 대해 많이 알아요. 집 무너지는 소리 듣고 갔다가 그냥 돌아오려고 했는데, 무슨 일 생길 수도 있다고 해서 잠깐 지켜보고 있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 집 무너지고 바로 불난 게 아니었어?”

“네. 연기 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잘했다, 잘했어.”

도훈과 직원들이 아홉 살 제일 작은 아이를 두고 다시 감탄하는데, 야산 아래쪽에서 소방관들이 나타나 빠르게 다가왔다.

“시장님도 나와계셨군요. 불은 꺼졌습니까?”

방화복을 입고 장비를 메고 지고 올라오느라 땀까지 흘리는 소방관이 물었고 도훈이 답했다.

“저희가 보기엔 꺼진 것 같은데, 여러분이 확인을 해보셔야겠죠.”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네.”

줄지어 올라오는 소방관들이 화재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경태라 불렸던 아이가 대열 중간의 한 소방관을 향해 달려갔다.

“아빠!”

“어? 경태야.”

아이가 쪼르르 달려가 소방관에게 안기자, 놀란 소방관이 당황했다.

그는 지금 아들을 만나러 온 게 아니고 불을 끄러 출동한 것이었으니까.

“잠깐만, 경태야. 아빠가 지금···.”

“보아하니 불 다 꺼졌어. 확인만 하면 되니까, 자넨 아들이랑 있어.”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그렇게 해.”

“... 네, 알겠습니다.”

아들을 떼놓으려던 소방관을 선임이 말리고 지나갔고, 아들을 안은 소방관이 자세를 낮춰 아이와 시선을 교환하고 물었다.

“너 왜 여기에 있어? 어떻게 된 거야?”

“... 그게요.”

“설마 너희 불장난이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

“......”

“빨리 바른대로 말 안 해!”

“......”

아빠가 너무 정색하고 물어서 그런지 아이가 대답을 못 했고, 지켜보던 영배가 끼어들어 상황을 설명했다.

불장난한 게 아니고 경태의 말대로 아이들이 움직여 화재를 발견해 119에 신고하고, 화재가 번지지 않게 눈을 뭉쳐 던지고 있었다고.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화재가 크게 번질 수도 있었는데, 그걸 막아낸 공은 다 경태와 친구들 덕분이라고.

“... 하하. 너무 정색하시니까 경태가 말을 제대로 못 하잖습니까.”

“휴우, 그랬군요. 이 녀석이 평소에 워낙 말썽꾸러기라서요.”

“에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는데요? 안 믿깁니다.”

“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방관도 아들이 자랑스러운지 뒤늦게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 비서관님, 잠깐만요.”

“네, 시장님.”

도훈이 영배를 불러 소곤거렸다.

“우리는 먼저 내려갈 테니까 다른 직원 한 사람과 같이 남아서 뒤처리를 하세요.”

“네?”

“아, 눈 치울 곳은 아직 많이 남았고 여기 사장님한테도 연락하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기 애들 다니는 학교와 이름 꼭 다 알아 놓도록 하세요. 대단한 일을 했는데 표창이라도 해야죠.”

“알겠습니다.”

마무리를 영배와 다른 한 직원에게 맡긴 도훈은 소방관들과 인사하고 아이들과도 일일이 악수하고 다시 칭찬한 뒤 야산을 먼저 내려갔다.

산에서 내려가는 도훈 일행을 친구들과 함께 바라보는 경태의 눈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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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응.”

“... 어쩐지 낯선 얼굴이더라. 내가 웬만한 소방관 얼굴이랑 이름은 다 아는데 말이야.”

토요일 초저녁.

온종일 제설작업에 나섰던 도훈과 영배는 아직 퇴근하지 않고 비서실에서 쉬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제설작업은 다 했고 눈도 오지 않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잔뜩 구름이 끼어 언제라도 다시 눈이 내릴 듯했기 때문이었다.

부시장과 두진이 고생한 두 사람을 배려해, 가서 쉬라며 등을 떠밀고 여전히 상황실을 책임지고 있어서 그나마 이렇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대흥시로 온 게 두 달이 채 안 됐다고?”

“응. 여기 오기 전에는 서천군에 있었다던가 그랬대.”

경태의 아버지는 계속 대흥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최근에 대흥시로 발령을 받은 대원이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오게 된 아픈 사연이 있다더라.”

“아픈 사연?”

“전 근무지에서 화재 진압하다가 동료가 사망했다던데?”

“... 저런.”

“왜 작년 늦가을에 서천에서 건어물 공장 불났던 사건 있잖아. 지붕 무너지면서 소방관 한 명 사망하고 여러 명 다쳤던.”

“아, 기억난다.”

“경태 아빠도 그때 좀 다쳐서 계속 치료받다가 올해 들어 복귀했대. 그런데, 마침 순직한 대원이 경태 아빠 부사수나 다름없었대. 그 대원의 순직에 경태 아빠의 책임은 없었는데 당사자는 죄책감 때문에 그 소방서를 떠나온 거라네.”

“... 그런 자세한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어?”

“오늘 현장에 나왔던 대원 중 최고선임이 슬그머니 귀띔해주더라. 평상시에는 안 그런데 화재나 사고와 관련된 상황이 되면, 너무나 진지해진대. 낮에 봤지? 아들 다그치는 거? 동료한테도 비슷하고 출동한 현장에서는 시민들한테도 그런다네. 복귀 후 지난 근무지에서 불구경하는 시민과 싸울 뻔하기도 했대.”

“... 선임이란 양반이 그런 얘기까지 해줬어?”

“이건 내가 아까 소방서 서장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본 거고. 네가 궁금해할 게 뻔해서.”

“... 흐음.”

낮에 잠깐 본 것이지만, 경태를 다그치는 아빠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영배가 얼른 끼어들어 자초지종을 설명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말을 듣기 전에 그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화를 낼 것만 같았으니까.

“좀 심하게 엄한 아빠인가보다 했는데 트라우마가 있었구나.”

“그러게. 선임도 걱정하더라고. 현장 출동하면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것만 아니면 아주 좋은 대원이라면서.”

“흐음.”

도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영배가 의외의 말을 했다.

“아, 참. 경태가 네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다.”

“전화번호?”

“응.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려달라고 하더라고. 어차피 네 업무용 전화번호야 다 공개된 거니까.”

“알려주는 게 문제가 아니고 왜 알려달라는 건지 안 물어봤어?”

“애들 부모들이 와서 애들 혼내고, 칭찬하고 하는 통에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없어서 미처 못 물어봤다.”

“쯧.”

도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영배를 흘끔 한 뒤, 업무용 핸드폰을 꺼냈다.

“... 못 받은 전화도 없고 확인 못 한 문자도 없···.”

위이이잉!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경태가 맞는다면 타이밍 죽이네.”

“... 그러게.”

웃으며 말하는 영배에게 답한 도훈이 전화를 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저기... 시장 아저씨 맞아요?

아이의 목소리였기에 도훈이 바로 물었다.

“혹시, 경태니?”

- 네.

“경태 맞구나. 나 시장 아저씨 맞아.”

- ... 네.

똘망똘망한 눈빛을 가진 아이의 얼굴을 되새기는 도훈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경태가 무슨 일로 아저씨한테 전화했을까?”

- 그, 그게요···.

“편하게 얘기해. 아저씨는 경태가 전화해줘서 기분이 좋은 걸?”

- ......

“무슨 얘기든 괜찮으니까 마음 편하게 말해.”

- ... 진짜요?

“물론이지.”

도훈이 차분히 아이를 다독였고, 곧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도훈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 우리 아빠 좀 도와주세요.

울음이 섞인 아이의 말에 도훈이 잠시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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