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그의 또 다른 얼굴 - 2.
도훈이 도시락 공장에 쳐들어가기 사흘 전인 화요일.
정오에 가까운 시간, 도훈과 영배는 운계면의 한 봉사단체를 방문하고 있었다.
“저와 함께 이 차로 배달하시면 됩니다.”
“네. 그래도 이제는 차량이 있어 전보다는 일이 수월하겠네요.”
“하하, 네. 시장님 덕분입니다.”
“제 덕분은요. 다 세금으로 하는 일인데요.”
도훈이 방문한 봉사단체는 관내 저소득층 노인이나 급식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취학 아이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무료로 공급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활동의 취지가 좋아 시에서도 오래전부터 예산을 지원해왔고, 작년 말에는 도시락 배달에 쓰기 위해 승합차를 구매해 주기도 했다.
앙증맞은 소형이고 중고를 산 것이지만 쓸모가 많아 봉사단체 사람들이 무척 고마워했었다.
예산 지원만 해주고 관심을 끊는 게 도훈의 스타일이 아닌지라, 도훈은 1년에 두 번 정도 직접 도시락 배달 봉사에 나서며 단체 운영진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 흐음.
단체 운영진 중 한 사람과 함께 소형 승합차 트렁크에 도시락을 싣고 있는 도훈의 등 뒤에서 조상님이 소리를 냈다.
‘왜 그러세요?’
- 도시락이 때깔은 그럴싸한데, 품고 있는 기운이 많이 떨어진다.
‘네? 진짜요?’
- 응. 진짜로. 내가 괜한 소리 하겠냐? 형편없는 수준인데?
‘설마 상한 겁니까?’
- 그건 아닌데, 정상적인 음식에 한참 못 미쳐.
‘... 여기 있는 도시락들 전부 다 그런 겁니까?’
- 최소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도시락은 대부분 그래.
‘......’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음식의 기운을 판단하는 조상님의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귀신인 조상님은 활동하면서 소모한 기운을 도훈이 대접하는 제사상 음식의 기운을 흡수함으로써 보충한다.
때문에, 조상님이 잡수신 음식은 실물은 없어지지 않지만 품고 있던 기운을 잃게 되어 그대로 밖에 내놔도 길고양이조차 잘 건드리질 않을 정도.
여하튼, 그렇게 기운을 운용하다 보니 조상님의 음식, 식재료 판별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한 때, 도훈은 장을 볼 때 조상님에게 좋은 기운을 많이 품은 식재료를 구분해 달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도무지 육안으로는 구분이 전혀 안갈 정도였다.
그런 조상님이 ‘형편없다’고 한 도시락을 그대로 아이들, 노인들이 먹게 한다?
“왜 그러십니까, 시장님?”
“아, 네. 잠깐 뭐가 생각나서요.”
“중요한 일이 있으시면 그것 먼저 처리하시죠. 도시락은 제가 날라도 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중에 해도 됩니다.”
도시락을 싣다 갑자기 멈췄던 도훈이 단체 운영진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고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결론을 내렸다.
- 어쩌려고?
‘심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당장 조상님의 말씀을 증명할 방법이 없잖습니까. 원인을 찾고 혹시나 의도적인 거라면 범인도 잡아야죠.’
마음에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속에서 뭔가 불끈 치밀어오르는 걸 애써 억누르며 도훈이 답했다.
세상에 나쁜 짓은 많지만,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놈은 그중에서도 더 나쁜 놈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건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아이들과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먹는 음식이 아닌가.
‘실수라면 좋겠지만, 그것도 용납해서는 안 돼. 식재료 납품업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도시락 생산업체의 문제일 수도 있어. 게다가 이 봉사단체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야 돼.’
반년쯤 전 배달 봉사 때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도시락에 생긴 문제는 그때 이후에 시작된 게 틀림없었다.
‘이거··· 오늘 회의 때 할 말이 많겠는데.’
다시 도시락을 나르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옆에서도 작업하고 있는 단체 운영진들을 세밀히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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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 음, 맛이 좋진 않아요, 솔직히.”
“고기가 푸석푸석하니 종잇장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기도 고기지만, 우선 밥부터가 별로입니다. 다는 아닌데 오래된 쌀이 섞인 것 같은데요.”
“... 재료가 나빠서 그런지 몰라도 양념이나 간이 강해요.”
“이 도시락을 빼면 다른 도시락은 좀 수준 이하인 것 같아요.”
비서실 직원들의 평가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직접 맛보고 내린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도훈은 배달에 직접 나서지 않는 영배에게 운영진 모르게 무작위로 몇 개의 도시락을 수거해 내용물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배가 시청 앞 단골인 도시락 가게에서 급히 음식을 사다가 단체가 배달하고 간 가정의 도시락과 바꾸어 확보한 건 총 다섯 개.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직접 맛을 보고 확인한 결과, 하나를 제외한 네 개의 도시락은 음식의 질이 너무 형편없었다.
“확실히 도시락에 문제가 있네요.”
“네. 보기에는 그럴싸한데, 직접 먹어보니까 차이가 드러나네요.”
“아까 원 주무관 말처럼 양념이나 간을 강하게 해서 식재료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의 말을 도훈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 이거 혹시 단체와 관련이 있다면 큰 문제 아닌가요?”
지연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이죠. 사실 좀 이상했던 게 납품받은 도시락 중 일부를 사무실에서 검수할 때는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랬습니까?”
“네. 운영진이 직접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개봉해 눈으로 검수하는 건 하더군요. 한 상자에서만 도시락을 빼서 확인한 게 아니고, 세 개의 상자에서 하나씩 뺐다는 데도 그랬습니다.”
“흐음.”
“문제가 없는 재료로 만든 것과 문제 있는 재료로 만든 도시락의 두 종류가 있다고 치면, 검수할 때는 문제 없는 도시락만 가져다가 검수를 한 겁니다.”
“그렇군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
검수용 도시락 세 개를 고르는 자리에 도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도훈과 영배는 사무실에서 운영진과 대화하고 있었고 검수용 도시락은 회원 중 한 사람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한 배달트럭에서 골라 사무실로 가지고 왔었다.
그 회원은 먼저 배달 봉사에 나갔고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아 도훈과 더는 마주친 적이 없어, 조상님이 능력을 쓸 기회가 없었다.
다만, 도시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도훈과 마주친 봉사단체 회원은 최소한 저질 도시락과 관련된 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도시락 공장부터 다시 조사해야겠습니다.”
“네.”
시 예산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니, 단체의 일반 활동 및 회계와 관련된 자료는 시에 모두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단체가 도시락을 주문하는 공장이 어디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도훈은 그 단체가 이런저런 위생 점검이나 현장지도 때 적발된 적이 없다는 것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그런데, 시장님은 어떻게 도시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셨어요? 시장님도 거기서는 도시락 안 드셔 보셨다면서요?”
지연이 문득 생각난 걸 물었고 움찔한 도훈이 얼른 머리를 굴려 그럴싸한 답을 만들어냈다.
“아, 그게···. 제가 냄새에 좀 민감하거든요.”
“설마 포장된 도시락에서 나는 냄새가 이상하다고 느끼신 거예요?”
“... 네.”
“와.”
지연이 경탄스러운 표정을 했고, 두진과 영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오직 유일하게 영배가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그건 영배가 도훈이 미식가도 아니고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담당 부서랑 회의 잡으셨죠?”
“네. 3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30분 정도 남았네요.”
“회의 전에 잠깐 자료 확인 좀 해야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도훈이 얼른 화제를 돌리고 몸을 일으켰고, 영배도 별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 잘 넘겼네.
‘... 그러게요.’
- 하여간, 저 녀석이 눈치는 빨라.
‘당연하죠.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자기 사무실로 들어온 도훈이 모니터에 자료를 띄웠다.
“그나저나 안 가십니까?”
- 꼭 지금 가야 돼? 좀 천천히 가도 다 알아볼 수 있을 건데.
“... 당장 제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 흠. 사안이 사안이다, 이거냐?
“네. 악질적이잖아요.”
- 오냐. 알았다.
조상님이 시장실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사라졌다.
문제의 도시락 공장을 조사하기 위해서 가는 것일 터.
“절대 가만히 안 놔둔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는 도훈의 눈이 차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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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금요일 오후, 문제의 도시락 공장 식품창고 안.
“아, 저거 저렇게 냉동실 밖으로 내놓으면 안 되는 거라고요!”
직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공장장이 연신 고함을 질렀다.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는 공장장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동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밖으로 내놓는 영배와 시청 직원들.
공장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이 말없이 바라보는 가운데, 냉동고 안에서 냉동육 박스 하나를 들고 도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시장이면 다야! 이거 냉동육이라고! 밖으로 끄집어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
“이거 다 못쓰게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다 오늘 들어온 것들이라고!”
“......”
“왜 보고만 있어요? 말리든지 잡아가든지 하라고요! 우리가 경찰을 왜 불렀겠어요!”
도훈이 들고나온 박스를 내려놓고는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는 공장장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면 다 밝혀질 테니까 조용히 하세요.”
“밝혀지긴 뭐가 밝혀져? 저것들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까!”
“그 말에 목숨 걸 수 있어요?”
“뭐?”
“저 고기랑 식재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에 목숨 걸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
싸늘한 도훈의 말에 일순 아무런 답을 못하는 공장장.
하지만, 공장장은 금세 평정을 되찾고 다시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뭐 그런 거에까지 목숨을 걸라는 거요? 이런 식이면 간 좀 잘못 맞췄다고 징역 살아야겠네?”
“... 이거 사람 먹는 음식 재료 아닙니까?”
“맞소.”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건데, 전문적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분이 그 정도의 각오도 없으세요?”
“......”
싸늘하다 못해 얼음덩어리 같은 도훈의 눈빛에 다시 공장장이 말문을 잃었지만, 그는 이내 호기롭게 다시 고함쳤다.
“당연한 거 아뇨! 포장 박스에 적힌 날짜를 봐요! 다 아무런 문제가 없단 말이요!”
“얼핏 보면 박스에는 문제가 없겠죠.”
“뭐요?”
“문제는 저 박스 속 내용물이니까.”
흠칫.
공장장이 도훈의 말에 움찔했다.
미세한 반응이었지만, 도훈이나 경찰관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 그게 무슨···?”
“소란 피우지 마세요. 조금 있으면 다 밝혀질 테니까.”
“......”
단정적인 도훈의 말에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 이거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은데···.’
불안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공장장은 그제야 출동한 경찰관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 냉랭하다는 걸 깨달았다.
‘... 이 자식들도 뭔가 아는 눈친데···. 설마, 확실한 증거를 잡은 건가?’
공장장이 속으로 초조해하는 사이, 영배와 시청 직원들이 냉동고에서 냉동육 박스와 다른 식재료들을 밖으로 꺼냈다.
“다 옮겼습니다, 시장님.”
“내가 골라낸 거 다 꺼냈어요?”
“네.”
“그럼 잠깐만 기다리죠.”
영배의 말에 도훈이 답하는 사이, 카메라를 든 시청 직원이 가까이 다가가 꺼내놓은 식재료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 유통기한은 아직 한참 남은 것들인데···.”
“그러게. 이거 시장님이 잘못 짚은 거 아니야?”
촬영하던 직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옆에서 도와주던 다른 직원이 맞장구를 치던 순간.
위이잉.
“예, 실장님. 아, 도착하셨다고요? 알겠습니다. 지금 나가죠.”
두진의 전화를 받은 도훈이 공장장을 향해 말했다.
“증거가 도착했다니까 잠시 같이 나가시죠.”
“즈, 증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나가 보시면 압니다.”
도훈은 공장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걸음을 옮겼고, 카메라를 든 시청 직원과 영배가 뒤를 따랐다.
공장장은 왠지 내키지 않았지만, 양옆에 선 경찰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공장 앞에 선 트럭을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 저, 저게 왜?”
말을 더듬는 공장장을 향해 도훈이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알아보시는 걸 보니 발뺌은 못 하시겠군요.”
“... 그, 그게···.”
버벅거리는 공장장을 바라보는 도훈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