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그의 또 다른 얼굴 - 1.
결혼식 축가 영상의 조회수는 새해가 되기 전에 100만을 넘었다.
분명 ‘화제의 영상’으로 뽑혀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된 영향일 터.
조회수가 늘어나는 속도도 전혀 줄지 않고 있어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200만도 넘을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하튼, 영상이 그렇게 꾸준히 관심을 받는 와중에 도훈과 관련한 새로운 것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이건 왜 또···.”
영배가 띄운 인터넷 창을 보던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옆에서 영배가 설명했다.
“착한 일, 좋은 일 하고 칭찬이나 박수받을 만한 상황을 영상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만든 영상에 네 얼굴이 등장하더라고. 나도 어제 퇴근하고 처음 봤어. 와이프가 알려주더라. 깜짝 놀랐어, 나도.”
“... 환장하겠네.”
일상에서 선행이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찍힌 영상의 끝에 등장한 도훈의 얼굴.
마치 ‘잘했어요.’ 마크 대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쓰인 자신의 얼굴 캡처를 본 도훈은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뭘 환장씩이나 하냐? 좋은 의미로 쓰이는 거잖아.”
“... 저게 형 얼굴이어도 그런 소리 할 거야?”
“모르지. 내 얼굴이 아니니까.”
“......”
새해의 첫 주말에 사무실에 출근한 도훈과 영배.
일도 시작하기 전에 영배가 ‘보여줄 게 있다’고 해서 본 영상은 도훈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정신을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 벌써 그렇게 충격받으면 어떻게 하냐? 이거 하나가 아닌데.”
“... 아니라고?”
“어. 이건 동영상이잖아. 난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지만, 합성하고 편집하는 수고를 들여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사진만 합성하는 건 좀 쉽겠지.”
“... 그래서?”
“사진에 합성한 것도 돌아다녀.”
“......”
“그건 하나가 아니고 좀 숫자가 되더라.”
“......”
멍하니 굳어진 도훈 대신 영배가 마우스를 잡고 다시 인터넷 창을 띄웠다.
영배의 말처럼,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본 도훈.
나쁜 의미로 쓰인 게 아닌,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남을 배려하는 훈훈함을 느끼게 하는 사연과 함께 올라온 사진에 도훈의 얼굴 캡처가 구석에 콕 박혀 있었다.
“... 허허허.”
도훈이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웃음을 자기도 모르게 흘렸다.
영배가 그런 도훈의 모습에 피식 웃고 제 자리에 돌아가 앉는데 도훈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 방송국을 고소해야 하나.”
“뭐? 하하하!”
영배가 웃으며 돌아섰다가 도훈의 표정을 보고 움찔했다.
“... 아니지. 그거보다 급한 게 있지. 이거 올린 사람들한테 이메일 보내서 게시물 내려달라고 부탁하면 내려주려나?”
“......”
“내려달라고 할 게 아니고 내 사진만 빼달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지나치게 ‘몰입’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도훈을 바라보던 영배가 다가가 도훈의 어깨를 툭 쳤다.
“... 왜?”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냐? 그냥 웃고 넘어가지.”
도훈은 정색하고 영배에게 답했다.
“... 이 사진들 내 평생 온라인에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내 자식들이 보게 될 수도 있어.”
“에이, 뭘 그렇게까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
“그건··· 못하지.”
“그럼 참견하지 마.”
“......”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도훈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에게 이메일로 보낼 문구를 쓰기 시작했다.
“... 정중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글을 쓰고 있는 도훈을 바라보며 영배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 쯧쯧, 너 인터넷이라는 걸 너무 만만히 보고 있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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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얼굴 캡처 사진이 온라인에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고, 도훈은 그 게시자들에게 자기 사진을 빼달라고 메일을 보내다가 끝내 포기했다.
도훈의 정중한 부탁 메일을 받은 게시자들이 도훈의 얼굴 캡처를 빼거나 아예 사진을 내린 뒤에도, 복사된 글이나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인터넷의 그 무서운 확산성을 아무리 당사자라고 해도 도훈 한 사람이 법적인 조치도 없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사진들이 불특정하게 유포되는 게 아닌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 커뮤니티들에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랄까?
“여기도 공지 올라왔네요.”
“뭐라고요?”
“몇몇 회원들이 시장님 얼굴 캡처를 쓰는 게 좋은 의미라는 건 알지만, 개인의 얼굴이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게 우려스럽고 당사자인 시장님이 반기질 않는 것 같으니 자제하자고요.”
“... 휴우.”
“시장님이 초반에 글이나 사진 게시자들에게 메일로 부탁한 게 운영진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에요.”
“그렇겠죠. 제가 보낸 메일이 몇 통인데···.”
“여하튼, 지금까지 올라온 사진에 캡처 쓴 걸 운영진이 내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가급적 쓰지 말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 불행 중 다행이네요.”
“호호. 어쨌든, 이걸로 유명한 커뮤니티 대부분은 운영진이 공지했어요. 한숨 놓으셔도 되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지연이 웃으며 하는 말에 답하는 도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일모레면 1월도 하순으로 접어드는데, 도훈이 특유의 저런 담담한 표정을 회복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자기 얼굴 캡처를 볼 때마다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었던 게 불과 며칠 전까지의 일이었다.
사진만 도훈을 곤혹스럽게 했던 게 아니고, 시청 직원이나 시민들과 만나다 ‘노래 한 곡만’이라는 얘기만 들으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 노래 얘기만 들어도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하시네. 이러다 우리 시장님 일도 제대로 못 하겠다. 우리부터 자제하자.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런 얘기가 시민들에게도 전해지며 그나마 좀 진정되는 분위기.
물론, 끝내 거부할 수 없는 자리에서는 도훈이 어쩔 수 없이 노래한 적이 있긴 있었고 그때마다 대단한 호평과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장님, 오늘 저녁에 모임 초대받은 거 기억하시죠?”
“네. 남가동 군인아파트 단지 주민회의잖아요?”
“거기 뒤풀이 자리에까지 계실 거면 아마 노래 한 곡 얘기 들으실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죠. 웬만하면 피하고 싶지만···.”
“호호, 이제 담담하시네요.”
“... 몇 번 겪으니 절로 이렇게 되네요. 그래도 사람 많은 데서 노래 부르는 건 별로 내키지 않지만요.”
“호호호! 시장님이 연예인 스타일은 아니신가 봐요.”
“천만다행으로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노래로 이런저런 홍역을 치르며 도훈의 멘탈은 한층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도훈이었다.
“제가 시장님이 좀 특이한 분이라는 생각은 전부터 했는데, 올 연초에 그걸 아주 생생하게 실감했잖아요.”
“제가 뭘요?”
“이 ‘캡처 사진’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것에 무척 신경 쓰시는 것 같았는데, 업무에는 또 빈틈을 안 보이시더라고요.”
“... 저라고 그게 저절로 됐겠습니까? 그래야 하니까 노력을 한 거죠. 쉽지 않았습니다.”
“호호호! 어쨌든 간에요.”
“여하튼, 그때 제가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 확실해요. 올 연초를 어떻게 보냈는지 거의 기억에 남은 게 없으니까요.”
“호호호!”
“하하.”
지금은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 시작하기 전까지 잠시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커피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
업무가 바쁘면 건너뛰기도 해서, 매일 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다들 업무시간 중 마음 편히 긴장을 풀 수 있는 이 시간을 참 좋아했다.
지연이 담담히 웃는 도훈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찌 됐든, 그렇게라도 빈틈을 안 보였던 건 시장님이 권위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기 때문일 거야.’
아무리 편히 차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당신 좀 특이하다’는 부하 직원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넘기는 도훈이다.
나이가 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체면이나 권위 같은 걸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성격이라면 온라인에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캡처 사진 돌아다니는 것에 나름 신경을 쓰면서도 중심까지는 잃지 않고 업무는 업무대로 잘 처리하는 도훈의 모습에, 비서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성품’ 때문에 가능할 거로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도훈의 비서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아, 참. 잊어버리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번 주 주말은 근무 없습니다.”
“반가운 말씀이네요.”
“그러게요.”
도훈의 말에 다들 반가워하는 와중에 가장 반가운 표정인 영배가 물었다.
“시장님도 정신적 피로가 꽤 쌓이셨나 보죠? 주말을 풀로 쉬자고 하시고.”
“여러분은 쉬시겠지만, 저는 아닐 걸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두진이 묻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일까지는 아닌데···. 세경 씨 어머님께 인사하러 가기로 했거든요.”
“......”
“아직 화요일인데 토요일만 생각하면 벌써 긴장돼서 심장마비가 올 것만 같습니다.”
“......”
“... 왜요?”
다들 말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도훈이 고개를 들고 묻자 열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드디어!”
“오오!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들어가는 겁니까?”
“시장님, 잘하셔야 돼요! 장모님 처음 뵈러 가는 거잖아요!”
“암요!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격렬해 도훈이 말문을 잃은 가운데 자기들끼리 대책회의를 하는 비서실 직원들.
“어디 미장원 잘하는 데 아시는 데 있나요? 머리부터 손질하는 게···.”
“옷은 어떤 컨셉이 좋을까요? 정장은 기본이고···.”
“저기···.”
“아무래도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겠죠? 민 과장님 어머님이 어떤 걸 좋아하시려나? 화장품? 차? 이런 땐 뭐가 좋을까요, 실장님?”
“글쎄. 우리끼리 의논하는 것보다는 민 과장에게 직접 묻는 게 차라리 좋지 않겠나? 아무래도 어머니 취향을 잘 아는 건 그 딸 아니겠어?”
“저기 말입니다.”
“오, 그렇네요. 그럼 제가 연락을···.”
“어서 해봐.”
‘네.“
“......”
당사자를 내팽개쳐두고, 예비 장모에게 잘 보여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직원들을 보며 도훈이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업무에는 거의 빈틈을 보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투르고 겸손한 인간미가 넘치는 젊고 활력 넘치는 시장.
그 시장이 또 다른 얼굴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하는 사건이 터질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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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늦은 오후.
남가동의 어느 도시락 공장에 도훈과 영배, 영진이 다른 시청 직원 세 명과 함께 갑자기 나타났다.
때마침 공장문이 열려 있어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선 승합차가 멈추자마자 차에서 내린 도훈이 달려간 곳은 도시락을 만드는 작업장이 아니라 식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뭡니까, 당신···. 응? 시, 시장?”
“비켜요!”
건물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이 도훈을 알아봤지만, 도훈은 그를 거칠게 밀치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쌀이나 밀가루 등 각종 식재료가 품목별로 잘 정리된 상태.
도훈은 그런 식재료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안쪽에 있는 냉장, 냉동 창고로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창고 내부, 출입문 옆 작은 사무실 안에서 졸고 있던 직원이 놀라 달려 나온 것은 도훈이 이미 냉장, 냉동 창고 문앞에 선 뒤.
“당신들 뭐하는 겁니까?”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문을 열려는 도훈을 대신해 직원 하나가 공무원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영배나 영진이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 중이었고, 함께 온 직원 하나는 아예 촬영장비를 꺼내 내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이, 이러면 안 됩니다. 무단 침입 아닙니까?”
“아니니까 신경 끄세요.”
쿵! 쿵쿵!
공장 직원과 시청 직원이 실랑이하는 사이 도훈이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열쇠 내놔요.”
“무턱대고 쳐들어와서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경찰 부를 겁니다!”
공장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고, 열쇠를 요구했던 도훈이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 말했다.
“불러요.”
“... 뭐, 뭐요?”
“당장 경찰 부르라고!”
화산이 폭발이라도 하듯, 노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버럭 고함을 치는 모습이 여러 개의 핸드폰과 카메라에 그대로 찍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