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18화 (219/279)

218. 반도의 흔한 어느… - 1.

“헤에?”

“... 진짜로요?”

“... 와. 대박.”

영배의 설명에 모두가 놀라 도훈을 바라봤지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구긴 도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얼굴을 구긴 도훈과 진득한 미소를 머금은 영배를 번갈아 바라보는 두진, 지연, 영진의 얼굴엔 ‘설마’하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 직원들의 반응에 영배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제가 증거를 보여드리죠.”

“이봐요, 조 비서관.”

“어허, 시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이건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한 겁니다. 시장님은 무조건 싫다고 하시지만, 남들 얘기를 들어봐야죠.”

“하면 내가 하는 거잖아요!”

도훈이 항변했지만, 영배는 들은 척도 않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뭘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아마, 다들 놀라실 겁니다. 사실, 그 날 놀라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어요.”

자료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면서 영배가 ‘그 날 그 일’을 설명했고, 비서실 직원들의 ‘설마’하는 표정은 ‘혹시?’하는 기대의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띠링.

“아, 왔네요.”

5분이 채 되지 않아 영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휙!

도훈이 벌떡 일어나 영배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영배는 얼른 핸드폰을 두진에게 넘기더니 핸드폰에 달려드는 도훈의 몸을 붙들고 늘어졌다.

“이러지 마! 하지 마!”

“가만히 있어! 실장님, 얼른 틀어보세요.”

난데없이 도훈과 영배가 몸싸움하는 가운데, 두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곧 두진과 지연, 영진이 입을 헤 벌리고 눈을 크게 떴다.

직원들의 표정을 확인한 도훈이 매달리는 영배를 떼어내려 힘쓰던 걸 멈췄다.

“헥헥. 아이고 힘들다.”

영배가 소파에 늘어졌고, 그런 영배를 노려보던 도훈의 시선이 다시 직원들의 그것과 마주쳤다.

“휴우···.”

직원들의 표정만으로 일이 자기 뜻과는 반대로 흘러간다는 걸 깨달은 도훈은 소파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와, 시장님. 어떻게···.”

“... 대박이네요.”

“... 왜 비밀로 하셨습니까?”

“... 휴우.”

지연, 영진, 두진의 말에도 도훈은 묵묵히 한숨만 쉬었고, 소파에 늘어졌던 영배가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이건!”

“그럼 주례 대신 이걸로 추진해도 되겠죠?”

“당연하죠! 양 주무관에게 이거 보여주면 두말없이 주례 대신 이거 부탁할 걸요!”

지연의 반응이 가장 열렬했다.

영배와 대화하면서도 도훈에게 고정된 그녀의 눈빛에서 하트가 ‘뿜뿜’ 쏟아져나오는 그런 느낌이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영진이 먼저 말했고, 두진도 고개를 힘있게 끄덕이며 말했다.

이로써 당사자인 도훈을 제외한 모두가 주례 대신 ‘이거’를 하는 것에 찬성한 셈.

도훈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더니 힘없이 말했다.

“... 맘대로 하세요.”

그렇게 도훈은 저항을 포기했다.

그리고 예비 신랑, 신부와의 짧은 협의 끝에 도훈은 주례를 서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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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조금 안 되게 지난 12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대흥시 운계면의 어느 결혼식장에서 대흥시청 직원 커플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 그렇게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상대에게 져주는 게 결국에는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걸 두 사람도 제 나이쯤 되면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도훈 대신 주례를 서고 있는 것은 신부가 근무하는 운계면 주민센터 센터장.

예비부부는 도훈이 다른 방식으로 결혼식을 축하하게 되자 전경완 부시장에게 부탁했지만, 대흥시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은 전경완은 기꺼이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는 하겠으나 주례를 서는 건 사양하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낙점된 것이 주민센터 센터장이었다.

“... 신랑 신부의 평화롭고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며 주례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그리 길지 않은 주례사가 끝나고 청중들이 박수를 치는데 사회자가 말했다.

“다음으로는 오늘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특별한 공연이 이어지겠습니다.”

팍.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식장 내부 조명이 꺼졌고 실내가 어두워졌다.

주례와 신랑 신부가 선 무대 인근에만 빛이 집중되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된 순간.

-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이.

“어머?”

“이거?”

유명한 뮤지컬의 노래 하나가 예식장 실내에 울렸고, 하객들이 소곤거렸다.

-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 간.

남자가 홀로 부르는 노래는 제법 훌륭해서 듣는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고, 어두운 가운데 통로에 마이크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누구지?”

“그러게. 노래 잘하는데? 안 그래?”

“맞아. 가순가?”

“성악가 같기도 한데?”

“그러게. 전문가는 아닌 것 같고.”

축가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대중적인 가수가 부르는 것보다는 살짝 성악가 비슷한 느낌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쨌든, 축가를 부르는 사람의 정체를 하객들이 궁금해했지만, 실내가 어두웠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노래는 점점 절정을 향했다.

- ...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 치리라~ 아!

조명에서 아주 미약한 빛이 나오더니 천천히 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남자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놀라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다.

“어머?”

“설마?”

“... 진짜?”

“맙소사!”

점점 더 세지던 빛은 이제 실내의 모두가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리고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모두가 놀라움과 웃음이 혼재된 표정을 했다.

성악가 뺨치는 실력으로 축가를 열창하는 남자는 그들이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도 못 하고 있었지만.

- 간절한 기~ 도! 절실한 기~ 도! 신이여, 허~ 락~ 하~ 소~. 서~!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났고,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잘한다!”

“와아아!”

“가수 해도 되겠다!”

“그냥 가수 하세요!”

“맞아!”

신랑 신부가 다 시청 직원인 때문에 하객 중에도 시청 직원들이 많았다.

축가를 부른 사람은 벌게진 얼굴로 손을 흔들어 사람들을 조용하게 하더니 신랑 신부에게 말했다.

- 오늘같이 좋은 날, 분위기를 망치지 않은 것 같아서 천만다행입니다. 두 분 다시 한 번 결혼 축하합니다.

짝짝짝짝짝!

노래를 열창하느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창피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도훈이 신랑 신부에게 인사하고 얼른 뒤돌아 식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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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대흥시 도훈의 집.

- ... 신이여, 허~ 락~ 하~ 소~. 서~!

핸드폰에서 재생되는 동영상에 반쯤 넋이 나간 세경.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세경이 싱크대에서 설거지하는 도훈을 향해 물었다.

“와, 내가 이 귀한 장면을 현장에서 볼 기회를 놓친 거예요?”

“... 귀하긴요.”

“귀하죠! 전 도훈 씨가 축가를 한다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했죠! 이렇게 대단한 실력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요!”

“... 하하.”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영배 씨한테 녹화해서 보내달라고 하지 말고 일찍 올 걸 그랬어요!”

도훈은 오늘 직원들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는 대신에 축가를 하게 됐다는 걸 미리 세경에게 얘기했었다.

세경은 재미있어하면서도 오전에 다른 일이 있어 대흥시에 일찍 오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고, 영배에게 도훈이 축가를 부르는 걸 영상으로 찍어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예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는 게 도훈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챈 직원들 전부가 그랬듯, 대흥시에 와서 영배에게 영상을 받은 세경도 엄청나게 놀랐다.

“아니,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노래방은 왜 안 좋아해요?”

“제가 대중가요에 별 관심이 없잖아요. 노래방에 가서 부를 노래가 별로 없어요. 이따금 귀에 꽂히는 곡이 한둘 있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대개 분위기 띄우는 그런 노래가 아니거든요.”

도훈이 시장이 되고 회식이든 잔치든 ‘노래 요청’을 받을만한 자리에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정말 노래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일부 직원은 도훈을 음치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 비서실 회식을 해도 노래방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보니, 영배를 제외한 비서실 직원들조차 도훈의 노래 실력을 전혀 몰랐던 것.

세경이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시키는 사이, 설거지를 마친 도훈이 세경의 맞은 편에 앉았다.

“듣자 하니, 진주 언니 결혼식 때도 축가 불렀었다면서요?”

“네. 진주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했어요. 이번이 두 번째인 거죠.”

황당하다는 표정의 세경이 배시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세 번째도 조만간이지 않을까요?”

“...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어머, 왜요? 결혼식에서 축가 부르는 것처럼 좋은 축하가 또 있겠어요?”

“... 제가 오늘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세경 씨가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호호호!”

도훈이 정색하고 하는 말에 세경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직원들이 결혼하는데 시장이 축가만 부르고 내뺄 수도 없는 일.

도훈은 식이 끝난 뒤 양가 부모에게도 인사하며 축하 인사를 했고, 식당에서 갈비탕도 한 그릇 얻어먹었다.

그 와중에 도훈의 노래 실력에 놀란 직원들과 시민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저희 팀 다음 회식 때 꼭 노래방에 갈 겁니다. 그때 같이 가시죠!”

“엉큼하세요! 왜 이런 실력을 감추고 계셨어요!”

“시장님, 혹시 저 결혼하면 축가 부탁드려도 돼요?”

도훈이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다 보니 평소에도 직원들과의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무슨 연예인 보듯 다가와 너도나도 말하는 바람에 무척 곤혹스러웠다.

하여튼, 결혼식장에서 나와 차에 올랐을 때는 도훈의 등이 흠뻑 젖어있을 정도로 도훈이 진땀을 흘린 것은 사실이었다.

“아, 오늘 결혼한 신랑 신부는 참 좋았겠네요. 축가가 무척 훌륭해서···.”

“... 하하하.”

“나도 도훈 씨 노래 들어보고 싶은데···.”

“... 조금 전까지 계속 반복해서 들었잖아요.”

“녹화된 것 말고 라이브로요.”

“......”

세경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뚫어지게 바라봤고, 도훈이 머쓱한 표정을 했다.

그러나 애인이 저렇게 간절히 청하는데,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는 일.

“... 듣고 욕하지 마요.”

“물론이죠!”

짝짝짝!

세경이 박수를 치더니 더 눈을 빛냈고, 도훈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노래를 시작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도훈이 영상 속의 그 곡을 부를 거로 생각했던 세경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가만히 눈 감은 도훈의 노래가 이어졌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세경의 입이 그녀도 모르는 새 헤 벌어졌다.

가수의 느낌보다 성악가의 느낌에 가까운 도훈의 열창은 계속 이어졌고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노래를 마친 도훈이 눈을 떴고, 멍청한 혹은 황홀한 표정으로 굳어진 세경과 눈이 마주쳤다.

“... 대~ 에박.”

“... 하하, 듣기 괜찮았어요?”

“완전히요!”

짝짝짝짝짝!

세경이 열렬히 박수를 치자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는 도훈.

세경이 진심으로 탄복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훈 씨.”

“... 네.”

“제가 장담하는데요. 아마, 이거 인터넷에 올리면 조회수로 대박 칠 거에요.”

“그럴 일 절대 없습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오늘 식장에서 영배 씨 말고 영상 찍은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 제가 볼 때는 없었는데요. 너무 깜깜하기도 했고···.”

“에이, 제 생각에는 분명 찍었던 사람 있을 걸요? 그냥 잘 부른 정도가 아닌데.”

“......”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거예요.”

“... 하, 하하.”

어색하게 웃던 도훈이 홍보에 목을 매는 누군가의 ‘진득한 미소’를 떠올리고 얼굴을 굳혔다.

정색하고 전화기를 집어 든 도훈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난데, 혹시 오늘 영상 찍은 거 어디에 올리거나 하지 않았지?”

영배가 ‘아직···.’이라고 답했고, 도훈이 정색을 넘어 결사적인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절대 올리지 마. 알았지? 아, 됐고. 무조건 올리지 마. 이건 시장 명령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도훈을 담담히 미소 짓고 바라보는 세경.

‘영배 씨만 단속한다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세경의 기분 좋은 걱정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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