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14화 (215/279)

214. 아전인수 - 3.

이 황당한 상황의 자초지종이 알려진 건 당일 오후 늦은 시각.

외부 일정을 마치고 시청에 돌아온 도훈에게 보육팀장이 찾아와 자신이 알아본 결과를 보고했다.

“알아보니 차혜진 의원이 동생인 차혜은 원장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게 맞더군요. 그리고 차혜은 원장이 K 유치원을 인수할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도 맞는답니다.”

“차 의원은 그걸 몰랐답니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오전에 차 의원 사무실에 차 원장이 쳐들어가 대판 싸웠다는 걸 보니까요. 차 의원이 모르고 있다가 실수로 이야길 흘렸다면, 그래도 친자매인데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죠.”

보육팀장과 통화하면서 K 유치원 이사장이 폐원을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언니에게 들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차혜은 원장이 언니의 사무실에 쳐들어갔다.

그리고 자매간에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끝내 일이 커졌다.

“... 점심때 그 소문이 진짜였어요?”

“그랬답니다. 차 의원 사무실에 난리가 나서 옆 사무실에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들었습니다.”

차혜진 의원의 사무실에 차혜은 원장이 달려가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경찰이 출동해 말려야 했을 만큼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점심 무렵부터 시청에 돌았었다.

도훈은 ‘설마’ 싶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어느 정도였길래···.”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경찰이 나설 정도였다면···.”

오죽했으면 자매간의 싸움에 경찰이 출동했을까.

소문에 따르면 동생은 언니를 집요하게 노렸다는데, 다행히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둘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우는 건 막을 수 있었단다.

하지만 언니 대신에 사무실 물건을 부수는 차혜은 원장을 제지하지는 못했다나?

차 원장이 화분을 내던지고 책상을 뒤엎고 TV와 모니터를 내던지는 등을 해서 사무실 집기가 박살이 나고 난장판이 됐단다.

“두 사람이 그래도 친자매인데,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았습니까?”

“그 자매가 사이 안 좋다는 건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동생 쪽이 언니에게 감정이 많았죠.”

“... 저는 몰랐습니다.”

“시장님은 ‘뒷말’에 별로 관심을 안 두시니까요.”

차혜진, 차혜은 자매의 부모가 언니만 유달리 예뻐했고 언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었다는 건 대흥시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대충은 알았다.

도훈도 몇 년이나 대흥시에 살았지만, 진주의 학원에서 잠깐 가르쳤던 시기를 빼면 학원이나 유치원 쪽과 관련된 적이 없고 소문에 무관심해 알지 못했던 것뿐.

“오래된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이번에 터진 느낌입니다.”

“... 하하. 나 원···. 그래서 어떻게 처리됐답니까?”

“일단 경찰이 차 원장을 데리고 가서 진술서는 받은 모양입니다.”

“......”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닐 것 같습니다.”

“......”

차 의원이 출동한 경찰에게 동생을 고소할 거라고 당장 잡아가 감방에 처넣으라는 얘기까지 했다는 걸 보면, 자매간의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황당해도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 된 도훈이 말을 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답니까, 차 의원은?”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허, 이것 참.”

“아무튼, 확실한 건 차혜은 원장이 K 유치원을 인수해 몸집을 키울 생각이었고 차혜진 의원에게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답니다. 그랬는데 언니가 나서서 일부러 자기 계획에 훼방을 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청과 교육지원청은 거기에 부화뇌동했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한테 그 제안을 하고 정보를 제공한 게 언니인 차 의원인데요.”

“오후에 차 원장과 통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믿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보육팀장의 말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훈은 물론이고 비서실 직원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 자리에 신 부의장하고 안 의원 부르기를 정말 잘했네요.”

“아, 그렇군요. 증인이 있는 셈이네요.”

듣고만 있던 두진이 끼어들었고, 도훈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뭔가를 깨닫고 쓰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증인까지 내세워서 결백을 입증받아야 할 일도 아닌데요.”

“... 그렇죠.”

잠시 뒤, 보고를 마친 보육팀장이 돌아갔고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남았다.

“아무래도 차 의원이 계획적으로 그랬던 것 같지 않습니까?”

“내 생각도 그래.”

영배의 말에 답한 두진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휴우, 어째 차 의원답지 않은 요구안이다 싶었는데···.”

차혜진은 물론, 유서면-남가동 선거구의 어떤 의원도 ‘어린이 도서관’을 공약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있었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의 얘기는 전부터 있었지만, 들어갈 예산이 만만치 않은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손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장님?”

“차 의원의 의도나 차혜은 원장의 계획이 어쨌든지 간에, 유치원이 폐원을 고려한다는 걸 미리 확인한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죠.”

“그렇죠.”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교육지원청에서는 도서관보다 유치원이 먼저라고 판단하는 것 같더라고요.”

“당연한 겁니다.”

“맞아요.”

도훈의 말에 비서실 직원들이 공감을 표했고, 두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차혜은 원장이나 다른 사립유치원 원장들과 또 감정싸움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죠. 공립유치원 확대는 정부 방침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옳은 정책이니까요.”

유치원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된 이래, 전국적으로 폐원하는 사립유치원은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늘고 있었다.

그렇게 폐원하는 사립유치원은 대개 중앙, 지방정부와 교육청이 협력해 공립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친언니 사무실까지 난장판을 만들 정도라면···. 차 원장이 K 유치원 공립화 추진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진 않은데요.”

“어쨌든지 간에, 이건 우리가 차 원장 눈치 볼 성격의 일이 아닙니다.”

담담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도훈이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이러다 차 원장이 시장실에 난입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니 사무실을 그렇게 만들 정도면 그분 성격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영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도훈이 담담히 말했다.

“대화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야 방법이 없죠.”

차분하게 눈을 빛내며 말하는 도훈을 모두가 조금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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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담당 부서와 교육지원청의 논의 결과, 도서관보다 공립유치원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K 유치원의 원아 숫자가 줄었다지만 아직도 거길 다니는 아이의 숫자가 적지 않고, 공립유치원이 거의 포화상태인 상황에서도 대기자가 무척 많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런 법이 어디에 있어요? 저는 동생이랑 싸우면서까지 아니,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정보를 알려드렸는데요!”

“......”

“이 기회에 도서관 만들지 못하면 언제나 가능한 건데요?”

“......”

“도대체가 시청이나 교육청이나 너무 근시안적이어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차혜진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도훈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저는 분명히 교육지원청과 논의한 결과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 걸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어요!”

“......”

차혜진이 계속 화를 냈지만, 도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풀에 지쳤는지 차혜진이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시장실을 박차고 나갔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진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 휴우, 이거 입이 근질근질해서 혼났습니다.”

“잘 참으셨어요. 그 얘기 꺼냈으면 아마 더 난리치고 갔을 겁니다.”

“네. 그런데, 저렇게까지 도서관이 밀린 것에 화를 내는 걸 보면 정말 도서관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긴 하네요.”

“... 글쎄요.”

“아닌 것 같으십니까?”

“... 저는 차 의원이 일부러 저렇게 행동하는 느낌입니다. 차 의원이 제게 화를 잘 내긴 하지만, 저렇게 목소리 높이는 건 처음 보거든요.”

“아, 생각해보니 그건 그렇습니다.”

차혜진이 화를 내면 아주 싸늘한 태도로 차갑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훈이 그녀를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니, 저렇게 ‘폭발’시키는 식으로 화를 낼 수도 있겠으나 도훈은 조금 전 그녀가 진짜 화가 난 게 아니라 화난 연기를 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목적은 동생을 물 먹이는 거였나 본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차혜진이 K 유치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은 안준식, 신길영이 있어 시청과 교육지원청이 차혜진과 한 편이었다는 오해는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차혜은 원장은 여전히 K 유치원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 유치원 공립화 확대인 데다가 절대다수의 시민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시청과 교육지원청이 유리한 게 사실.

거기에 초기에는 중구난방이던 ‘사립유치원 매입과 공립 전환’의 정부 정책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비되며 유치원을 매각하는 쪽에서도 공립화에 응하는 게 전반적인 추세였다.

“교육지원청 쪽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죠?”

“네. 교육장님이 빨리 확답을 받으려고 K 유치원 이사장과 직접 만나고 계신다니까요.”

“사회복지실에 얘기해서 우리도 최대한 협력하라고 하세요, 실장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차 의원이 제법 영리하게 행동했습니다. 동생과 싸우면서까지 공익을 앞세운 시의원다운 행동이었다는 얘기가 돌더라고요.”

두진의 말처럼, 일부 시민들이 차혜진을 그렇게 평가한다는 얘기가 돌긴 했다.

도훈도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영진이 귀띔해줘서 그런 상황을 알고 있긴 했다.

“차 의원 본인은 입을 닫고 있지만, 대자당 지역위 사람들이 그 얘기를 자주 하고 다닌답니다. 이번 기회에 차 의원 이미지가 좀 좋아질 것 같습니다.”

도훈은 두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 글쎄요.”

“시장님은 다르게 생각하십니까?”

“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요? 차 의원이 뭔가를 더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담담히 답하는 도훈은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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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예상처럼, 차혜진은 뭔가를 ‘더’ 했다.

K 유치원이 폐원한다면, 그 자리에 사립이 됐든 공립이 됐든 유치원이 유지되는 것보다 어린이 도서관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역 여론을 만들려고 시도한 것.

실제로 도서관이 중요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동생인 차혜은 원장을 다시 한 번 물 먹이고 공립화를 추진하는 시청과 교육지원청도 난처하게 만들려는 ‘일석이조’를 노린 행동이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의원다운 행동을 했다.’는 평가가 돌 때와는 달리, 그런 차혜진의 행동은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당장에 거기 다니던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다른 유치원들로 감당이 안 된다는데.”

“그러게. 공립유치원 늘어나길 제일 바라는 게 지금 사립에 애들 보내는 엄마들이라는데.”

“그렇지. 교육비 부담이 확 줄어들잖아.”

“그간 미흡하다고 지적받던 것들도 많이 보완해서 공립도 많이 나아졌다는데.”

“학부모들이랑 조금만 얘길 해봐도 뻔한 결론인데···.”

‘어린이 도서관’ 추진을 주장하는 차혜진의 노력은 대개 시민들의 심드렁한 타박을 받을 뿐이었다.

일부, 그녀의 주장에 찬동하는 이들이 있긴 했으나 실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거나 곧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경우에는 절대다수가 공립유치원을 지지할 정도였다.

또한, 시청과 교육지원청이 K 유치원 이사장은 물론 차혜은과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면서, 차혜진은 일부 부모들에게서 안 그래도 어렵게 일 풀어가는 중인데 ‘깽판’까지 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 여기서 멈추는 게 본인한테 좋을 텐데···.”

엊그제부터 차혜진이 ‘어린이 도서관’ 건설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도훈의 한 마디.

“아무리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지만, 이번엔 잘못 짚었는데···.”

도훈의 말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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