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13화 (214/279)
  • 213. 아전인수 - 2.

    비서실에서 차혜진에게 연락해 도훈과의 면담을 잡았다.

    “... 혹시나 했더니 역시···.”

    “네?”

    “아뇨. 어째 시장님이 제 요구안을 갖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길래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그런데요?”

    “저는 저 혼자일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요.”

    “......”

    불평하는 차혜진을 말없이 담담히 바라보는 도훈.

    차혜진의 맞은편에 앉았던 신길영과 안준식이 일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했고, 안준식이 입을 열었다.

    “지역의 일이니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 흠.”

    차혜진, 안준식, 신길영 세 의원의 공통점은 유서면-남가동을 선거구로 한다는 것.

    “이건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시장님이 필요성을 인정하시지 않았다면, 저희가 모이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시장님?”

    “네. 그랬을 겁니다.”

    도훈이 수긍하자 차혜진이 소리나지 않게 입을 씰룩였다.

    분명 투덜거리는 것일 터.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안준식에 이어 신길영이 입을 열었다.

    “어린이 도서관 건이라고 듣고 왔는데 맞습니까, 시장님?”

    “네. 맞습니다. 차 의원님이 관련 예산을 반영하자고 하셔서요. 제가 듣기에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있으면 좋지요. 운계면에는 정식 도서관이 있지만, 이쪽에는 없으니까요.”

    운계면에는 ‘대흥시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대흥시가 생긴 직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크기도 넉넉하고 보유 장서도 제법 많아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생각 같아서는 남가동에도 도서관을 만들자고 하고 싶지만, 그건 좀 욕심인 것 같네요.”

    “욕심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겠습니다만, 도나 중앙정부에서 예산 지원받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이미 하나 있으니까요. 우리 시 인구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도···.”

    도서관 같은 시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공시설이다 보니 도나 중앙정부로부터 이른 시일 안에 예산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을 터.

    ‘긴급성’에서 도서관보다 순위가 빠른 사업은 차고도 넘칠 테니까.

    “다른 지역 긴급한 일은 그 지역 단체장이나 의원이 알아서 하겠죠. 도서관도 우리 선거구 주민들에게는 시급한 문제에요. 그걸 간과하시는 거 아닌가요?”

    “간과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상황이 그렇다는 거죠. 오해하지 마세요.”

    차혜진이 날 선 목소리로 끼어들자 심남진이 달래듯 말했다.

    도훈은 괜한 감정싸움이 길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일단 어린이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세 분 모두 공감하시는 거죠?”

    “네.”

    “물론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세 의원의 답을 들은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필요성은 공감하는 편인데··· 차 의원님이 요구한 2억 원으로 과연 가능할까 싶어서 세 분을 뵙자고 했습니다.”

    “2억 원이라···.”

    심남진이 쓰게 웃으며 금액을 되뇌었다.

    절대 적은 액수의 돈은 아니지만,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목표를 놓고 보면 적지 않은 게 아니라 많이 부족한 금액이니까.

    “제대로 된 도서관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 같군요.”

    “제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기자재에 책,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 같은 걸 생각하면 그 열 배는 되어야 할 것 같네요.”

    안준식, 도훈, 심남진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차혜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2억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네?”

    “아니, 그게 그 정도 금액이면 건물 매입은 힘들어도 임대해서 내부 정비하고 운영하는 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 도서 구매까지 생각하면 좀 부족한 감이 있긴 하겠네요.”

    도훈은 물론, 안준식과 신길영이 의아한 표정이 됐다.

    차혜진이 좀 엉뚱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감각까지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시의원임과 동시에 대흥시에서 1, 2위를 다투는 크기의 학원 소유주였고, 학원을 통해 꽤 많은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물론이죠.”

    차혜진이 자신만만하게 답했기에 도훈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뭔가 미리 생각해두신 게 있는 겁니까?”

    “아, 그걸 모르시는군요?”

    “... 그거라니요?”

    도훈의 반문에 차혜진이 진득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궁금하다는 표정의 안준식과 신길영도 한 번씩 바라본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쪽 정보에는 좀 빠르긴 빠른가 보네요. 다들 모르시는 걸 보면요.”

    “뭘 모른다는 겁니까, 차 의원?”

    “호호, 글쎄요?”

    도훈에 이어 신길영이 재차 물었지만, 차혜진은 즉답하지 않고 여유만만한 미소를 이어갔다.

    ‘... 혹시 뭔가 정말 아는 게 있어서 저러는 건가?’

    아주 즐겁다는 듯한 그 미소를 바라보며 도훈은 속으로 ‘혹시’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심정인 것은 아닌 듯 안준식이 살짝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 죄송해요. 호호.”

    전혀 죄송하지 않다는 표정의 차혜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남가동 골목 안쪽에 상가 거리가 끝나가는 지점에 조만간 건물 하나가 통째로 비게 될 것 같다고.

    “어떤 건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K 유치원이요.”

    “... K 유치원이요?”

    “네.”

    차혜진을 제외한 세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혜진이 설명한 것처럼 남가동 상가 끝자락에 독립된 건물을 가진 사립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건물의 규모도 상당하고 그곳을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도 꽤 되는 그런 곳이라는 걸 다들 알았다.

    작년 가을, 부실 급식 논란이 있어서 원아의 숫자가 줄기는 했어도 여전히 운영 중인 곳이기도 했다.

    “거기 잘 운영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디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간답니까?”

    “이사가 아니고 폐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아요.”

    “폐원이요? 정말입니까?”

    “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하는 차혜진.

    하지만, 도훈은 물론 안준식과 신길영은 금시초문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소식인데, 거기 원생이 생각보다 많이 줄었어요. 회복될 기미가 없어서 이사장이 고심 중이라고 알고 있어요.”

    “확실한 겁니까?”

    “유치원 원장들은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얘깁니다. 이건 아마 우리 시청 담당자도 모르고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교육지원청에서는 아는 내용인가요?”

    “아직은 그쪽에서도 모르고 있을 걸요?”

    차혜진의 동생이 유치원 원장이니 신빙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유치원은 작년 가을 급식이 부실하다는 게 밝혀지며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 일로 아이들이 준 것도 타격이겠지만 유치원 관련 법안이 개정된 이후로 예전과 같은 국고 지원금 및 원비의 남용 혹은 전용이 힘들어져 유치원 설립자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 역시 영향을 끼쳤을 터.

    “흐음. 그곳이라면 입지도 규모도 나쁘지 않죠.”

    “그렇죠?”

    신길영과 안준식이 그렇게 말하는데, 도훈은 다른 말을 했다.

    “도서관이 아니라 공립유치원 전환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있군요.”

    “깜빡했습니다.”

    유치원 원아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과 그 유치원이 아예 문을 닫는 건 다른 얘기.

    유치원이 문을 닫는다면 다른 유치원에서 그만큼의 아이들을 받아들이거나 새 유치원을 만들어 수용해야 할 터.

    “지금 운영 중인 시립유치원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까요?”

    “글쎄요. 거기 거의 꽉 찬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필요 하자면 시립유치원을 확장해도 되지 않겠어요? 그 장소가 도서관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중구난방 이어지는 의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도훈이 끼어들었다.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죠. 차 의원님.”

    “네.”

    “내년에 건물이 빈다는 게 확실하다는 말씀이죠?”

    “네. 전 그렇게 들었어요.”

    “그걸 확인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차혜진의 답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결론을 내렸다.

    “폐원 예정이 확실한 것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 유치원과 도서관 중 어떤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지 판단하는 건 우리끼리 결정할 게 아니고 교육지원청과 협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아무래도 시청보다는 교육지원청에서 접촉하는 게 맞을 것 같군요. 제가 교육장님께 연락해서 협조를 요청하겠습니다. 최소한 폐원 예정이 확실한 것인지 확인을 해야 이후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게 좋겠습니다.”

    “좋아요.”

    도훈이 논의를 정리했고 회의가 끝났다.

    “확인되면 이 요구안 반영해주셔야 돼요, 시장님?”

    “유치원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 그건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장담은 못 드립니다. 교육장님과 상의해야 하니까요. 만약 그쪽에서 동의한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하지요. 이건 약속할 수 있습니다.”

    “흠. 좋아요.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죠.”

    말을 마친 차혜진이 먼저 시장실을 나섰고, 안준식과 신길영이 뒤를 따랐다.

    그들을 배웅한 도훈이 지연에게 말했다.

    “지연 씨, 교육지원청에 전화해서 교육장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해주세요.”

    “바로요?”

    “네.”

    지연이 곧바로 전화기에 손을 가져갔고, 도훈이 시장실로 돌아가 서류를 다시 살폈다.

    ‘도서관? 유치원? 뭐가 됐든, 좋은 기회인 건 맞는데···.’

    전화연결을 기다리는 도훈의 표정이 진지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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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조회가 시작되기 전의 시장 비서실.

    “... 정말로 그 유치원 문 닫을 거래요?”

    “확정은 아니고 51%쯤은 그럴 생각이라네요. 교육장님이 거기 이사장과 직접 통화를 해서 그렇게 들으셨답니다.”

    “급식 부실하다고 난리가 나더니···. 쯧쯧.”

    “그 일이 계기가 된 건 맞지만, 유치원 관련 법안이 개정된 후로 수입이 기대에 못 미친 게 가장 컸던 것 같다더군요.”

    “그 말도 전 좀 그러네요. 법 바뀌기 전에는 도대체 얼마를 벌었고 가져다 썼길래 지금 불만이라는 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훈은 커피를 마시며 지연과 대화하고 있었고, 영진은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두진은 그의 책상에서 영배와 뭔가를 상의하느라 아직 조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서관보다 유치원이 급한 것 아닐까요?”

    “저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시청과 교육지원청이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교육장님과 상의했습니다. 일단 실태 점검을 한 다음에 뭐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덜컥.

    갑자기 비서실 문이 벌컥 열려 도훈이 말을 끊었다.

    안으로 들어선 건 사회복지실 보육팀 팀장.

    “아, 시장님. 나와 계셨군요.”

    “... 무슨 일이세요?”

    도훈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보육팀장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무척 나쁜 느낌이 그대로 묻어날 정도로.

    “... 방금 아주 격렬한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항의 전화요?”

    “네.”

    “무슨 일로요?”

    “시청하고 교육지원청이 짜고 이제는 유치원을 아예 망하게 하려는 거냐고, 왜 사사건건 훼방이냐고요.”

    “... 그게 무슨 말입니까?”

    “K 유치원 폐원할 예정이라는 얘기, 어제 교육장님이 거기 이사장과 통화해서 확인했다고 하셨잖습니까?”

    “네. 그게 왜요?”

    “그것 때문에 자기 인수계획이 어그러지게 생겼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인수계획이 어그러져요?”

    “네. 그렇게 말하더군요.”

    “누가요?”

    “차혜은 원장이요.”

    “... 차혜은 원장이요?”

    “네.”

    “차혜진 시의원 동생인 그 차혜은 원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안 그래도 제가 이 정보를 차 의원님 통해 들었다고 했더니 기가 막혀서 말을 못 하더군요.”

    “... 말을 못 할 정도로 기막혀했다고요?”

    “네.”

    도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차혜진이 전한 정보가 분명 동생인 차혜은을 통해 얻은 것일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정보출처인 차혜은은 ‘인수계획’ 어쩌고 했다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게 도대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랍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도훈과 보육팀장이 어이없다는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은 물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서실 직원 모두가 비슷한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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