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08화 (209/279)

208. 자기 PR - 2.

“와! 도훈 씨! 아니지, 시장님! 실력 그대론데?”

“에이, 아니야.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도···. 아니, 시장님?”

“... 하하. 그냥 도훈이라고 하세요.”

“그, 그래도 되나?”

“제가 지금 여기 시장으로 와 있는 것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럼 오늘 여기서만이라도 편하게 하자.”

“네. 그러세요.”

동호회 회원들에게 둘러싸인 도훈.

첫 경기에 이어 두 번째 경기도 승리한 그에게 회원들이 축하의 말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왜 오늘 총출동하셨어요? 다른 때는 친선경기 직접 뛰는 사람 아니면 잘 안 오시잖아요.”

도훈이 묻자 회원들이 웃으며 답했다.

“회장님이 닦달을 엄청 했거든. 시장까지 나와서 탁구 하는 데 응원은 기본 아니냐고.”

“회장님도 회장님이지만,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 많아. 나만 해도 도훈 씨 본 적 오래됐잖아.”

“나도 그래. 봄에 식당에서 우연히 보고 계속 못 봤잖아.”

“하하, 네.”

웃는 도훈에게 어떤 회원이 타박했다.

“가끔 운동하러 와. 얼굴 잊어먹겠어.”

“하긴, 제가 오래 못 갔죠.”

“오래가 뭐야? 지난 2년 사이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밖에 안 왔었다며?”

“네. 부시장님 사모님하고 갔었죠.”

“바쁜 건 아는데, 운동하면서 몸도 관리해야지. 도훈 씨도 곧 40 돼. 맨날 청춘이 아니라고.”

“하하, 네. 애써보겠습니다.”

대화하던 도훈이 저만치 세워진 대전표에 시선을 줬다.

약 20여 m의 간격을 두고 세워진 두 탁구 체육관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친선경기.

한쪽은 탁구대가 6개, 다른 쪽은 8개가 비치되어 모든 탁구대에서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대흥시 동호회와 OO 시 동호회의 경기는 여느 때처럼 일방적으로 OO 시 동호회 쪽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대전표를 확인한 도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말고 2차전까지 이긴 사람이 열 명이 안 되네요.”

“그러게. 나도 1차전에서 졌어.”

“나도.”

“에휴. 난 간신히 이기고 올라갔다가 2차전에서 박살이 났어.”

“어머, 언니. 박살은 아니었어요. 아깝게 지셨···.”

“아깝기는 개뿔이···. 3:0이면 박살 난 거 맞아.”

“... 호호.”

회원들과 대화하던 도훈이 저만치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있는 세경과 눈이 마주쳤다.

“저, 잠시만요.”

“아, 호호. 우리가 너무 붙들고 있었네.”

“도훈 씨가 너무 오래간만에 나와서 그래.”

“가서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해.”

“네. 저 오늘 대회 끝날 때까지 있을 거니까 또 말씀 나누시죠.”

회원들과 대화를 마무리하고 세경에게 다가가니 그녀가 웃으며 속삭였다.

“도훈 씨, 인기 많네요?”

“제가요?”

“네. 여자 회원님들이 붙들고 놔주시질 않는 것 같던데요.”

“아, 제가 주로 낮에 탁구를 해서 남자 회원보다 여자 회원들과 친하긴 하죠.”

예전에 정기적으로 탁구 하러 다닐 때, 도훈과 영배는 오전에 운동했다.

작가였던 도훈이나 학원 강사였던 영배나 오전이 제일 한가했었으니까.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저녁 시간에 많고 낮에는 주부를 비롯한 여자 회원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도훈과 영배는 주로 여자 회원들과 운동하며 친해졌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다들 누님들이시잖아요. 저나 영배 형이 귀엽게 보였을 수밖에 없죠.”

“맞아요. 저희가 낮 시간대 막내뻘이라 귀여움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힘들었습니다. 하하하.”

장난스럽게 눈을 빛내며 추궁하는 세경에게 도훈이 답하며 슬쩍 영배를 봤고, 도훈의 시선을 받은 영배가 눈치 좋게 맞장구를 쳤다.

“호호, 장난이에요, 장난.”

“그럼 다행이고요.”

도훈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데이트하기로 해놓고 여기 오자고 해서 미안해요, 세경 씨.”

“어머, 아니에요. 재밌어요.”

“진짜요?”

“네. 저 고모랑··· 아, 그러니까 경완이 삼촌네 고모 탁구 하는 거 이따금 구경 다니고 그랬어요. 오늘은 맛있는 것도 주시는데요.”

“다행이네요.”

탁구 전용 체육관 둘 사이에 있는 공터에 천막을 쳐놓고 양쪽 동호회에서 잔치국수나 수육, 잡채 등 간단한 음식까지 준비해 놓고 회원들에게 대접하고 있었다.

“친선시합이라고 해서 간단하게 할 줄 알았는데, 규모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아, 매번 이런 건 아닙니다. 전에는 대개 도시락으로 때웠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판을 꾸린 건 저도 처음 봤어요.”

“그래요? 호호, 제가 운이 좋네요.”

“그렇긴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차리느라고 회원들 특별회비도 걷고 후원금도 받고 그랬나 봐요.”

“아, 네.”

탁구 하러 다니지는 못했어도, 도훈은 동호회에 1달에 1만 원인 회비를 내고 회원 자격은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 시합에 참여하느라 생각도 못 한 특별회비 2만 원도 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우리지만, 이쪽 동호회는 정말 무슨 잔치 준비하듯 많이 차렸네요. 회원들 아닌 사람들이나 가족들도 많이 온 것 같고요.”

“그러니까요.”

음식이 차려진 천막 쪽을 바라보던 도훈의 말에 세경이 맞장구를 쳤다.

OO 시 동호회가 준비한 음식이나 천막, 좌석 등의 규모가 대흥시 동호회의 그것보다 못해도 세 배는 차이가 나 보였으니까.

“돈이 꽤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네. 이쪽은 사람이 많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도훈이 말끝을 흐리는데, 가만히 있던 두진이 끼어들었다.

“OO 시에서 지원을 꽤 많이 했답니다.”

“시에서요? 얼마나 했길래···.”

“얼핏 들으니까 백만 원이 넘게 지원을 했다는 것 같더라고요.”

“... 허. 그렇게나 많이요?”

“네. 그렇답니다. 우리 동호회 회장님께 들었습니다.”

대흥시 문화체육과에서 이번 행사에 보탠 지원금은 20만 원.

백만 원이 넘는다면, 동호회 행사지원금치고는 과하다고 할 수밖에.

‘... 그렇게나 지원금을 많이 줘? 회원이 많으니까 그런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시 살림은 우리나 OO 시나 비슷비슷할 텐데···.’

대흥시에 딱 붙어있는 OO 시는 인구가 대흥 시보다 조금 적었다.

시로 승격된 것이 대흥 시보다 빨랐고 시의 넓이도 대흥 시보다 커서 그런지 예산의 액수는 조금 많았지만,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나 다름없을 정도.

도훈이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영배가 가만히 속삭였다.

“... 그거 아무래도 선거를 대비한··· 그런 거 아닐까요?”

“뻔하지, 뭐.”

미간을 찌푸린 두진의 말에 다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홍보도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 탁구와 상관없는 시민들도 와서 구경하고 음식도 먹고 가라고요.”

“... 흠. 듣기에는 좋지만, 지원금으로 이렇게까지 행사하는 건 정도가 지나쳐.”

아무리 활동하는 동호회 회원의 수가 많다고 해도, 자치단체의 생활체육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사정이야 따져봐야 알겠고 그건 도훈과 일행의 일이 아니었지만, OO 시의 지원금은 과하다고 느껴졌다.

“흐음.”

도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천막 쪽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도훈 씨! 3차전, 3차전 곧 시작한대!”

“갑니다!”

도훈이 소리쳐 답하자 영배가 얼른 속삭였다.

“지금은 경기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 알아요, 나도.”

“그런 의미에서 3차전도 가뿐히 이깁시다.”

영배가 너무도 강렬하게 눈을 빛내며 말하는 바람에 도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하하.”

“가시죠, 시장님!”

도훈과 사람들이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훈 씨 파이팅!”

“시장님 파이팅!”

“김도훈 파이팅!”

응원하는 동호회 회원들에게 인사하는 도훈이 다시 멋쩍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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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잔치국수를 받아놓고 앉아 한숨만 쉬는 영배.

옆에 앉은 두진이 옆구리를 찌른 다음에야 그는 마주앉은 도훈과 세경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걸 깨달았다.

“... 계속 그렇게 한숨만 쉬고 있을 거야? 국수 다 퍼져.”

“... 먹어야지.”

“어떻게, 시합 뛴 나보다 형이 더 아쉬워하냐?”

“정말 아쉬워서 그렇지.”

“경기는 진즉에 끝났어. 그리고 난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는데?”

“잘했지. 나도 네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 아쉬운 걸 어떻게 하냐?”

“......”

단식 경기는 오전에 다 끝났고 지금은 점심시간.

도훈은 남자부 단식에서 준결승까지 올랐다가 아깝게 패했고 3, 4위 전에서 간신히 이겨 3위를 했다.

지금껏 도훈이 친선시합에서 기록한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리고 오늘 단식에 출전한 대흥시 선수 중 최고의 성적이기도 했다.

“그만 아쉬워하고 드세요. 이 국수 정말 맛있는데.”

“아, 그래야죠.”

“도훈 씨도 드세요. 오후에 복식에도 나갈 거라면서요.”

“네. 세경 씨도 드세요.”

세경의 말에 다들 국수를 먹기 시작하는데, 저만치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시장님!”

“하하, 예. 안녕하세요.”

도훈이 바라보니 평상복 차림의 OO 시 시장 조민구가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었다.

그의 대머리가 유달리 햇볕에 반짝이는 걸 보고 도훈이 피식 웃고 있는데 영배가 속삭였다.

“저런 게 자기PR이라는 거다.”

“......”

“봐라. 한 테이블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잖아. 악수하고 웃고 눈도장 찍고···.”

“그래서 저게 좋아 보여?”

“응?”

“그렇게 얘기하는 형도 지금 인상 찌푸리고 있어. 거울이나 보고 얘기해.”

“......”

거하게 지원했으니 어떻게든 생색을 낼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저렇게 몸소 찾아와 인사까지 할 줄이야.

도훈의 타박에 영배가 침묵했고, 두진이 도훈의 편을 들었다.

“저렇게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한 법이야.”

“......”

“저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 인사하고 악수하는 데 공금 들어가는 거 아니니까. 하지만, 이 잔치판은··· 정도가 지나쳐.”

“... 쩝. 그건 그렇죠.”

머쓱해진 영배가 뒤통수를 긁었고 도훈은 모른 척 다시 잔치국수에 집중했다.

조민구 시장도 자기네 시민들과 인사하는 게 목적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도훈이 왔다는 걸 몰라서 그런지 도훈의 테이블로는 가까이 오질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반납한 뒤에야 도훈이 조민구 시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인사를 다 마치고 비서 및 OO 시 탁구동호회 회장단과 함께 식사하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조 시장님.”

“아, 김 시장님. 오셨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미처 못 알아봤네요. 사람이 많아서요.”

“네. 저도 밥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요.”

도훈과 조민구가 인사하는데 OO 시 동호회 회장이 축하의 말을 했다.

“3등 하셨죠, 김 시장님? 야, 제가 대흥시 시장님이 탁구 동호인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경기하시는 건 오늘 처음 봤거든요? 대단하시데요, 펜홀더로.”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요즘 펜홀더 쓰는 동호인이 많지 않잖아요. 캬! 아까 시장님 백핸드 정말 대단했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보다가 기함을 했어요.”

“1등 한 우리 회원이 시장님과의 경기가 제일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봐도 그랬습니다.”

OO 시 동호회 회장단이 도훈을 칭찬하는 것을 바라보는 조민구의 표정은 뭔가 못마땅한 모습.

그런 시장의 표정을 읽은 비서실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시장님. 이번엔 우리 시에서 시합을 열었으니 다음에는 대흥시에서도 한 번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웃으며 말하는 조민구의 비서실장은 그냥 화제를 돌리려는 의도일 뿐이었지만, 도훈은 진지하게 답했다.

“글쎄요.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대흥시에는 이런 체육관이 없으니까요.”

“아, 참. 그렇다죠.”

“뭐, 굳이 하려면 학교 체육관을 빌리고 탁구대도 빌리고 해서 할 수는 있겠지만, 동호회에서 진행하기에는 돈이 부담될 테고요.”

“하하, 네.”

비서실장이 머쓱하게 웃는데 조민구 시장이 입을 열었다.

“시에서 하면 되지 않겠어요?”

“시에서요?”

“예. 체육관 하루 빌리고 탁구대 몇 개 빌리는데 얼마나 들어간다고···. 동호회 회원들이 이렇게 좋아하고 시민들도 함께하는 좋은 취진데, 시에서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흠, 글쎄요. 차라리 동호회 간의 친선시합이 아니라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회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동호회 회원은 시민 아니랍니까? 왜 그리 박하게 말을 하세요? 김 시장 본인도 탁구 동호인이면서.”

조민구 시장이 웃으며 말했고, 도훈은 일순 갈등했다.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이건 도훈이 들으라는 얘기이기보다는 조민구 옆의 OO 시 탁구 동호인들을 의식한 얘기였으니까.

자기는 도훈과 달리 동호회 회원들에게 아주 잘하는 거 아니냐는 그런 속내를 가진 말이 아닌가.

‘... 이 인간이···. 이걸 그냥 적당히 넘겨, 말아? 여기가 우리 동네도 아니고 어쨌든 좋은 날인데···.’

애초에 도훈과 조민구 시장이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좀 시비 거는 느낌이 강했다.

도훈 뒤에 있던 두진, 영배, 세경도 그걸 느꼈는지 얼굴이 굳어졌고 본인도 동호인인 영배가 끼어들려는데 도훈이 선수를 쳤다.

“글쎄요. 저는 시장님이랑 생각이 다릅니다.”

“응? 뭐라고요?”

능글맞게 웃으며 반문하는 조민구 시장에게 도훈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저 스스로가 동호인이라서 그런지 시장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생각이 분명히 다르다고요.”

“... 하하, 그래요?”

“네.”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별다른 의도 없이 나온 조민구의 질문이었지만, 도훈은 이미 정색한 상황.

“정말 듣고 싶으세요, 제 생각을?”

“하하, 뭐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한 번 들어봅시다.”

심드렁한 표정의 조민구에게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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