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06화 (207/279)

206. 먹구름 - 2.

-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김도훈 답네.

- 흐음, 김 시장다운 선택이군. 뭐, 일장일단이 있겠지. 아, 이건 비서실장으로서의 입장이고 개인적으로는 잘 판단한 거로 생각하네.

- 아, 그런 거였어요? 와, 별 거지 같은 것들···, 아 돈은 많으니까 거지는 아닌가요? 어쨌든, 잘하셨어요.

- 허허. 공장 유치를 그런 쪽으로 써먹을 수도 있군요. 그런데 이 얘기도 비밀입니까? 직원들이 들으면 아주 재미있어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도훈의 설명을 들은 비서실 직원들의 반응은 이랬다.

도훈은 영배, 두진, 지연, 영진 넷 모두 자신의 결정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는 게 새삼스럽게도 만족스러웠다.

두진은 좀 아쉬워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긴 해도, 그건 비서실장으로서의 공적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고 도훈도 공적으로는 비슷한 마음이 있었으니 이해가 갔다.

- 저와의 친분은 생각하지 마시고 대흥시에서 내건 조건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도훈이 이민상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

순심이에게 ‘잠깐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렸다’고 말했을 때, 인연이니 친분이니 인맥이니 하는 고민이 지금의 자신에게 꼭 필요치 않은 ‘엉뚱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정상이질 않은가.

제법 준수한 기업체 오너 가와 인맥을 만들어두는 게 나쁠 게 없다고 쳐도, 그런 걸 인위적으로 만들고 관리하는 데 거부감이 든 도훈이었다.

그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민상은 두 번 전화했다가 도훈이 받지 않으니 답문을 보내왔다.

- 제가 너무 속내를 드러냈나 봅니다. 저희가 어설프게 행동해서 시장님께 실례를 범한 걸 사과드립니다.

이민상이 속내를 쉽게 드러낸 것도 맞고 어설프게 도훈의 ‘간’을 보려다 실패한 것도 맞다.

도훈은 그들의 어설픈 ‘수작’에 놀아나지 않았을 뿐,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민상의 사과 메시지는 좀 의외였다.

이민상이 오만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돌아이’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돈 많은 집의 자제답게 자존심 강하고 꽤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

도훈이 관찰한 그의 성격과 두 번의 통화시도와 답 메시지 사이의 상당한 시차를 놓고 유추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건 진심이라기보다는 애써 화가 난 걸 가라앉히고 이성을 앞세워 쓴 거다.’

결론이야 어쨌든, 도훈은 VH 엔지니어링의 일에 기대를 접었다.

이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각종 혜택은 이미 제시했으니 그것에 혹해 유치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물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겠지만.

그런데, 모두가 도훈의 판단과 행동에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이민상과의 만남이 있었던 며칠 뒤, 도훈은 시의회 의장의 면담 요청에 응했다.

요청한 건 심남진 의장이었지만, 의장과의 면담 자리에는 의원이 여섯 명이나 자리해 있었다.

시의회에서 제명당한 뒤, 제명처분 취소 소송을 낸 채로 의회에 나타나지 않는 서태기를 제외한 전원이었다.

“시장님, VH 엔지니어링 공장 유치가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휴우, 아쉽습니다.”

말문을 튼 심남진 의장은 물론, 의원 전원이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VH 엔지니어링 공장의 유치 협상은 무척 갑작스러운 일이었음에도 시청과 시의회의 시선이 일제히 쏠릴 정도로 대흥시에는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제히 시선이 쏠린 건 당연히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실무자 협상만 있었던 게 아니라던데, 맞습니까?”

“... 네.”

도훈이 질문한 안준식에게 시선을 주자, 안준식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다른 의원님들은 본회의에서 이 얘길 다뤄야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주워들은 얘기가 신빙성이 있다면 그럴 성질이 아닌 것 같아서 제가 이렇게 면담 형식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도훈이 김용진과 했던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이상민과 도훈이 했던 얘기를 본회의에서 다루는 건 부적절할 것 같으니, 그나마 도훈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면담으로 유도한 듯했다.

안준식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도훈이 설명을 시작했다.

“엔지니어링 실무자와의 협상이 있던 날 저녁에 그룹 기획실장이 만나자고 해서 잠깐 만났습니다.”

“그룹 기획실장이요? 혹시···.”

“짐작하시는 바가 맞을 겁니다. VH 그룹 오너 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왜 일이 잘 안 풀린 거죠?”

“... 그게··· 좀 조심스러운 내용이긴 합니다만,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의원님들께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밀 지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질문한 도훈이 의원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다들 궁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끝까지 비밀이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의원들에게는 제대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고 차분히 이민상과의 만남을 풀어냈다.

대흥시의 조건이 아닌 엉뚱한 데 관심이 있었다는···.

“... 하하, 정말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시장님?”

“네. 부의장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궁극적인 의도는 아마 추측하시는 종류의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냥 친하게 지내는 건, 그런 얘기 없이도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조건으로 내거는 게 더 이상하죠.”

“그럼요. 참, 내···. 인간관계까지 다 그렇게 미리 계산하고 계획하는 게 그쪽 사람들 방식인가요? 허허, 어이가 없네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신길영 의장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도훈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놓치지 않았다.

장민호 의원은 좀 부러운 듯한 눈치였고 차혜진 의원도 비슷했는데 심남진 의장의 표정이 좀 안타까운 듯한 느낌이었다.

장민호와 차혜진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래도 솔직한 편인 심남진은 말로 자신의 느낌을 드러냈다.

“휴우, 시장님. 나도 별것 아닌 크기의 카페지만 장사라는 걸 하잖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시장님 대응이 살짝 아쉬운 측면이 있네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의장님.”

“그럴까요, 그럼?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이어진 심남진의 말은 도훈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장을 유치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작지 않으니 공장을 유치하고 관계는 잘 관리해도 되는 일 아니겠느냐는 얘기.

일반인이라면 도훈의 판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도훈은 대흥시의 살림을 맡은 시장이니 약간의 수고나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도 있지 않겠냐는 그런 얘기였다.

“의장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쪽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게 그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제안에 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를 못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나쁜 의미에서의 유착 관계, 그것에 아주 익숙한 이들로 보였습니다.”

“... 흐음.”

“제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면, 의장님 말씀처럼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아무 고민 없이 그냥 반감이 느껴져 쉽게 결정한 게 아닙니다.”

도훈의 차분한 말에 심남진은 아쉽다는 표정이면서도 뭐라 더 말을 잇지 않았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신 분들은 마저 하시지요.”

심남진이 물었지만, 다른 질문을 하는 의원은 없었다.

“그럼 이 얘기는 이걸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본회의에서 더 논의하거나 점검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하시죠.”

“네.”

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짐을 받은 심남진이 면담을 종료했다.

의원들과 인사하고 의회 건물을 빠져나온 도훈이 문득 드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건물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곁에서 영배가 묻자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가죠.”

다시 걸음을 옮기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왠지 이걸로 마무리될 것 같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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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VH 엔지니어링은 공장 이전 후보지에서 대흥시를 제외했다고 통보해 왔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소문이 시청과 시의회에 돌기 시작했다.

- VH 쪽에서 후보지에서 제외한 게 아니고 시청 쪽에서 거절했다더라.

- VH는 대흥시의 지리적 입지나 시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보다 시장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더라.

- 그룹 고위인사가 내려와 시장과 직접 대화까지 했는데, 시장이 VH의 제안을 거절했다더라.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의 사실에 근접했거나 다르지 않은 이야기.

그런 소문이 시청 직원들 사이에 돌자, 두진이 비서실 직원들부터 점검했다.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시장실로 들어온 두진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 저희는 아닙니다.”

“......”

“아무래도 의회 쪽인 것 같습니다.”

살짝 화가 난 듯한 두진에 반해 도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화내지 마세요.”

“시장님은 화 안 나십니까?”

“그다지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시기 전에 비밀로 해달라고 미리 다짐까지 두셨다면서요?”

“그랬죠. 하지만, 이렇게 될 것 같았습니다.”

“... 허허.”

“그렇다고 얘기를 안 할 수도 없었습니다. 최소한 의원들은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그리고 그 얘기···. 아예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시장님.”

두진이 화가 난 것은 도훈과 VH 기획실장 이민상 사이에서 오간 얘기가 소문으로 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소문과 함께 도는 어떤 ‘주장’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게 맞았다.

- 현재 시장은 지나치게 원칙적이다. 막말로, 공장 유치가 시와 시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시장이 능수능란하게 행동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먼저 공장 유치부터 해놓고 재주껏 관리해도 되는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요즘 행정이 나라에서 주는 돈 아껴 쓴다고 끝인 시대가 아니질 않나? 일부 지자체장들이 외국 기업 유치한다고 해외로 비즈니스 하듯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가 오래됐다. 지금의 김도훈 시장에게는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거나있어도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소신 있고 청렴한 시장도 좋지만, 능력 있는 시장도 필요하다.

누구의 평가이고 주장인지는 모르겠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더 많은 듯했지만, ‘일리 있는 얘기’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 거절할 때부터 이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실장님도 제게 비서실장으로서는 일장일단이 있는 결정이라고 얘기하셨잖아요. 지금 도는 얘기, 그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 네.”

“위축되지 마세요, 실장님.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했지.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로 돌아가거나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겁니다.”

“네, 시장님.”

“그 얘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판단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숫자를 세본 적은 없고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전 그렇게 믿습니다.”

담담히 말하는 도훈을 바라보는 두진과 비서실 직원들.

가만히 도훈을 바라보던 영배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처하긴 무슨 대처를 해요.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인데.”

“...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런 평가와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했잖습니까. 조 비서관은 제 말에 동의가 안 돼요?”

“그건 아니죠.”

“그럼 그냥 수용하고 넘어가야죠.”

“......”

“지금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게 아니고 그런 모습도 필요하다는 얘기잖아요. 그럼, 다음에 혹시 그런 모습이 필요할 때가 다시 오면 가능한 만큼은 애써 보는 거죠.”

“... 알겠습니다.”

영배가 마지못해 수긍했고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표정인데 도훈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죠. 특정되지 않은 사람의 의견을 놓고 토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 알겠습니다.”

“자, 다음 스케줄 뭡니까?”

표정을 밝게 하고 묻는 도훈.

다음 일정이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직원들이 더는 소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도록 주의를 환기하기 위함이라는 걸 직원들도 모르지 않았다.

“교육장님과 회의까지 30분 남았습니다, 시장님.”

“그래요? 서둘러야겠습니다. 가시죠.”

“네.”

살짝 흐려진 하늘 아래,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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