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비슷한 눈빛 - 2.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 시장?”
강정문이 질문을 반복했고, 도훈은 들고 있던 소주잔을 그냥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민의당에 좋은 일이군요. 아니, 민의당 뿐만 아니라 대흥시 시민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훌륭한 시장 후보 아닌가요?”
“... 흠.”
“안준식 의원이 개혁적인 성향이라서 좋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직 그 사람 알게 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항상 성실하고 매사 솔선해 책임지려 하는 자세라든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려 치열하게 애쓰는 점 등은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말하는 도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강정문이 쓰게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그거 말고 다른 생각은 안 들어요? 김 시장 재선에 도전할 거 아닙니까?”
“... 지금, 안준식 의원을 경쟁자로 여기고 위기감을 가져야 하지 않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인지상정이잖아요.”
“하하.”
도훈이 웃었다.
아주 해맑게.
“도지사님. 민의당 소속이시잖아요. 지금 자기 당 유력 주자보다 절 신경 쓰시는 겁니까?”
“나 민의당 소속 맞아요. 하지만, 난 우리 당 사람이니까 지지하고 아니니까 지지하면 안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진즉에 버렸어요. 안준식 의원 내가 관심 가는 사람인 건 맞아요. 하지만, 동시에 김 시장한테도 관심 두고 있습니다. 설마 인제 와서 몰랐다는 얘기하려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우리 당 소속 아니면서도 훌륭한 사람 많거든요. 우리 당 소속이라고 다 훌륭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설마 날···.”
“아뇨, 아닙니다. 지사님이 지금껏 절 대해온 것만 봐도 알죠.”
도훈의 말에 강정문이 살짝 굳어졌던 얼굴을 펴고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리고 안 의원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난 그런 솔직담백한 면이 김 시장의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김 시장도 경각심을 좀 가지긴 해야 해요. 설마 다음 선거 때 출마 안 할 건 아니죠?”
좀 안타깝다는 표정이 된 강정문.
그런 강정문을 바라보며 도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세경 씨가 정말 나에 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모양이네.’
도훈이 ‘무소속’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확인한 뒤 강정문이나 김용진은 속내야 어쨌든 민의당에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았고, 그런 시늉도 내지 않았다.
당에 들어오라는 것보다 그들이 더 관심을 두는 건 도훈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시장 일을 관둘 것인가의 여부.
같은 당 동지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두 사람은 도훈을 좋은 정치인의 재목으로 보고 있었고, 최소한 대흥시 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해 계속 성장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당에 소속된 정치인으로서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모습이지만, 그 정도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도훈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만남 제의에 응할 정도로 상대해주지도 않았을 터.
‘어찌 보면, 내가 다시 출마하느냐 안 하느냐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강 지사랑 김 의원이었는데···.’
도훈이 가족 및 친구들과 세경, 비서실 직원들에게 재선에 도전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 게 한참 전의 일.
결정한 걸 이야기한 뒤 소문이 좀 돌 줄 알았던 도훈이었는데, 예상 밖으로 그와 관련된 얘기가 전혀 없었다.
아마 세경을 포함해 그 얘기를 들은 모두가 사안이 중요하다 생각해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강정문은 아직 도훈이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안준식을 높이 평가하는 게 도훈에게 재선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강 지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안 의원을 경계하라는 게 아니라 나한테 재선에 도전하라는 것 같은데···.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네.’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가만히 강정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선거에 출마할 것 같은데요.”
“어휴, 너무 쉽게 결정···. 응?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 출마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깜빡, 깜빡.
잠시 말문을 잃고 눈만 깜빡거리던 강정문이 입을 열었다.
“... 출마할 거라고요?”
“네.”
“진짜요?”
“네.”
“언제 그런 결정을 했습니까?”
“... 어, 꽤 됐는데요. 저 고소당하기 조금 전이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묻던 강정문이 갑자기 ‘버럭’ 했다.
“아니, 그런 중요한 결정을 했는데 왜 아무런 말을···.”
“할 기회가 없지 않았나요?”
“......”
심드렁한 도훈의 대답에 강정문이 다시 눈을 깜빡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 그러네요. 할 여유가 없긴 했네요. 내가 여길 오지도 못했고···.”
“하하, 네. 전화로도 물어보신 적 없잖습니까.”
“... 그것도 그렇네요. 하하.”
강정문의 웃음의 느낌이 바뀌었다.
좀 허탈하다는 것에서 진심으로 기쁘다는 그런 것으로.
“잘 생각했어요, 김 시장.”
“글쎄요. 두고 봐야죠.”
“두고 볼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정치판 경력이 몇 년인데, 김 시장처럼 오래 정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 거의 본 적이 없단 말입니다.”
“... 너무 띄워주시는 것 같은데요.”
“띄워주긴? 내가 김 시장한테 잘 보여서 이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띄워줍니까? 대흥에 와서 먹는 밥값, 술값도 더치페이하는 처지에. 진짜니까 하는 말이에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도훈이 담담히 웃자 강정문도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잠깐만. 이럴 때가 아니네.”
“... 네?”
“아니, 출마한다는 사람이 선거 때 경쟁할 사람을 의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네?”
“음. 내가 이런 얘기하는 거 좀 모순적이고 남들 들으면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긴 한데, 선거라는 건 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일이에요. 아름다운 2등? 말은 좋지요. 하지만, 난 그 말을 선거에서 2등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봐요.”
“......”
갑자기 진지해진 강정문이 ‘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냥 백수일 뿐이라는 말 못 들었어요?”
“... 들은 적 있는 것도 같은···.”
“어휴! 김 시장이 아직 이쪽 경험이 짧아서···.”
“......”
돌변한 강정문이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잔소리라고 여기면서도 강정문이 전에 없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도훈은 그의 말을 끊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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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가 시작되고 한 시간 조금 넘어 합류한 김용진의 반응도 강정문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잘 생각했습니다, 시장님!”
“... 아, 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강정문의 ‘김 시장 다음 선거에 출마한다네.’라는 말을 듣고는 환하게 웃으며 ‘덥석’ 손까지 붙들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말하는 김용진의 모습에, 도훈은 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강 지사나 김 의원이나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반기는데? 하하, 참.’
둘이 약간 캐릭터는 다르지만,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라는 건 도훈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재선에 도전한다는 말에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그래서 도훈은 이미 강정문에게 했던 말을 김용진에게도 했다.
“저 다음 선거 때도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입니다만?”
“하하하! 그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시장님이 꼭 우리 당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강요할 생각 없습니다. 지금도 무소속이지만, 우리 당 사람들과 협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요. 하하하!”
“......”
김용진이 화통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도훈이 얼굴을 구겼다.
“응? 아니 반응이 왜 그래요?”
김용진의 질문에 대한 답은 도훈이 아니라 강정문이 했다.
“후후. 거 봐요.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김 의원 반응도 비슷할 거라고 했죠?”
“... 그러셨죠.”
“내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오늘 밥값은 김 시장이 내는 겁니다.”
“... 네.”
도훈과 강정문의 대화를 듣던 김용진이 어이없어했다.
“설마 내 반응을 두고 내기를 한 겁니까?”
“... 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도지사님이 하자고 하신 겁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 진심을 그렇게···.”
“아, 시끄러워. 이 친구야. 공짜 밥에 술 먹으면 됐지.”
강정문의 말에 김용진이 입을 다물었지만, 얼마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우지는 못했다.
내기에 이겨서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주와 안주를 즐기던 강정문이 김용진에게 넌지시 물었다.
“요즘, 대흥시 지역위원회에 입당 신청하는 젊은 사람이 좀 있다지?”
“네. 지사님.”
“최근 제명 건 때문에 안준식 의원이 주목받는다는데 어떤가?”
“아, 네. 실제로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거···.”
“지사님!”
도훈이 끼어들어 강정문의 입을 막았다.
“... 왜요?”
“... 크, 크흠. 그게 말입니다.”
“그게 뭐요?”
“아, 담배 한 대 피우러 안 가시겠습니까?”
“... 담배요?”
“네. 담배요.”
물끄러미 도훈을 바라보던 강정문이 빙긋 웃었다.
분명, 안준식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려는 걸 막으려는 도훈의 의도를 알아챈 그런 웃음이었다.
“좋아요. 그럽시다.”
선선히 답한 강정문이 몸을 일으켰고, 도훈이 얼른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도훈이 말했다.
“김 의원한테든 누구한테든 안준식 의원 얘기 절대로 하지 마세요.”
“왜요?”
“선거가 아직도 멀었는데 괜한 호들갑 떠는 것 같습니다만, 안준식 의원이 시장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잖습니까? 괜히 도지사님이나 김 의원이 이상한 소리 해서 안준식 의원의 생각에 영향이라도 끼칠까 걱정돼서 그럽니다.”
“에이, 나나 김 의원이나 명색이 민의당 사람인데 민의당 유망주한테 그런 짓 하겠어요?”
“그렇죠? 그런 ‘짓’은 안 하실 거죠?”
“하하하.”
웃는 강정문에게 도훈이 재차 말했다.
“안 하실 거죠?”
“물론이죠.”
이번에는 강정문이 도훈에게 정색하고 답했다.
“난 김 시장이 도전해서 성공하길 바라지만, 우리 당의 안준식 의원 같은 이들도 성공하길 바랍니다.”
“네.”
“당연히 두 사람 모두를 응원하지. 허튼 수작 안 부려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정색한 강정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도훈이 답했다.
“믿겠습니다.”
푹푹 찌는 더운 저녁, 도훈과 강정문이 강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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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토요일 점심 무렵.
“... 강정문 도지사가 그렇게 정색하고 답했으니 그쪽에서 괜한 얘기 나올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 그래.”
“그러니 우리도 괜히 이 이야기가 소문이라도 나서 엉뚱한 영향을 안 끼치게 조심하도록 하죠.”
“......”
“실장님?”
“... 쩝, 알았네.”
“영배 형?”
“오냐. 알았다, 인마.”
도훈이 두진과 영배에게 다짐을 뒀다.
지금껏 도훈의 재선 도전이 소문이 안 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자고.
그 이유는 혹여 안준식의 시장 도전 의지를 꺾지 않기 위해.
“시기적으로도 이르지만, 괜한 얘기로 관계 불편해질 필요가 없잖습니까.”
다음 지방 선거까지는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다.
재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기에는 이르다.
민의당 지역 당원들 사이에서 안준식이 주목받고 있는 이 시점에 그런 얘기가 돌면, 분명 그쪽에서는 도훈이 안준식을 의식해 이야기를 흘렸다고 생각하기가 십상.
도훈은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적과 전혀 상관없이 시장과 의회 의장으로 잘 협력했었고 지금도 안준식 만한 의원이 없다고 여기는 도훈이었다.
‘진짜 경쟁해야 한다면, 그때 가서 전심전력으로 하면 되지. 괜히 미리부터 그럴 필요는 없지.’
속으로 중얼거리는 도훈을 두진과 영배가 ‘그’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견함에 안쓰러움, 궁금증에 호의적인 걱정이 섞인 바로 그 눈빛.
“그런 눈빛 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딱한 처지라도 된 것 같잖습니까?”
“흠.”
“크흠.”
“아무튼, 제 얘기 따라 주시는 겁니다. 아셨죠?”
“... 그래.”
“알았지?”
“알았다고.”
그렇게 재차 다짐을 둔 도훈이 서류에 눈을 돌리고 일에 집중하길 얼마.
똑똑똑.
“네.”
안으로 들어선 건 다름 아닌 안준식.
안준식은 소파에 앉은 도훈과 눈이 마주치자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소식 들었습니다, 시장님!”
“... 네?”
“결정하셨다면서요! 하하하!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야, 이거 축하주 한 잔 사야겠어요! 하하하! 괜찮으시면 오늘 저녁에 할까요? 안 그래도 제가 밥 사기로 했는데 어떻습니까!”
“......”
어제저녁, 재선 도전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던 강정문과 김용진과 비슷한 눈빛을 보이는 안준식.
안준식이 왜 저러는지 반쯤은 감을 잡은 도훈이 말문을 잃고 있는데, 등 뒤 허공에서 조상님이 말을 걸었다.
- 쟤, 지금도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