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00화 (201/279)

200. 비슷한 눈빛 - 1.

서태기 의원이 저지른 파렴치한 짓과 그에 대한 반응이 TV 뉴스에까지 등장하고 1주일 정도 시간이 지난 8월 말의 어느 날 점심 무렵.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식사하러 가시죠. 시장님.”

“그러시죠. 자, 밥 먹고 합시다.”

“하하하.”

지역경제과 회의에 참여했던 도훈이 회의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아, 회의 중에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팀장님, 다음 주에 외국인 노동자 고용현장 실사하죠?”

“네, 시장님.”

“이번에도 꼼꼼히 잘 살펴 주세요.”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하는 공장이 문제가 됐던 이후, 대흥시청에서는 1년에 두 번씩 관내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 업체를 점검했다.

노동청의 협조를 받고 대전의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도 받아서, 시청 담당 부서 직원뿐 아니라 다양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이들이 함께하는 일.

처음에는 업체 측에서 그다지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 점검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잘 관리하고 있다는 인증을 두 번에 걸쳐 받으면 대흥시에서 약간의 지원을 하기로 한 뒤로는 태도가 달라졌다.

위이이잉.

“먼저 들어가세요. 저 이 전화 받아야겠습니다.”

“네.”

직원들을 먼저 구내식당에 들여보낸 도훈은 핸드폰을 들고 청사 건물 옆 자판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영배가 뒤를 따랐다.

“김도훈입니다.”

- 저 안준식입니다, 시장님.

“네, 의원님.”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안준식.

그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조금 전에 통과됐습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 네.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잘됐네요.”

오늘 시의회 오전 마지막 안건은 서태기 의원의 제명안 처리였다.

안준식이 의회 부의장 신길영과 공동 발의한 그 제명안이 만장일치로 처리됐다는 소식이었다.

- 시장님 덕분입니다.

“아뇨. 의원님이 노력하신 때문이죠.”

- 아닙니다. 시장님이 이런저런 말 들으면서도 지원사격 해주셨잖습니까.

“할 수 있을 만한 말이었고 듣고 감내할 정도의 말이었으니까요.”

시의회에서 안준식의 질문에 답하고 그 내용이 인터넷 기사에 TV 뉴스에까지 보도되니, 여러 언론에서 계속 도훈의 입장을 물었다.

취재를 원하는 모든 기자와 만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질문을 또 받는다 해도 같은 답변을 하겠다.’는 도훈의 입장은 취재를 요청한 모든 언론에 전해졌다.

당연히 그런 도훈의 입장은 기사를 통해 알려졌고, 그런 기사나 뉴스를 통해 서태기의 일은 재조명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대흥시 의회에 그를 제명하라는 시민의 압력이 더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덕분에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던 제명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일 터.

- 저나 신길영 부의장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장님이 적절히 언론을 상대해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의회가 압력을 느끼지 않았겠죠. 그건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렇다고 치죠.”

도훈이 담담히 웃으며 답하는데, 옆에 선 영배가 허탈한 표정을 했다.

전국적으로 다뤄진 폭발적인 뉴스 주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대전․충남 지역의 거의 모든 언론은 한 번 이상씩 이 일을 보도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스피커’가 도훈이었기 때문일 터.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장 중 도훈만큼 언론으로부터 주목받는 단체장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하하, 네. 아뇨. 됐고요. 음, 맛있는 거나 한번 사세요. 그럼 되죠, 뭐. 네, 끊겠습니다.”

도훈이 안준식과 통화를 마치자 영배가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좋냐?”

“... 왜 시비야?”

“너 언론 상대하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는데···.”

“이제 다 지나간 얘기야. 짧게 해.”

“쩝. 알았다.”

서태기 제명에 관한 도훈의 입장이 뉴스로 나올 때마다 시의회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도훈도 이런저런 소리를 좀 들었다.

‘경솔하다’, ‘시장까지 그렇게 나설 일이 아니다’라는 것과 함께 압박감을 느끼는 시의원들의 불만 어린 소리도 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까지 서태기가 싫었냐? 그간 어떻게 참고 얼굴 마주했냐?’라고 시비를 걸기도 했었다.

도훈의 입장이 심심찮게 기사로 나올 때마다 온‧오프라인에서 듣는 비판이나 핀잔도 늘었다.

다만, 그런 비판이나 핀잔보다 ‘틀린 말 아니다’는 반응이 다수였기에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일 터.

“실장님 얘기가 틀린 얘기가 아니야.”

“알아, 나도.”

도훈이 그런 행보를 걸은 것을 가장 안타까워한 게 두진이었다.

재선까지 결심했다면서 공연히 책 잡힐 일을 했다는 게 그의 걱정이었지만, 도훈은 좀 생각이 달랐다.

- ... 시의회가 스스로 자정 능력을 발휘하는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준식이 말했던 것이 시민의 공익향상에 플러스 요인인 것이 확실한 이상, 이 정도 책잡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생각이었다.

“배 안 고파? 밥 먹으러 가자고.”

“너 말이야. 그···.”

“그 뭐?”

“... 아니다.”

“뭔데 말을 하다 말아?”

“아니야.”

“... 싱겁기는.”

영배가 말을 망설이자 더 재촉하지 않고 청사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도훈.

‘... 에휴. 저 녀석도 분명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도훈의 뒤를 따르며 영배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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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인 8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도훈은 간만에 중국관 뒷방에 와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도훈이 심드렁하고도 살짝 뾰족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 말고는 대전, 충남에 맛집이 없답니까?”

“왜 없겠어요? 도청 청사 근처에도 맛집 많아요.”

“그럼 저 말고는 편하게 술 한 잔 함께 할 만한 친구분이 없으신 건가요?”

“하하, 우리가 친구였어요? 난 김 시장이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지 몰랐네?”

날 선 도훈의 질문을 유들유들하게 피해 가는 건 강정문 도지사.

“이따가 시간 괜찮으면 김용진 의원도 합류하기로 했어요.”

“... 그런 말씀은 안 하셨잖습니까?”

“나도 여기 도착하기 조금 전에야 얘기를 들었어요. 원래는 못 온다고 했거든.”

“... 하아.”

“하하. 내가 오늘은 운이 좋아요. 안 그래요? 공교롭게도 김 시장도 일정이 없었다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

강정문의 너스레를 도훈은 뚱한 표정으로 바라만 봤다.

금요일 저녁인데도 아무런 일정이 없었던 건 원래 세경과 데이트를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경은 갑자기 서울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며 오전에 연락을 해왔고, 도훈은 다른 일정을 잡을까 하다가 직원들 휴식도 챙길 겸 정시에 퇴근하려 했는데 퇴근 직전에 강정문의 연락을 받아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얼굴 펴요. 간만에 속 편하게 술 마시는 거 좋잖아요? 요즘 쓴소리 제법 들었다던데. 불편한 속은 나랑 이 술 마시고 씻어버립시다.”

“... 그런 소리 들은 건 사실입니다만, 속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김 시장도 경력이 좀 붙었다는 겁니까? 웬만한 비판은 대수롭지 않게 감내할 수 있다는 건가요?”

“큰일 날 소리 마시죠. 비판을 대수롭지 않게 감내하면 그만큼 소통능력이 떨어진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건 아니고,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죠.”

“하하하.”

여유만만한 웃음을 보이는 강정문의 모습에 도훈은 속으로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계획대로 일찍 밥 먹고 잘 걸 그랬나?’

간만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자던 생각을 철회하고 이 자리에 나온 건, 강정문과의 만남이 오래간만이기도 했고 주되게는 일전에 세경이 데이트 때 무심코 했던 말이 기억나서였다.

- 강 지사님이 도훈 씨가 전 대흥시장 쪽에게 음해당하는 거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전 대흥시장이나 서 모라는 시의원이나 다 강 지사님이랑 안면은 있는 사이거든요. 예전에도 그분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 저지르곤 했다는데, 그때 진즉에 처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엉뚱한 사람이 괴롭힘당한다면서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강 지사님도 정치 오래 한 것에 비해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은 아니라니까요.

강운천 전 시장이 도훈을 고소한 뒤에 짧은 위로 전화 한 번이 강정문이 연락한 전부였다.

강정문이 일부러 도훈을 피한 게 아니고 해외출장 등 공무가 바빠서였다.

사실, 도지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동네 중국집 뒷방에 앉아 편히 술 마시는 걸 예사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아마, 그래서 시간만 나면 이 중국관 뒷방을 차지하고 앉아 유유자적 술 마시는 데 ‘집착’하는 모양이었고 말이다.

“그 제명 건 때문에 시의원들이랑 좀 서먹서먹해졌다는 것 같던데요?”

“...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나 이래 봬도 현직 도지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흥시 부시장이랑 아주 친하죠.”

“......”

“그리고 전경완 부시장 말고도 대흥시에 아는 사람 꽤 돼요. 예를 들어 여기 사장님이라던가.”

“......”

말문을 잃었던 도훈은 푹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시의원들이랄 것까지는 없고, 시의회 의장이 좀 서운해 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래요? 제명에 적극적이지 않던 의원은 셋이라던데?”

“맞긴 맞는데···. 셋 중 두 분은 원래도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흐음.”

강정문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지.’

서태기의 제명에 소극적이었던 심남진, 차혜진, 장민호.

이 세 사람 모두 의회에 가해지는 시민의 압박을 못 이기고 제명안에 찬성했다.

차혜진과 장민호가 도훈에게 불만을 표하는 건 ‘그러려니’할 수 있는데, 심남진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소극적인 성격인 그가 의회 의장으로서 느낀 압박감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었다.

‘... 뭐, 시간 두고 풀어야지.’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강정문이 말을 이었다.

“요새 이 동네 우리 당 지역위원회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데 혹시 알아요?”

“젊은 사람이 당원 가입 신청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안준식 의원하고 송지은 의원이 이번 일에 적극적이었던 게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겠죠.”

“장한 일이죠.”

“그렇죠.”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을 해요. 그 두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어도 김 시장이 적절히 지원사격을 하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거라는.”

“모르죠, 그건.”

“내 생각이 맞을 걸요? 대흥시 시민이 이 일에 관심을 두게 한 건 김 시장이 핀잔이나 쓴소리 들으면서도 때때로 언론에 등장해줬기 대문이라는.”

“... 글쎄요.”

도훈이 심드렁하게 답하는데, 강정문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가장 큰 공은 김 시장이 세웠는데 성과는 민의당이 얻어가고···.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혀요.”

“정말로요?”

“네. 시의회 다수당인 여당 지역위원회가 더 개혁적이고 참신해지는 건 저로서도 반가운 일입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강정문은 이번엔 측면 공격이 아닌 정면 공격을 선택했다.

“당원들 사이에서 안준식 의원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던데···. 그것도 압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안 의원이랑 진평당 소속 신 부의장이 이번 제명안 주도했는데요. 민의당 내부에서는 당연히 안 의원에게 공이 돌아가야겠죠.”

“... 흐음. 그럼 그렇게 주목받은 안 의원이 다음 대흥시장 후보로 안성맞춤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

질문하는 강정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있었지만, 그 눈빛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견함에 안쓰러움, 궁금증에 호의적인 걱정까지 섞인 그런 복잡한 눈빛.

‘... 허, 참. 저런 눈으로 저 얘길 제일 먼저 꺼내는 사람이 이 양반이 됐네.’

도훈의 곁에는 최근에 지금의 강정문과 비슷한 눈빛을 이따금 보이는 이가 둘 더 있었다.

다름 아닌, 두진과 영배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도훈도 눈치채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 시장?”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질문하는 강정문을 바라보며 도훈이 입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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