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진심에는 진심으로 – 3.
안준식과 조 위원이 제각기 ‘행동’에 나선 다음다음 날인 목요일 아침, 시청 비서실.
“흐음. 이거 확 불살라 오르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미적지근하지도 않은데요?”
조회를 시작하기 전, 제각기 차나 커피를 준비하는 사이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영배가 말했다.
“솔직히 그 정도면 꽤 많은 사람이 나선 거 아닐까요? 온라인 시위에 나선 사람들 대부분이 그 지역 주민이라잖아요.”
“맞아. 200명이 적은 숫자는 아니지. 오늘이 겨우 사흘짼데.”
“그것도 있지만, 눈여겨봐야 할 건 엄마들이 나섰다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지연, 두진, 영진도 한마디씩 했고, 커피를 마시던 도훈도 입을 열었다.
“저도 홍 주무관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엄마들이 이렇게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일단 나서면 무서운 행동력을 보이는 게 엄마들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요.”
조 위원을 필두로 ‘비리 시의원 서태기는 즉각 사퇴하라’는 손팻말 사진을 SNS 계정에 올린 이들의 숫자는 2백이 넘었다.
자기 계정에 사진을 올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태기의 계정에 찾아가 글을 남기기까지 했다.
일부 남자도 있지만, 절대다수가 3, 40대의 여성들.
조 위원이 자기 계정에 사진을 올리자마자 동참하는 이들이 나선 걸 보면, 미리 이야기되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사정이 궁금해진 도훈은 어제 안준식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 아마 시장님 짐작이 맞을 겁니다. 조 위원님이 자기 나름대로 사람을 모아보겠다고 했거든요. 그분, 대학 강사 일 쉬고 아이 키우면서 이런저런 모임에도 가입해 활동도 열심히 하신 것 같더라고요.
안준식이 전한 바에 따르면 조 위원 혼자서 2백이 넘는 사람들을 모은 건 아니고 그녀와 친한 동네 엄마들 중에 서태기에 대해 불만이 있는 이들이 몇 있는데 그들과 함께할 거라고 했단다.
지난 지방 선거 때 민의당 돌풍이 불어 당선되긴 했지만, 서태기는 민의당 소속이면서도 당이 앞세운 ‘개혁’과 상당히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으니까.
시의원인 그의 의정 활동이 ‘정치’보다 주민 의견 청취와 이를 시정에 반영토록 하는 부분에 맞춰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본분은 외면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 서태기 의원이 지난 임기 때는 이 정도까지 노골적이지는 않았었답니다. 뭐, 제가 느끼기에도 심각하니 시민들의 눈으로 보면 더하겠죠.
그런 불만이 이번 위원회와 ‘모임’ 사건 때의 모습으로 어떤 임계점을 넘어버렸다고나 할까.
주소를 밝힐 수는 없지만, 시위에 나선 이들은 전부 대흥시에 거주하고 있고 9할 이상이 서태기의 선거구 주민이란다.
- 당장 폭발적인 사퇴 운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대충 하고 넘어갈 생각인 것 같지도 않더군요.
지난 금요일 회식 때, 조 위원은 안준식과 서태기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했단다.
얼마 전까지 같은 당 시의원이었으니 안준식이 어떻게 서태기를 평가하는지도 들었고 당 지역위원회의 평가는 어떤지도 들었으며 당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물었단다.
어쨌든, 서태기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이런 질문을 했다.
- 그냥 놔두면 다음에 또 선거에 나올 것 같지 않아요? 복당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안준식은 아마 그럴 것이라고 답했고 조 위원은 그건 절대 두고 못 본다는 반응을 하더니, 당장 사퇴는 못 시키더라도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유권자가 있다는 건 알려야겠다고 말했다나.
- 아무리 중요한 논의를 책임질 위원회 위원이라지만, 무슨 대단한 힘이 생긴 것도 아니고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위원이라는 거창한 이름만 아니면, 보통 시민처럼 평범한 유권자의 한 명일 뿐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런 유권자가 그렇게까지 하겠다고 하니 제가 면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로 했죠. 그래서 글을 올린 거고요. 확인된 사실을 글로 올린 거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사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게 죄송할 따름이죠.
아무튼, 안준식을 통해 듣기로는 조 위원은 서태기가 제명까지 당하고서도 저리 뻔뻔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건 대놓고 꾸짖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긴 듯했다.
사퇴를 시키든 못 시키든, 결과에 상관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겠다는 게 그녀의 결론.
안준식에게 들었던 내용을 되새기고 있던 도훈의 귀에 직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조 위원이 이렇게까지 행동력 강한 사람일 거라고 전혀 예상 못 했는데 말이지.”
“저도 마찬가집니다. 누가 예상할 수 있겠어요.”
“다 떠나서 너무 속이 시원한 거 있죠. 서 의원이 얼마 전까지 되게 밉게 굴었잖아요.”
밉게 굴었다는 건 완곡한 표현일 터.
지연의 말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도훈이 입을 열었다.
“다들 너무 남의 일처럼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
“네?”
“서태기 의원은 좀 유별나게 심한 점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거로 뽑힌 사람은 누구나 다 저런 비판을 받을 수 있잖습니까.”
“아.”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에요.”
“에이. 설마 시장님이···.”
“지금 당장이야 아니죠. 하지만, 자칫 어떤 실수를 하거나 일을 잘못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경계심을 가지기도 해야죠.”
“... 그건 그렇습니다.”
두진이 공감을 표했고 영배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공직자는 누구나 유권자에게 다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꽤 긴 리스트가 되겠고, 그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는 그리 많지 않을 터.
다만, 선거로 뽑히는 이들이 ‘선거 때만 시민 운운’하는 행위를 유권자들이 점점 더 방관하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이 나라 시민은 평화로운 촛불을 통해 대통령까지 자리에서 몰아낸 경험이 있질 않은가.
“아마 서태기 의원이 자진해서 사퇴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저런 비판은 무서워하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두진의 말에 영배가 공감을 표하는데 도훈의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이잉.
“네, 변호사님.”
-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전화를 걸어온 건 ‘모임’의 고소 때 대응을 맡긴 변호사.
도훈은 그와 함께 경찰서에 출두해 잠깐 피고소인 조사를 받긴 했으나 기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조사 직전에 강운천 전 시장 측에서 ‘업체’를 동원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 명확해진 상황이었으니까.
그 뒤로 일이 마무리됐다고 여기고 있어서 변호사의 연락이 좀 뜻밖인 도훈이었다.
-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뭔데 그러십니까?”
- 조금 전에 강운천 전 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답니다.
“그래요?”
- 네. 먼저 구속된 모임 대표가 강 전 시장이 관련됐다는 사실을 끝내 불고 만 모양입니다.
“네.”
시일은 좀 걸렸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도훈인지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좀 뜻밖이었다.
- 엊그제부터 대흥시에 SNS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죠?
“아, 네. 알고 계셨네요.”
- 저도 조금 전에 영장 청구됐다는 연락을 받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래요?”
- 네. 사실, 영장 청구도 중요하긴 합니다만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하하, 뭔데 그리 뜸을 들이세요?”
웃으며 묻던 도훈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 서태기 의원도 기소될지 모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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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천 전 시장이 구속됐다는 소식은 대흥시 관가에 빠르게 퍼졌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비서를 허수아비로 내세워서 피해 가는가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군.”
“그 양반, 현직일 때도 매사에 쥐고 흔드는 성격이었잖아. 난 처음부터 강 전 시장이 다 알고 있었을 거로 생각했어.”
“뻔하지, 뭐.”
지역 언론에서조차 거의 다루지 않아 시민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시 관가 사람들은 이런 쪽의 소식이 빨랐다.
소식을 접한 사람 대부분이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뒤이은 또 다른 소식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뭐, 진짜?”
“그렇다는데?”
“아니, 가만있어 봐. 그거 법으로 문제 되는 거 아니야?”
“당연히 그럴걸?”
“허허. 와, 끝났나 싶었더니 판이 새로 벌어졌네.”
“그러게 말이야.”
“민의당에서 서 의원 제명한 건 정말 잘한 일이 된 셈이네.”
“선견지명이라고 해도 맞겠어.”
“하하, 그러게 말이야.”
서태기가 강운천과 ‘협력’했다는 건 다 알지만, 그 내용까지 알려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강운천의 구속에 뒤이어 그가 서태기와 ‘거래’한 내용이 알려졌던 것.
- 대흥시의 민의당 당원과 핵심 지지자 정보.
- 민의당 지역위원회가 보유했던 대흥시 시민의 연락처와 개인정보 전부.
서태기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민의당 지역위원회 조직 정보 일체와 선거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민들과 관련한 연락처 정보를 강운천 쪽에 넘겼다.
“확실하대?”
“경찰에서 진즉에 그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대. 그거 어떻게 구했냐고 구속된 모임 대표를 추궁하고 있었는데, 그런 게 있는 줄은 대표도 몰랐다나 봐.”
“아, 그래서 강 전 시장이 결국 구속된 거였군.”
“그렇다더라고.”
그런 정보를 강 전 시장에게 넘기고 서태기가 받은 게 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그 너구리 같은 양반이 뭘 얻으려고 그런 거래를 했다는 거야?”
“그거야 모르지. 그냥 한 번 엿 먹어 보라는 심정이었던 건 아닐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즈음에 서 의원이 좀 난처했었잖아. 안준식 의원이 문제 제기해서 말이야. 서 의원이 안 의원보다 연배도 그렇고 선수도 많은데 지금 보면 우리 시에서는 서 의원보다 안 의원이 더 영향력이 있지 않아? 그러니 배신감이 들었을 수도 있지.”
“에이, 아무리 그랬더라도···.”
“나도 그냥 추측이야.”
서태기가 대가로 받았거나 받기로 한 게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는지, ‘이랬을 거다’, ‘저거였을 거다’는 ‘설’이 난무했다.
어쨌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태기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여론이 그런데 피해자 입장이 된 민의당 지역위원회는 훨씬 더한 게 당연지사.
일부 당원들이 그를 찾아가 항의하는 건 기본이었고, 당장에 고소가 이루어졌다.
거기에, 조 위원이 시작한 SNS 시위에 동참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이 일의 여파는 도훈에게까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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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천이 구속되고, 그와 서태기 의원의 거래 사실이 알려진 며칠 뒤 대흥시 시의회.
집에서 두문불출 중이라는 서태기가 불참한 가운데 시의회가 열렸고 도훈이 참석을 요청받았다.
회의가 개회된 얼마 뒤, 도훈은 답변석에 섰다.
그를 그 자리에 불러낸 건 다름 아닌 안준식.
“시장님께 묻겠습니다. 최근 벌어진 아주 유감스러운 일에 관한 질문입니다.”
“네.”
담담히 답하는 도훈을 향해 안준식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장님 입장에서는 제 질문이 곤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자리는 대흥시 행정을 책임지고 의회와 이를 협력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당연히 의회가 제대로 운영되는 것이 시장 업무수행에도 좋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훈이 수긍하자 안준식이 곧바로 핵심을 찔렀다.
“큰 물의를 일으킨 서태기 의원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안준식을 마주 바라보며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그분의 책임은 법으로도 묻게 되겠죠.”
“그럴 겁니다.”
“그 부분은 당국에서 알아서 할 테니 저는 제 개인적인 판단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네.”
잠시 말을 끊었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당장 시의원 자리에서 물러나는 거로, 사죄가 됐든 책임을 지는 게 됐든 이 일의 수습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사퇴를 거부한다면요?”
안준식이 반문하자 도훈이 의원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본 뒤 답했다.
“의회에서 제명 조치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도훈의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