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5화 (196/279)

195. 유탄 – 2.

김용진 의원과 만난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8월이 되어 본격적인 무더위가 이어지는 날씨이니 지난여름에 했던 것처럼 ‘무더위 순찰’이 시작됐고, 도훈은 직접 순찰도 하고 순찰에 나선 직원들 격려도 할 겸 출근했다.

“후아, 이제 좀 살겠네.”

도훈과 두진, 영배 세 사람은 정오 전에 외부를 돌기 시작해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비서실로 돌아왔다.

“덥긴 정말 덥구만. 하하.”

소파에 앉아 땀을 닦으며 두진이 말하자 도훈이 말을 건넸다.

“시원한 냉커피라도 타 드릴까요?”

“아이고, 그건 아니죠. 제가 타 마시겠습니다.”

“그냥 앉아 계세요.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래간만에 제가 한 잔 타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런가? 그럼 오래간만에 호사 좀 누려 볼까?”

두진이 승낙하자 에어컨 앞에서 영배도 한마디 했다.

“김 시장님, 나도 시장님이 타 주는 냉커피 마시고 싶다.”

“알았어.”

선선히 답한 도훈은 능숙하게 커피 메이커를 조작해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냉커피를 만들었다.

냉커피를 내리는 사이 에어컨 기운이 비서실 공기를 낮춰줬고, 도훈이 냉커피를 만들어 두진과 영배에게 내줬다.

“너, 할 말 있는 표정인데?”

“눈치는 빨라, 하여튼.”

“뭐, 우리가 1, 2년 알고 지냈냐?”

“할 말이 있긴 있어. 나 어제 김용진 의원 만났거든. 그 자리에서 들은 얘기가 있어.”

“오잉?”

“그랬나?”

김용진 의원을 만났다는 도훈의 말에 두 사람이 살짝 놀랐다.

어제 일정을 잡지 않고 제시간에 퇴근해 일찍 집에 가자던 도훈이었으니까.

“무슨 얘긴데?”

“곧 민의당 지역위원회 차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릴 거래.”

“징계위원회?”

“응. 대상은 서태기 의원이고 아마 제명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뭐~ 어?”

영배는 화들짝 놀랐고, 두진도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말문을 잃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도훈은 어제 김용진 의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 요즘 일부 언론의 보도로 당이 좀 난처해진 때문에, 중앙당에서 도대체 사정이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를 상세하게 조사했어요. 최근에 우리 당 출신인 강운천 전 시장과 일부 지지자가 김 시장님을 음해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와중에 강 전 시장 측의 행태와 함께 서태기 의원이 암암리에 그쪽을 도와줬다는 것도 드러났고요.

문제의 왜곡 영상은 시의회에 ‘모임’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여하고 그 자리에서 서태기가 도훈을 답변대에 불러냄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마 서태기는 영상을 찍어 편집해 왜곡까지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겠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분명 서태기가 장민호, 차혜진을 부추겨 ‘모임’ 사람들이 시의회를 방청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 김 시장님도 아마 아시겠지만, 그 일 있기 전에 안준식 의원이 더는 못 참겠다고 서태기 의원 징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지역위원회만 놓고 보면 서태기 의원에 호의적인 당원이 없는 게 아닌데 그분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마무리했던 건데, 일이 공교롭게 됐어요. 그냥 그때 징계를 하든 아니면 경고를 좀 더 강하게 할 걸 그랬나 봅니다.

민의당 중앙당 내에서도 개혁적 입장이 뚜렷한 이들이 강운천 전 시장과 그에 동조한 시의원에 대해 크게 분노했단다.

민의당 중앙당은 충남도당에 서태기에 관한 ‘징계 권고’를 했고, 자초지종을 확인한 도당에서도 지역위원회에 같은 의견을 보내왔단다.

중앙당과 도당에서 권고한다고 무조건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건 아니지만, 지역위원회의 분위기도 서태기에게 전혀 호의적인 상황이 아니란다.

‘음해 영상’ 사건도 사건이거니와 더 큰 사건으로 불거지며 민의당 전체의 명예가 흠 잡힐 구실을 만들어줬으니까.

- 사실, 서태기 의원처럼 좀 구태에 물든 분들이 우리 당에 전혀 없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중에서도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요. 그건 뭐 성향의 차이가 아니잖습니까. 어쨌든, 이번 일이 꼭 서 의원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 차원에서는 서 의원을 징계함으로써 여러 가지 효과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시발점이 된 강운천 전 시장은 당원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범죄까지 저지른 그에게 협력했던 당 내부 사람을 징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터.

이를 통해 당에서 노리는 게 명확한 이상, 십중팔구 서태기의 제명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서 의원이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거라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제명까지 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좀 놀랍구만.”

영배와 두진의 말에 도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제명을 하든 안 하든 그건 민의당 당 내부사정이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우리는 그 후폭풍을 생각해야죠.”

“후폭풍? 아, 그건 그렇겠네.”

“흐음. 그렇군.”

‘후폭풍’의 뜻을 영배와 두진은 금방 이해했다.

시의회 의원 중 도훈과 사이가 나쁜 대표적인 인물은 차혜진이지만, 서태기도 만만치 않았다.

도훈이나 비서실 직원들이 보기에는 차혜진은 매사에 도훈을 향해 날을 세운 차라리 상대하기 쉬운 상대지만, 서태기는 속을 내비치지 않으나 ‘신뢰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어서 더 까다로웠다는 게 맞았다.

생각이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서태기와 도훈이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던 건 그가 ‘민의당 소속’이기 때문일 터.

민의당 소속 시의원인 이상 당의 주장과 논점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을 테고, 같은 당 소속 시의원들도 그를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는 걸 도훈도 직원들도 잘 알았다.

그런데 민의당에서 제명되면 그 제어가 대부분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제명된다고 갑자기 막가파로 돌변할까?”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분명 전 같지는 않을걸?”

영배의 말에 도훈이 답하는데, 두진이 눈가를 좁히고 입을 열었다.

“민의당 당적이 회복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렸겠지.”

두진의 말에 영배와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진이 냉커피가 담긴 유리잔을 들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리고 투덜거렸다.

“나쁜 짓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고 우리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대응한 것뿐인데, 엉뚱한 불똥이 우리에게 튀는군.”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담히 말했다.

“그런 게 한두 번도 아니잖습니까. 이런 극적인 케이스는 처음이지만요.”

“......”

두진도 영배도 담담한 도훈의 모습에 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됐다.

비서실장인 두진이 좀 거든다지만, 시의원을 상대하는 건 대부분 시장이었다.

걱정한 것처럼 서태기가 막가파가 되면, 그만큼 도훈이 힘들어지는 것인데 저런 태평한 모습이라니.

“자네, 걱정 안 되나?”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잖습니까.”

“... 하하.”

“조금만 더 더위 식히다가 나가시죠. 오전에 금선면은 못 돌았으니 거기 주민센터 들렀다가 퇴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 그러세나.”

말을 마친 도훈이 다 비운 유리잔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 도훈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두진과 영배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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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느덧 8월 말이 됐다.

“어우,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다가 더위 먹는 줄 알았네.”

담배를 줄인 뒤에도 여전히 ‘식후땡’은 하는 영배의 너스레에 지연이 핀잔했다.

“아예 끊으세요. 그럼 밖에 안 나가셔도 되잖아요.”

“하하. 그게 사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라서 말이죠.”

“쯧쯧쯧.”

지연이 과장되게 혀를 찼고, 머쓱해진 영배는 비서실의 다른 흡연자에게 도움을 청하려다가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 시장님 어디 가셨어요?”

“오늘 윤종일 교수님이 오신다고 했잖아요. 홍 주무관님이랑 버스터미널에 마중 가셨어요.”

“아니, 시장님이 직접이요?”

“저도 말렸고 홍 주무관님이 혼자 가도 된다고 하셨는데, 마침 점심시간이고 시간이 비니까 같이 가시겠다고 하더라고요.”

시 발전계획 논의 위원회 구성이 거의 확정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내홍은 있었지만, 도훈이 신경 쓰고 윤 교수가 활약하고 안준식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나름 알찬 사람이 모였다.

위원회 구성이 목전에 다가오자 자문 및 교육위원을 맡은 윤종일 교수가 2주에 한 번 정도씩 대흥시를 찾고 있었는데, 도훈이 바빠서 내려올 때마다 그와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도훈은 시간이 나면 조금이라도 더 윤종일 교수와 이야기할 시간을 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시의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논의할 중요한 위원회의 일이니까.

“그럼 안준식 의원도 같이 갔겠네요?”

“아마도요.”

도훈이 다른 일정으로 바빠 윤 교수를 상대하지 못하면 안준식이 거의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의장직을 내려놓고 더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준식인데, 덕분에 이 위원회 말고 다른 일에서도 도훈은 제법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참, 그런 의원도 있는데···.”

“누가 아니래요. 하기야 안 의원님이 좀 특별한 분이시긴 하죠. 우리 시장님까지는 안 되지만요.”

민의당 지역위원회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서태기를 제명했다.

징계위에 출두한 서태기가 아니라고 잡아떼고 앞으로 자숙하고 더 매진하겠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도 무소용이었다나?

심지어, 직접 소명하고도 제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던 서태기는 이런 얘기까지 했단다.

- 저는 물론 저를 지지하는 당원들을 모두 버릴 셈입니까? 이러다가 대흥시 지역 조직이 반 토막이 나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이런 은근한 협박까지 했다는데 결과는 역시 제명.

민의당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워낙 사안의 성격이나 서태기의 잘못이 명확해서인지, 제명당한 서태기를 조용히 불쌍히 여기기는 해도 그의 제명에 반발해 목소리 높이거나 탈당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랄까.

어쨌든 그게 지난주의 일인데, 그 전에도 후에도 서태기는 의회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대충의 사정을 파악한 시민들의 눈총도 눈총이지만, 시민들보다 자세한 사정을 더 잘 아는 시의회와 시청 사람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는 것일 터.

분명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내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공무원 사회의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런데, 실장님은 또 어디 가셨어요?”

“위원회 구성 건으로 시의회 의장님이 찾으셔서 시의회에 가셨어요.”

“아. 그래요? 사흘 남았던가요?”

“네. 맞아요.”

사흘 뒤인 금요일에 ‘논의 위원회’의 위원 구성 최종 심의가 열린다.

이 자리에 시장, 시의회 의장, 자문인 윤종일 교수, 먼저 추천된 시민 위원 셋이 모여 논의 위원회 위원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윤 교수님이 보낸 커리큘럼 보셨어요?”

“봤죠, 당연히. 웬만하면 우리도 들으라고 시장님이 강권하셨는데요.”

위원회가 구성되고 가장 먼저 하게 될 일은 제대로 된 논의의 준비를 위한 ‘공부’.

윤종일 교수가 수정한 커리큘럼은 이미 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었고, 위원이 아니더라도 강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청 직원 중 업무 관련성이 있는 부서 직원이 꽤 신청했고, 도청이나 대전시에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중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쩝. 만만치 않겠던데···.”

“그러게요. 하지만, 교수님 스타일 보면 그냥 지루한 강의는 아닐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만, 강의는 강의 아닙니까.”

영배가 투덜거리는데, 비서실 문이 벌컥 열리고 두진이 들어섰다.

“다녀 오···.”

“시장님, 아직 안 돌아오셨나?”

인사하는 영배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연 두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화가 단단히 난 그런 모습이랄까.

“아직인데요. 전화해 볼까요?”

“... 아냐. 업무 시작 전에는 오실 테니까 기다리지.”

두진이 소파로 가 앉았고 영배와 지연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왜 화가 나셨어요?”

영배가 묻자 두진이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는 듯 미간을 확 찌푸리더니 답했다.

“... 했다네.”

“네~ 에?”

“진짜로요?”

“... 그래.”

두진의 말에 영배와 지연이 황당해했고, 두진이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미친 건지···.”

두진이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애써 화를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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