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4화 (195/279)

194. 유탄 – 1.

강운천 전 시장 측이 ‘작업’을 의뢰한 업체가 충남지방경찰청 형사들에 의해 털린 1주일 뒤.

도훈을 비롯한 비서실 직원 전원이 비서실 TV 앞에 모여있었다.

팔짱을 끼고 앉은 도훈을 중심으로 모두가 TV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그런 심각한 표정에 어울리는 사건이 보도되는 중이었으니까.

- ... 이 업체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동영상을 편집해 사실을 왜곡하는 영상을 제작해 배포한 것은 물론, 이른바 ‘맘 카페’에 업체 홍보성 글을 작성해 게시하는 일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테면, 인터넷 여론조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이 업체가 지난 총선 전 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의뢰로 지역구 후보 경선에 여론조작 작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예비후보는 당내 경선을 통과해 국회의원 후보가 됐고, 행인지 불행인지 본선에서는 2위에 그쳤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 와, 대사건이네.”

“대사건이 맞긴 하네요.”

영배의 감탄에 지연이 맞장구를 쳤고, 혀를 차던 홍영진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진도 연신 한숨을 내쉴 정도로 조금 충격받은 모습이었고, 유일하게 도훈만 담담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물론, 도훈도 겉으로 담담해 보인다고 속으로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 여당 국회의원 후보가 그 사람이라면서요? 시장님 새 차 사준 사람.”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지연의 질문에 영배가 답했다.

놀랍게도, 대전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이름이 이 사건으로 다시 화제가 됐다.

지난 ‘개인정보 파일’ 건으로 이미 정치계에서 그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겠지만, 이번 일로 확실히 마침표를 찍은 셈이랄까.

어쩌면,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부족해 법적 처벌로 변호사 일도 더는 못할 지경이 될 수도 있었다.

- ... 이 업체가 적발된 것은 대전시 인근의 모 기초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왜곡, 음해 영상 제작과 배포 책임자를 찾는 수사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잡고 보니, 사기성 홍보 글 작성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 후보까지 인터넷을 이용한 여론조작에 뛰어들었다는 엄청난 증거가 나온 셈입니다. 그래서 업체를 단속한 직후, 담당 경찰관들이 계속 발견되는 관련 사건의 증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충남지방경찰청의 유력한 소식통에 의하면, 현재 이 업체에 ‘작업’을 의뢰한 정치인은 한 사람이 아닌 복수이며 여야를 망라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향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어쩐지 연락이 잘 안 되더라니···. 되게 바빴겠네.”

영배가 중얼거렸다.

수사를 의뢰한 뒤로 계속 충남청 형사들과 연락을 했던 게 바로 그였는데, 문제의 업체를 덮친 뒤 ‘잡았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은 도훈과 다른 직원들도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수사가 잘못됐나 싶었는데, 이런 대박을 터뜨리느라 수사에 열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 갑작스럽게 불거진 이 사건을 야당은 여당의 정치공작 행위가 다시 증명된 셈이라며 비난의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자당 소속 인사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대자당을 제외한 야당들은 일제히 민의당을 비난하고 나섰고, 대자당도 당 대변인 명의로 ‘엄정 수사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습니다.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민의당은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당 대표가 직접 사과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경찰이 기자 회견한 어제저녁 이후에 이 뉴스는 여당 비판성 뉴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까 포털에 올라온 뉴스들을 보니, 그 여론조작 업체와 우리 대흥시는 거의 다루는 곳이 없습니다.”

경찰이 수사결과 발표를 한 것은 어제 늦은 오후.

수사결과 발표 때는 ‘대흥시 시장을 노린 악의적 왜곡 영상 제작 및 배포’라는 내용이 분명 포함되어 있었고, 직후 뉴스 속보에도 그 내용이 있었는데 차차 논점이 바뀌었다.

어떤 의도로 그러는지가 뻔히 보여서, 자신의 얘기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음에도 도훈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위이이잉.

도훈의 개인 핸드폰이 울렸고, 액정을 확인한 도훈이 전화를 받지 않고 그냥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었다.

“또 동생분입니까?”

“네.”

“하하, 웬만하면 받아보시죠. 어제부터 여러 번 연락이 왔다면서요.”

“무슨 얘기할 건지가 뻔하거든요. 그리고 전화 거는 목적이 뻔한 이상, 받아도 이 전화를 받으면 안 되거든요.”

“하하, 업무용 핸드폰으로 걸어와도 안 받으실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하하.”

두진의 물음에 긍정하며 도훈이 쓰게 웃었다.

어제 경찰의 수사 발표 뒤로 도연을 필두로 몇몇 도훈과 안면 있는 기자들에게서 계속 연락이 왔다.

당연히 취재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전화는 모두 안 받았고, 취재 요청하는 내용의 메시지에는 직접 ‘취재라면 응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미 도훈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작업’을 했던 업체에 의뢰했다가 들통이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운천 전 시장은 이미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모임’ 대표는 구속까지 됐다.

강 전 시장이 경찰에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구속을 면했다고 다행이라고 할 처지도 아니었다.

‘모임’ 대표가 악의적 왜곡 영상을 제작, 배포 의뢰했다는 내용은 ‘모임’이 도훈을 고소하고 시청 앞에서 1인 시위했다는 것보다 대흥시 시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상황이니까.

그리고, 다른 지역 사람은 몰라도 대흥시 시민들은 강 전 시장의 비서관 출신인 대표가 ‘허수아비’ 혹은 ‘꼭두각시’나 다름없다는 걸 잘 알았다.

강 전 시장이든 ‘모임’이든 앞으로 한참 동안은 대흥시에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강운천 전 시장이, 얼마 전 열었고 방문객이 줄어도 닫지 않았다는 사무실부터 폐쇄해 버린 게 그 사실을 입증했다.

물론, 법적 처벌을 끝까지 피하기도 쉽지 않을 터.

- 당장은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잡혀들어간 그 비서관 출신 대표, 속으로는 제 살길만 찾고 있으니까. 결국에 불고 말 거야.

‘... 나쁜 놈들의 전형이네요.’

- 뭐, 어쨌든 이번에는 네가 투덜거리면서도 제사상 거하게 차린 보람이 있을 것 같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등 뒤 허공에서 말하는 조상님에게 도훈이 가만히 답했다.

강 전 시장과 모임 대표가 이 일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것과 접촉한 ‘업체’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는 조상님이 알아냈다.

도훈은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며 영배에게 이 정보를 넘겼고, 영배를 통해 전해진 이 제보를 통해 충남지방경찰청 형사들이 업체를 덮쳐 이 난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터.

솔직히, 이런 ‘큰 사건’으로 비화할 거라고는 도훈도 조상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은 업체 사람들과 그런 허술한 이들을 ‘쓴’ 사람들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밖에.

위이잉. 위이잉.

업무용 핸드폰의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액정이 안 보이게 뒤집어서.

얼마간 진동하던 핸드폰이 조용해졌는데, 다시 개인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위잉.

이번엔 핸드폰이 아닌 메시지.

- 전화 안 받으면 당장 내려가서 시청 앞에서 뻗치기 할 거야. 밤에는 오빠 사는 빌라 앞에 방송국 차 대놓고 동네 사람들 다 보라고 할 거야. 내가 그러는 거 보기 싫으면 전화 좀 받아. 특혜 같은 거 안 바란다고! 인터뷰 같은 것 안 하고 몇 가지 물어보기만 할 테니까 전화 받아!

“휴우.”

“왜 그러십니까?”

도훈이 한숨을 내쉬자 두진이 물었고, 도훈은 가만히 핸드폰 액정을 보여줬다.

두진이 쓰게 웃으며 권했다.

“인터뷰 안 하고 질문만 한다는데 전화 받으세요. 시장님 일이 엄연히 사건의 발단이 됐잖습니까.”

“...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방송국 사회부 기자가 이런 사건을 취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아무리 오빠, 동생 사이라도 말이죠.”

“쩝.”

“다른 기자들에게도 무조건 취재 거절하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일부 언론이 이 사건을 이렇게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는요.”

“... 휴우,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도훈이 핸드폰을 챙겨 시장실로 들어갔고, 두진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얼마 뒤, 두진이 가만히 일어나 시장실 문을 살짝 열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그렇다니까. 난 제보를 받아서 경찰에 넘겼을 뿐이야.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업체라는 걸 알았겠냐? 누가 제보했냐고? 만나서 들은 게 아니라 차 앞에 쪽지가 끼워져 있었어. 이런 연락처를 가진 이런 이름의 사람을 찾으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두진이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소파로 돌아오는데, 영배가 가만히 물었다.

“시장님은요?”

“아마 동생과 통화하시는 것 같네.”

“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두진과 영배가 마주 보고 웃고는 다시 TV에 시선을 줬다.

‘... 이거 보도가 계속 이런 분위기면 좀··· 그렇겠는데. 괜히 김 시장 난처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뉴스에 시선을 줬으면서도 두진은 속으로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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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저녁, 도훈은 시내 한 곰탕집에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다.

“어서 오세요, 시장님.”

“안녕하세요, 의원님.”

도훈이 방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김용진 의원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고 도훈이 담담히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했다.

“갑자기 곰탕이나 먹자고 보자고 하신 건 아닐 테고요.”

“하하, 겸사겸사요. 여기 곰탕이랑 소꼬리 수육이 무척 맛있습니다.”

“아마 제가 의원님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요?”

“그렇기야 하겠지요.”

각자 곰탕에 소꼬리 수육을 추가해 주문하자 곧 음식이 나왔고, 둘은 각자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건배할까요?”

“... 이걸 편하게 마시려면 용건을 먼저 듣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하.”

김용민이 쓰게 웃으며 얼굴을 긁적였다.

보수 언론 위주로 ‘여당 국회의원 후보가 여론조작을 했다’는 걸 더 부각하는 보도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

논조가 다른 언론이 분명 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당에 여전히 불리했다.

논조가 다른 언론은 대부분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도훈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취재한 이들.

그나마 그쪽에서 ‘몰아가지 않으니까’ 이 정도였지, 아니라면 여당의 처지는 더 나빴을 터였다.

“김 시장에게 미리 사과하려고 만나자고 했습니다.”

“... ‘미리’요?”

“네.”

김용진의 말 중에 ‘사과’보다 ‘미리’라는 말에 반응한 도훈.

“전 의원님께 타박 들을 줄 알았습니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신고한 건으로 여당이 난처해진 것 같아서요.”

“그게 김 시장님 탓이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도훈 본인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김용진은 전혀 도훈을 탓하지 않는다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지역위에서 무슨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시장님께 원한을 품을 사람이 있거든요.”

“... 지역위에··· 원한이요?”

“네. 일을 도와드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시장님 적을 늘리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서요.”

도훈이 뒤늦게 김용진의 말에 감을 잡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소문이 좀 돌았고 도훈도 영진을 통해 들은 얘기가 있었으니까.

“혹시, 서태기 의원 관련한 얘기입니까?”

“네. 눈치채셨네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김용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혼자 소주잔을 비웠다.

“크으.”

도훈은 말없이 그의 빈 잔을 채워주었고, 김용진이 담담한 표정을 회복하더니 입을 열었다.

“징계위원회를 열 예정입니다.”

“... 징계위원회요?”

“네.”

“... 설마···?”

“아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

도훈이 말없이 바라보는데 김용진이 말을 이었다.

“서태기 의원, 당에서 제명할 생각입니다.”

뜻밖의 소식을 들은 도훈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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