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2화 (193/279)

192. 정말 … 했다면 – 2.

서태기 의원이 시의회에서 도훈에게 ‘밟혔다’는 얘기는 이내 시 공무원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쫙 퍼졌다.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러게 말이야.”

“진즉에 그러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내 말이.”

점심시간, 시청 곳곳에서는 일찍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오전에 시의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수군거렸다.

“내가 이런 일 생길 줄 알았어.”

“어떻게요?”

“사실, 고소에 1인 시위에 저쪽에서 소란스럽게 해도 시장님은 별 대응을 안 하셨잖아. 그만큼 여파가 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어?”

“그렇죠.”

“소란스럽게 하는 게 목적이었을 텐데 그게 안 됐으니 저쪽에서 뭔가 또 수작을 부릴 거라고 생각은 했어. 그리고 두 번이나 이슈화에 실패했으니 이번엔 좀 스케일이 다를 거 같더라고.”

선배 직원의 말에 후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스케일이 다르긴 하네요. 시의원을 섭외해 시의회에서 시장님 망신주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그렇게까지 나오면 시장님이 과연 이번에도 가만히 계실까 싶더라고.”

“음, 시장님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말씀이세요?”

“응. 시장님이 먼저 싸움 거는 스타일은 아니시잖아. 자초했다는 거지.”

모여있는 직원들이 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전 일로 크게 피해 본 건 ‘모임’이 아니라 서 의원이잖아요.”

“그렇죠. 그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 줄타기 좀 하려고 했나 본데, 이번엔 실패했어요.”

“맞아요. 아마도 서 의원은 적당히 분위기만 잡으려고 했을 걸요? 본격적으로 총대를 멜 생각은 절대 없었을 겁니다.”

“서 의원이 우리 시장님을 얕봤거나 아니면 자기 말발을 과신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시청 직원들은 의원 개개인에 대해서도 일반 시민들보다 잘 알았다.

서태기가 미치지 않은 이상, 다음 지방 선거가 2년 가까이 남은 이 시점에 당에 등을 돌리고 강운천 시장 측과 손을 잡을 리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설사 강 전 시장이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더라도, 서 태기는 적당히 선만 유지하지 넙죽 받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적당히’ 하려던 그의 계획을 도훈이 대번에 박살 낼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거나 잠시 잊었을 뿐.

“논리로 우리 시장님 당해낼 사람 많지 않을 걸요?”

“논리만이 아니죠. 부서 회의 때 와서 말씀하시는 걸 보면 어떤 분야든 내공이 장난 아니라는 걸 절로 느끼게 되잖아요.”

“그건 그래. 아마 시장님 TV 토론 프로그램 같은 곳에 출연해도 잘하실 거야.”

도훈의 ‘말발’, 그리고 그 말발을 가능케 하는 배경지식의 폭과 깊이가 정말 대단하다는 건 그와 종종 회의하는 시청 직원들이 제일 잘 알았다.

설사, 어떤 회의 때 모르거나 미흡했던 부분이 있더라도 이내 그 부족함을 채우니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기도 했고.

어쨌든, 점심을 먹은 직원들은 마치 식후 껌을 씹기라도 하듯 서태기 의원과 ‘모임’을 씹으며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회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는 지구대, 소방서, 각급 학교에까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도훈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경찰관, 소방관, 교사들에게까지 퍼진 건 일반 시민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임’의 행태에 공무원들은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걸 뜻했다.

만일, 누군가 왜 그렇게 시장에게 관심을 두느냐고 물었다면, 십중팔구 이런 답을 들었으리라.

- 일도 잘하지만, 시청 직원들 챙기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우리를 더 열심히 챙겨주는 시장님인데 관심 가는 게 당연하죠. 시장님이 환절기, 혹서기, 혹한기마다 경찰관들 몸 걱정해 주는 도시는 대흥시 밖에 없을 걸요? 우리가 시장님께 얻어먹은 보양식이랑 간식값만 해도 상당할 겁니다.

- 보양식이랑 간식이 전부가 아니에요. 이제 갓 신설된 우리 소방서가 부족한 장비나 물품이 거의 없는 이유가 누구 덕분인데요? 자기는 관용차인 대형승용차 팔아버리고 낡은 승합차 내구연한 연장해서 타고 다니면서 비싼 소방차 대신 일반 화물 트럭밖에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 했던 분이에요, 그분이.

-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면 교육장님 못지않게 열정을 보이시는 시장님인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어요? 그리고 시에서 아이들과 관련된 독자 정책을 추진할 때도 제일 먼저 교사들 의견부터 묻는, 현장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시장님이잖아요.

여론조사기관에서 지지율 조사를 하지 않으니 도훈에 대한 시민의 지지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도훈에 대한 평가를 물으면 ‘나쁘다’는 시민들보다 ‘나쁘지 않다’, ‘좋다’고 평하는 이가 많으니 우호적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어쨌든, 시의회에서 도훈이 서태기 의원을 ‘격파’한 사건은 도훈에 대한 이런 ‘우호도’가 일반 시민보다 공무원 사이에서 훨씬 높다는 게 확인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런 얘기는 이틀 뒤 어쩌다 시장 비서실에도 전해졌다.

“... 그랬다더라.”

“하하.”

갑자기 ‘긴한 얘기가 있다’며 시장실에 들어온 영배에게 ‘공무원 사이에 시장 지지도가 높다’는 얘기를 들은 도훈이 실소를 흘렸다.

“그게 뭐 중요하다고 일부러 들어온 거야?”

“중요하지.”

“뭐가?”

“최근에 들은 너와 관련한 소식 중에 제일 기분 좋은 소식 아니냐? 이게 안 중요해? 요즘 같은 때에?”

“하하. 형도 참.”

이틀 전 시의회에서 시원하게 서태기를 밟은 것까지는 후련했지만, 그 이후 도훈이 다시 ‘모임’ 쪽에 대응하는 일은 없었다.

그쪽 사람들도 여전히 1인 시위를 하는 것 말고는 딱히 더 ‘도발’하지 않아, 최소한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은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직원들도 그렇고 다른 공무원들도 그렇고 무척 궁금한가 봐.”

“궁금해? 뭐가?”

“네가 서 의원 말고 모임 쪽에도 반격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에 하면 얼마나 센 강펀치를 먹일 것인가 말이야.”

“... 사람들도 참.”

“직원들만 궁금한 게 아니야. 사실 나도 궁금해.”

“... 하하.”

말은 저렇게 하지만, 영배는 궁금한 게 아니라 반격하라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도훈은 걸어온 싸움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는 스타일.

이번은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어온 셈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공식적으로 대응해야 할 정도로 여파가 크지 않았다.

‘모임’에서 고소장을 제출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검찰 지청에서도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내 고소인 진술을 받게 한 후 더는 진척이 없었다.

- 듣기로는 진술받은 경찰관이 그들의 논리에 어이가 없어 할 정도였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제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겠습니다.

최근 고소의 대응을 맡긴 변호사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들어서 도훈은 굳이 ‘반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도훈이 반격하면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것처럼 ‘소란스러워질’ 위험이 있으니까.

의회에서 서태기를 밟은 건 도훈이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부당한 공격’에 순간적으로 발끈해 반응했다고 할 수 있을 터.

여하튼, 이런 상황인지라 도훈은 계속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로 내심 결론을 내린 상태였는데, 영배는 좀 생각이 달랐다.

영배의 초롱초롱한 눈을 마주한 도훈이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또 그 얘기 꺼낼 거면 시작도 하지 마. 귀에 딱지가 앉겠어.”

“... 쩝.”

영배의 생각은 이런 무논리에 근거도 없는 공격에도 대응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하지 마라’는 법이 없다는 것.

단호히 대응해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영배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도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담담한 도훈의 표정을 본 영배가 투덜거리듯 입을 열던 순간.

“네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 나도 이제 그냥 포기하련···.”

벌컥.

“시장님!”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지연.

“... 무슨 일이에요?”

“인터넷에 이상한 동영상이 올라왔어요!”

“이상한 영상이요?”

“네!”

지연이 얼른 도훈의 책상 앞으로 달려와 자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건 이틀 전 도훈이 시의회에서 발언하는 영상.

각도로 봐서 방청석에 앉았던 이들 중 하나가 찍은 듯했다.

그런데, 끊김이 없이 쭉 이어지는 그런 식이 아니라 화면에 어떤 글귀가 나온 뒤 이에 대한 증거랍시고 영상이 짧게 이어지는 그런 식이었다.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과 영배가 얼마간 영상을 보다가 미간을 확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 이거···.”

“... 편집한 것 같은데요?”

이틀 전 시의회 때 도훈이 답변대에 올랐던 시간은 모두 합해 20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재생 중인 영상은 모두 합해 4분이 채 안 될 정도.

“문제는···.”

“이거 왜곡입니다, 시장님.”

20분이 길어 영상을 축약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상은 축약이 아닌 조작이라고 할 정도로 필요한 부분만 쏙 빼다가 갖다 붙였다.

예를 들자면, ‘김도훈 시장의 편향된 행정 우선순위’라는 글귀의 증거라며 뒤이은 영상에서는 도훈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 이상은 좋습니다만, 현실은 그런 이상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짧은 발언과 함께 다시 글귀가 올라왔다.

‘이미 선거 때 우선순위가 결정됐으니 바꿀 수 없다’는 오만한 자세라고.

- 그 우선순위는 사실 선거 때 모두 결정이 됩니다.

이어진 영상을 본 영배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이거 순서도 바꾼 것 같은데요?”

“... 맞아요.”

지연은 시의회에 도훈과 같이 가지 않았으니 그것까지는 몰랐지만, 영배는 단박에 순서까지 바꿨음을 알아차렸다.

“이건 정말··· 왜곡이네요.”

어느새 도훈의 표정도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그쪽 공식 아이디가 아닙니다.”

‘모임’의 인터넷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일은 영배가 해오고 있었기에 영배는 이 영상을 올린 게 낯설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무슨 수를 썼는지··· 조회 수가 생각보다 높습니다.”

영상이 올려진 건 세 시간이 채 안 지났는데, 조회 수가 벌써 5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 이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당연하죠! 이건 사기 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어떻게 이걸 가만히 놔둬요.”

영배의 말에 지연이 격하게 공감을 표했다.

안 그래도 지연은 도훈이 ‘모임’ 쪽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하필, 오늘 두진이 월차를 내고 쉬겠다고 했기 때문에 ‘무대응이 낫다’는 의견을 가진 건 도훈 혼자였다.

하기야, 두진이 있었다고 해도 이런 ‘짓’에까지 무대응이 낫겠다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휴우, 어떻게 하긴요.”

한숨을 내쉰 도훈이 조금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찰에 연락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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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대흥시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의회가 열리면 의회 사무과에서 이를 영상으로 녹화해 보관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시의회 의장의 동의를 얻어 당일 영상의 사본을 받은 영배는 경찰서가 아니라 충남지방경찰청으로 달려갔다.

대흥시를 담당하는 경찰서보다 그쪽이 빠를 것 같다는 판단하에.

시의회 자료 영상과 인터넷에 올려진 문제의 영상을 비교한 경찰관들도 악의적 왜곡을 그 자리에서 인정했다.

문제는···.

- 이거 만들고 올린 범인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문제의 동영상이 업로드된 건 국내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아니었다.

영상에 대한 담당 경찰관의 의견을 포함해 해당 회사의 우리나라 지사에 영상에 문제가 있으니 삭제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면 삭제야 가능할 터.

하지만, 아주 악의적인 의도로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한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경찰관의 판단이었다.

“그 아이디로 올려진 영상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거든요. 아마도···.”

“그 영상을 올릴 목적으로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거란 건가? ‘보이스 피싱’ 범들이 쓰는 차명계좌같이?”

“그러기가 십상이랍니다.”

“허허.”

경찰청에 다녀온 영배에게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두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영상 내려달라는 연락부터 하세요.”

“알겠습니다.”

영배와 두진을 내보낸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으면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으니까.

‘... 이건 이미 범죄야.’

다른 직원들은 보다가 화가 나서 더 못 보겠다는 문제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에 걸쳐 본 도훈이었다.

조금이라도 사실에 근거한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괜한 시간 낭비나 다름이 없었다.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이른바 ‘가짜 뉴스’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고 몇 개는 직접 보고 어이없어 한 적도 있는 도훈이었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는 어쩔 수가 없네.”

창문 밖에 시선을 준 도훈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지 태양 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도훈의 눈빛에는 점점 더 싸늘한 기운이 강해지고 있었다.

#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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