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1화 (192/279)

191. 정말 … 했다면 – 1.

“아, 제가···! 됐다고 하잖습니까?”

“......”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서태기가 도훈의 말을 막았다.

할 말이 많았으나 도훈은 일단 입을 닫았고, 서태기가 도훈을 매섭게 쏘아봤다.

‘저 망할 자식이···.’

서태기가 강운천 전 시장과 완전히 손을 잡기로 한 건 아니었다.

시의회에 그쪽 사람들이 입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살짝 분위기만 맞추는 정도를 생각했다.

아무리 난처한 처지가 됐다고는 해도, 소속 정당인 민의당에서 뛰쳐나가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대놓고 그쪽과 ‘짝짜꿍’을 맞출 생각은 없었다.

설사, 안준식 등의 비판을 받는다고 쳐도 ‘사안에 따라’ 협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몸을 뺄 여지를 남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저 망할 자식이 날 저쪽과 엮어 버렸어.’

도훈이 ‘1인 시위하는 분들과 같은 생각인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부터 뜨끔했던 서태기.

그가 잘못 생각한 건, 도훈이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무작정 ‘일단 겸허히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전형적인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

‘지난 2년간 전혀 나아진 게 없어, 저 자식은···!’

임기 초에 차혜진과 부딪힐 때 보였던 ‘근거 있는 비판은 기꺼이 수용하겠지만, 지금 그 비판은 그렇지 않다’는 뻣뻣한 태도.

시의회에서 도훈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게 꽤 오래간만이라 서태기가 잊고 있었다.

시의회에서 도훈의 발언이 부드러워진 것은 그의 태도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시의원 중 섣불리 도훈을 부당하게 공격하거나 도발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장님, 비판이 있으면 우선 그 말을 귀담아듣는 게 시장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쪽 주장을 그대로 옮기자는 게 아니고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의 얘기에도 그렇게 날을 세운 반응을 보이면 무서워서 누가 충고라도 하겠습니까? 시장님이 완벽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자신해요? 그렇게 비판을 무서워하지 않고 충고를 듣지 않으려···.”

분위기도 바꾸고 도훈의 답변도 막고 자신이 ‘모임’ 쪽과 한통속이 아니라는 변명도 할 겸 서태기가 장황하게 이야기하는데 예상 못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서 의원님.”

“... 하시면 어떻게···.”

의장석의 심남진이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서태기를 불렀다.

처음엔 자기 말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서태기도 뒤늦게 의장이 부른다는 걸 알아챘다.

“서 의원님.”

“네, 의장님.”

서태기는 의장이 발언 수위나 태도에 대해서 한마디 하겠거니 싶었는데, 의장의 말은 그의 예상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었다.

“바쁜 시장님 모셔놓고 하실 말씀 있다는데 굳이 그렇게 막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저는 시장님 말씀 듣고 싶은데요.”

“아니, 그게···.”

“오늘 오전에 달리 논의할 중요할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행정이나 정책에 대해 논의할 거라면 시 집행부의 수장인 시장님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 제 질문이 아직···.”

다른 질문이 더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서태기였지만, 심남진이 그 뻔한 핑계를 모를 정도로 허술한 의장은 아니었다.

“의원님. 질문이든 의견이든, 시장님이 답하신 이후에 다시 이어가시면 되겠죠. 지금 시장님이 말하고자 하시는 것도 앞선 의원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환인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시장님?”

“그렇습니다, 의장님.”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심남진이 도훈의 발언을 허락했다.

“시장님, 잠깐 시간 드리겠습니다. 마저 이야기하세요. 서태기 의원님의 남은 질문은 시장님 이야기하신 뒤에 이어가겠습니다.”

“......”

말문을 잃은 서태기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지만, 심남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편파적입니다!”

“의장이 진행을 왜 그렇게 하는 거야!”

“이거 뭐하자는 거야!”

방청석에 앉았던 모임 소속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심남진이 그쪽을 향해 성난 시선을 보내며 일갈했다.

“소란을 떨면 당장 퇴장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할까요!”

“... 아니, 무슨 이런···!”

“대흥시 행정이 잘못된다고 비판할 거면 정책 수립 및 집행 책임자의 답변도 들어봐야 할 거 아닙니까!”

“......”

‘모임’ 사람들이 입을 닫았고, 심남진이 냉랭한 눈빛으로 방청석과 의원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발언대의 서태기 뿐만 아니라 모든 의원이 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런 심남진의 모습을 보는 게 다들 처음이었으니까.

“여기는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의횝니다.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건 의장의 권한입니다. 의장의 권한으로 시장님께 발언권을 드립니다.”

원래 심남진 의장의 성격대로라면 이렇게까지 나서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평소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심남진마저 오늘 서태기와 그에게 휘둘린 의원, 그리고 그들과 ‘작당’한 게 분명한 이들의 꼼수에 분노하고 있었다.

심남진의 허락을 얻어 도훈이 발언을 이어갔다.

“대흥시가 대흥시 시민을 위해 행정서비스를 펼쳐야 한다는 말씀은 기본적으로 맞습니다. 이는 대흥시만이 아닌 행정을 책임지는 모든 크고 작은 정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도훈이 의회장 곳곳에 시선을 주며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하지만, 그 행정서비스가 현실에서 구체화 되는 개별 정책은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건 대흥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역시 모든 크고 작은 정부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제한된 행정력과 예산으로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죠. 만인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은 좋습니다만, 현실은 그런 이상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도훈의 시선이 방청석, 그것도 ‘모임’ 사람들이 앉은 곳을 향했다.

“그래서 모든 정부는 행정의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을 다양한 환경과 조건, 형편을 따져 구분하고 먼저 행정력과 예산을 투입해 혜택을 받을 순서를 정하는 그런 거죠. 이건 거의 상식에 가깝다 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모임’ 사람들에게 고정된 도훈의 시선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사실 ‘선거’ 때 결정이 납니다. 선거에 임하는 사람이나 정당, 혹은 세력은 그 우선순위를 공약 등으로 공표해 더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얻고자 하고요.”

씨익.

담담한 미소를 보이며 도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선거 때 그런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제 공약은 딱 다섯뿐이었고, 거기에는 별다른 우선순위가 포함되지 않았죠.”

도훈의 시선이 방청석에서 질문대로 옮겨졌다.

이를 악문 채 자신을 노려보는 서태기를 바라본 도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시장으로 있는 대흥시의 행정 우선순위는 어디에서 결정되었을까요?”

파르르.

서태기의 눈가가 떨렸다.

도훈이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리라.

“‘사업 타당성 평가’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시 사업 전반에 걸친 재검토와 조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회와 함께 시행했죠. 다시 말해, 현 시청 집행부의 행정 우선순위는 집행부와 의회가 함께 결정한 것입니다.”

도훈의 말에 여러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 각자가 공약했던 사업이 조금이나마 반영될 수 있도록 눈에 불을 켰었으니까.

그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느라 도훈과 안준식이 취임 직후부터 엄청나게 많이 대화해야 했고, 그러다 서로 더 가까워진 면이 있을 정도이질 않은가.

격한 의견대립까지 터지지 않고 비교적 단기간에 그 일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건, 시장실에서 고심 끝에 제시한 최초 ‘안’이 합리적이었고 도훈이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아까 제게 질문하신 서태기 의원님도 그 과정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셨고 최종 조정안에 찬성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닙니까?”

“......”

서태기는 아무런 대꾸 없이 도훈을 노려보기만 했다.

자기 공약을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려 마지막까지 도훈의 애를 먹였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이윽고, 담담하던 도훈의 눈빛이 일순 강렬해지더니 서태기보다 더 서슬 퍼렇게 변했다.

“지금의 시 행정 우선순위는 서 의원님의 의견도 대폭 반영된 것입니다.”

“......”

“그런데 서 의원님께서 1인 시위를 하시는 분의 의견이라 빗대며 지금에야 이렇게 문제 제기하시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저는.”

“......”

부들부들.

아무런 말도 못하는 서태기가 눈가뿐 아니라 몸까지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서태기에게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했던 말과는 달리 ‘다 안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도훈의 ‘할 말’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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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위해 정회합니다. 오후 2시에 속개하겠습니다.”

땅, 땅, 땅.

심남진의 의사봉을 두들겼고, 방청석의 사람들이 곧장 빠져나갔다.

그들보다 앞서 서태기가 제일 먼저 의회장을 나갔다.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이 벌겋게 열이 오른 채로.

도훈과 두진, 영배가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에게 묵례하고 자리를 떴고, 좀 시차를 두고 차혜진도 밖으로 나갔다.

서태기와 같은 행보를 보이던 장민호는, 그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꾸물거리다 뒤늦게 사라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의장님.”

“별말씀을요.”

의장석에서 내려오는 심남진에게 의원들이 다가왔다.

“저 아까 너무 놀랐어요, 의장님.”

“하하, 그러셨어요?”

“네. 의장님 그런 모습 처음 봤잖아요.”

송지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안준식이 입을 열었다.

“의장님 덕분에 꼼수가 안 먹혔습니다.”

“덕분은요. 당연한 거죠. 제가 의장인데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 말은 막는 구태의연한 판이 다시 벌어지게 할 수는 없죠.”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이번 의회에서는 웬만해서는 의견대립이 있어도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는 일은 없었다.

전반기 의장 안준식이 노력했던 결과인데, 심남진도 그 점을 좋게 평가했고 본받으려 했었다.

“서 의원님이 괜한 짓 하셨어요.”

“... 누가 아니랍니까.”

정회 선언이 있자마자 서태기가 쫓기듯 자리를 뜬 이유가 있었다.

괜한 꼼수를 부렸다가 도훈에게 완전히 당하고 말았으니까.

심남진이 정식으로 발언을 허락했기에, 도훈은 ‘당신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말 이후로도 조목조목 서태기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비판했었다.

서태기는 질문대에서 단 한 마디도 반론하지 못하고 씨근덕거리고만 있었고.

“전에도 토론하다 시장님께 밀린 적은 있어도 오늘같이 일방적으로 당한 건 처음이죠.”

“... 예전 차 의원 당할 때보다 심했죠.”

“그래요? 저 없었을 때인가 봅니다.”

“네. 차 의원님이 시장님 출석하는 날엔 괜히 말수가 적어진 게 아니거든요.”

신길영과 송지은의 말에 안준식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차 의원만 김 시장에게 당한 게 아니죠. 요즘이야 그런 일이 없어서 그렇지만, 김 시장님 화나면 무섭습니다.”

“... 그렇죠.”

“하하, 저는 거의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안준식의 말에 대한 송지은과 신길영의 반응은 많이 달랐고, 안준식이 신길영에게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시장님은 어떤 주제든 기본적으로 토론할 때는 조곤조곤 먼저 다 들어주고 답을 하잖습니까? 설사, 미리 준비한 시청 계획이나 입장을 수정해야 할 때도 별로 기분 상해하지 않죠.”

“그렇죠. 그래서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거잖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토론을 거쳐 합의된 사항을 갑자기 번복하거나 깨트릴 때, 거기에 그 이유마저 본인이 납득을 못할 때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 아까처럼요?”

“네.”

도훈은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예의를 갖춘 차분한 논리를 동원해 서태기를 공격했다.

공격이라기보다는 ‘밟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로 가차 없이.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의원들의 말을 듣고 있던 심남진이 입을 열었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시장님이 정말 화가 났다면···.”

“... 났다면요?”

“...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심남진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신길영이 안준식과 송지은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들 모두가 심남진과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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