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모두를 위해? - 3.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전과 똑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도훈은 법무팀에 고소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스스로는 업무에 집중했다.
그리고 논산의 검찰 지청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 우리는 시의 갑작스러운 정책변화로 인해 시민의 편의가 훼손되고 계속되는 공익 침해를 더는 볼 수 없어서 고소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대흥시민의 공익 침해를 걱정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고소장을 접수하는 현장에는 서너 명의 기자가 나와 취재했다.
유력한 언론사는 없고 다 그만그만한 지역 인터넷 언론사 소속이었다.
원래는 ‘모임’이 더 많은 언론사에 취재 요청을 했으나 대다수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모임’ 대표가 강운천 전 시장의 비서관일 정도로 급조된 부실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그 의도가 뻔히 읽히는 고소였으니까.
사정이 그러하자, 단체는 자체적으로 현장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방식으로 쟁점화를 시도했다.
대도시권의 소식도 아니니 이 영상의 조회 수는 많지 않았고, 평범한 대흥시 시민 중 도훈과 시청이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청 직원들은 이 일을 알았고 입에 올렸다.
“사람이 없긴 없었나 봐. 양 비서가 대표라고 나섰으니 말이야. 양 비서가 진짜 대표일 리가 없잖아.”
“글쎄. 난 강 전 시장이 직접 안 나선 게 놀랍던데?”
“에이, 그 양반도 자기가 직접 얼굴 내밀 시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모임’의 대표라고 나선 이는 강 전 시장의 비서관.
그러니까 현재의 영배 자리에서 일했던 그나마 좀 젊은 40대의 사람이었다.
강운천 전 시장 주변에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양 전 비서관이 가장 나이가 젊기에 선택됐다.
“고소장 내용 보셨어요? 정말 황당하지 않아요?”
“내용이야 황당하지. 하지만, 세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황당하다는 거 몰라. 인터넷 영상에도 그런 내용은 없잖아.”
“그렇겠죠. 그러니까 고소를 한 걸 테고요.”
어떻게 구했는지, 고소장 내용의 일부를 입수한 직원도 있었다.
시청 법무팀이야 대응을 위해 고소장을 구해 내용을 분석한다지만, 일반 직원 중 호기심에 고소장을 읽었다가 어이없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시민의 공익 침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고소장에조차 시 정책변화, 사업 축소로 인한 ‘고소인들의 사업이익 침해’라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다만, 고소장을 확인하지 않고 영상만으로는 거기까지 알 수 없는 부분일 따름.
어쨌든, 시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모임’과 모임을 주도한 강운천 전 시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저는 강운천 전 시장님, 아니 전 시장에게 크게 실망했어요. 목적도 뻔한 데 전혀 그렇지 않은 사실을 ‘공익 침해’랍시고 왜곡하고 있잖아요.”
“그렇지.”
“지금 시장님을 노린 것일 테지만, 이건 시청 직원 모두를 모욕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에요.”
“자네 기분 알겠는데, 괜히 화내서 힘 빼지 마.”
“어떻게 화를 안 내요! 계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직원에게 질문받은 계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도 화는 나. 하지만, 이해도 돼.”
“네?”
“강 전 시장은 전형적인 정치인이었어. 그것도 구태에 많이 물든 그런 정치인. 자기가 공천 못 받을 것 같으니 탈당까지 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정도로.”
“그랬죠.”
“그래서 지난 지방 선거에 그 사람이 당선 안 된 거고.”
“휴우.”
“우리가 지금 그런 정치인 시장과 일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지금 시장 이름이 김도훈이 아니라 강운천이라고 생각해 봐. 기분이 어때?”
“어우, 소름 돋아요.”
어쨌든, 고소가 이루어진 직후 시청 내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정책시행 혹은 사업 집행의 당사자인 그들이 고소인들의 문제 제기가 황당한 수준이라는 걸 가장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알게 모르게 도훈을 격려하는 직원도 많았고, 오히려 ‘모임’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동의한 건 시청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시의회 차원의 입장표명이요?”
“네, 시장님.”
도훈은 두진과 함께 시장실로 찾아온 시의회 부의장 신길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시에서 사업 타당성 재검토해서 취소하거나 조정한 사업들, 전부 의회에서 검토했던 것들이잖습니까?”
“그렇죠.”
“혹시나 싶어서 제가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전의 것들도 다 살펴봤습니다. 타당성 재검토 과정은 물론 이후 처리까지 문제라고 할만한 게 전혀 없었습니다. 의회도 재검토 과정에 함께 했더군요. 시장님의 의도도 공익을 위한 효율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으니 의도도 과정도 이후 집행 과정도 철저했던 거겠죠. 거기다 자그마한 실수라도 있었다면, 의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네.”
“다시 말해, 그 ‘모임’이라는 곳은 시 집행부와 의회의 정상적인 행정 집행과 감독 활동을 왜곡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신길영의 말에 도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부의장님 생각입니까?”
“저는 아니고 심 의장님도 아니고, 안준식 의원 생각입니다.”
“안 의원님이요?”
“네. 그분이 전반기 의장이었잖습니까. 모임에서는 시장님을 노린 것 같습니다만, 안 의원도 자기가 의장일 때 의회가 참여해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한 일이 뻔한 목적으로 폄훼되는 거에 격분한 모양입니다.”
“......”
“그럴 만도 하죠.”
말이 없는 도훈 대신 두진이 말했고 신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의회가 입장표명을 해 준다면 저희로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의장님.”
“감사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 집행부뿐만 아니라 시의회의 명예를 위한 일이니까요.”
“어쨌거나요.”
“하하, 실장님도 참.”
신길영과 두진이 웃는데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의원님들 전부 그런 입장표명에 찬성하시는 겁니까?”
“일단 대놓고 반대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그게 다 찬성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도훈에게 신길영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시장님 생각처럼 입장문 문구를 놓고 좀 이견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 네.”
대놓고 반대하는 이가 없다는 건 납득이 갔다.
전 시장과 전전 시장은 지난 지방 선거 때 제각기 소속 정당에서 탈당하고 선거에 단독 출마하는 강수를 뒀었다.
그들과 성향부터가 아예 다른 안준식이야 당연하고,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도 당연히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이 그들에게 대놓고 협조하거나 동조할 수는 없을 터.
다만, 이 ‘모임’의 활동이 도훈에게 타격을 주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의원 모두가 안준식처럼 적극적일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지금 안 의원이 설득작업 중에 있으니···.”
“네, 알겠습니다.”
도훈은 굳이 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미팅을 끝냈다.
신길영이 돌아간 뒤 두진이 다른 직원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잘됐네요.”
“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연과 영배가 기뻐한 것처럼 두진도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소를 당했어도 비서실에서는 아직 그쪽 일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검찰이 피고소인 조사를 시작한 것도 아닌 상태.
도훈이 언론 문제 때문에 인연을 맺은 대전의 변호사에게 연락해 놓긴 했지만, 비서실에서는 고소장 내용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짧은 입장문을 낸 것 말고 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뭔가 직원들이 뭔가 ‘대응’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득한 상태.
“시의회 전체가 함께하는 겁니까?”
“아마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영배의 질문에 답한 건 도훈.
“네? 왜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묻는 지연에게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저를 싫어하시는 분이 의회에 꽤 있다는 것도 있고, 각자의 다음 선거 때 처지가 어떨지를 먼저 고민할 것 같거든요.”
“... 다음 선거 때 처지요?”
“... 아.”
지연은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지만, 영배와 두진은 뭔가 알아챈 듯한 표정이 됐다.
“전 크게 기대 안 하렵니다.”
담담히 말하고 난 도훈이 시장실로 들어갔고, 지연과 영진이 두진과 영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지연이 영배에게 질문했다.
“저게 무슨 말씀인지 아세요?”
“이게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다음 지방 선거 때 민의당 공천을 놓고 벼르는 사람이 있거든요.”
“네?”
“그냥 민의당 지역위 사정이 좀 복잡하다고만 알고 계세요. 확실한 얘기가 아니라 저도 말하기 좀 뭐하네요.”
“네···.”
영배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건 이게 여당 지역위 내부의 갈등이라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시 발전계획 논의 위원회 문제 때 안준식은 같은 당 소속 시의원 중 서태기, 장민호의 행태에 크게 분노했다.
이전에도 그 두 사람에게 실망해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지 않는 안준식이었으나 전반기 시의회 의장일 때는 최소한의 공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의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위원회의 문제가 생겨 그는 더는 참지 못한 것이다.
그는 시 지역위원회에서 이 일을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한 것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인 김용진에게까지 이 문제를 가져갔다.
- 현직 시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민의 공익보다 자기 잇속을 채우려 할 수가 있는가! 그 사람들이 우리 민의당 소속이라는 것도 기가 차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지역위원회에서조차 그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래서야 우리가 제대로 된 정당이 맞는다고 할 수 있는가?
서태기, 장민호 두 의원이 안준식의 문제 제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고 하지만, 도훈이 윤종일 교수를 모셔와 상황을 정리하기 전까지 서, 장 두 의원이 ‘소문’대로 뭔가 ‘작업’을 하려 은밀히 움직였다는 건 이미 복수의 사람이 아는 사실.
김용진 역시 안준식의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고 여겼지만, 증인이 아닌 객관적 증거가 부족해서 서, 장 두 의원에게 말로 경고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됐다.
다만, 그걸로 끝이 아닌 다음 지방 선거 공천 때 활동 평가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것으로 안준식을 다독였다나?
‘김 의원은 평가 여부에 따라 그 둘을 공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도였다지.’
여하튼, 그 일로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원회는 나름 내홍을 겪는 중이었다.
도훈이 다음 선거 때 ‘처지’ 운운한 것은 서태기와 장민호 두 의원이 공천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지만, 도훈이 ‘알고만 있고 옮기지 말라.’며 해준 얘기를 영배가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시의원 모두를 위해서라도 시의회가 통일된 입장을 내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의원들도 자기들이 의회에서 이미 논의하고 문제없다고 확인해줬던 거라는 걸 알 거 아니냔 말이에요.”
지연이 묻자 이번엔 두진이 답했다.
“그건 원 주무관 말이 맞는데, 어떤 쪽이 자기에게 더 이익인지 금세 판단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야. 자신들의 의정 활동에 문제가 없었다고 입장을 표명하는 게 결과적으로 시장님을 방어하는 게 되니까.”
“그런데요?”
“지금 시장님을 방어하며 ‘모임’ 쪽과 척을 지는 게 좋은지 아니면 방관해서 ‘모임’ 쪽과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은지 그걸 고민할 거라는 뜻이야. 물론, 일부 의원의 이야기이네만.”
“흐음, 정치란 건 도통 모르겠어요.”
지연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리자 두진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나중에 더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어. 민감한 이야기라서 그래.”
“알겠습니다, 실장님.”
지연을 다독인 두진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소당한 일이 생각보다 크게 불거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여파가 작아.”
“그렇긴 하죠.”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이만 하니 참고 일을 하는 거죠. 더 시끄러웠으면 아마 복장이 터졌을 겁니다.”
직원들의 말에 두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릴 뿐.
‘닳고 닳은 정치인들이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키우려 할 텐데, 그래서 그게 더 신경 쓰이긴 하지.’
대화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두진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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