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모두를 위해? - 2.
“확실한 겁니까?”
담담한 표정으로 묻는 도훈은 회식장소인 실내포차가 아닌 인근의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통화하던 법무팀장이 아무래도 말로 전할 일이 아닌 것 같다며 도훈의 만류에도 끝내 찾아왔고, 실내포차에서 팀장을 만날 수 없었던 도훈이 고른 장소였다.
더불어, 회식하는 비서실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질문받은 법무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확실하다고 합니다. 내주에 고소장을 제출한다고 들었습니다.”
도훈 옆의 두진이나 마주 앉은 팀장의 표정이 경직된 것에 비해 그나마 평온해 보이는 도훈이었지만, 속내까지 담담한 것은 아니었다.
“시를 고소할 사람은요?”
“그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 같더군요.”
“여럿이라···.”
“아직 고소장이 접수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알 수 있었던 건, 아직도 고소인을 모집하는 중이라서입니다. 고소에 참여하길 권유받았던 분 하나가 제게 귀띔을 해주었거든요.”
“아, 네.”
도훈이 담담히 답하는데 두진이 끼어들었다.
“몇 명이나 되는지 압니까?”
“열이 채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단체 같은 건가요?”
“기존에 있던 건 아니고 새로 하나 만들려는 것 같답니다.”
“설마 이 고소 때문에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하, 나 참.”
두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흘렸고, 도훈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시를 고소한다는 겁니까?”
“그게··· 고소장을 직접 본 게 아니라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전해 듣기로는 전 시장님 때 진행하던 정책들이 부당한 이유로 폐기되거나 방향을 전환해 시민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정책의 폐기나··· 방향 전환이요? 그것도 부당한 이유로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도훈에게 법무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예. 아무래도 시 사업에 관여하거나 참여했던 이들이다 보니···.”
“......”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는 도훈 대신 두진이 끼어들었다.
“법무팀장님, 지금 시를 고소한다는 이들이 예전에 시 사업에 관여했던 이들이라고 했어요?”
“네, 실장님.”
“... 또 있죠?”
“... 그게···.”
“또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은 데 아닙니까?”
“휴우.”
두진이 재촉하자 법무팀장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기 좀 그랬던 건데, 역시 실장님은 눈치를 채시는군요.”
팀장의 시선이 도훈을 향했다.
“제게 이 얘기를 전해주신 분이 시를 고소한다는 그 모임을 강운천 전 시장님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 허허.”
“아.”
두진이 헛웃음을 흘렸고 도훈도 뒤늦게 뭔가 감을 잡았다.
지난 지방 선거 때 민의당에서 공천을 얻지 못할 것 같자 끝내 탈당하고 독자 출마했던 강운천 전 시장.
그는 당시만 해도 인기가 별로 없는 작가에 불과했던 도훈에게 막말해 도훈이 밑도 끝도 없는 ‘출마’를 결심케 한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강운천의 의도가 어쨌든지 간에, 도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선거에서 승리해 시장이 됐으니, 어쩌면 시장 당선 더 나아가 인생 대전환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지방 선거 패배 후 별다른 소식이 없이 쥐죽은 듯 조용하던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거···.”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도훈의 시선이 두진과 허공에서 마주쳤고, 도훈이 생략한 말이 뭔가를 알아챈 두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과 두진 모두, 강운천 전 시장의 목적이 오늘 도훈이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낸 어떤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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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시청 청사 시장 집무실.
평소처럼 도훈, 두진, 영배가 출근해 자리한 건 물론, 홍영진과 원지연까지 비서실 직원이 모두 출근한 자리.
“알아들 봤나?”
말 없는 도훈 대신, 두진이 입을 열었다.
오늘의 전원 출근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는 도훈과 영배만 나오기로 했던 게 전원 출근이 된 이유는 영배, 영진, 지연의 눈치가 보통은 넘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오겠다며 계속 회식하고 있으라 말하고 법무팀장을 만나러 갔던 도훈과 두진.
그 자리 비움이 짧았다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법무팀장과의 만남이 제법 길었고 다들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결국, 두진은 법무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낸 뒤 혹여 그와 관련해 정보를 모을 수 있다면 모아 오후에 모이자 얘기를 꺼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시가 고소당할 걸 대비한 정보 확인을 위한 자리일세. 선거와는 일절 관계없는.”
두진이 다짐하듯 하는 말에 영진과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늘공’인 영진과 지연은 선거에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금이 선거철도 아니고 앞으로도 멀었지만, 나중에라도 어떠한 오해 혹은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했다.
어제 함께 있었던 고정임도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도훈이 나서기도 전에 두진이 같은 이유로 단칼에 잘랐다.
“아, 실장님 어제오늘 그 얘기 몇 번 했는지 알고 계세요? 열 번이 넘어요.”
“그만큼 중요하니까 강조하는 거야.”
“아는데요. 전 별로 알아낸 게 없어요. 인맥이 꽝이다 보니···.”
“그거면 됐어. 아니, 차라리 잘 됐어.”
투덜거리는 지연에게 진지하게 답한 두진의 시선이 영진을 향했다.
도훈과 영배, 지연의 시선 역시 영진에게 모아졌다.
괜히 시청 최고의 소식통으로 불리는 홍영진이 아니니까.
“조금 소득이 있긴 합니다.”
“역시! 홍 주무관님!”
지연이 불끈 주먹을 쥐고 환호했다.
지연처럼 티 내며 반응하진 않았지만, 별달리 알아낸 게 없는 두진이나 영배도 속내는 비슷했다.
기대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은 영진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고소인을 모집하는 건 맞고 지금 모집된 사람들은 대부분 전임 시장님 때 시 사업에 관여하며 크든 작든 혜택을 본 이들이랍니다. 그냥 개인이라기보다는 작은 업체라도 운영하는 그런 이들이요.”
“짐작대로군.”
“네, 실장님. 그리고 고소인을 늘리려고 신중히 노력 중이랍니다. 아마 그래서 이제야 알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늘리는 작업이 잘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홍영진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조금의 소득’ 이상이었다.
홍영진은 100% 확인된 건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다며 고소에 함께하기로 한 이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이름까지 내놨다.
대부분, 도훈이 취임하고 사업 타당성을 재평가하여 사업이 취소되거나 조정되며 그 영향을 받은 대흥시 소재 크고 작은 사업체의 대표들이었다.
“잠시만요, 홍 주무관님.”
“네, 시장님.”
도훈이 영진의 말을 잠깐 끊고 두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 그분들이 고소까지 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을까요?”
“글쎄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죠. 그래도 안정적이던 수익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기는 했을 테니까요.”
사업 타당성 재평가 후 완전히 취소된 사업은 많지 않고 대부분 축소되거나 사업 효율성을 높이거나 업체 선정을 투명화하는 등의 조정이 있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조정 전에도 사업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없었기에 보장받았던 이익은 많지 않았을 게 확실했다.
그런데 그에 따라 이익이 줄어든 게 ‘정책들이 부당한 이유로 폐기되거나 방향을 전환해 시민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소송까지 할 정도였을지 도훈 자신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커험. 이것도 거의 확실한 건데 말입니다.”
헛기침한 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강운천 전 시장이 단순히 고소에 함께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추긴다는 것 같습니다.”
“흐음.”
“몇몇 사람은 그냥 이름만 올렸을 뿐, 대부분의 실질적인 일 처리는 강운천 전 시장과 그 측근들이 한다는 것 같더라고요.”
어제, 법무팀장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홍영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미확인 정보인데요.”
영배가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또 있어요?”
“네.”
“하하. 이거 참. 줄줄이 엮여 나오는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그나저나 아무리 미확인 정보라고는 해도 홍 주무관님이 언급하실 정도면 신빙성은 꽤 높은 거 아닌가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조 비서관.”
“하하···.”
영진의 시선이 도훈을 향했고 그가 모두가 생각 못 했던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전전임 나경태 시장인지 시장 아들인지도 거기에 협력하고 있답니다.”
“......”
영진의 말에 도훈을 비롯한 모두가 말문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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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가 살짝 넘어간 시각.
비서실에는 도훈과 영배만 남아 있었다.
모두가 모아온 정보를 취합한 도훈이 ‘당장은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전혀 없으니 예정대로 하자.’며 출근할 예정이 아니었던 다른 셋을 돌려보냈으니까.
할 일이 있다며 남은 도훈과 영배였지만, 도훈도 영배도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허허, 이거 너한테 원한 있는 사람은 다 나올 기세다.”
“......”
“왜?”
도훈이 똥 씹은 듯한 표정이 되자 영배가 물었다.
“원한은 좀 심한 표현 아니야? 내가 사사롭게 불이익을 준 게 아닌데.”
“그건 그렇지.”
“솔직히 강 전 시장에게는 내가 잠깐 앙심을 품긴 했지. 하지만,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단 일말의 사심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냐?”
“그걸 다 아는 형이 ‘원한’이라고 하니까 왠지 ‘욱’하잖아.”
“쩝. 알았어. 네 앞이라도 표현 조심하마.”
심드렁하게 답하고 난 영배가 중얼거렸다.
“이러면 그 얘기도 사실이겠네.”
“그 얘기라니?”
“나 전전 시장 와이프, 장 여사.”
“... 그 사람이 왜?”
“다시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 누구에게?”
“지난주에 점심 먹고 나서 커피 마시다 동호회 사람 몇을 우연히 만났거든.”
나경태 전전 시장의 아들이 부실 공사를 했다는 게 발각되고 영배를 통해 도훈에게 타격을 주려 했다가 구속된 뒤, 나 전전 시장의 부인 장 여사도 동호회를 탈퇴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속됐던 아들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나온 게 작년 하반기.
그간 그들과 관련한 얘기를 들은 게 전혀 없었는데, 영진에게 들은 얘기가 맞는다면 영배가 동호회 회원에게 들은 얘기도 맞을 가능성이 컸다.
“나 전 시장이 직접 시장에 출마하겠다는 건 아닐 테고.”
“그렇지. 그 양반은 조만간 80대야.”
“아들이 나서보려는 건가? 관급공사를 부실하게 하고 시장 음해하려다 감방까지 갔던 주제에?”
“글쎄. 너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난 그 아들이라는 사람이 그냥 너한테 앙갚음을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선거로 당선된 시장을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게 목적 아니겠어?”
“그러려나?”
“뭐, 확실하지는 않지. 강운천 전 시장도 곧 70이 되니까. 의외로 40대인 나 전 시장 아들을 밀어줄지도.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누가 출마할 건가가 아니고 그들이 시청을, 정확히는 너를 흠집 내려고 한다는 거야.”
“나도 알아.”
확 줄여 ‘공익 침해’라는 이유로 고소한다지만, 그 목적은 뻔했다.
논란을 만들어 시가 아닌 도훈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것.
“휴우.”
“갑자기 웬 한숨? 혹시 걱정되냐?”
“고소당할 게 걱정되는 게 아니고 다른 게 걱정되긴 하네.”
“다른 거? 뭐?”
“고소가 끝이 아닐 거라는 거.”
“... 응?”
“그 사람들 목적이 날 흠집 내고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거라면, 선거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비슷한 일 계속 하지 않겠어?”
“... 아.”
뒤늦게 이해한 영배가 곧 미간을 확 찌푸렸다.
지난 2년간 모두가 도훈이 펼치는 시정에 동의하고 칭찬한 게 아니다.
의도적으로 의미를 축소하려 한 이도 있었고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왜곡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를 노리고 왜곡 혹은 폄훼를 꾸준히 해온 이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강운천 전 시장 등이 등장한 것이다.
“... 어우, 선거 때까지 계속 그럴 거라고? 앞으로 2년이나 남았는데?”
“이제 내가 뭘 걱정하는지 이해가 돼.”
“어. 아주 끔찍하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영배가 진저리를 쳤고, 도훈도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할 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영배에게 답한 도훈이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정당한 비판이면 수긍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왜곡이나 폄훼는 아니라고 반박하는 수밖에.”
“... 쩝.”
담담히 답하는 도훈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어쩌면 ‘정치’의 시험이라는 게 이제야 본격적일지도 모른다고 도훈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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