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모두를 위해? - 1.
상황실로 달려 내려간 도훈과 영배가 두진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있었다.
“... 집에서 나가신 지 지금부터 1시간 20분이 넘었고요. 신고는 30분쯤 전에···.”
도훈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당장 뭔가 조처하려는 듯 업무용 핸드폰을 손에 들고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하는 자세.
상황실 근무자 하나가 유선 전화를 받은 건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리.
“네, 시청 상황실···. 네? 네, 맞아요. 유서면 오동리 사시는 김칠현 어르신!”
도훈, 영배, 두진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유선 전화를 받던 주무관과 시선이 마주쳤다.
“확실하죠? 김, 칠, 현, 어르신? 그래요? 네! 아이고, 고맙습니다.”
주무관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는 도훈을 향해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찾았답니다, 김칠현 어르신.”
“어디에 계신답니까?”
“유서면 오동리 옆 초연리 도로 버스정류장에 계신답니다!”
다행히 논물을 보러 나갔다 연락이 안 된다는 노인이 발견됐다.
노인은 논두렁을 걷다 발이 미끄러져 논에 빠졌고, 그 때문에 핸드폰이 먹통이 됐단다.
흠뻑 젖은 노인이 바로 귀가하는 대신 비를 피하려고 인근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향했는데, 방향이 집과는 정반대라 사람들이 찾지 못했던 것.
지나가던 택시의 기사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노인을 보고 걱정해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빌려줘 집에 전화하게 했고, 그제야 노인의 행방이 파악됐다.
“지금 현장에 나간 순찰차가 그리로 이동하는 중이랍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 휴우, 정말 다행입니다.”
도훈은 물론, 소식을 전하는 주무관과 다른 당직자도 영배나 두진도 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도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핸드폰 내려놓으시지요.”
“네? 아, 네.”
“하하, 뭘 하시려고 했던 겁니까?”
“... 당장 소집 가능한 사람들을 하천 변으로 불러내려고 했죠.”
업무용 핸드폰을 옆에 있는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도훈이 말했다.
‘하천 주변의 논을 살피러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혹시 물에 빠진 게 아닌가···’는 이야기를 들은 뒤 도훈의 머릿속에는 당장에 사람을 풀어 찾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
노인을 찾았다는 연락이 단 몇 분만 늦었더라도 도훈은 분명 직원들을 불러냈을 터.
“정작 당사자는 사람들이 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는 건 까맣게 모르고 계셨을 걸요?”
“하하, 아마 그랬을 테지. 그래도 다행 아닌가.”
“그럼요.”
긴장이 풀린 영배와 두진이 웃으며 말했다.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도훈이 목 뒷부분을 잡고 문질렀다.
사람 목숨이 달렸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했는지 목이 뻐근했으니까.
“왜 그래?”
“아, 목이 뻐근해서.”
“그래? 갑자기 놀라서 그런가?”
“그런가 봐. 어우.”
가까이 다가와 작게 묻는 영배에게 여전히 목을 문지르며 답하던 도훈과 두진의 시선이 마주쳤다.
도훈은 걱정스러운 두진의 눈빛에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같이 가시죠.”
도훈이 영배와 같이 상황실 문을 열고 나갔고, 두진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뒤에서 상황실 당직자가 말을 걸었다.
“휴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실장님도 그러셨죠?”
“그러게. 하필 그 전화를 내가 받지 않았나.”
마침 당직자 중 선임이 정년퇴직하기 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라 두진은 말을 편하게 했다.
“실장님도 걱정돼서 나오신 겁니까?”
“응. 태풍은 비껴갔어도 비가 많이 왔잖아.”
“하하, 실장님은 참 여전하십니다.”
“여전하긴 뭘, 나도 이제 늙었어. 자다 깨다 하느라 잠이 부족했는지, 마누라가 깨워주지 않았더라면 늦잠잘 뻔했거든.”
“어쨌든 나오셨잖아요. 시장님, 조 비서관이랑 나오기로 얘기하신 건 아니죠?”
“어. 그래도 왠지 나오셨을 것 같긴 하더군.”
당직자와 대화하며 두진이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지 멍청히 앉아서 일 시키기만 기다리고 있냐고, 업무시간만 잘 지키는 게 공무원으로 성실한 게 아니라고 실장님께 혼나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랬나? 난 기억도 안 나는데.”
“하하. 저 2년 차 땐가 그랬으니까 아주 오래됐죠.”
정년퇴직 전의 두진은 아부, 줄 서기, 청탁 주고받기 등 과거 공무원 사회의 폐단을 일절 행하지 않는, 까칠하면서도 일은 제대로 하는 인물로 통했다.
상급자와 연배 비슷한 이들에게는 경원시 당했고, 후배들에게는 나름의 신망이 있었던 정도.
한 가지 모두가 인정했던 것이라면, ‘송두진이랑 같이 근무하면 몸은 피곤해도 일은 제대로 배운다.’ 정도?
두진과 얘기하는 선임은 두진에게 호의적인 후배 중 하나였다.
“어쨌든, 시장님이 비서실장에 선배님을 앉힐 때부터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째 실장님보다 한술 더 뜨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비서실장이지. 나보다 못했으면 내가 시장하지 않았겠나?”
“하하, 아무렴요.”
두진의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았기에 모두가 웃고 넘어갔다.
두진이 유리창 밖에 시선을 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친구들, 참.’
난데없이 청년 둘이 찾아와 자기들이 차기 시장이고 그 비서실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넘게 지났다.
어리숙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어엿한 시장과 비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실수가 거의 없는 건 물론, 공부와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다.
거기에 매사 한결같이 성실한 것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연락이 안 닿는 법이 없고, 웬만하면 미리 상황을 대비하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 아닌가.
조금 전 선임 당직자가 ‘두진보다 더하다.’고 한 말은 분명 그런 부분에 대한 칭찬.
분명, 그런 평가에 동의하는 직원의 숫자가 많으리라는 걸 두진도 잘 알았다.
“겨우 2년인데···.”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응? 그냥 혼잣말이야. 아무것도 아닐세.”
도훈이 출중하다는 건 금방 알아챘지만, 2년 만에 이렇게까지 버젓한 시장이 될 거라고는 두진도 예상 못 했었다.
벌써 임기의 반이 지나갔지만, 남은 반이 더 기대될 정도였으니까.
‘... 그리고 겨우 2년인가?’
남은 2년의 임기도 기대되지만, 그것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었다.
두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가 상황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 말을 걸었다.
“어머, 벌써 나오셨네요?”
안으로 들어서는 건 원지연과 홍영진.
이렇게 되면, 아직 8시 반도 되지 않은 시점인데 비서실 직원 전부가 출근한 셈이었다.
“왜 나왔어?”
“다들 나오셨을 것 같아서 나왔죠?”
“홍 주무관도?”
“하하, 네.”
고개를 끄덕인 두진이 몸을 일으키며 당직자에게 말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비서실로 연락 주게.”
“알겠습니다, 실장님.”
“여기서 이러지 말고 올라가세.”
“네.”
두진이 지연, 영진과 상황실을 나서는데 담배를 피우고 온 도훈과 영배와 마주쳤다.
도훈이 지연과 영진을 번갈아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 소집도 안 했는데 또 다 나오신 겁니까?”
“호호. 그렇게 됐네요.”
“쩝, 올라가죠.”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소집하지 않아도 비서실 직원 전부가 알아서 출근하는 건 ‘상식’이 됐다.
도훈은 그러지 말라 여러 번 말렸지만, 굳이 나와 제 역할을 하니까 이젠 말리는 걸 포기한 정도.
하긴, 시장이 열심인데 비서실 직원들이 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비단 비서실뿐 아니라 ‘복지부동’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무원이라지만, 대흥시 직원들은 최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도훈이 여러 차례 강조한 ‘능동적인 선제 행정’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달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도 도훈이 시장인 때문이리라.
그 흐름을 2년 만으로 끝내기는 너무도 아까웠다.
‘한 번 얘기를 해봐야겠어.’
도훈의 결정이 중요하다 생각해 재선과 관련한 얘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두진.
도훈을 따라 계단을 오르며 두진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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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태풍이 비껴가며 별다른 일이 더 벌어지지 않은 채로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부터 다시 분주하게 업무가 돌아갔고 두진이 채 도훈과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한 주가 흘러 금요일이 됐다.
그리고 예정했던 것처럼, 금요일 저녁에 비서실 회식이 늘 가는 실내 포장마차에서 열렸다.
도훈이 영배에게 일렀던 대로 특별히 정임도 초대된 자리였다.
“... 재선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평상시처럼 홀이 아닌 내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도훈이 용건을 꺼냈다.
이미 알고 있던 영배는 담담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놀랐다.
“정말이십니까?”
“네.”
다행인 건, 다들 놀라면서도 반가워한다는 것.
“언제 결정하셨어요?”
“얼마 안 됐습니다.”
기쁜 기색으로 묻는 정임에게 도훈이 답했다.
담담히 웃던 영배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시장님이 본인 입으로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건 이 자리가 처음입니다. 저나 친구들한테는 ‘하면 어떨까?’하고 묻는 식이었거든요.”
“음, 왠지 감격스럽네요.”
“잘 결정하신 겁니다.”
“완전 공감이에요.”
직원들이 반가워하는 모습에 도훈은 내심 안도했다.
최소한 비서실 직원들만큼은 이 선택을 지지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으면서도 살짝 걱정하긴 했으니까.
담담히 미소 지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여하튼, 그 때문에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니까 잘 부탁합니다, 여러분.”
“하하, 알겠습니다.”
“물론이에요.”
도훈의 ‘결심’을 축하하며 건배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재선 도전’이라는 화제는 축하의 건배 뒤에 금세 다른 얘기에 넘어가 버렸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도훈이나 도훈의 동료들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터.
한참 대화하던 도훈은 화장실에 들러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왔다.
‘지난 2년간 허투루 일한 건 아닌가 보네.’
담배에 불을 붙은 도훈이 두진, 지연, 영진, 정임의 반응을 되새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직원 중 가장 가까운 이들이니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가까운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 호의적인 건 그것대로 도훈에게 의미가 있었다.
부정적인 의미의 ‘측근’ 같은 걸 만들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자신의 바로 옆에서 일하는 이들의 생각과 반응에 계속 주의해 온 도훈이었기에.
‘... 이건 이것대로 사람을 모으는 건가?’
윤종일 교수가 도훈에게 사람을 모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다른 의미에서 도훈의 곁에도 사람이 있었다.
굳이 언급하자면, 지지자와 동료의 차이랄까?
‘뭐 어때? 난 이쪽이 더 좋은데.’
‘덕질’을 한다는 지연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도훈의 곁에 무조건적인 지지자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영배도 ‘절친’이긴 하지만, 평소 제일 쓴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으니까.
‘... 왠지 또 뿌듯하네.’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포차의 문이 열리고 두진이 나타났다.
핸드폰을 손에 든 두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도훈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왔다.
“시장님.”
“... 왜 그러세요?”
도훈이 잠시 멈칫한 건 두진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획감사실 법무팀장인데요. 전화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두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도훈은 말없이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저 법무팀장입니다, 시장님.
“네. 말씀하세요.”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이 지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는 것도 그렇고 두진의 반응도 그렇고,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 우리 시가 고소를 당할 것 같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법무팀장의 말에, 도훈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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