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또 다른 관리 – 4.
윤종일 교수의 표현을 따르자면, 시의회 의원 중 ‘검은 속내’를 가지고 이권에 관심을 둔 이는 확실히 둘이고 강력히 의심 가는 사람이 하나.
지역 유지인 서태기는 이런 쪽으로 워낙 전력이 많았고, 장민호는 서태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장민호는 집안 친척 중 부동산 관련한 일을 하는 이들이 있어 좀 더 노골적인 경우였다.
서태기, 장민호가 확실한 쪽이라면 의심 가는 쪽은 차혜진 의원.
큰 학원 원장이기도 한 그녀는 워낙 돈 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은밀히 업계 관계자들과 작당을 시도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물밑의 움직임에 대한 도훈의 첫 대처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수님.”
“하하! 뭘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공부하고 고민하시면 저한테 화가 많이 나실 테니까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겠죠. 시의원에게 꼭 필요한 안목을 기르는 그런 공부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죠.”
의원들과 윤 교수의 첫 만남에서 서태기, 장민호는 완패를 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윤 교수를 잘 아는 안준식, 신길영은 대놓고 호의를 보였고, 위원회가 잘되길 바라는 심남진 의장도 비슷한 모습.
서태기, 장민호를 보며 ‘나도 혹시···.’하고 동요하는 듯하던 송지은 의원도 윤 교수의 이야기에 좀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으니.
윤 교수에게 따끔한 ‘선빵’을 당한 서태기와 장민호가 밥 먹는 시늉만 하다 서둘러 자리를 뜬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휴, 정말 다음에는 저분들과 같이 의원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의원들이 모두 자리를 뜬 후에도 혼자 남아 윤종일 교수와 이야기하던 안준식이 윤 교수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힘드세요?”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듭니다. 명색이 여당 소속 시의원이 저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 하하.”
도훈이 담담히 웃었고, 두진과 영배도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민의당 시의원이 같은 민의당 시의원을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에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권에 더 관심이 많은 서태기나 장민호에게 안준식보다 더 높은 수위의 욕을 하고 싶다고나 할까?
잠시 답답하다는 표정의 안준식을 바라보던 도훈이 뭔가를 생각해내고 입을 열었다.
“의원님이 예전에 제게 그러셨습니다. 아무리 민의당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우리 대흥시 같은 소도시에서는 그 변화 속도가 늦다고요.”
“쩝. 네, 제가 그랬었죠.”
“그런 일면이라고 생각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어느 정도여야 이해를 하죠.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입니다. 시의원이 시 사업으로 자기 뱃속 채우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휴우!”
도훈이 대닶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내쉬는 안준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준식은 서태기나 장민호와 같은 민의당 소속 시의원이긴 하지만, 생각하는 것도 의원으로서 일하는 것도 너무 큰 차이를 보였으니까.
심남진이나 송지은도 서, 장 두 의원에 비해 훨씬 나았지만, 안준식에 비할 수는 없었다.
‘시의회 갈 때마다 안 의원 같은 의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하고 탄식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안준식이 의장일 때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도훈이었다.
신길영이 보궐선거로 당선된 뒤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횟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차혜진은 차치해도 서태기나 장민호의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는 건 여전했다.
“여하튼, 이번 위원회 건이 영 안 되겠다 싶으면 제가 작심하고 나서려고 했는데, 시장님 덕분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윤 교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니까요.”
“그럼요. 제가 소문으로만 듣기로도···.”
드르륵.
“소문에 제가 어떻다던가요?”
윤 교수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는 통에 안준식은 중간에 말을 멈췄지만, 당사자는 문밖에서 대충 듣고 들어온 모양.
“하하. 그, 그게···.”
머쓱해 하는 안준식에게 윤 교수가 푸근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궁금해서 그래요. 제가 정년퇴직하고 외부 활동도 끊은 지 제법 됐는데, 아직도 소문이 돌면 뭐라고 도는지 말이에요.”
“나쁜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수님. 적어도 제가 들은 건 전부 열혈 청년 같은 얘기였으니까요.”
“하하, 그렇습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저는 대전에 오래 살아서 교수님 활동을 말로만 전해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분이다 싶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재개발 문제도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쓰신 글이나 활동하셨던 것 참고 많이 했습니다.”
“어이구, 과찬이십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는 많이 했어도 실속이 없었어요, 저는.”
존경스럽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을 잇는 안준식과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아니라 말하는 윤종일 교수.
가만히 둘을 바라보고 있던 도훈의 뇌리를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 오호, 이거 제법 그림이 되겠는데? 왜 미리 생각을 못 했을까?’
원래 도훈은 윤 교수가 대흥에 오면 자신과 비서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시중을 들려고 생각했었다.
윤종일 교수가 지금은 저렇게 ‘허허’거리며 웃고 있지만, 일을 시작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걸 잘 알았으니까.
현실적인 사정이 있으니 아무래도 영배가 그와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될 거로 생각했는데, 안준식과 윤 교수를 나란히 놓고 살피니 왠지 죽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시중들게 할 사람이 아니라 업무 파트너로서.
‘나는 이 일에만 매달릴 수 없고, 영배 형은 윤 교수님을 잘 모르기도 하니까···. 거기에 안 의원이 나서준다면 명분도 생기는 거고.’
교육위원이자 고문으로 위촉될 사람을 영배가 시중드는 것과 시의원인 안준식이 나서서 챙기며 협력하는 건, 어감부터 다르고 받아들이는 무게도 확연히 다를 터.
또한, 영배는 윤 교수의 학술은 물론 활동적 측면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안준식은 재개발 문제 등에 관여해 나름 지식과 활동 경력도 있다질 않은가.
‘... 이거 잘만하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안준식과 윤 교수를 한 프레임 안에 놓고 생각하며 도훈이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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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요일 점심을 대흥에서 먹은 윤 교수는 곧바로 대전으로 갔다.
낮에 대전에서 제자를 만나 일 얘기를 하고는 저녁에 유성에서 부인과 만나기로 했다나?
윤 교수에게 연락이 온 건 목요일 저녁.
- 난데, 충청남도 쪽 개발계획 자료 확보했냐?
“요청은 했고 보내주겠다는 답은 받았는데, 아직 자료가 도착하지는 않았습니다.”
- 아직도? 쯧쯧! 난 대전 거 이미 확보했다.
“... 벌써요?”
- 제자한테 한마디 하니까 곧바로 해결되던데?
“... 제자가 뭐 하는 분인데요?”
- 도시개발공사 간부야. 민감한 자료 말고 이미 공개된 자료는 다 내일 받기로 했어. 복사비는 좀 나올 거라더라.
“... 하하. 빠, 빠르시네요.”
- 인마, 일은 찬찬히 해도 자료수집 같은 건 후딱 해치워야지. 내가 예전에도 이런 말 하지 않았었냐?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어쨌든, 나 내일 오전까지 온천 즐기다가 오후에 대흥시에 가마. 좀 둘러 봐야지. 나 안내해 줄 사람 붙여줄 수 있냐?
“물론입니다, 교수님.”
- 그래? 알았다. 내일 보자.
통화를 마친 도훈은 윤 교수의 추진력에 혀를 내두른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중얼거렸다.
“이거 나도 서둘러야 하겠는데···.”
여하튼, 금요일 오후 윤 교수가 대흥에 왔고 도훈은 안내역으로 영배를 그에게 붙였다.
미리 도훈을 통해 대흥시에 관한 서류자료를 받아 검토했기에 윤 교수는 영배가 운전하는 도훈의 SUV를 타고 대흥시 곳곳을 누볐다.
그렇게 ‘답사’를 마치고 고생한 영배를 조기에 귀가시킨 도훈은 다른 사람 하나와 함께 윤 교수와 식사했다.
“또 뵙습니다, 교수님.”
“이거 반가운 사람이 함께였네요.”
안준식과 다시 만난 윤 교수는 오후에 둘러본 대흥시의 실제 모습과 서류를 검토한 결과를 화제로 아주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요? 개발이 더딘 덕분에 대흥시는 ‘부수기’부터 할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는데, 결론이 어떻게 됐든 부수고 새로 짓는 그 난장판을 안 겪어도 되겠습니다.”
“반가운 말씀이십니다. 하하! 제 생각에는 짓고 부수는 게 도시 계획의 다가 아닌 것 같거든요.”
“옳은 말입니다. 한 번 지으면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럼요, 교수님.”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는 내내 윤 교수를 주로 상대한 건 안준식.
도훈이 어제 청했기에 영문을 모르고 나온 그였지만, 정작 윤 교수와 마주 앉아 시의 현황 및 장래 청사진과 관련한 이야기를 아주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장장 두 시간이 넘은 식사자리 내내 안준식은 윤 교수와 ‘치열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도훈은 윤 교수와 카페에 마주 앉았다.
“정말 주무시고 가지 않으실 겁니까?”
“인마, 와이프를 온천장에서 혼자 자게 둘 수는 없잖아. 와이프가 저녁이야 오래간만에 만나는 동창이랑 먹는다고 했지만, 타지에서 혼자 자게 하는 건 남편으로서 예의가 아니지.”
“네.”
호로록.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윤 교수가 말을 이었다.
“너 뭔 꿍꿍이야?”
“네?”
“안 의원이랑 나 엮으려고 하는 거 맞지?”
대놓고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는 윤 교수에게 도훈은 솔직히 답했다.
“저도 나름대로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시의원이 교수님과 협력해 역할을 해준다면, 좀 더 보기에도 좋고 내실도 차릴 수 있는 구성이 될 것 같아서요.”
“잔머리는···.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그리고 안 의원, 좀 더 겪어봐야 하겠지만 아직은 큰 흠이 안 느껴진다. 시민단체 활동했다고 다 제대로 된 놈은 아니거든. ‘오 뭐시기’라는 의원 놈도 있으니까.”
“하하, 그러니까 교수님과 함께 저녁 먹는데 초대한 겁니다.”
‘오 뭐시기’라는 말에 내심 움찔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하는 도훈에게 윤 교수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원래 공무원들 되게 싫어하는 거 알지? 너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안 의원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상대한 거야.”
“교수님. 저야 그렇다 쳐도 시의원은 공무원이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공익을 위해 일하라고 나라에서 돈 주잖아. 그게 공무원이지 뭐야.”
“... 하하.”
대꾸할 말이 없는 도훈이 웃는데, 윤 교수가 미간을 좁히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네 장단에 어울려줬으니 나도 하나만 묻자.”
“네.”
“너 이 위원회라는 거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생각이야?”
“...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장기적으로 운영할 거라며. 네 임기 안에 성과 안 나와도 된다며?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않겠다는 건 좋아. 헛돈 쓰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운영하는 건 나쁘지 않아. 하지만, 성과를 낼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는 건 세상에 없어. 특히, 공적인 목적으로 구성하는 조직은 반드시 결과물을 내야 하고. 안 그러냐?”
“맞는 말씀입니다.”
도훈이 수긍하자 윤 교수가 다시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이런 위원회는 그걸 지탱하는 사람이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에 휘둘리기가 쉬워. 대흥시의 발전계획을 논의하는 위원회를 지탱하는 사람은 당연히 시장일 테고. 이게 어떤 법규에 근거한 게 아니잖아. 시에서야 형식을 갖추겠지만, 시장이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이지.”
“그렇죠.”
도훈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으며 답했다.
대개 정신없는 사람 같지만, 윤종일 교수가 절대 녹록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오래간만에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랄까.
윤 교수가 차갑고도 진중한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봤고, 도훈이 긴장했다.
“너, 숨기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예, 교수님.”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는 도훈에게 윤종일 교수가 돌직구를 던졌다.
“이 위원회에서 결론 나올 때까지 시장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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