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81화 (182/279)

181. 또 다른 관리 – 2.

“발전이라는 게 꼭 공장이나 집, 기타 인공 시설물을 짓는 것과 직결되는 게 아닌데 말이죠.”

“시장님 말씀이 맞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깊은 선입견이 있으니까요.”

의회 의장단과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청으로 돌아온 도훈은 곧바로 전경완 부시장에게 만남을 청했다.

시장실로 달려온 전경완은 도훈에게 ‘위원회’ 관련한 의장, 부의장의 걱정을 듣고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좀 신경 쓰이긴 했습니다만, 결국 그런 움직임이 생기는군요.”

“이익이 될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겠죠.”

“하긴, 우리 시도 최근 주택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부동산 거래가 둔화하고 있으니까요.”

“주택시장 침체라기보다는 집값이 낮아지는 거겠죠.”

“하하, 그게 정확한 표현이긴 할 겁니다만, 관련 업자들이야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시장님?”

“이건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인 무주택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 주택가격 정상화로 칭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예. 알겠습니다.”

‘주택시장 침체’와 ‘주택가격 정상화’.

두 용어는 재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주택가격의 하락을 일컫는 말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그중에서도 주택의 투기수요를 근절하고 실수요자 보호를 천명하며 시작한 이 정책의 목적은 서민 주거와 주택시장 안정에 맞춰줘 있었다.

정책시행 후 잠시 예상 못 한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대체로 주택 그중에서도 고가 주택의 가격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관련 업계와 경제지, 보수 언론에서는 이 정책이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며 처음부터 ‘주택시장 침체’라고 비판해 왔지만, 정부는 ‘주택가격 정상화’ 과정이라며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형국.

물론, 정책의 목표가 대도시 그것도 고가 주택이니 대흥시는 곧바로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작년 말부터 아주 완만하게 시 전체의 집값이 하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물론, 시 중심가나 아파트 등이나 영향을 받았지 외곽의 농가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용어가 가리키는 현상은 같지만, 용어에 담긴 의미는 확연히 다르니 도훈은 부시장이 별 뜻 없이 사용한 말을 일부러 정정한 것이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시지요. 어떻게 제어하실 생각이십니까?”

듣고만 있던 두진이 물었고, 도훈이 담담히 말했다.

“일정을 바꿔서 홈페이지부터 만들어야겠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활동을 시작하면 홈페이지를 비슷한 시기에 오픈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었다.

도훈은 그 순서를 바꾸자고 하는 것.

“홈페이지에다가 위원회와 관련된 정보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거죠. 구성과정부터 말입니다. 위원 후보로 추천되는 사람들부터 알리도록 하죠.”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당연히 충분하지 않겠죠. 하지만, 최소한의 환경은 마련해 줄 겁니다.”

지금은 6월 말이고, 위원회는 8월까지 구성을 완료하기로 했으니 일정은 넉넉했다.

시의회에서 추천하는 인사, 시민이 추천하는 인사 혹은 자원하는 이들을 검증하기에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

최소한 위원 후보로 추천되는 인물이 공개된다는 걸 알면, 이권을 노린 이들이라도 지나치게 노골적인 짓은 하기 어려울 터.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경완 부시장이 우려하는 말을 하자 도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글쎄요. 저는 그 위원회 홈페이지가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우리 시에 국한된 일이고 당장 어떤 눈에 보이는 사업을 담당하는 기구가 아니잖습니까.”

“흐음. 그럴까요?”

“시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면 시민들이 찾기야 하겠죠. 그렇게 만들 생각이긴 합니다만, 마녀사냥이 벌어질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 홈페이지에서 뭔가 작업을 하려는 이가 있다면···.”

“의도를 가진 이들이겠군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 사람은 잠시 위원회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갔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위원회 구성과정은 물론, 위원회가 당장 하게 될 업무도 미리 공개하기로 했다.

“당장 할 업무라면, 뭔가 생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전경완이 묻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여론 수렴은 홈페이지를 통해 받으면 되겠고, 위원 희망자들이 할 일은 미리 준비를 좀 했거든요.”

“그게 뭡니까?”

“공부부터 해야죠.”

“공부요?”

“네, 공부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 무슨···?”

전경완이 의아한 표정이 됐지만, 도훈은 담담히 웃기만 했다.

위원회 설치가 처음 고민되던 때부터 관여한 두진은 뭔가 아는 눈치였지만, 그 역시 웃기만 할 뿐 별달리 설명하지 않았다.

전경완의 시선이 다시 도훈을 향했고,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했다.

“이것저것, 여러 분야지만 주제는 대흥시 발전과 관련된 것들이죠.”

“... 네. 그런데 얼마나 많길래 그러십니까?”

전경완이 다시 묻자, 도훈이 다시 웃었다.

아주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괜히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여론 수렴하고, 논의하는 위원회라고 못 박은 게 아니라는 그런 웃음.

그런 웃음에 찬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다.

“시장님, 상황이 이러니 교육 커리큘럼만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무래도 그때 말씀하신 전문가 선생님을 섭외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쩝. 그렇긴 하죠.”

“이쪽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받아들이는 쪽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 맞는 말씀이긴 한데요.”

“아무래도 커리큘럼은 시장님이 준비하신 것이니···.”

두진이 웃으며 말끝을 흐렸고, 도훈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어쩔 수 없죠. 제가 서울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미간을 찌푸리는 도훈과 담담히 웃는 두진을 전경완이 영문을 모른 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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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 토요일 점심 무렵, 도훈은 서울에 와 있었다.

영배와 동행하지도 않고 기차를 타고 올라온 도훈이 지금 위치한 곳은 관악구의 어느 빌라 앞.

“이거면 통할까 모르겠네.”

손에 든 종이가방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도훈의 옆에서 조상님이 말했다.

- 아무리 걔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겨우 그거 가지고 되겠냐?

‘겨우 라뇨? 이거 어렵게 구했다는 거 아시잖아요?’

- 그거야 알지만, 걔가 그걸 알아줄 건 아니잖아.

‘주당인 윤 교수님이시니 알아주시겠죠.’

- 글쎄다. 그럼 좋겠지만, 걔 성격이 보통 괴팍하냐?

‘......’

도훈은 이 빌라 1층에 사는 은퇴한 학자 하나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위원회 제안이 나오고 그걸 설치하기로 한 뒤 아주 오래간만에 연락했다가 된통 혼났었던 도훈.

도훈이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당시에 대학교수이면서도 도훈이 일했던 단체와 아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선물만 드리고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몰라.’

문 앞에 서 초인종을 누르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도 성격이 불같은 인물이었으니 십 년 넘게 연락이 없었던 도훈에게 불호령을 내린 것도 당연지사.

다행인 건, 불호령은 불호령대로 내렸으면서도 도훈의 이야기를 듣고 위원회에서 ‘공부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것이랄까.

직접 찾아가서 자료를 받겠다고 했더니 ‘얼굴 보기 싫다’면서 택배와 이메일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보냈었다.

즉, 도훈이 두진과 언급한 위원회 공부 커리큘럼은 대부분 이 노학자가 제공한 것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체구가 작은 안경 낀 노인이 얼굴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 정말로 왔네.”

“인사는 받아주셔야죠. 그리고 온다고 미리 전화까지 드렸잖습니까.”

“......”

도훈답지 않게 넉살 좋게 웃기까지 하며 인사했건만, 노학자는 입을 다물고 빤히 도훈을 바라봤다.

“... 크, 크흠.”

뻘쭘해진 도훈이 헛기침하는데, 노학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들어와라.”

냉큼 현관에 들어선 도훈은 문을 닫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쫓겨나지만 말자.’

쿵.

집안에는 노인 혼자뿐이었다.

노인은 거실 소파에 앉았고 도훈은 소파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앉았다.

“... 저기 사모님께서는요?”

“아직 안 죽었다.”

“콜록! 아,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

“그래? 등산 갔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노학자의 이름은 윤종일.

도시공학의 전문가로 대학 강단에 섰었으나 단순한 교수가 아니라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목표로 시민단체 활동에 열을 올리던 열정 넘치는 인물이었다.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인 그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도훈을 유독 귀여워해서 집에도 여러 번 데리고 왔을 정도.

그랬던 도훈이 군대에 가며 연락을 끊고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윤 교수의 성격이 괴팍하지 않아도 환대받기는 애초에 그른 상황.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윤 교수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도훈이 가지고 선물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저기, 이건 제가 준비한 전통주···.”

“됐고, 용건은?”

“... 인데요.”

말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한 도훈.

선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 뒤 차분히 윤 교수의 화를 풀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 지난번에 보내주신 자료는 정말 감사합니다.”

“그거야 뭐, 내가 아니더라도 부지런히 발품 팔고 검색하면 다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전 발품 안 팔고 검색 안 하고 얻었잖습니까.”

“내가 쓴 것들이니까.”

“... 그, 그렇죠.”

“너와의 옛 인연이면, 그 정도 자료 내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

윤종일 교수는 빈민 문제, 즉 도시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많았지만 원래 전공은 도시 계획 쪽.

학문적 깊이가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유달리 열렬히 시민단체 활동을 하느라 학계의 일에 소홀해 학자로서의 명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쨌든, 용건이 뭐야?”

“... 저기, 그게 말입니다, 교수님.”

“그게 뭐?”

윤 교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고, 도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어진 도훈의 행동은 고개를 푹 숙이는 것.

“... 강의 좀 해주십시오.”

“... 강의?”

“네.”

“내가 보내준 자료를 강의해 달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교수님.”

윤 교수가 도훈에게 보낸 것은 도시공학의 기초 지식에다가 도시 설계를 할 때 고려해야 하는 내용 등 이었다.

절대 간단한 내용이 아닌 것이, 도시 계획이 물리계획뿐만 아니라 사회계획과 경제계획마저 포함하는 복합적인 도시현상을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윤 교수가 보내준 자료를 쌓으면 살짝 과장해 거의 높이가 1m에 가까운 수준인데, 거기에 대전․충남의 실제 사회․경제적 계획을 녹여내면 어느 정도나 될지 도훈도 감이 안 올 정도.

“... 만약 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닌데?”

“당연하죠. 반년 아니 1년간 하셔도 됩니다.”

“뭐?”

“오래 하셔도 된다는 뜻입니다.”

“......”

말문을 잃었던 윤 교수가 도훈의 고개를 들게 하더니 직설적으로 물었다.

“너, 뭔 꿍꿍이야?”

“그게 말이죠, 교수님.”

도훈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좋은 뜻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 발전계획을 논의할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권’을 노린 이들이 움직임을 보인다는 그런 얘기.

“흐음.”

“위원회 사람들만 강의 듣게 할 건 아닙니다. 저도 들을 거고, 시청 관련 부서 사람들도 듣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희망한다면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됐고, 너 지금 그 강의를 통해서 엉뚱한 욕심 내는 놈들 질리게 할 생각인 것 같은데, 맞냐?”

“그런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발전계획을 좀 더 진지하게···.”

“됐고, 잠깐 있어 봐.”

윤 교수는 도훈의 말을 막더니 눈을 감고 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흐음. 강의, 강의라···.”

도훈은 혼잣말하는 윤 교수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도훈은 오늘 올라오면서 10년 넘게 연락이 없었던 것 때문에 맞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도훈이 언론이나 방송에 여러 번 실렸으니 도훈이 시장이 됐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윤 교수.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 그의 첫 마디가 ‘아이고, 시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은퇴한 퇴물한테 이제야 무슨 일이실까?’였었으니까.

그랬던 그가 쌓인 감정을 풀지도 않고 ‘강의’에 흥미를 보인다?

‘... 불안한데, 이거···.’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바라보길 얼마, 윤 교수가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강의라지만, 실제 목적은 속 검은 놈들 혼내주는 거나 마찬가지네?”

“꼭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공부는 필요합니다.”

“어쨌든, 강의의 목적에 욕심 많은 사람 꾸욱 눌러주는 건 포함되어 있잖아. 맞아, 틀려?”

“... 맞긴 하죠.”

“좋아, 그럼!”

깜빡, 깜빡.

도훈이 호기롭게 외치며 벌떡 몸을 일으킨 윤 교수를 바라봤고, 윤 교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새 와이프가 건강 좀 챙기라고 말려서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해서 좀이 쑤셨거든. 내가 천성이 선생보다는 현장 활동가 쪽인데 말이야.”

“... 저기, 교수님?”

“강의를 핑계로 속 검은 놈들 혼내줄 기회잖아. 하하하! 오래간만에 가슴이 뛴다!”

“......”

“언제 시작이냐? 난 당장 다음 주에도 강의 시작할 수 있어. 매주 한 번 강의하면 되냐?”

“......”

“음, 명색이 강의니까 강의비는 받아야지? 하지만, 많이 줄 필요 없다. 대흥까지 오가야 하니까 교통비에 밥값을 포함해 강의비로 회당 5만 원 어떠냐.”

“......”

“비싸냐? 그럼 3만 원? 음, 그것 갖고는 실비가 안 되려나? 정 그러면 실비에다가 만 원만 보태. 난 그거면 충분하다.”

“... 교, 교수님?”

도훈은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마구 계획을 수립해나가는 윤종일.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 그 양반들이 아니라 이분을 관리해야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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