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77화 (178/279)
  • 177. 자기 관리 – 1.

    시간이 금세 흘러 6월이 됐다.

    후반기 시의회 의장단이 취임했고, 도훈도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은 셈이 됐다.

    시청 정기 인사가 이뤄졌고 또다시 직원들이 무기명으로 평가서를 작성했다.

    도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인 가운데, 뼈를 때리는 지적도 몇몇 있었다.

    - 시장이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간부들이 그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직원들도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주말이나 휴일에 잠깐이라도 출근해 업무를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 열심히 하자는 건 좋지만, 적정한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어졌으면 한다.

    - 우리 시 형편상 대규모 사업을 통한 획기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시의 발전에 관한 장기적인 청사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사진을 내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비용처리를 깐깐하게 하는 건 원칙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직원들의 의견을 받은 도훈은 가장 먼저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반응했다.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적절한 휴식은 시장이 아니라 대통령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한 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다짐했다.

    간부회의에서 이 문제를 언급해 괜한 야근이나 휴일 출근이 없도록 강조했다.

    물론, 그렇다고 도훈이 주말 출근이나 휴일에 출근하는 걸 중단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휴일에 시장과 비서실 직원 일부가 출근해 업무를 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눈치가 보인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만, 밀려서는 안 되는 일이 있을 때가 적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긴급사태가 아닌 이상 제가 직원들을 출근하게 한 적은 없었죠. 간부들에게 전화도 안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러니 저와 비서실 직원이 빨간 날에 출근하는 건 그냥 신경 끄세요.”

    도훈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간부회의 때도 자신의 휴일 출근이 어쩔 수 없는 문제임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일이 있으니 사무실에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은 비서실 직원들이 제일 잘 알았다.

    도훈은 전보다 휴일에 출근하는 빈도가 줄었고, 앞으로는 더 줄일 수 있을 거라 말하며 도훈은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도훈이 수긍한 제안은 시 발전계획을 만드는 것.

    “대흥시 발전계획에 관한 논의 기구를 만들겠습니다.”

    시 발전계획을 논의하는 ‘기구’라고 해서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조직을 만들 생각은 도훈에게 없었다.

    “시민들이 꿈꾸거나 희망하는 우리 대흥시의 미래를 조사하고, 인근 지역의 변화도 반영한 대흥시 발전계획을 논의하고 가능성을 따져보는 조직이 되어야겠죠.”

    시민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또한, 대전의 위성도시로 출발했고 지금도 대전으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아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받으니 그것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로서의 성장동력 중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인구와 일자리의 증가요인이 1, 2위가 될 터인데, 이것은 대흥시만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

    당연히, 충청남도나 대전광역시 거기에 중앙정부의 산업과 관련한 정책도 살펴야 하는 좀은 광범한 논의가 필요할 터였다.

    다시 말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얘기.

    “당장에 결과물 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 임기 내에 결과물 내면 좋겠지만, 꼭 거기에 집착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확인해 가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전문가도 좋은데, 우리 시 일반 시민들도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요.”

    도훈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가칭 ‘대흥시 발전계획 수립 준비위원회’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임기의 절반이 지났고 많은 부분 익숙해졌다지만 도훈은 여전히 업무로 바빴다.

    안 그래도 바쁜데, 외부에서 일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시장님, 민의당 지역위원회에서 공식 요청이 들어왔어요.”

    “무슨 요청이요?”

    “다다음주 토요일에 당원대회를 대흥시에서 여는데 그때 강연을 해달라고요.”

    “아, 그거요.”

    지연에게서 요청서를 받아든 도훈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대흥시 공립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연다는 이 행사는 규모가 지난 진평당 신입 당원 연수보다도 클 게 뻔했으니까.

    그나마 1박 2일이 아닌 당일로 끝나는 건 다행이랄까.

    “다른 시 기초의원에 시장님이나 군수님도 오시겠네.”

    친절하게도 당원대회 프로그램까지 요청서에 포함되어 있어, 도훈은 행사의 전체적인 내용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답할까요?”

    “한다고 하세요. 그나마 강연이 본 대회 시작 전 식전행사로 잡혀서 다행이네요. 얼른 하고 튀어야겠어요.”

    “호호, 알겠습니다.”

    웃으며 답한 지연이 비서실로 나가자 도훈이 벽에 걸린 달력에 시선을 주고는 중얼거렸다.

    “슬슬 그 건이 튀어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도훈의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며칠 지나지 않아 검찰이 김형일 변호사를 기소하면서 어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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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에 따르면, 김형일 후보는 총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인 A 후보를 매수해 경선을 포기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형일 후보는 A 후보에게 금품을 주었고 당선 후 국회의원 직위를 이용해 향후 정치활동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고···.

    - ... 또한, 검찰은 김형일 전 후보의 사무실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불법 정보들의 취득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의 정보들은 주로 김형일 전 후보 주변의 유력인사들에 관한 것으로, 정치성향이나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다양한 인사들의 민감한 정보가 담긴 것으로 추측됩니다.

    대전·충남 지방 지역 뉴스로 시작된 보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망을 탔다.

    다만, 김형일 변호사만 다뤄진 것이 아닌 총선 과정의 다양한 불법 형태들을 다루는 식이었다.

    총선이 끝난 지 이제 겨우 두 달.

    과정이 치열했던 만큼 전국적으로 꽤 많은 고소, 고발이 이루어졌고, 선거 직후 ‘신중하게’ 사건들을 정리하겠다던 검찰이 본격적으로 기소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보도의 맨 처음에 항상 김형일 변호사가 언급될 정도로 사건이 중요하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김형일 변호사는 이제 두 번 다시 정치권에 발 못들이겠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양반이 갖고 있던 불법 정보가 대개 ‘유력자’들의 것이라던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변호사 생활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글쎄, 두고 봐야지. 정치인으로서는 모르겠지만, 변호사로는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 아닌가.”

    “에이, 그래도 그렇죠. 여당에서 똥물 제대로 뿌렸다고 이를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던데요.”

    6월 중순 토요일 오후, 오늘도 비서실에는 주말 근무를 위해 도훈과 영배, 두진이 출근해 있었다.

    두진과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영배가 책상에 앉은 도훈을 흘겨보다가 도훈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렇게 봐?”

    “저런 대단한 이야기를 끝내 뉴스로 보게 만든 내 친구가 너무 대단해서 그런다.”

    검찰 수사관이 다녀간 뒤 비서실 직원들이 무척 궁금해했지만, 도훈은 김형일 변호사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김형일 변호사와 관련되어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온 것이라고 둘러댔을 뿐.

    시간이 흘러도 ‘잠잠’했기 때문에 직원들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보도가 시작되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수사정보 유출하면 기소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니까.”

    “헹? 네가 거기에 요만큼이라도 겁을 먹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도훈이 이야기하지 않은 건 김형일 때문이 아닌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불법 정보들 때문.

    도훈 자신에 관한 게 포함되어 있었다지만, 다른 ‘유력자’들은 필시 도훈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거나 이름이 알려진 이들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민감해질 게 뻔한 일에 쓸데없는 관심을 두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유력한 사람이라면 누굴까요?”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그 지역구에 유력한 사람이 누가 있죠? 아, 꼭 지역구로 한정할 필요가 없는 건가요?”

    “쯧쯧.”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는 영배를 향해 두진이 혀를 찼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 지금 상당히 한심해 보여.”

    “... 하, 하하.”

    “휴일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이니 무슨 생각을 하건 자네 자유긴 하네만, 좀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걸 추천하고 싶어.”

    “... 쩝.”

    두진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는 영배의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는데,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김도훈입니다.”

    - 아, 시장님. 오늘도 사무실에 나가셨어요?

    “그렇죠, 뭐. 어쩐 일이십니까, 의원님?”

    전화한 사람은 김용진 의원이었다.

    - 다름이 아니고 오늘 저녁 시간 괜찮은가 해서요.

    “오늘 저녁이요?”

    - 네. 도지사님이 대흥에 오신다고 저녁 겸 소주 한 잔 어떠냐고 하시네요.

    “다음 주 토요일 당원대회 하는 날 저녁 식사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 아, 그 날 다른 일이 생겨서 못 오신대요.

    약속은 없었지만 그다지 편하지 않은 저녁밥 먹을 생각이 들지 않은 도훈이 거절하려는데 김용진이 묘한 말로 유혹했다.

    - 김형일 변호사 얘기 궁금하지 않아요?

    “네?”

    - 검찰 수사관이 시장님한테도 갔었다는 것 같던데요? 아니었어요?

    “흐음.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 하하, 나는 찾아온 게 아니고 검찰청으로 와달라고 해서 다녀왔거든요.

    “......”

    - 나는 조용히 검찰청에 갔다 왔고, 도지사님한테는 담당 검사가 직접 찾아갔던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

    “... 흐음.”

    - 오늘 만나면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관심 없습니까?

    도훈의 시선이 옆의 옆자리 영배를 향했다.

    두진에게 타박받은 영배는 어느새 TV를 끄고 다시 서류를 붙들고 있었다.

    ‘쓸데없는 일에는 신경을 끄는 게 맞는데···. 아, 그러고 보니 따로 할 말도 있네.’

    시 현안 중에 강정문, 김용진과 상의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거기에 아무래도 도훈 자신도 아주 조금은 관련된 일이라 전혀 호기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잠시 생각하던 도훈은 이번만은 김용진의 유혹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맨날 가는 거기면 됩니까?”

    그렇게 도훈의 저녁 메뉴는 중식으로 결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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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 저녁, 중국관 뒷방.

    “내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 맞는 얘기도 가끔 있지만, 무슨 찌라시도 아니고 근거 없이 ‘카더라’라는 얘기가 주를 이루더라니까?”

    “뭐, 저도 비슷했습니다, 지사님. 제가 와이프와 이혼 직전이고 따로 살림을 살고 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래? 어쨌든, 나에 관한 가짜 파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관한 거였으면 검사한테 호통을 칠 수준이었어. 당장 가서 이 자식 안 잡아넣고 지금 뭐 하냐고 말이야.”

    “가짜인 거는 맞죠?”

    김용진이 장난스럽게 묻자 강정문이 피식 웃고 답했다.

    “내가 검사한테 그랬네. 싹 다 조사해보라고. 차라리 다 조사해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혀주면 고맙겠다고 말일세.”

    “하긴, 저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긴 하네요.”

    우습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화하는 강정문과 김용진 옆에서 도훈은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문화체육부 장관을 추천하고 전 안보실장을 그 자리에 밀어 넣었다는 얘기도 있었어. 문체부 장관은 안면이라도 있지. 하지만, 전 안보실장은 사석에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말일세.”

    “아무래도 좋은 목적으로 쓸 게 아니니 ‘흠집 내기’에 좋은 재료라면 무조건 모은 것 같았습니다.”

    “쯧. 어쩌다 그런 사람을 공천해서 선거를 치렀는지···.”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죠. 전 이번 일 터지고 진승일 의원한테 정말 고맙더라고요. 하하.”

    얼마간 각자의 파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강정문과 김용진은 도훈의 파일에 관해서도 궁금해 했다.

    “김 시장 파일에는 무슨 내용이 있었어요?”

    “그러게요. 저는 김 시장님 파일도 있었다는 얘기 듣고 굉장히 놀랐는데, 파일 내용이 궁금하네요.”

    강정문과 김용진이 눈을 빛내는데,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가족사항, 학력, 개략적인 사회 경력.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겨우 그거요?”

    “저를 찾아온 검찰 수사관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제 파일을 직접 본 게 아니라서요.”

    “흐음?”

    김용진이 ‘정말로 그게 전부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제가 흠 잡힐 일을 별로 안 했나 보죠, 뭐.”

    “... 하하.”

    김용진이 웃는데 강정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요.”

    “네?”

    “흠 잡힐 일 하지 말라고요.”

    “아, 네.”

    “소신 있게 일하는 것과 흠 잡힐 일을 하는 건 다르다는 건 알죠?”

    “물론입니다, 지사님.”

    담담히 답하는 도훈에게 강정문이 말을 이었다.

    “자기 관리 못 하는 사람은 공직자 자격이 없어요. 김 시장이 앞으로 공직을 계속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자기 관리 못 하면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잠깐 말을 끊었다 잇는 강정문.

    “... 그, 그게···.”

    표나게 당황하는 도훈을 강정문과 김용진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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