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73화 (174/279)

173. 공감능력 – 3.

도훈은 심남진과 한 시간가량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심남진이 고민이라고 털어놓은 건 자신의 능력 혹은 성향에 관한 것이었다.

“난 웬만하면 문제 일으키지 않고 둥글둥글 살자는 주의거든요. 난 친하게 안 지내고 말지 적은 가급적 만들지 않으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요즘 그게 옳은지 회의가 듭니다.”

심남진은 시의회 의장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절대적으로 내 편이라고 여겼던 송지은이 흔들린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만, 이미 안준식을 통해 시의회 의원들의 움직임을 들어 알고 있던 도훈은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그의 고민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도 않은 걸 언급할 수도 없는 노릇.

심남진의 고민에 대한 도훈의 조언은 이렇게 시작했다.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남과 적대하지 않으려 하는 건 보편적인 성향 아닐까요? 물러설 수 없는 때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왜 손해 보는 사람이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건, 의원님만의 단점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걸요?”

심남진이 두루뭉술하고 ‘튀지 않는’ 인물인 것은 맞다.

그는 의회에서도 어떤 의견을 먼저 말하는 일이 드물고 다른 의원들이 제출한 안건에 대해서도 쉬이 논평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남진이 아무 생각도 없고 기준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훈이 지난 2년 가까이 지켜본 심남진은 아주 상식적인 가치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그걸 지키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건 그냥 제 사견입니다만, 심 의원님은 가장 평범하고도 어려운 길을 가는 분입니다. 시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매사를 판단하고 선을 지키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로만 ‘시민’, ‘서민’을 언급하며 떠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서민의 가치 기준에 맞는 생활과 의정활동을 하시고 있죠. 이를테면, 언행일치가 된다는 건데, 그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담담히 심남진을 평한 도훈은 은근슬쩍 다른 의원에 대한 평도 했다.

“우리 의회에 앞에서는 시민의 공익을 위한답시고 말하고, 뒤에서는 제 잇속을 채우려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골적일 때도 있고 은근슬쩍 그럴 때도 있죠. 별로 시민에게 혜택이 되지 않고 ‘업자’의 배만 불릴 사업을 공약이라고 밀어붙이기도 했고, 대놓고 부동산 장사를 하려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의원님은 잘하시는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도훈이 언급한 ‘그런 분들’에는 차혜진, 서태기, 장민호가 포함된다.

실제로 의회 안팎에서 도훈과 충돌한 적도 여러 번인 세 사람.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의원들은, 다행히도 제 잇속을 채우려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안준식이 전반기 의장인 것도 다행이었지만, 잇속을 채우려 들지 않는 의원이 과반인 것도 도훈에게나 대흥시 시민들에게나 다행이었다.

“이런, 시장님이 이렇게 아부성 발언을 잘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절대 아부가 아닙니다. 제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허허허.”

도훈의 말이 기분 좋았는지 심남진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도훈은 실제로 심남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우연’을 가장해 그와 단둘이 마주 앉은 터였다.

‘서태기 의원보다는 당신이 의장이 되는 게 시민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

쑥스럽게 웃는 심남진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의원님을 높이 평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민들과 정말 소통을 잘하신다는 겁니다. 아니, ‘소통’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도 없죠. 의원님은 의원이 되기 전과 후의 생활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의회 일정은 꼬박꼬박 지키시면서도 시민의 생활을 지키고 있으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하, 시민은 무슨, 그냥 카페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에요.”

심남진은 의원이면서 동시에 카페 주인이고 카페가 자리한 운계면 사거리 인근 3층 건물의 주인이기도 했다.

건물은 부친이 유산으로 물려준 것인데, 물려줄 때 이런 말을 남겼단다.

- 내 보기에, 남진이 너는 돈 버는 재주 없다. 그러니 그 건물 유지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라. 아등바등 돈 벌려고 애쓰지 말고, 차라리 사람들 인심을 얻어. 너한테는 그게 어울린다.

재산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성품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남진은 카페를 운영하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건물주라고 해도 대흥시의 3층 건물은 대도시의 그것과는 나오는 수익이 천양지차라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검소하게 생활하며 이웃과도 사이가 좋았던 그는 의회에 출근할 때를 제외하면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이기도 했다.

당연히 주민들과 소통을 잘할 수밖에.

‘자, 대충 분위기는 잡았고, 이제 해결책을 제시해 볼까?’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본론을 꺼냈다.

“의원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그러세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인 심남진에게 도훈이 말을 이었다.

“하반기 의장 선출 때문에 고민하시는 거죠?”

“... 시장님도 알고 있었어요?”

“시의회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 시장인 제가 모르면 되겠습니까?”

“허허.”

심남진이 머쓱한 표정을 했고, 도훈의 질문이 이어졌다.

“혹시 유서면이나 남가동에 지인들 많지 않으십니까?”

“유서면하고 남가동이요?”

“네.”

“많다고 하기는 그렇고, 있기야 제법 있죠. 그런데 그게 왜요?”

씨익.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

단정적으로 말하는 도훈의 모습에 심남진이 말문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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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이 됐다.

지난달 말부터 열흘 동안 세 번 정도 비가 제법 내려 가뭄은 거의 해소된 상태.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인 수목은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파릇한 이파리와 화려한 색깔의 꽃을 자랑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서 의원이랑 차 의원, 또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것 같던데요?”

오늘은 외부가 아닌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날.

먼저 식사를 하고 온 지연의 말에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피식 웃었고 두진이 중얼거렸다.

“서 의원이 여전히 설득을 열심히 하는가 보군.”

“아, 의회 의장이요?”

“그래.”

하반기 시의회 의장이 누가 되냐는 건 요즘 시청 안에서 핫한 화제.

민의당에서 심남진과 서태기가 의장에 출마할 게 확실한 가운데, 서태기가 차혜진의 출마를 막고 자신을 지지해달라 설득하고 있다는 건 시청 직원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차 의원이 자기 표를 절대 싸게 팔 리가 없잖습니까.”

“그렇죠. 그런 계산은 참 잘하는 분이죠.”

차혜진 자신도 자신이 의장 후보로 나서도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의장 선출 훨씬 전부터 공공연하게 의장에 나가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이유는 자신의 표를 ‘비싸게’ 팔기 위함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한 표가 절실한 서태기는 그런 차혜진에게 속절없이 끌려다니고 있고 말이다.

‘지금 거기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닐 텐데. 아직 모르고 있나?’

계단을 내려가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서태기가 송지은 의원을 이미 공략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꼭 그렇지 않다는 건 도훈이 잘 알았다.

도훈은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는 두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실장님?”

“... 혹시라도 서 의원이 의장 될까 봐 그럽니다.”

주변을 살핀 뒤 조용히 말하는 두진의 모습에 도훈이 담담하게 웃었다.

“시장님은 걱정 안 되시나 봅니다?”

“네.”

“허허, 서 의원이 어떤 양반인지 모르시는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하하하.”

두진은 웃는 도훈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비서실장직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지금은 야인이 된 양상택 전 시의원과 서태기 의원이 시의회 의장이 되는 걸 막으라는 조건을 내밀었던 두진이었으니.

“심 부의장이 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긴 해도, 사람 말을 가려듣지를 않으니 그나마 나을 듯한데···.”

“그런데 뭡니까?”

“아무래도 서태기 의원한테 밀리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 구워삶는 건 서 의원이 아주 잘하잖습니까.”

“그렇습니까? 저는 좀 다른 얘기를 들었는데.”

“다른 얘기요?”

“네.”

두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어느새 계단을 다 내려와 저만치 식당 입구가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무슨···?”

“마침 말이 필요 없는 장면이 저기 있네요.”

도훈이 슬쩍 고갯짓을 하자 두진의 시선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몇 사람이 보였는데, 그중 심남진이 있었고 그의 옆에는 송지은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걷는 심남진은 송지은 의원을 포함한 일행들과 번갈아 대화하며 밝게 웃고 있었다.

“오호?”

두진이 묘한 소리를 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송지은이 심남진의 얘기를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인 게 멀리서도 확인될 정도였으니까.

심남진 일행은 도훈과 두진을 못 보고 청사 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이게 되자 도훈이 걸음을 옮겼고, 두진이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뭔가 아는 게 있으시군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 대단하지 않은 게 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는 좀 그렇네요.”

점심시간이라 식당 앞에도 내부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두진은 점심을 먹는 내내 궁금한 것을 참고 있다가 비서실로 돌아온 다음에야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서 의원이 송 의원에게 줄 수 있는 건 심 의원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 의원이 송 의원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 서 의원은 절대 줄 수 없는 게 있죠.”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진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고, 다른 비서실 직원들도 관심을 보였다.

“송 의원이 다음 지방 선거에 선거구 배정받아서 출마하려 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부터 더 의욕적으로 활동하려 할 겁니다.”

“그야 당연하겠죠.”

“서 의원이 의장이 되면 송 의원의 의제들을 지원해주고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을 것 같은데, 의제 지원은 심 의원이 의장이 되도 할 수 있는 거죠.”

“흠, 서 의원은 심 의원보다 더 적극적으로 밀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좀 억지를 부리는 한이 있더라도요.”

두진의 반문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제가 그 억지를 받아줄 리가 없잖습니까.”

“흐음.”

“합당한 사안이면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겠지만, 합당하지 않은 일이면 어떤 압력이 의회에서 들어와도 거절하는 게 맞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다고 치죠. 그러면 심 의원은 줄 수 있으나 서 의원 못 주는 건 뭡니까? 두 분은 선거구도 같은데요.”

듣고 있던 영배가 끼어들었다.

서태기와 심남진의 선거구는 운계면·금선면이었고 송지은은 유서면·남가동이었다.

가만히 미소 지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서 의원과 심 의원은 성향이 많이 다릅니다. 생활방식도 많이 차이가 나고요. 인간관계도 그럴 겁니다.”

“그렇겠죠.”

“서 의원은 유력자는 많이 알 겁니다. 목소리 크고 방귀 좀 뀌는 그런 분들요.”

“그분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니까 당연한 거겠죠.”

“심 의원은 생활이 검소해서 주로 평범한 시민들과 관계가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체활동이라고 해봤자 상인연합회, 조기축구회, 무슨 봉사단체, 향우회 같은 곳이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두진과 영배, 지연, 영진이 점점 더 궁금한 표정이 되어갔다.

“송 의원의 성향을 생각해 보세요.”

“... 네?”

“제가 듣기로 송 의원도 서민에 가까운 분입니다. 학부모 단체활동을 하다 시의원이 됐지만, 평범한 직장인에 주부로 지낸 기간이 훨씬 길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요?”

“송 의원이 다음 선거를 대비해 유서면·남가동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자 할 때, 힘 좀 있는 사람들을 통하는 게 편하겠습니까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방식이 더 편하겠습니까?”

“아.”

두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제야 뭔가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했다.

“심 의원도 유력자들과 친분이 있답니다. 다만, 아주 평범한 주민들과의 관계는 서 의원이 심 의원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라는 거죠.”

서민들과의 공감능력의 차이.

서태기도 시민에게 잘하려 노력했겠지만, 그는 자기 선거구에 주력했고 접대성 미소를 달고 사는 이상은 아니었다.

그와 대비되게 심남진은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답게 선거구 같은 건 따지지 않고 두루두루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송지은이 평범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선거를 준비하고자 한다면, 서태기와 심남진 중 누가 자신에게 더 큰 걸 줄 수 있는가는 명확한 것이다.

“어차피 송 의원에게는 서 의원이나 심 의원이나 다 ‘중개자’인데, 심 의원이 더 다양하고 폭넓게 중개해줄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네. 바로 그겁니다.”

지연의 질문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두진이 묘한 표정을 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왠지 시장님의 ‘역할’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두진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다시 도훈을 향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얘기였지만, 최근까지 서태기가 더 유력한 것 같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이 별것 아닌 사실을 짚어낸 사람이 없었으니까.

심남진이 실제로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기도 했고.

“저도 선거 치러서 당선된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 정도 분석은 할 줄 알아요.”

“흐음.”

모두가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하는 표정인 가운데, 도훈이 심남진에게 ‘팁’을 전해준 일을 태연히 시치미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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