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공감능력 – 1.
일요일 오전, 대흥시 남가동에 자리한 작은 공원.
금, 토 이틀에 걸쳐 제법 많은 비가 온 뒤 날씨가 좋아진 때문인지, 공원에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이 여럿 있었다.
공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 개들 가운데, 덩치 큰 개 앞에 앉아 연신 감탄을 터뜨리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어머! 어머! 어쩜 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요? 신기해요!”
“웬만한 강아지는 가르치기만 하면 다 이 정도는 해요. 처음 보신 것도 아닐 텐데.”
“호호! 보긴 봤죠. 그래도 동영상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너무 신기해요! 정말 예뻐 보이는 건 둘째 치고요!”
“하하하.”
자신이 손을 내밀 때마다 그에 맞춰 왼 앞발과 오른 앞발을 번갈아 내미는 골든 리트리버를 보는 세경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세경과 리트리버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주인이 말을 이었다.
“다른 것도 보여줄까요? 우리 똘똘이가 재주가 많아요.”
“제발요!”
주인이 자랑하듯 하는 말에 세경이 반색했다.
“하하. 자, 잘 보세요. 똘똘아, 공놀이할까? 물어와!”
컹! 컹컹!
“와~!”
주인이 테니스공을 던지자 리트리버가 재빨리 공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고 세경이 감탄했다.
몇 걸음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세경을 바라보던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괜한 걱정이었네.’
도훈은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걸 택했고, 세경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럼 ‘그 공원에서 놀면 되죠.’라고 답했다.
어제 대흥에 와서, 본가에 간 전경완 부시장의 빈 오피스텔에서 잔 그녀는 손수 점심 도시락까지 싸왔다.
덕분에, 도훈은 마음 편하게 공원에 와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애인이 미인이네요?”
“... 음, 그게···.”
“그게 뭐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애인’이라는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 도훈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 제가 지난주에 소개했던 차 의원 말입니다.”
“아, 그 사람.”
“괜찮으시면, 얘기가 어떻게 풀렸는지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럽시다.”
도훈의 질문을 받은 사람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매우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다.
“... 원래는 규모가 더 컸다고요? 진짜로요?”
“그렇다니까. 내가 시장님한테 뭐하러 거짓말하겠나? 처음엔 공원을 넓히고 개들 놀이시설이니 뭐니 해서 이것저것 만들겠다는 게 많았다오. 수영장도 만들자던 걸? 아주 본격적인 반려견 놀이동산이었어.”
“... 하하하.”
지난 주말, 공원에서 만났었던 노인의 말에 도훈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차혜진을 이렇게 평했다.
“좋게 말하면 너무 의욕적이고 까놓고 말하면 사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썰렁한 공원이 별다른 변화 없이 반려동물 공원이라고 지정되는 건 눈에 안 띈다 이거겠지. 생색낼 게 없잖소. 아, 그 의원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내 짐작이 그래요.”
“... 네.”
“지난 월요일에 기획안을 가져왔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다 기함했어. 9천인가 8천인가 짜리 기획안이더라고. 내가 그랬지. 그렇게 거창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말이오. 내 말에 수긍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 네.”
“다음날인가? 그 의원이 와서는 줄이고 줄이더라도 육천 밑으로는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 반려동물 공원이면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춰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
“사람들이 그래도 과하다고 하니까 그 의원이 이러더라고. 시장님도 개 키우는데, 이 정도를 못하겠냐고 말이야.”
“......”
도훈이 할 말을 잃었다.
도훈이 차혜진을 시민들과 연결해 준 건, 그녀가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이 있을 거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찾아와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걸 어필했을 땐, 시민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차혜진도 알기 때문이라고 도훈은 생각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땠는지는 몰라도 결국 차혜진은 ‘실적’ 혹은 ‘성과’에 더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렇게 마음이 변하는 데에는 도훈이 애견인이라는 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어휴, 내가 못 살아.’
도훈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난주 혹시 시민들이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도훈은 자신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며 몇 번이나 양해를 구하질 않았던가.
차혜진에게도 이 논의가 본격화되더라도 자신은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 다짐을 두었던 도훈이었다.
‘내 얘기는 어디로 들은 거야, 도대체.’
그렇게 투덜거린 도훈이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죄송하긴? 그런 말 말아요.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까.”
“네?”
“시장님이 그랬잖소. 시의원과 협의하면 일이 좀 더 쉬울 거라고.”
“... 그, 그랬죠.”
“시장님이 좋은 마음으로 소개해 준 시의원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잖아. 그게 왜 시장님이 미안해할 일인가?”
“......”
“나중에 보니까 그 시의원은 개를 키우지도 않더구먼. 아마 그러니 우리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
담담히 웃으며 말하는 노인의 모습에 도훈은 더 면목이 없어지는데, 노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와 말이 제대로 통하는 사람을 찾았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상대도 흔쾌히 우리 제안에 동의했고 말이오.”
“... 아, 네.”
“하하, 우리 시에 시의원이 차 의원 한 사람이 아니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 다른 제안서 시청에 들어갈 거요.”
“......”
“그 제안서는 전에 시장님하고 얘기했던 그런 방향이에요. 돈 들어갈 일 별로 없는.”
“... 그렇군요.”
“차 의원 제안서에 동의했던 사람들도 다는 아니더라도 몇은 이쪽으로 올 거요. 상식적으로, 어떤 게 더 실현 가능성이 큰지는 그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이용자가 적은 작은 공원이라도 ‘반려동물공원’이라고 지정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절차를 다 떠나 비용 문제만 생각해도 당연히 적은 쪽이 추진하기 쉬울 터.
‘... 이 간단한 걸 도대체 왜 생각 못 하는 거야.’
주민들이 원하는 건 화려한 시설이 갖춰진 그런 공원이 아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들의 시선이나 불편을 걱정하지 않고 아무런 걱정 없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그런 공원이 더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저기··· 어떤 시의원과 논의하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건 비밀이오. 뭐, 제안서 들어가면 바로 알게 되겠지만,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장난은 받아줄 수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노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기에, 도훈은 마주 웃으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궁금했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리는 건 문제가 없었으니까.
다만···.
‘신길영 의원은 설마 아니겠지.’
도훈이 차혜진의 화난 표정을 떠올리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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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 시장 비서실.
소파에 앉은 도훈과 두진이 한 시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과 마주 앉은 사람은 전에도 여러 번 시장실을 찾은 적이 있지만, 대개 누군가와 동행했고 오늘처럼 혼자였던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다만, 누구와는 다르게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덕에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초기비용이 5백만 원이군요?”
“네. 음수대 설치하고 공원 둘레에 펜스 보강하는 것 정도면 큰 무리는 없을 거로 생각해요. 만약 공원 내부 구획을 분리한다면 펜스가 또 필요할 것 같아서 좀 넉넉하게 예산을 책정했어요. 실제 비용은 아마 5백만 원까지는 안 들어갈 거에요.”
“관리비가 월 5만 원이라···.”
“사실, 관리비는 혹시 몰라 그냥 써놓은 거고요. 딱히, 관리비가 들어갈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해요.”
“지정되면 가장 신경 써야 할 게 배변 처리 같은데, 그건 주인들이 알아서 해야겠죠.”
“그야 물론이고요.”
초기비용이나 관리비 등 요구사항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런지, 대화는 술술 아주 쉽게 풀렸다.
차혜진의 제안서와는 다르게 연명부에 적힌 이름이 서른이 넘어서 훨씬 만족스러웠다.
“여기 서명하신 분들은···.”
“아, 제 주변에 개 키우는 분들한테도 이야기하고 서명을 받았거든요. 아마 더 늘어날 거에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잠시 뒤 대화를 마무리했다.
“일단 실무부서에 검토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장님.”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는 사람은 대흥시 시의원 송지은.
그녀는 민의당 소속 비례대표로 도훈도 이번에 알았는데 집이 남가동에 있단다.
“의원님이 애견인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저보다는 애들이 개를 좋아해서요. 애들 둘에 개 두 마리 때문에 저만 죽어나죠, 뭐.”
송지은의 말에 두진이 말없이 혀를 내둘렀다.
개가 아닌 고양이를 키우는 그였지만, 반려동물을 ‘여럿’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였다.
심지어, 거기에 한창 말썽 피울 나이의 애들이 둘이나 추가된다면···.
“의원님 슈퍼우먼이셨군요.”
“호호.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물론, 남편이 많이 도와주니까 가능하긴 하지만요.”
좋은 분위기에서 인사까지 하고 난 송지은이 자리를 떴다.
“저분이 갑자기 등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이것저것 다 열심히 하는 의원이잖습니까. 거기다 본인이 애견인이기도 하고요.”
도훈과 영배의 말에 지켜보던 영배가 입을 열었다.
“아마, 이 안건에 나선 건 애견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저분, 비례대표잖아요. 다음에는 선거구 배정받아서 출마해야 할 테니 그 사전작업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일리는 있네.”
시의원 2명을 뽑는 남가동·유서면 선거구는 공교롭게도 현역 둘 다 민의당 소속이 아니었다.
하나는 대자당의 차혜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궐로 뽑힌 진평당의 신길영 의원.
민의당 소속인 송지은이 출마를 노릴 만도 했다.
“청렴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출마하는 게 좋죠, 뭐.”
보고만 있던 지연이 끼어들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렴한 거야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송지은이 의회에 무단결석 한 번 하지 않고 매사 열심이라는 건 시청 직원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였으니까.
“이거 복사해서 복사본은 저한테 주시고 원본은 민원실로 넘기세요.”
“네, 시장님.”
영배에게 서류를 넘긴 도훈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왜 그러십니까?”
“다른 제안서를 낸 분이 생각나서요.”
“허허. 하긴, 차 의원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진의 말에 지연이 끼어들었다.
“그분 평소 하시는 걸 보면 기분 나빠하는 정도가 아닐 걸요? 길길이 날뛰고도 남죠.”
“... 그렇죠?”
“화가 어느 정도 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시쳇말로 눈이 돌아 남들 눈이 무섭지 않을 정도가 되면, 머리끄뎅이를 붙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저는.”
“... 하하.”
그 장면을 상상했는지 도훈이 허탈하게 웃는데 두진이 위로의 말을 했다.
“아마 시장님한테는 못 그럴 겁니다. 시장님이 다시 송 의원을 소개한 게 아니고 주민들이 시장님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송 의원을 찾아낸 거 아닙니까. 차 의원도 이미 다른 제안서에 대해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송 의원이 걱정됩니다.”
“... 뭐, 그분도 차 의원이 먼저 나섰었다는 걸 알고도 이 제안서를 만든 거니까요.”
두진에게 답하고 난 도훈이 다시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홀짝이고는 중얼거렸다.
“공감능력이라는 게 이렇게 차이가 나서야···.”
“무슨 말씀이세요?”
지연이 물었고 도훈이 쓴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차, 송 두 의원 모두 같은 사안을, 같은 사람들과 논의했잖습니까? 그런데도 아주 판이한 결과물이 나왔어요.”
“그렇죠.”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시민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느냐 자기 좋을 대로 소화했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게 공감능력의 차이란 말씀이시죠? 일리 있네요.”
“하하.”
공원에 반려견과 산책가는 주민들의 요구는 소박했고, 시종일관 변한 적이 없었다.
일부가 차혜진의 제안서에 동의하긴 했지만, 대다수는 원래의 소박한 계획을 지지했다.
차혜진과 송지은 두 사람 모두 주민들과 논의했고 각자의 제안서를 만들었는데, 그 제안서에 찬동한 사람의 숫자는 많이 달랐다.
더구나, 조금 전 얘기대로라면 송 의원의 제안에는 더 많은 이가 함께할 터.
“제가 보기엔 송 의원이 뛰어난 게 아니에요. 차 의원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 네.”
“떨어져도 많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죠.”
“하하.”
지연의 말에 도훈이 쓰게 웃었다.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 그리고 대중의 ‘상식’과 다르지 않은 행동 규범을 지킨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게 기본인데···.’
정치인, 혹은 선출직 공무원에게 ‘기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적절한 ‘공감능력’을 갖고 그걸 유지하는 것도 그중 하나.
의외의 계기를 통해 도훈은 그걸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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