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67화 (168/279)

167. 자업자득 - 2.

확대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는 대흥시청 대회의실.

“이 내용이 틀림없습니까?”

“네. 관련 부서에 확인했습니다. 법 재개정 추진과 관련한 의견 청취랍니다.”

“... 이런, 젠···.”

“......”

벌컥 화가 솟구친 도훈은 가까스로 ‘장’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도훈이 화를 낸 이유는 국토교통부에서 내려온 어떤 공문 때문.

새 정부 들어 개정한 법률로 잡음이 일고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많아 ‘재개정’을 논의 중인데, 대흥시에도 혹시 그와 관련한 사례가 있는지 수집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도훈이 입을 꾹 다물고 화를 참고 있는데, 부시장 전경완이 발언했다.

“원래 중앙 부처에서 이런 거 잘 안 내려보내는데, 이번 협조 요청 건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던가요?”

“따로 설명 같은 건 없었습니다만, 부시장님도 아시는 것처럼 소문이···.”

“흠.”

담당 간부가 언급한 소문이라는 건, 작년 말 새로 취임한 장관이 전임 장관이 했던 부동산 안정대책을 완화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부 초기에 집값이 폭등하는 문제로 인해 국토교통부가 여러 조처를 했다.

그 조처들은 집을 여럿 가진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었고, 부동산 시장 자체를 근본적으로 투명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협조 요청 공문에는 ‘완화’라는 표현 대신 ‘재개정’ 어쩌고 하는 말이 적혀 있었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책의 후퇴를 꾸민다는 뜻이 된다.

‘아니, 지금 법도 부족한 것 같은데 그걸 또 거꾸로 돌린다고?’

도훈이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담당 간부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사례가 있으면 전달하면 되겠죠.”

“알겠습니다.”

공문이 마뜩잖았던 때문인지 도훈의 목소리는 좀 딱딱했지만, 곧 풀어졌다.

간부들이 화풀이 대상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이후 30분 조금 넘게 차분히 회의를 진행한 도훈이 회의 종료를 알렸다.

“이만 회의 끝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실을 벗어나는 도훈 옆에 전경완과 두진, 영배가 함께 했다.

“아까 좀 흥분하시는 것 같던데요.”

“네. 좀 그랬습니다. 요즘 때때로 느끼는 건데, 좀 어이가 없는 일이 생기잖아요.”

“... 그렇긴 하죠.‘

도훈이 말한 어이가 없는 일이란 일부 분야에서 개혁이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부 초기,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이 장관에 임명된 부처가 여럿 있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임명 동의를 받는 게 좀 더 쉬워서 그랬던 측면도 있지만, 임기 초 개혁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이들을 등용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앞장서서 일정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때 임명됐던 장관의 대다수가 작년에 교체됐다.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작년 말을 마지막으로 총선에 출마하려는 인물은 다 장관직을 내려놨던 것.

전, 현직 국회의원을 가리지 않고 출마 의지가 있는 이들이 장관직에서 물러나며 꽤 많은 자리가 비었다.

그들뿐 아니라 정부에 몸담지 않았던 개혁적 성향의 정치인 중 많은 수가 총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은 고심 끝에 후임 장관을 골랐겠지만, 공석이 된 장관직을 모두 개혁을 잘 이어받아 수행할 수 있는 이들이 채운 것이 아니었다.

일부 부처의 경우 관료 출신이거나 업계 경력이 있는 이들이 새 장관으로 취임해 ‘속도 조절’, ‘안정 우선’ 등의 주장을 하는 장관이 있었다.

모두가 아닌 일부 부처에 국한되는 얘기였지만, 제도권 언론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 보니 ‘잡음’ 어쩌고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었다.

국민은 그것을 개혁의 후퇴 혹은 지지부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이 그만큼 하락했다.

2월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회복한 적은 단 한 번뿐일 정도였다.

“개혁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국민의 비판을 받는 게 당연하죠.”

- 물론이지. 자신들이 국민에게 약속한 목표를 자신들이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누가 지지하겠냐.

자기 사무실 책상에 앉으며 도훈이 말했고 조상님이 맞장구를 쳤다.

여권 일부에서는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자기반성과 함께 언론이 너무 편파적이라는 하소연도 했지만, 도훈은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언론 환경은 시작할 때부터 나빴죠.”

- 그랬지. 하지만, 요즘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노골적이 된 거죠. 개혁 추진에 주저함이 없었고, 성과도 잘 만들어냈더라면 지지율이 이렇게 떨어지지는 않았을 테고, 언론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성과에 상관없이 맘먹고 덤비는 언론이 많긴 합니다만.”

담담히 말한 도훈이 인터넷 창을 열고 어느 포털의 메인 화면을 띄웠다.

‘몰카’ 사건에 대한 후속 보도가 눈에 띄었지만, 정치․사회 분야 뉴스 중 몰카가 아닌 다른 주제를 다룬 것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도훈은 그중 한 신문사의 기사를 클릭했다.

- 개혁은 놓칠 수 없는 기치. 다만, 국민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가시적 성과도 외면해선 안 돼···.

현역 민의당 중진 국회의원이자 이번 총선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 어떤 인물의 인터뷰 기사였다.

제목을 보면 개혁과 성과 챙기기를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는 것 같지만, 인터뷰 내용은 개혁이라는 것에 너무 큰 방점을 찍으며 벌려놓은 일들이 많으니 이를 정리하고 성과 중심의 일부 노선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휴우.”

미간을 찌푸린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 중간 사진 속에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앉은 의원과 그의 계파는 개혁에 앞장선 적이 없었으니까.

정권 초반에는 그냥 수동적으로 개혁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당내 ‘합리적 중간자’를 자처하며 개혁의 속도와 폭을 조절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친여 성향이라고 알려진 신문에서 이 정도의 기사가 나왔으니, 다른 언론사라면 이 내용을 어떻게 다뤘겠는가.

- 그놈 대장이네.

“... 네.”

조상님이 알려준 사실이지만, 이 계파의 3 인자가 다름 아닌 오정민 의원이었다.

이들은 정략을 꾸미고 ‘공작’을 한다.

저들이 저렇게 툭툭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어떤 판단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점 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 작심하고 저러는 것 같은데?

“살짝 독이 올랐다고 하는 게 더 맞겠죠.”

도훈이 그런 판단을 한 건, 안준식에게 들은 얘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 후보로 최종 결정된 이들 중 ‘개혁을 꾸준히 밀고 가야 한다’는 당 주류의 입장에 찬성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다행이라는 말.

그 말은 주류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생각보다 후보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 선거라는 게 당 전체가 단일한 목소리로 대응해도 이슈를 선점하기 어려운 건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 얘들이 이렇게 작심하고 어깃장을 낼 정도로 이번에 후보를 많이 못 냈냐?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은 당 대표가 공천을 주고 싶은 사람이 막 공천받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공천 신청을 한 사람이 둘 이상이면 다 경선 과정을 거치는데요. 저 계파 사람들이 후보가 못된 건 그만큼 밑바닥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 쯧쯧쯧.

이번 선거에 공천이 확정된 민의당 후보 중 오정민의 계파에 속한 이가 몇이나 되는지 도훈은 알지 못했다.

민의당의 선거전략과 저 계파의 전략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만, 오정민이 속한 계파가 당 주류와는 조금 다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몰카 사건의 증거가 나왔다는 보도가 일제히 나온 다음 날에도 계파 수장이라는 의원이 방금 도훈이 읽은 기사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에 등장했었으니까.

그리고 비슷한 기사가 점점 더 많은 수의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고 있었다.

- 계속 저럴 거라고 생각하냐?

“... 아마도요.”

어쨌든, 총선을 코앞에 둔 민의당의 ‘계파 갈등’이 점점 크게 비치고 있달까.

기자에게 ‘계파 갈등이냐?’라고 질문을 받는 민의당 사람 모두가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지만, 가장 쉽고 상황에 들어맞는 해석이 그것이니까.

“쯧.”

혀를 차며 인터넷 창을 닫은 도훈이 업무를 보기 위해 시청 인트라넷을 열었다.

- 어째, 며칠 전에 네가 한 말이 점점 더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 저는 더는 신경 안 쓰렵니다. 제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며칠 전, 도훈이 강정문도 조상님도 한 가지 깜빡하고 있는 게 있다며 했던 말.

- 정부, 여당을 통틀어서 지금의 여권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지적도 아니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하기는커녕,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같은 평가를 하는 이가 적지 않을 터.

다만, 도훈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요즘 드문드문 나오고 있는 ‘잡음’이란 얘기를 생각하면 여당이 단일한 대오라고도 할 수 없죠. 이건 제 어림짐작인데, 이번 사건을 상대의 ‘결정적 실수’라고 여기면 여길수록 아마 그 부분이 점점 더 도드라질 겁니다.

나중엔 잘못을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때는 늦겠죠. 보수 쪽이 의석을 잃긴 하겠지만, 그게 다 여당으로 가진 않을 걸요.

그게 도훈의 전망이었다.

현실 선거가 최선이 아닌 차선 혹은 차악을 뽑는 행위라는 걸 생각하면, 여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올수록 여당이 차선에서 차악으로 점점 밀려날 거라는 얘기였다.

- 바보들이네.

“......”

조상님의 말에 도훈은 답하지 않고 조용히 문서를 읽어갔다.

다만, 속으로 한 마디 중얼거리기는 했다.

‘저쪽도 자업자득이겠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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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이 선거에 관심을 끊고 시장 업무에 충실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희미했던 봄기운이 점점 강해지며,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용진! 김용진!”

“곽상문! 곽상문!”

대흥시가 포함된 지역구에는 세 후보가 출마했다.

물의를 넘어 ‘범죄’ 행위를 벌인 대자당 후보는 끝내 출마를 강행했고,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대신 어딜 가나 ‘나는 몰랐지만, 내 책임이 있다’며 사과하고 다니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어느새 ‘물류유통 센터’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김용진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한때 대자당을 아주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트린 몰카 사건은 전국적 이슈로 오래 작동하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이런저런 사건들이 툭툭 튀어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민의당 내 ‘계파’에 대한 이야기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주제가 선거판의 주된 이슈는 아니었다.

‘계파 분열’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일이 너무 커졌다고 여겼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오정민의 계파 소속 인물들이 자신들의 언행을 조심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조심하든 말든 여당에 악영향을 끼칠 모든 주제가 보수언론, 종편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고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건 분명했다.

- 21대 총선 투표율,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

- 국민의 선택은 어디로? 총선 결과 예측 무척 다양해.

- 집권 후반기 여당은 과반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하는 가운데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밝았다.

그리고 유달리 화창했던 그 하루는 무척 짧게 느껴졌다.

- 21대 총선 최종 투표율은 54%로 예상됩니다. 지난 총선보다 투표율이 낮아졌죠. 자,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이제 10여 초 남았습니다. 우리 국민의 선택은 과연 어느 당의 손을 들어주었을지 궁금합니다. 이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10! 9! 8! 7···.

개표방송을 바라보는 도훈의 눈이 담담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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