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66화 (167/279)

166. 자업자득 - 1.

쪼로로록.

“후후, 김 시장. 내가 여기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알아요?”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도지사님 혼자 오신다고 사장님이 쫓아낼 것도 아닌데. 여기 사장님 열혈 민의당 지지자잖아요.”

“에이, 그래도 나 혼자 오면 재미가 없잖아요. 자, 받아요.”

쪼로록.

도훈은 중국관 뒷방에 강정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가 ‘웬만하면 오늘은 단둘이 만나자.’고 미리 연락했기에 오늘은 두진도 영배도 떼어놓고 혼자 나온 참이었다.

쨍.

“크으.”

건배하고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 두 사람은 아주 맛있는 냄새를 피워올리는 요리를 집어 먹고는 말을 이었다.

“흐음, 역시 맛있단 말이에요. 중국관 사장님을 꼬셔서 도청 청사 앞에 분점이라도 내시게 해야 할까 봐요.”

“뭐, 그거야 알아서 하시죠. 본점만 그대로 여기 있어서 사장님이 계시면 저는 반대 안 하겠습니다.”

“하하, 그냥 해본 말이에요.”

강정문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뭐, 오늘의 자리도 자리지만 요 며칠 돌아가는 상황이 그로서는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이번에 처음 느꼈습니다만, 지사님 영향력이 여당 내에서 대단한 것 같더군요. 저한테 단 한 번도 여당 쪽에서 전화가 안 왔었습니다.”

“하하. 당연하죠. 나 아직 안 죽었어요.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요즘 좀 정신 사나웠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좀 그랬습니다.”

여당이 이슈 몰이를 시도했지만, 그 와중에 도훈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그런 여당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쪽이 도훈을 귀찮게 했다.

몰카를 찍다 붙들린 청년들은 경찰 조사에서 묵비권으로 일관했지만, 경찰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두 청년은 보수성향 청년 정치단체의 회원이었고, 그들과 친구라는 민의당 청년 당원 역시 지금은 아니나 과거에 그 단체의 회원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원래 그들이 노린 건 안준식이 아닌 김용진 의원이나 선거운동본부에서 더 무게감 있는 인물이었는데, 접근이 쉽지 않아 안준식이 표적이 됐다는 것도.

또한, 대흥시가 포함된 국회의원 지역구의 대자당 선거운동본부 홍보기획팀장이 그 단체의 부회장으로 청년들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들이 정기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최근까지도 자주 만남을 가져왔다는 것도 경찰은 알아냈다.

하지만, 몰카 촬영을 지시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정황 증거는 충분한 상황.

여당은 배후로 이 지역 대자당 선본의 홍보기획팀장을 의심했고, 대자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배후라고 몰아붙이는 게 오히려 정치공작이라나?

거기에다가.

- 민감한 시기, 여당 소속 시의회 의장과 시장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만났던 건가?

민의당은 몰카를 통한 정치공작을, 대자당은 시의회와 시장이 결탁한 불법 관권선거를 의심하고 규탄했다.

“흠, 우리 당이 좀 성급했어요. 수사 진행 상황을 봐가며 대처했어야 하는데, ‘몰카’에 너무 흥분했다고 봐요, 나는.”

“뭐, 화낼 상황인 건 맞죠. 하지만, 대처는 좀 더 냉정하게 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쩝.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정치공작도 해 본 사람이 더 잘하는 거겠죠.”

“그 정도가 아니라 괜히 역풍을 맞을 뻔했잖습니까. 뭐, 이런 얘기를 도지사님께 하는 건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죠.”

“허허, 김 시장이나 나나 공적으로 선거에는 엄정중립을 지켜야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몰카’라는 좀 자극적 용어가 붙었어도 이 사건에 관한 관심은 금세 시들해졌다.

한 마디로, 민의당의 여론몰이 시도는 ‘실패’.

이에 쾌재를 부른 대자당 쪽은 역공에 나섰는데, 그 때문에 도훈이 언론에 입장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시기가 언제든, 시의회 의장과 시장은 서로 논의하고 협의할 게 무척이나 많은 관계입니다. 그런 논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대자당에서 무슨 상상을 하든 상관없습니다만, 그분들 자신들도 시민들이 가득한 대중식당에서 자신들이 상상하는 일을 하실 것 같지는 않네요.

음습한 ‘꿍꿍이’가 있는 이들이라 해도 간 크게 공개된 장소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도훈이 입장을 밝히기 전에도 대자당의 논리는 ‘생트집’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일관하는 건, 이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일 터였다.

그런데 그게 지나쳤다.

도훈의 인내심을 순식간에 증발시킬 정도로.

“젊은 친구들이 도대체 왜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는데, 덕분에 대자당이 자충수를 둔 셈이 됐어요.”

“그런 셈이더군요.”

“허허, 아마 우리 당 선거대책본부 사람 중에 엊그제와 어제 가슴 쓸어내린 사람들 많았을 겁니다.”

엊그제와 어제, 불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던 두 청년이 차례로 경찰에 찾아가 진술을 번복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몰카로 찍어 어떻게 사용하려 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대자당 선거운동본부 홍보기획 팀장의 지시를 받아 몰카를 찍으려 했던 게 맞다고.

물적 증거는 없지만, 몰카를 찍었던 두 청년이 한목소리로 일관된 진술을 하자 경찰의 수사에도 탄력이 붙었고 상황이 점점 반전되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되려나 모르겠네요.”

“뭔가 있으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오늘 오후, 문제의 대자당 홍보기획 팀장이 경찰 소환에 응했다.

소환이야 진즉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나 증거가 없어 관심이 시들해진 상태였는데, 갑자기 어제와 그제 청년들이 진술을 번복하며 다시 언론이 몰려들었다.

당사자와 대자당 지역위가 당황해 소환 불응을 검토했지만, 경찰이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즉각 강제구인에 나서겠다.’고 압박해 소환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시죠.”

“아, 미안해요. 이거 김 시장에게는 유쾌한 얘기가 아닐 텐데.”

“뭐, 그렇죠.”

“하하, 그럼 무슨 얘기를 할까요. 아, 세경이랑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나요?”

“......”

화제를 바꾸려고 하자 능글맞게 웃으며 ‘훅’ 하고 찔러 들어오는 강정문.

“요 며칠 세경이가 좀 걱정하는 것 같던데요?”

“... 세경 씨와의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에이, 재미없게 왜 그래요?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 지사님 재미있게 해 드리려고 세경 씨 얘기를 하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 하하하. 알았어요, 알았어.”

도훈이 아주 사무적인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자 강정문이 손사래를 쳤다.

도훈도 그가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곧 표정을 풀었다.

두 사람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도훈의 말에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민 건 강정문의 수행비서.

홀에서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던 그의 얼굴이 술을 먹지 않았음에도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잠깐 나와서 TV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사님.”

“TV? 왜?”

“뉴스에 몰카 사건 보도가 나옵니다!”

비서의 말에 강정문은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몸을 일으켰고, 도훈도 그 뒤를 따랐다.

얼른 중국관 홀로 나가 벽에 걸린 TV를 바라보니 모 공중파의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 경찰은 홍보기획 팀장 이 모 씨가 몰카 장비 구입 및 활동비 명목으로 청년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과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이번 일은 선거 때 활용하기 위해 민의당 측의 약점이 될 정보를 수집하는 일의 일환으로 기획한 것이며, 해당 지역 선본 간부들이 여럿 알고 있었다는 진술이···.

“... 가관이구만. 엊그제까지 관권선거니 어쩌니 하고 난리 치던 놈들이 뭘 어쨌다고?”

TV를 보고 있던 중국관 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혼잣말했다.

“저기 말고 다른 방송사는?”

“아직은 저곳이 처음입니다. 아마 저기가 맨 처음으로 보도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흐음, 저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보도한다는 건 경찰이 꽤 확실한 진술이나 물증을 확보했다는 건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수행비서와 속삭이는 강정문의 옆에 섰던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상님이 괜히 사흘째 출장을 다니고 있고 도훈이 저녁마다 푸짐한 제사상을 차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처럼 적반하장의 공세를 펴던 대자당을 향한 여론이 더 싸늘해질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 자업자득이지.’

TV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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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늦은 시간, 도훈의 집.

- 끄윽, 잘 먹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암, 고생했지. 그럼, 고생 많이 했지.

“......”

푸짐한 제사상을 맛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조상님의 자화자찬에, 무릎 위에 드러누운 순심이를 쓰다듬던 도훈은 실소를 머금어야만 했다.

- 만족하냐?

“별로요. 이번 일로 그런 기분을 느낄 생각은 전혀 없었는 걸요.”

오늘 저녁, 거의 모든 방송사 뉴스에서 ‘몰카’ 사건을 다시 다뤘다.

경찰에 소환된 홍보기획팀장이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과 물증까지 제출해, 정치공작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내용으로.

방송사 뉴스는 물론, 웬만한 매체의 인터넷판 뉴스도 같은 내용을 다루는 통에 총선을 앞둔 정국은 다시 요동치는 그런 상황이었다.

“자업자득이죠, 뭐.”

- 흠.

조상님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이번 몰카 사건은 대흥시가 포함된 지역구의 대자당 지역위원회 간부 몇에 의해 벌어졌다.

다만, 몰카 촬영이 현장에서 적발되어 사달이 난 일을 이렇게 키운 건 대자당 중앙당의 책임이 가장 컸다.

민의당 역시 중앙당 차원에서 이슈 몰이에 나섰다지만 결국 실패했고, 대자당 지역위 사람들이 실제 관련됐다는 걸 모른 대자당 중앙당이 이걸 ‘기회’라 여겨 반격에 나서며 일을 키웠다고 할 수 있었다.

“발뺌하지 않고 사과를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겠죠.”

- 그랬을지도 모르지.

“‘증거’가 없는 일을 정치 공세로 몰아간다고 뻔뻔하게 반격하는 건 제대로 된 정당이나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잖습니까.”

- 흠. 뭐, 그렇긴 하다.

조상님에게 정치는 이상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걸 진즉에 배운 도훈이었다.

정치인과 정당들이 상식에 기반한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겠지만, 선악의 잣대로 정치를 평가하는 건 분명 일면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걸 도훈은 모르지 않았다.

게다가 좀 진보적인 성향이면 선이고 보수적인 성향이면 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도훈은 단순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일은 상식적인 ‘선’을 넘은 것이 분명했기에 조상님이 나서도록 부탁한 것뿐이었다.

여당이 아닌 진보정당에서 일을 벌였더라도 도훈의 대응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다.

- 총선은 어떻게 될 것 같냐?

“글쎄요. 전 별로 관심 없습니다.”

- 쯧쯧. 인마, 시장이라는 놈이 관심을 안 가지면 어떻게 해?

“제가 보기엔 김용진 의원이 희대의 ‘뻘짓’을 하지 않는 이상 질 것 같지 않거든요. 그 양반이 당선되느냐 아니냐 말고는 우리 시정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거의 없잖습니까. 다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일은 제대로 하는 국회가 됐으면 하는 생각은 드네요.”

물류센터 공약 때문에 최소한 대흥시에서는 많이 난처한 지경에 처했던 김용진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질 게 뻔했다.

보수 야당들이 지나치게 물류센터 공약으로 ‘작업’을 한다면, 도훈도 다시 한 번 견해를 밝힐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조차 없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오래간만에 만난 강정문이 오늘 기분이 내내 좋았던 건 그런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을 터.

- 이대로만 가면 여당 압승은 몰라도 제1 야당 의석은 꽤 많이 줄어들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 시간 많이 남았습니다.”

이제 3월 중순.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까지는 딱 한 달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국회의원 선거의 공식운동 기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 이 사건만으로도 한동안 여론이 대자당에 비판적이지 않겠냐?

“글쎄요. 아까 보니까 도지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하던데, 그 사람도 조상님도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 잊고 있는 거? 그게 뭔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 조상님을 도훈이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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