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작전 - 3.
‘몰카’ 사건이 있던 다음 날 아침, 대흥시청 3층 시장실.
“... 저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요.”
“이렇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 못 했습니다.”
도훈과 전경완 부시장, 그리고 비서실 직원들은 시장실 한쪽 벽에 붙은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각, 국회에서 민의당 총선대책본부 대변인을 맡은 사람이 기자회견을 했다.
그 내용은 어제저녁 대흥시에서 터진 ‘몰카’ 사건.
- 배후가 누군지 아직 확실히 파악되지는 않았고, 경찰의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 관련자가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파렴치한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는 대변인의 모습이, 도훈과 직원들이 보는 방송을 포함 대부분의 방송 매체 아침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저게 1시간 전이라고 했죠?”
“맞습니다, 시장님.”
“... 노린 거군요.”
“분명 그럴 겁니다.”
“뭔가 나온 모양이죠?”
“대변인이 나선 걸 보면,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어제저녁 사건이 벌어지고 불과 12시간 정도 흐른 시점에 민의당이 움직였다.
배후를 특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슈 몰이를 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사건 대응을 지역이 아닌 중앙 차원에서 할 정도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건가?’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영배가 말했다.
“시장님도 피해잔데, 아직 경찰에서 연락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아직 9시 30분도 안 됐는데요. 저쪽이 너무 빠른 겁니다.”
“그럴까요?”
“네. 아까 제가 노렸다고 말한 건 바로 저걸 말한 거거든요.”
TV 화면에서 민의당 총선대책위 대변인이 사라지고 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한편, 민의당과 신민당, 진평당을 제외한 보수 야당들은 아직 이번 대변인 기자회견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내보이지 않은 채 정보획득에 주력하는 모양새입니다.
민의당은 대변인이 공식 기자회견을 했고, 기자회견 직후 신민당과 진평당에서는 ‘정치 구태를 청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신민당과 진평당이 즉각 반응한 건, 대흥시가 포함된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기 때문일 터.
아직 다른 두 정당의 반응이 없는 건, 그만큼 그에 대한 정보가 적기 때문일 터.
그 두 정당 중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저런 ‘무반응’은 그것대로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말없이 TV를 보던 전경완 부시장이 묻자 도훈이 반문했다.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 비서관 말처럼 시장님도 몰카 피해자의 한 사람입니다. 조금 전, 기자회견에는 시장님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곧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럴 테죠.”
“분명히 시장님께도 함께하자고 요구할 겁니다. 대변인까지 나서서 저러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경찰이 잘 밝혀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진흙탕 싸움이 되기에 십상인데···.”
조금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는 전경완에게 도훈이 담담하게 답했다.
“저는 이번 일에 발 깊숙이 담글 생각 없습니다. 민의당에는 호재일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매우 황당한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냥 누가 기획했고 지시했는지 밝혀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공식적인 제 입장은 이 정도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요.”
도훈의 말에 함께 자리한 이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전경완과 두진은 예외였다.
“누가 배후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의 배후가 밝혀져도 ‘당 차원’에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논란’으로 초점을 흐릴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서 더 발 담그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아무런 입장이 없어서는 안 되니까 사법당국의 ‘원칙적 처리’ 정도가 적당할 거로 생각하고요.”
“... 흠.”
사건의 본질은 명확하지만, 이 사건이 주목받으면 피해를 볼 쪽에서는 어떻게든 ‘논란’ 혹은 ‘정쟁’의 일환으로 가져가려 할 가능성이 컸다.
‘정치’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 도훈이 ‘정쟁’에 끼어드는 건 물론 휘말려 드는 것도 끔찍하게 여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민감한 시기에 터진 민감해질 수도 있는 사건에 도훈이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
띠리리리.
“안 의장이네요.”
업무용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도훈이 전화를 받았고, 모두의 시선이 도훈에게 모였다.
“네. 접니다, 의장님.”
- 통화 괜찮으십니까?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안 의장의 목소리.
아무래도 밤을 꼬박 새운 듯했다.
“말씀하세요.”
- 저도 조금 전에야 경찰이 밤새 수사한 결과를 전해 들었는데, 아직은 딱히 알아낸 게 없다고 하네요.
“... 그렇군요. 그런데 조금 전에 들으셨다고요? 중앙당에서는 한 시간쯤 전에 기자회견까지 했던데요.”
- 밤새 중앙당에서 변호사가 내려왔거든요. 도당 사람들도 달려왔고요. 서울에서 온 변호사가 주로 경찰을 상대했으니까 저보다 중앙당 쪽이 소식이 빨랐던 거겠죠.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건 당사자도 조금 전에야 알았는데, 중앙당에서는 훨씬 전에 기자회견을 했다?
그것도 밝혀진 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
‘거국적인 대응’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와중에 사건 당사자가 소외되는 게 전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 어제 그 몰카 찍던 사람들은 대흥시가 아니라 금산군 사람들이랍니다.
“의장님 동선은 누가 알려준 겁니까?”
- 하하. 그게 제일 황당합니다. 우리 민의당의 대흥시 선거운동본부에도 청년 당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그들이랑 친구랍니다.
“......”
- 친구가 물어봐서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해 준 것뿐이라고 말은 하는데, 아무래도 의도를 갖고 심어놓은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 물류센터 일이 논란이 되기 전에는 그쪽이 많이 불리했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다급해서 그런 짓까지 생각한 모양입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대변인 기자회견까지 한 겁니까?”
도훈의 목소리에 살짝 비아냥이 섞였기에 안 의장이 조금은 머쓱해 하는 게 느껴졌다.
- 중앙당에서 판단하고 진행한 거라···.
“......”
- 아직 조사가 끝난 건 아니니까 두고 봐야죠. 어제 시장님이 뭔가 알아내면 알려달라는 얘기를 하셔서 전화를 드린 겁니다. 아, 그리고 어제 미처 감사 인사를 다 드리지 못했던 것도 다시···.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시장님이 그 몰카 찍던 사람들 발견하셨고, 만나는 장소를 돈가스집으로 바꾸셔서 별 탈이 안 났잖습니까. 시장님 판단이 옳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안준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약속장소를 바꾸지 않고 안준식이 예약한 식당 내실에서 만났더라면, 설사 조상님이라고 해도 몰카에 찍히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는 없었을 테니까.
다만, 도훈은 어제 일로 감사까지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대신,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말씀하시죠.
도훈이 이번 일과 관련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경찰, 검찰에서 진실을 밝혀내 관련자를 합당하게 처벌했으면 좋겠고, 민의당이 이 일로 이슈 몰이를 하든 말든 거기에 관련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 당연한 말씀이겠죠.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 그게···, 저는 충분히 이해하는데, 다른 분들은 또 모르죠.
“... 일단 제 뜻은 그렇다고 전해주세요.”
- 그거야 물론이고요.
“안 의장님도 고생이십니다.”
- 하하. 아닌 게 아니라 좀 그렇습니다.
안준식이 씁쓸하게 답했고 도훈이 그를 위로했다.
안준식이 대흥시 시의회 의장이라지만, 민의당 중앙당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지방 기초의회 초선의원일 뿐.
대한민국에 민의당 당적을 가진 기초의원만 ‘천’ 단위인데 어디 눈에 들어오겠는가.
안준식과 통화를 마친 도훈은 궁금해하는 전경완과 비서실 직원들에게 통화내용을 설명했다.
“... 역시.”
“쯧쯧.”
“뭐, 그런···.”
미간을 찌푸린 사람들이 제각기 한두 마디씩을 하는데, 지연이 시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시장님, 10시 간부회의까지 15분 남았습니다.”
출근하자마자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던 도훈이었다.
“그럼 저 잠깐만 혼자 있게 해주세요. 중요한 통화 좀 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경완과 직원들이 나가고 혼자 남겨진 도훈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 김 시장··· 님. 오래간만입니다. 뉴스 봤는데 괜찮···.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저는.”
- ... 그렇군요, 하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강정문의 말을 싹둑 잘라버린 도훈이 피식 웃었다.
오정민과의 만남 직후의 통화가 가장 최근의 통화였으니 오래간만인 게 맞았으니까.
물론, 둘 사이 개인적인 연락만이었고 도청과 시청의 공식 업무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도훈이 바로 용건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관 생각나시죠?”
- ... 당연하죠. 하하. 아, 물론 중국관보다 김 시장이랑 어울리는 게 즐거웠던 겁니다만. 하하하.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오늘 당장에라도 중국관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술값도 제가 냅니다.”
- ... 뭡니까, 부탁이란 게?
당장에 진지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지는 강정문.
미소를 머금은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양반을 이렇게 등장시키게 될 줄은 몰랐네.’
도훈은 안준식에게 했던 얘기를 강정문에게 반복했다.
- 내 단단히 일러 놓겠습니다. 괜한 사람 끌어들여서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말이죠.
“그래 주시면 제가 한 번 쏘겠습니다.”
- 알았어요, 하하.
강정문과 통화를 마친 도훈이 핸드폰을 붙들고 잠시 망설이다 조상님에게 시선을 줬다.
“... 확실하죠?”
- 인마, 나 못 믿냐?
“당연히 믿죠. 사안이 사안이니 그냥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 확실해.
“알겠습니다.”
어제 몰카 찍던 청년들을 잡아낸 뒤, 조상님은 잠시 그들에게 빙의해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가를 이미 확인했다.
다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 일을 벌인 관련자들이 극히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물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 어쩌려고?
“일단 지켜보렵니다.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대응해야죠.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자백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글쎄다. 어제 걔들, 나이는 많지 않아도 핏덩어리는 아니었다.
앞뒤 분간 못 하는 철부지들은 아니라는 말.
그들이 돈 때문에 몰카를 찍은 것도 아니었기에, 극적인 심경의 변화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아직 밝히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나름 신념을 갖고 청년 정치단체에 가입하기까지 했으니까.
다만, 도훈에게는 경찰도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조상님이 있잖은가.
씨익.
도훈이 조상님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자, 조상님이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웬만하면 나 안 끼어들게 한다며?
“이건 웬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 그렇긴 하다만, 그냥 당장 처리하지, 왜?
두 청년은 아직 경찰 조사 중인 상황.
조상님이 잠시 출장을 가서 힘을 쓰면 문제 해결은 쉽다.
“그 사람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줘야죠.”
- 흠? 시간 낭비일 것 같다만.
“두고 봐야죠.”
시계를 확인한 도훈이 몸을 일으켰다.
간부회의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하는 거 봐서, 한 만큼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입니다.”
- 뭐, 네 생각대로 해라. 대신··· 알지?
“네. 거하게 한 상 차리겠습니다.”
담담히 답한 도훈이 시장실을 나섰고, 입을 다문 조상님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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