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63화 (164/279)

163. 작전 - 1.

봄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3월 초.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러게 말이야.”

“공식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정말 볼 만할 것 같습니다.”

“글쎄. 전국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우리 동네도 그럴까?”

“김 의원이 유리하긴 하겠지만, 장담할 정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점심을 먹고 비서실 소파에 모여 앉은 도훈과 직원들이 차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때가 때이니만큼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

전국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온갖 이슈가 뜨고 가라앉으며 ‘여당이 유리하네’, ‘야당이 선방할 거네.’ 하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각 당에서 더는 연락이 안 오는 게 다행이에요.”

지연의 말에 영배가 웃으며 답했다.

“그 사람들도 아는 거죠. 선관위에 책잡힐 일 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렇겠죠. 여하튼, 얄미워 죽겠어요. 전에는 그렇게 시장님과 접촉하려고 들들 볶더니 이제는 알아서 눈치를 보고 있잖아요.”

3월이 돼서 도훈이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대흥시의 국회의원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공식 선언을 한 것이었다.

지역 기자들이 제법 참여해 질문도 여럿 받았다.

노골적으로 말은 그렇게 해도 여당이나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지만, 도훈은 이렇게 답하며 그 질문을 일축했다.

- 저도 투표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저 한 사람의 개인 성향일 뿐, 다른 누군가에의 투표 행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날, 선언 말미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 그런 제 노력에 반하는 모든 행위는 곧바로 선관위에 신고할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껏 은근슬쩍 접촉을 시도하던 걸 계속하면 이제부터는 조용히 있지 않고 선관위에 넘길 거라는 엄포였다.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야당 후보들로부터의 연락이 뚝 끊어졌고 그걸 제일 좋아한 게 다름 아닌 지연이었다.

“시의원들도 발바닥에 땀이 나라 뛰어다니는 것 같던데요.”

“그럴 수밖에 없죠. 시의원 공천은 대부분 지역 국회의원 아니면 지역위원장의 권한이니까.”

일부 정당을 제외하면 기초의원의 공천에 가장 입김이 센 건 대부분 그 지역 지역위원장이다.

한 마디로, 거의 목줄을 움켜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지역위원장들이 국회에 입성하느냐 못 하느냐가 판가름 나는 총선 때 눈에 들어야 ‘다음’이 보장된다.

대흥의 시의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기초의원들이 바쁠 수밖에.

띠리리리.

비서실 유선전화가 울렸고 지연이 전화를 받더니 도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지역경제과 과장입니다.”

“주세요.”

전화기를 건네받은 도훈이 말했다.

“김도훈입니다.”

- 저 김준영 과장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 제가 지금 밖에서 점심 먹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상한 소리라뇨?”

- 어느 당인지 확실치는 않은데, 총선 공약으로 대흥시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유치하겠답니다.

“... 대규모 물류센터요?”

- 네.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대흥시는 광역시인 대전과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물품의 전국 유통을 고려한 대규모 물류센터가 위치하기에는 입지가 좋지 않으니까.

대흥시는 고속도로와 거리가 멀다.

그뿐 아니라 기차가 지나가지 않아 역도 없다.

그리고 고속도로와 가깝고 기차역이 있는 자치단체가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교통’만 생각해도 대흥시가 아닌 바로 옆 OO 시를 우선하여 생각하는 게 상식.

“그냥 헛소문 아닙니까?”

- 아닌 것 같습니다, 시장님.

“... 흐음.”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공약이 아닌, 딱 ‘선거’만 노린 속 빈 강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과장님, 그 소문에 관해 좀 더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알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부탁은요. 제 일인 걸요.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선거 때 후보자들이 갖은 수를 다 쓴다지만, 지키기 어려울 게 뻔하거나 불가능한 걸 공약으로 내거는 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누가 우리 시에 물류센터를 유치한답니까?”

“그런 얘기가 있다네요. 어느 당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답니다. 그래서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물류센터라···. 유치하면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제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경영자라면 대흥시에 안 짓죠. 저 같아도 그러겠습니다.”

“... 하하, 그거야 모르죠.”

두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역시 도훈과 판단이 비슷했다.

좀 더 입지가 좋은 곳은 대전 인근에 대흥시를 제외해도 여럿 꼽을 수 있다.

대규모 물류센터를 유치하는 건 지자체에도 나쁜 일이 아니니 법적으로 가능한 혜택을 줘서라도 유치하려고 할 터.

지자체가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은 대동소이할 테니까, 결국에는 물류센터 입지의 기본 특성이 우선되는 게 당연했다.

“이거 괜히 난처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두고 봐야죠. 어느 당 후보가 그런 공약을 내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걸 다른 당 후보라고 생각 못 하겠습니까?”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도훈과 두진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핸드폰을 붙들고 있던 영배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이거 얘기하는 거 같은데요?”

“기사 났어?”

“네.”

영배가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놨고, 모두의 시선이 액정을 향했다.

“... 역시···.”

지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액정 속의 중년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이 양반 3등 할 것 같다는 얘기가 돌더니···.”

“다급하긴 했나 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도훈도 직원들도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액정 속의 중년 남자는 대자당 지역위원장이었고, 최근 그의 지지율이 다른 두 후보보다 낮다는 소문이 쫙 돌았었으니까.

모두가 ‘물류센터 유치’라는 공약을 다급한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식으로 ‘던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공약의 허실을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간파할 거라고 말이다.

그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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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시장실.

“난리까지라고 할 건 아니지만, 의외로 이슈가 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검색하는 도훈의 말에,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뭔가를 보고하던 두진이 맞장구를 쳤다.

“김 의원이 좀 난처하게 됐네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난처하게 된 것보다는 난처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더 정확하긴 합니다.”

지역 언론사가 ‘물류센터’와 관련한 이야기를 아직도 다루는 이유는 가운데, 이게 ‘논란’이 된 이유가 있었다.

지지율 3위라는 대자당 후보의 ‘물류센터 유치’ 발언에 민의당 쪽에서 ‘현실성 없는 얘기’라 논평했다.

문제는 그 논평의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 우리 지역에 물류센터 유치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만약 현실이 된다고 가정해도, 대흥시보다 유리한 입지를 가진 지역이 여럿이다.

그다지 문제 될 게 없는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한 말이었지만, 이게 대흥시 시민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정확하게는, 지지율 2위와 3위인 후보가 동시에 나서서 그 논평을 성토함으로써 시민들의 감정을 부추겼다.

‘왜 다른 곳은 되고 대흥시는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 야권 후보가 지역 발전을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이야기를 무시하는 건 야당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 물론, 물류센터 유치는 대흥시건 아니건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 아직도 여당은 경제에 이렇게 안일한 대응을 하는가? 여당은 지금이라도 경제 회복에 실패한 것에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몇몇 지역 신문 외에는 다루는 곳이 없는 이슈였지만, 각 후보의 SNS 계정 등을 통해 드러나는 대흥시 민심은 민의당 김용진 의원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 논평을 기자들 앞에서 발표한 것이 민의당 OO시 지역위 사람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전국은 물론이고 대흥시가 포함된 선거구 내 다른 지역은 별달리 관심이 없는 이 이슈가 유독 대흥시에서만 과열되고 있었다.

시의원을 필두로 한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 사람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인데, 김용진 의원의 SNS 계정에 달린 댓글들을 봤을 때 그 노력이 그다지 효과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시민들이 좀 냉정해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도록 야당 후보들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지 않습니까.”

“... 쩝.”

민의당 대흥시 지역위는 죽을 맛이라지만, 야당 쪽은 신이 난 상태.

지역위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이던 제2야당 민국당조차 최근에는 아주 신이 나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었다.

띠리리.

전화벨이 울렸고 도훈이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 시장님, 지역지에서 전화로라도 인터뷰하고 싶다는···.

“또요?”

- 네.

“휴우.”

대흥시에서 논란이 커지다 보니,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도훈의 입장을 묻는 연락이 계속 오고 있었다.

- 어떻게 할까요?

“전과 달라진 거 없다고 하세요.”

- 알겠습니다.

이게 논란이 된 직후, 도훈은 처음으로 질문한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었다.

- 유치된다면 좋겠지만, 냉정히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실린 도훈의 발언은 이게 다였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 물류센터 유치라는 몇 글자 말고 어느 회사가 어떤 규모로 물류센터를 짓고자 하는지부터 밝혀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도훈의 답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리지 않았고, 이후로도 다뤄지지 않았다.

대자당 후보가 밝힌 공약에는 ‘물류센터 유치’ 말고는 실질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역 언론들은 그 공약의 실제 내용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대흥시냐 아니냐’는 논쟁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훈은 지역 언론이 야당 후보들과 손잡고 이 상황을 ‘만들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음 뭐였죠?”

“문화체육과에서 건의한···.”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도훈의 말에 두진이 답하길 얼마.

다시, 책상의 전화기가 울렸다.

띠리리리.

“네.”

- 시의회 의장님의 면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면담이요? 언제요?”

- 가급적 빠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 가지 토를 다셨는데···.

“뭔데 그래요?”

- 조용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잠시 생각한 도훈은 저녁에 일정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조용한 곳에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회신하도록 조치했다.

“안 의장이 조용히 보자고 했다고요?”

“네. 올 게 온 것 같습니다.”

“... 허허.”

이번 물류센터 논란이 터지기 전까지, 야당과 달리 민의당 쪽은 도훈에게 총선에서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현역 의원인 김용진이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도훈이 ‘중립’을 지키고자 함을 알기 때문이었을 터.

시의회 의장인 안준식이 조용히 만나자고 하는 걸 봐서는 여론을 진정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더 안 풀리고 있는 듯했다.

“때가 좋지 않습니다, 시장님.”

“그렇긴 한데, 얘기는 들어 봐야죠. 김 의원이나 안 의장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겠죠.”

“... 그래도···.”

“섣불리 나설 생각 없습니다. 아무래도 작전인 것 같아서 좀 답답하고 짜증이 나긴 합니다만, 최소한 거절을 해도 직접 만나서 거절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

“제 방이나 안 의장 사무실에서 선거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렇잖습니까.”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조심하면 괜찮겠죠.”

걱정하는 두진에게 그렇게 말한 도훈은 다음 보고 안건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날 저녁.

“... 하하.”

“당신들, 도대체 이걸로 뭘 하려고 했던 겁니까!”

낯선 두 남자에게 호통을 치는 안준식 옆에 선 도훈이 허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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