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각자의 신념 - 3.
시비가 붙고 언쟁이 벌어진 뒤 상황을 알 수 없는 굉음까지 들려왔다고 주말 잔업 중이던 시장이 뛰쳐나가는 건 솔직히 ‘오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제지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시청 직원이 둘이나 있었다.
솔직히 말해, 거기에 정임이 있고 굉음이 들려온 뒤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더라면, 걱정이 앞선 도훈과 두진이 이렇게 달려 나오지는 않았을 터.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게 중심을 잡아야 할 도훈치고는 좀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정임은 도훈에게 그 정도 행동을 하게 할 정도의 ‘정’이 쌓인 동료였다.
그리고 도훈은 그런 동료에게 부리나케 차를 타고 달려간 현장에서 야단을 맞았다.
“아니, 여기까지 직접 오셨어요? 차분하게 기다리셔도 됐을 텐데요.”
빌라 앞에 나와 있다가 빠르게 다가오는 도훈의 차를 발견한 정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타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수석에서 내린 두진은 빠르게 정임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고 주무관,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다치긴 왜 다쳐요, 제가? 싸움이 난 것도 아닌데.”
“어휴, 다행이네.”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 두진의 옆에서 도훈이 비슷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큰소리가 나고 정임 씨가 전화를 끊어버리니 상황을 알 수가 없었잖아요. 저는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경찰관도 둘이나 옆에 있었는데.”
“... 하하.”
옆에 세워진 순찰차를 흘끔 하며 눈총을 주는 정임의 모습에 도훈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는 변명했다.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장실에서 밀린 일 처리 하던 중이니 괜···.”
“그게 공식 일정인 거죠.”
“... 쩝.”
“아, 자네가 여기 있었잖아. 자네도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가 났잖아? 전화도 갑자기 끊어버렸고, 당연히 걱정이 안 됐겠어?”
두진의 말에 정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했다.
“시장님이나 실장님이나 침착한 분들이신데, 이런 모습은··· 참 색다르네요.”
타박은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는 듯한 정임의 모습에 도훈과 두진이 나란히 쓴웃음을 지었고, 도훈이 입을 열었다.
“집 안의 상황은 정리됐습니까?”
“네. 좀 전에 아들이란 사람이 갔거든요.”
“그 큰소리는 뭐였어요?”
“아들이 행패 부려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어르신이 더 참지 못하고 문에다가 물건을 던져버리셨거든요.”
“... 아.”
“사람을 노리고 던진 게 아니라서 물건만 박살 나고 말았어요.”
“... 다행이네요.”
자신을 향해 상스러운 소리를 하는 아들은 묵묵히 참던 노인이, 경찰관들과 말싸움을 하는 아들을 지켜보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단다.
- 네 화풀이 상대는 나야, 이놈아! 어디에다 대고 패악이야! 이 못돼 처먹은 자식아! 나가! 당장 나가!
문에 던져 박살 난 전기밥솥에 놀랐는지 불벼락을 치듯 매섭게 고함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놀랐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그 일이 있고 곧바로 집을 나갔단다.
“그래서요?”
“송 주무관이랑 경찰관님들이 할아버지 진정시키고 있어요. 저는 지연이한테 전화하려고 나왔다가 시장님 차를 본 거고요.”
“그랬군요.”
그렇게 정임과 대화하고 있는데, 두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고 빌라 현관으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과 얼굴이 익숙한 주민센터 직원, 그런데 두 번째로 모습을 보인 경찰관이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경찰관에게 업혀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이 아마 정임이 다른 직원과 찾아온 그 노인인 듯했다.
“시장님, 여긴 어쩐 일로···.”
“아, 그냥요. 그런데 어르신은 왜···?”
도훈을 알아본 직원이 얼른 다가와 말을 걸었고 도훈은 곧바로 순찰차로 걸음 하는 경찰관들과 눈으로 인사하며 답했다.
“어르신이 무릎 통증을 호소하셔서요. 병원으로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어머, 어떻게 해. 아까 물건 던진다고 무리하셨나 봐요.”
“그런 것 같습니다.”
직원의 말에 정임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경찰관 하나가 무전기로 뭐라 대화를 하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직원이 묻자 도훈에게 꾸벅 인사하며 경찰관이 답했다.
“금선면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답니다.”
“사고요?”
“네. 트럭 짐칸에 실렸던 게 도로에 쫙 흩어져서 국도가 난리랍니다.”
“저런 심각하답니까?”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다고 하네요. 다만, 물건이 도로 위에 흩어져서 그걸 치울 인원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현장 통제를 위해서 저희도 바로 오라고 하네요.”
경찰관에 이어 누군가와 통화하던 두진도 통화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지구대장과 통화했는데, 물건만 빨리 치우면 될 것 같답니다. 안전센터에도 협조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시장님.”
“저희도 가봐야 하는 건 아니고요?”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현 위치에서 병원과 사고 지점은 정반대의 위치.
대흥시가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니 들렀다 갈 수도 있겠지만, 지구대와 안전센터 인원이 총출동한 상황.
도훈이 얼른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그쪽으로 가보셔야겠네요. 다행히 저희가 바쁘지 않으니까, 어르신은 저희가 병원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도훈이 순찰차 뒷좌석에 앉은 노인을 바라보며 답했다.
굳게 입을 다물고 눈을 감은 노인에게서 도훈은 이상하게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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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차로 노인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의사는 엄한 표정으로 무릎을 고정하지 않으면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말까지 했지만, 노인은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의사가 엄포를 놓고 도훈과 두진, 함께 간 주민센터 직원까지 설득했지만 무소용.
결국, 진통제를 처방받고 급한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라도 착용하고 있으라는 보호대를 받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노인을 집으로 데려다주고 밖으로 나온 직후, 도훈이 주민센터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송 주무관님, 저 어르신에 대해 좀 알아요?”
“저도 이번에 처음 봬서 잘은 모릅니다. 다만, 이웃 주민들에게 좀 듣기는 했죠.”
“안에서 보니까 다른 가족사진은 전혀 없고 부인으로 보이는 분하고 찍은 것 딱 하나만 있던데···.”
자식들과의 관계가 나쁘다더니 노인의 집 안에는 가족사진 같은 것도 없었다.
사진이라고는 유일하게, 책상 위에 어떤 중년 여인의 사진이 딱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그분이 부인 맞습니다. 돌아가신 지 좀 오래됐다고 하더군요.”
도훈은 시청으로 돌아가는 김에 직원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직원에게서 잠깐 노인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빌라 이웃에게는 두루 다정한 어르신이고, 이런저런 일로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성실하게 생활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미 전해 들었던 것에 비해 달리 추가된 내용이 없었다.
직원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했던 마지막 말을 제외하면.
“... 과거에 공무원이었다는 얘기가 있긴 했습니다.”
“공무원이요?”
“네.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 얘기를 해준 주민도 어르신이 술김에 흘린 이야기를 유추해서 짐작했다고 했거든요.”
“흐음.”
운전하던 도훈이 병원에서도 거의 말이 없던 노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릎이 퉁퉁 부어 통증이 꽤 심했을 텐데도, 살짝 상기됐을 뿐 내색하지 않던 ‘도길수’라는 노인의 얼굴을.
‘일반 공무원인 것 같지는 않던데···. 경찰이나 군인 쪽인가?’
운전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도훈의 상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형편이 딱하지만, 주민센터 담당 직원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어떻게든 상황이 나아질 것을 기대할 뿐.
“고생스럽더라도 송 주무관이 잘 살펴주세요.”
“고생은요. 제 일인 걸요.”
직원을 내려준 도훈은 시청으로 차를 몰며 노인에 대한 일을 차츰 잊어갔다.
하지만, 곧 도훈은 의도치 않게 도길수 노인에 대해 알게 될 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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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난 화요일 저녁.
“한 잔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아쉽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훈은 어느 식당 앞에서 오늘 참여한 주민 모임의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들만 있는 게 아니고 술을 안 좋아하는 이들이 있어서 술을 모임에서 안 마시는 게 무척 아쉬운 모양.
도훈은 그 덕분에 술을 안 마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대표와 헤어진 도훈과 두진, 영배가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우, 배고프다.”
영배의 중얼거림에 도훈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난 설명하느라 입이 바빴다고 하지만, 형은 밥도 못 먹고 뭐했어?”
“하? 내가 네가 하는 얘기 다시 설명하는 거 한두 번이었냐? 나만 그랬나? 실장님도 그러셨는데, 뭐.”
영배가 주변을 살피고는 편한 말로 투덜거렸다.
시민들과 만날 때 도훈이 이런저런 얘기나 설명, 설득의 말을 한다고 해도 같이 참여한 비서실 직원이 편히 있는 건 아니었다.
사안에 따라, 흩어져서 일일이 주민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줘야 할 때도 분명 있었으니까.
“실장님도 식사 제대로 못 하셨어요?”
도훈이 묻자 두진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나도 아주머니들 상대하느라 바빴네. 좀 배가 고프긴 해.”
“뭐 좀 먹고 갈까요?”
“그럴까?”
바로 귀가하지 않고 배를 채우기로 한 세 사람이 적당한 곳을 찾던 그 순간.
“도 경사님!”
코너를 돌던 세 사람은 저만치서 들리는 누군가의 고함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약 20m 앞 길바닥에 쓰러진 한 사람과 그를 향해 다급히 달려가는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
“뭐야?”
“사람이 쓰러진 것 같은데?”
“이런!”
도훈 일행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쓰러진 사람을 향해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세요?”
“아, 갑자기 쓰러졌어요. 다리가 불편하다더니···.”
먼저 쓰러진 사람을 살피고 있던 초로의 남자가 답했고, 도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엎어졌다 몸을 일으키는 사람을 향했다.
“어르신?”
“... 시장님?”
쓰러졌던 남자는 다름 아닌 도길수란 이름의 노인이었다.
“괜찮으세요?”
“... 괜찮아요.”
무뚝뚝하게 답하는 노인의 미간은 통증을 참느라 일그러져 있었고, 이마에는 진땀이 맺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통증이 무척 심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그런 모습이었다.
“아이고, 도 경사님. 제발 말 좀 들어요!”
도길수 노인을 살피던 초로의 남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호통을 쳤고 도훈의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도길수 어르신을 아세요?”
“알다마다요. 이 양반이 내 첫 사수···.”
“쓸데없는 얘기 그만해.”
남자의 말을 도길수 노인이 자르더니 끙끙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미끄러진 것뿐이에요. 혼자 갈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다니까요. 나 놔두고 일들 보세요. 자네도 그만 가게.”
도 노인은 부축하려는 영배를 뿌리치고는 걸음을 옮겼다.
절뚝거리긴 했지만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고 도훈이 난감한 표정을 했다.
토요일에 가봤던 그의 집까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당장 집까지 가는 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의사의 진단에 따라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저분 경찰관이셨습니까?”
도훈은 도길수 노인의 등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이 없는 가운데, 두진이 초로의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나도 재작년까지 경찰이었는데, 저 양반이 내 첫 사수였어요.”
“이 지역에서 근무하셨나요?”
“아뇨. 경기도였죠.”
이미 도길수 노인은 보이지 않았지만, 초로의 남자도 도훈처럼 도 노인이 사라진 방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휴, 도대체 저 양반 말년이 왜 이 모양이래.”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는 초로의 남자의 말에 도훈은 그를 통해서라도 도길수 노인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와 함께 인근의 식당에 자리했다.
그리고 꽤 충격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생판 모르는 남을 살렸죠. 그 대신 부인이 돌아가셨고요.”
“네?”
“말 그대로예요. 자기 부인 목숨보다 시민의 목숨을 우선시했다고요.”
“......”
도 노인의 후배라는 남자의 말에 도훈, 두진, 영배 모두가 말문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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