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55화 (156/279)

155. 묻어가기 싫다 - 1.

1월 말의 어느 수요일 오후.

외부에서 식사하고 막 돌아온 도훈에게 지연이 말했다.

“시장님 나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계위원회 끝났습니다.”

“그래요? 결과는요?”

“황상돈 팀장에 대해 징계 해고를 의결했답니다.”

“흠, 저 나간 뒤에 결과가 나왔다면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의견이 분분했던 모양이에요. 점심시간까지 계속 회의를 이어갔던 걸 보면요.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답니다.”

시의회에 분란을 일으킬 뻔한 일은 넘어갔지만, 비위행위자에 대한 처분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미 수사당국이 수사 중인 가운데, 시청은 그 수사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 징계 절차에 착수했었던 것.

황상돈 본인은 지역 언론을 대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인터뷰하는 등의 행동을 했지만, 도훈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총액은 많지 않지만, 반복적으로 접대를 받은 것과 그 책임을 엉뚱한 데 돌리고 법적 대응 어쩌고 하며 여론전을 하려는 모습이 징계위원들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한 것 같다고 그러시더군요.”

“누가요?”

“부시장님이요. 감정을 앞세우면 안 된다고 민간인 위원들 설득하느라 애 많이 먹으셨답니다. 시장님께 꼭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하하.”

징계위원회 위원장은 전경완 부시장이었고, 전체 위원 중 과반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위원들의 감정대로라면, 총액에 주목할 게 아니라 반복적인 갑질에 대한 책임으로 최고 중징계인 파면 처분을 내리는 게 맞겠으나 징계는 엄연히 규정에 근거한 처분이어야 할 터.

공무원이라고 무조건 비호 하는 게 아니라 비위의 정도에 맞는 처분을 내리기 위해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했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이따가 부시장님 방에 들러서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시장님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어디서요?”

“대자당 지역위원회요.”

“... 또 총선 때문이겠네요.”

“아마도요.”

이제 다음 총선이 100일도 안 남았다.

후보자 등록이나 선거 운동 개시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이미 총선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

대흥시가 포함된 지역구에서는 현역인 민의당 김용진 외에도 제1, 제2 야당에서 후보가 출마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여당이 잠잠한 게 다행입니다.”

듣고 있던 영배가 끼어들었고 지연이 말없이 웃었다.

총선에 후보를 내려는 각 당 지역위에서 도훈을 만나고자 하는 건 지원을 부탁하기 위함.

선출직 공무원인 시장은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의 의견 표명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뭐라고 답하셨어요?”

“시장님께 말씀 전하겠다고만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임기 절반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 도훈은 대흥시 시민에게 제법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정식으로 여론 조사를 해본 건 아니었지만, 밥 먹을 때는 물론 저녁마다 시민 모임을 찾아다니며 일반 시민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인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은 그걸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각 정당 지역위에서도 그걸 아니 도훈의 지원을 얻으려 하거나 꼭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도훈과 접점을 맺으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용진 의원과 민의당 쪽은 잠잠했지만, 다른 정당들의 처지는 달랐다.

“참, 오늘 대자당 쪽에서 전화한 건 누구였어요?”

커피를 타던 영배가 지연에게 뒤늦게 생각난 걸 물었다.

“이번에도 위원장이라고 하던데요.”

“하하, 역시 차 의원은 시장님이 정말 싫은가 봅니다.”

영배의 말에 도훈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유일한 대자당 소속 시의원이지만, 차혜진은 도훈에게 지원해달라는 말은커녕 ‘총선’과 관련해서는 어떤 말도 일절 하지 않았다.

당 지역위에서는 좀 나서 보라는 요구를 제법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가망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내두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급한 대자당 지역위원장이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면서도 자주 도훈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벌써 이런데, 나중에 더 심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이쪽에서 반응이 없으면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겠죠.”

도훈의 담담한 말에 지연이 푸념하듯 대꾸했다.

“제발 빨리 그래 줬으면 좋겠네요.”

“곧 그럴 겁니다.”

지연이 도훈을 다독이듯 말하는데 비서실 전화기가 울려 지연이 전화를 받았다.

도훈이 커피메이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아, 민국당 지역위원장님이요? 시장님과 통화하고 싶으시다고요?”

“휴우.”

전화 응대를 하면서 ‘뭐라고 답해요?’라고 눈빛으로 묻는 지연의 모습에 도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1야당인 대자당은 대흥시에 시의원이라도 한 명 있고 지역위 조직이 건재했지만, 제2야당인 민국당은 시의원은커녕 지역위원회조차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

당연히, 마음이 더 급할 수밖에 없을 테고 도훈의 성향상 대자당보다는 자신들이 그나마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그쪽은 더 적극적이었다.

“제 방으로 돌려주세요.”

“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도훈이 얼른 커피를 한 잔 따라서 시장실로 들어갔고, 지연이 옆에 앉은 영배에게 푸념했다.

“차라리 자꾸 이렇게 귀찮게 하면 다른 당 후보 도와드릴 거라고 하면 좀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하하, 아이디어 좋네요. 이따가 시장님께 한 번 권해 보세요.”

“저 장난 아닌데요.”

“저도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지연과 영배가 쑥덕거리는 가운데,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내내 소파에 앉아 순심이를 쓰다듬고 있던 두진이 중얼거렸다.

“우리 지역에서만 저러면 다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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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책 협의 좋습니다. 하지만, 그걸 꼭 만나서 할 필요는 없죠. 구상하시는 공약을 서면으로 보내주시면 저희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아이고, 시장님. 사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거 아닙니까?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만나서 얘기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글을 명쾌하게 쓰시면 오해살 일이 없지 않습니까? 감상문도 아닌 정책 공약인데요.”

- 하하. 김 시장님.

상대방은 아주 간절한 모양이었지만, 도훈은 조금도 빌미를 주지 않았다.

민국당 지역위원장의 만나자는 제안을 줄기차게 거절하길 얼마, 지역위원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 휴우, 김 시장님. 이거 좀 솔직하게 얘기해도 됩니까?

“그러시죠.”

- 혹시 우리 당 대표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의향 있어요?

“... 민국당 당 대표님이요?”

- 예.

현재 민국당 당 대표는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를 경험했지만, 지금은 현역 의원도 아닌 노 정치인.

당 대표가 된 뒤, 호남 출신 정치인에 일부 보수 정당 출신이 뒤섞인 민국당에서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잡음을 차단하느라 부쩍 늙어버렸다는 얘기를 듣는 인물이었다.

“... 글쎄요.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그 용건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겠다는 거네요?

상대방의 말에 약간 희망이 어리자 도훈은 일부러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혹여 이번 총선 관련한 것이라거나 저를 민국당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주제라면 무조건 거절할 겁니다.”

- 아이고, 왜 그리 매정하게 말합니까?

하소연하는 듯한 상대의 말에 도훈이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다른 때였다면 이렇게 줄기차게 거리를 두는 도훈에게 진즉에 화를 낼 법도 했다.

전화기 너머 민국당 지역위원장은 50대 초반의 변호사.

나이 차이는 물론, 사회적 경력도 도훈과 비교가 되지 않는 상대였으니까.

‘그놈의 선거가 뭔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어휘 선택과 말투에 신경 써가며 한참을 통화한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

통화 시간을 길었지만, 딱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 정책 협력 등을 위해 만나자.

- 때가 때이니만큼 서류로 해도 된다.

“... 뭐 이런 걸 10분이 넘게 전화로 얘기한담.”

이렇게 성심성의껏 ‘거절’했지만, 그리 멀지 않아 다시 전화할 게 뻔했다.

일절 상대해주지 않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런 경우 비서실 직원들이 그들을 감당해야 할 테니 차라리 도훈이 상대하는 게 빠르고 쉬웠다.

“다음은 뭐였더라?”

도훈이 중얼거리며 일정표를 확인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고 지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님, 통화하시는 동안 국회의원 비서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요.”

“국회의원 비서요? 설마, 김용진 의원 비서랍니까?”

“아닌데요. 서울의 오정민 의원 비서랍니다.”

“... 오정민 의원이요?”

“네.”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든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었으니까.

“용건이 뭐라고 하던가요?”

“혹시 주말에 서울에 오실 계획이 없는지, 그리고 그런 계획이 없다면 내일이나 모레 낮에 잠깐 오정민 의원과 만나주실 수 있는지 묻던데요?”

“... 예?”

뭔 황당한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 된 도훈.

갑자기 서울에 올 계획이 없냐고 묻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니 선거 대비에 바쁠 사람이 왜 대흥시에 온다는 걸까?

‘... 이건 또 무슨 꿍꿍인 걸까?’

오정민에 대한 호감이 전혀 없는 도훈.

조상님조차 ‘주의’하라는 말을 했었지 않나.

상대의 의도가 뭘까 생각하는 도훈에게 지연이 말을 이었다.

“제가 시장님 답을 메시지로 보내주기로 했거든요. 뭐라고 답하면 될까요?”

“... 음. 용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에 서울 갈 일 없고 주중에 내려온다고 해도 바빠서 따로 시간 못 낸다고 전하세요.”

“그래도 돼요? 여당 재선의원이던데.”

“우리 지역 의원도 아닌데요, 뭘. 다른 당 사람들도 다 피하고 있는데, 굳이 우리 지역 아니더라도 민의당 의원 만날 필요는 없겠죠.”

“알겠습니다.”

지연이 나갔고 도훈은 만나자는 오정민의 의도가 무엇일지를 잠시 생각하다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만날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 뭐해. 에너지 낭비야.”

애써 오정민을 머릿속에서 밀어낸 도훈이 인터컴의 스위치를 눌렀다.

- 네, 시장님.

“5분만 있다가 오후 일정 시작하죠.”

-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컴에서 손을 뗀 도훈이 서류를 챙겼다.

오후 첫 일정은 세무회계과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어서 제법 회의자료가 두툼했다.

“일이나 하자.”

서류를 챙겨 든 도훈이 비서실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정치인이 생각보다 훨씬 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될 건 전혀 예상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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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인 금요일 오전.

인상을 잔뜩 찌푸린 도훈은 시장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제 오후 강정문과 통화했던 걸 되새기는 중이기도 했다.

- 김 시장. 정말 미안한데, 내 얼굴 봐서 잠깐 만나줘요.

- 오 의원이 부탁하던가요?

- 하하. 오 의원은 아니고 내가 거절하기 참 힘든 사람의 부탁이라는 것만 말할게요.

- 도지사님이 거절을 못 할 사람이라고요? 그런 분이 있습니까? 설마 대통령은 아니실 테고.

- 에이, 그분은 아니죠. 하지만, 우리 당에 내가 찍소리도 못하는 분 꽤 많아요.

- 설마요.

- 진짭니다. 어쨌든, 잠깐 만나는 줘요. 중요한 얘기인 것 같으니까요.

- ... 알겠습니다.

강정문은 오정민을 만나줬으면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용건이 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상대에게는 몰라도 도훈이 듣기에 그리 유쾌한 주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래도 알면서 말을 안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지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님 오셨습니다, 시장님.”

“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열린 문으로 오정민이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김 시장님.”

“... 안녕하세요.”

무감한 표정으로 오정민이 내민 손을 마주 잡은 도훈.

의례적인 인사를 교환하자마자 두 사람이 소파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로 대흥까지 내려오셨습니까?”

“하하, 중요한 일로요.”

세련된 미소를 보이는 오정민의 모습에 도훈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뻔히 도훈이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

‘나는 절대 못 하지.’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오정민이 입을 열었다.

“김도훈 시장님.”

“네.”

그리고 이어진 말.

“우리 당에 입당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말문을 잃은 도훈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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