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54화 (155/279)

154. 가지각색 - 4.

“... 시장님?”

“이 일은 제가 나서 보겠습니다.”

“시장님이요?”

“네. 아무래도 의장님보다는 제가 나서는 게 쉽고 빠를 것 같네요.”

“어쩌시게요?”

도훈은 안 의장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내게 맡겨라’고 답하는 것으로 안 의장과의 면담을 끝냈다.

안 의장은 도훈이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한 눈치였지만, 도훈이 누구를 상대하려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에 캐묻지 않고 자리를 떴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안 의장이 나간 직후, 조금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두진이 물었다.

“차근차근 풀어야죠.”

“그걸 왜 시장님이 직접 하시려는 겁니까? 의원들 교통정리는 안 의장이나 김용진 의원이 하도록 놔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민의당 내부 문제잖습니까?”

두진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은 시의회의 일이고 시정과 관련된 일이잖습니까.”

“......”

“그런 정략적인 문제로 시의회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면, 반복적으로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러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시민들일 테고요.”

“... 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의회의 일은 의장의 책임이 더 큽니다.”

“제가 나서는 게 더 쉽고 빠를 것 같아서요.”

두진이 여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했지만, 도훈은 담담히 웃으며 두진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않을 테니까요.”

“... 알겠습니다.”

두진이 비서실로 나가자 도훈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 이야, 이거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요? 김 시장이 나한테 연락을 먼저 하다니. 이거 보이스피싱 아닌지 모르겠네.

“저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의원님.”

- 잘 지내죠? 하하. 갑자기 웬일이에요?

장난스럽게 전화를 받은 건 다름 아닌 지역 국회의원 김용진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 흐음. 이거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인데요. 말씀하세요.

“네. 지금 민의당 시의원 일부가···.”

도훈은 안 의장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꺼냈다.

지역에서 대자당에 비판 여론을 만들기 위해 시의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 이에 대해 의원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잡스러운 짓입니다. 제가 아직 초선이라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런 짓까지 하면서 재선되고 싶지 않아요.

“역시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긴 한데, 안 의장에게도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전 안 의장이 잘 해결할 거로 생각했는데 왜 이 얘기를 김 시장이 꺼내는 걸까요?

김용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의적이었지만 어느새 웃음기가 가셔 있었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당내 사람도 아닌 도훈이 확인하는 게 유쾌하지 않다는 그런 기색.

“안 의장 말고 제가 나서서 정리해보려고요.”

- 김 시장이 나서요?

“네.”

- ... 왜요? 우리 당 사람도 아니면서.

“우리 시의회에서 벌어질 일이니까요.”

- ......

“아무리 압도적 다수와 극소수라지만, 이런 정략 때문에 시의회에 소란이 생기기 시작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까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 ... 반복이라···.

“관성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훨씬 쉬운 법이니까요.”

- ... 그럴 수도 있겠죠.

“그 때문에 의회가 제 기능을 못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봅니다. 비슷한 이유로 이번 국회에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실망한 이유를 의원님도 잘 아실 테죠.”

- 흐음.

도훈이 취임한 뒤, 시의회에 ‘정략적 관점’으로 선택된 의제가 올려지거나 논의가 오간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의제에 관한 논쟁이 있었어도 대개 그때 잠깐뿐이었고 ‘사건’이라 할 만큼 커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건수’가 됐다 싶은 의제도 여야가 상대를 겨누고 시작한 게 아니라 도훈을 공략할 목적으로 던졌던 경우가 많았다.

대자당은 도훈과 민의당을 싸잡아 타격을 입히려고 했으나 여당보다 도훈이 먼저 그런 ‘동일시’를 거부했고, 판판이 상대의 논리를 깨버렸었다.

차혜진이 의회에서 도훈에게 더는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

일부 여당 소속 의원이 정략보다는 이익에 우선한 행동을 했을 때도 슬기롭게 해결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명분을 들먹이긴 했었으나 개인의 이익에 근거한 일로 도훈을 곤혹스럽게 하려다 망신당한 여당 의원도 복수였다.

딱히, 도훈이 대흥시 의회의 여야 대립 해소와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대흥시 시의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관성적으로 대립하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총선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민의당 의원들이 황상돈 팀장을 빌미로 대자당을 공략하려는 일이 현실화되고 확대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달라질 터.

다른 때면 한두 마디로 잠깐 싸우고 말 일을, 선거 때만 되면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연장전에 또 연장전을 하는 게 정치인들이 아니던가.

- ... 흐음. 김 시장 뜻 이해했습니다.

“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아무리 안준식 의원이 시의회 의장이지만, 선수도 그렇고 나이로 따지면 한참 아래잖습니까.”

- 그렇죠. 하지만, 그런 것에 주눅 들 사람이 아닙니다. 김 시장님도 잘 알 거 아닙니까? 안 의장, 대개 웃고 다니니 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공 세우는 것에 욕심내는 의원들 주저앉히는 역할,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당내 사람이 아닌 제가 나서는 게 좀 쉽지 않겠습니까? 저는 처지가 좀 다르니까요.”

- 하하, 그건 그러네요.

“그리고 가장 의욕적으로 나선다는 분을 단숨에 단념케 할 비장의 카드가 제게 있으니까 말입니다.”

도훈의 말을 김용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했다.

- 괜한 악역을 자처하는 거 아닙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의회의 일이니 제 업무이기도 합니다.”

- ......

잠시 침묵하던 김용진은 자신은 반대하지 않을 테니, 너무 감정 상하지 않게 적당히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김용진과 통화를 마친 도훈은 곧바로 서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훈이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아주 오래간만의 일.

- 서태깁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 ... 시장님이 제게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을까요?

살짝 비꼬는 듯한 서태기의 목소리였지만, 도훈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황상돈 팀장의 일을 의회에서 다뤄보자고 하신다고 해서요.”

- ... 그게 왜요?

서태기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서렸고 도훈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거 다루는 김에 당시의 일을 제대로 다뤄보는 게 어떻습니까?”

- ... 당시의 일? 제대로?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어떻게들 처신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는 여야 한쪽 분들과 친하게 지내는 간부들이 좀 있었잖습니까? 왜, 의원님이 저 취임하기 전에 직접 만나서 얘기해 주실 정도 아니었나요?”

도훈의 말에 뜨끔했는지, 서태기가 말을 더듬었다.

- ... 그, 글쎄요.

“불법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공무원 그것도 간부라면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하기 충분했죠. 안 그렇습니까?”

- ... 그래서요?

서태기의 음성이 살짝 날카로워졌고, 그러거나 말거나 도훈의 담담한 말은 이어졌다.

“의원님이 그 안건을 논의하자는 목적은 널리 알려 경계하게 하자는 것일 테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지 말라고 말입니다. 맞습니까?”

- ... 물론이요.

“그럼, 아예 제대로 밝혀서 앞으로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 없이 시의회와 시청 간부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시청 간부가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필요 이상으로 의회 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거 문제니까 말이죠. 마침, 저도 익히 알고 경험한 부분이고 해서요.”

- ......

“의원님이 먼저 시작하시면 제가 그런 식으로 뒷받침해서 논의를 키우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

네가 대자당을 노리고 일을 벌이면, 난 민의당 역시 똑같은 짓을 했었다고 밝힐 거라는 조금은 유화된 협박.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서태기가 말이 없는 가운데, 잠깐 그의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분노한 서태기의 가쁜 숨이 전화기를 그대로 넘어와 도훈의 귓가에 닿는 그런 느낌이랄까.

일부러 화를 내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만 상황.

애초에 차혜진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불편한 상대이니, 도훈은 딱히 더 잃을 게 없기도 했다.

서태기는 여전히 말이 없는 가운데, 도훈은 마지막까지도 담담함을 전혀 잃지 않고 말했다.

“잘 판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 아, 알겠소.

뚝.

무뚝뚝하게 답한 서태기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그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

핸드폰을 귓가에서 떼며 도훈이 투덜거렸다.

“... 이렇게 전화 한 통에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설 정도로 명분도 없고 약점이 있는 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마셨어야지.”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은 도훈이 몸을 돌려 창밖에 시선을 줬다.

머릿속으로 차혜진과 서태기의 날 선 얼굴을 동시에 떠올린 도훈이 타이르듯 중얼거렸다.

“제발 다 같이 철 좀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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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이 김용진, 서태기와 통화한 당일 늦은 오후.

비서실 소파에 도훈과 직원들이 둘러앉아 업무를 정리하며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선암리 마을회의가 7시라고 했던가요, 8시라고 했던가요?”

“7시가 맞습니다. 확인해 보니까 저녁을 미리 먹고 모이시는 거랍니다. 시장님도 저녁 드시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시청 앞에서 간단하게 먹고 가죠. 오늘은 조 비서관은 곧바로 퇴근이고 실장님과 지연 씨가 가죠?”

“맞습니다.”

똑똑똑.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비서실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 비서관은 딴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세요. 그리고···.”

문에 시선을 두지 않고 서류를 읽으며 말을 잇던 도훈은 곧 주변이 조용해진 걸 깨달았다.

도훈이 고개를 드니 직원 전원이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굳어진 상태.

“다들 왜···. 아.”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들어선 사람을 발견한 도훈이 놀랐다.

문을 열고 들어선 본인도 머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기 시작 1년 반이 넘게 지났는데도 이곳에 처음 들어선 것이었으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잠시 시장님과 얘기 좀 하려고 왔어요.”

도훈의 질문에 답한 것은 대자당 소속 시의원 차혜진이었다.

“혹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면 차라리 내일···.”

“오래 안 걸려요.”

“... 알겠습니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실 문을 열었고, 차혜진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 그러게 말이야.”

닫힌 시장실 문을 바라보며 영배와 두진이 중얼거렸다.

차혜진은 시장실 소파에 앉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오늘 시의원들이 좀 정신없었다는 거 아세요? 특히, 서태기 의원이 갑자기 180도 달라져서 민의당 의원들 만나러 다니느라 바쁜 것 같더군요.”

“그랬나요?”

“네, 그랬어요. 황 팀장 일 의회에서 다루자고 의원들 부추기다가 갑자기 그러지 말자고 돌아선 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은 몰라도 최소한 차 의원님은 정신없었던 것 같지 않으신데요?”

“전 좀 덜했어요. 시장님 덕분인 것 같던데요.”

“저요?”

“왜 이러세요. 다 듣고 왔는데.”

“... 흠. 전 별달리 한 일이 없는데요.”

차혜진이 지긋이 도훈을 바라봤지만, 도훈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할 뿐.

차혜진도 도훈도 서태기가 돌변한 이유를 언급하지 않길 얼마.

먼저 입을 연 것은 차혜진이었다.

“이번 일로 제가 고마워할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한 일이 없는데 고마워하실 이유가 없겠죠.”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도 마시고요.”

“한 일이 없는데 보답 받을 이유도 없죠.”

“... 하, 참.”

살짝 미간을 찌푸린 차혜진은 잠시 도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 일어선 도훈을 말없이 바라보던 차혜진이 묵례하고 돌아서다가 다시 도훈에게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한 가지는 인정해 드릴게요.”

“... 인정이요? 뭘 말입니까?”

“최소한 시장님이 여당과 한통속이 아니라는 거요. 그건 인정해 드릴게요.”

“... 굳이 차 의원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아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뭐.”

“......”

말문을 잃은 차혜진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더니 갑자기 홱 몸을 돌리고는 시장실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하여튼, 단 한 마디도 져주는 법이 없어.”

시장실 문과 비서실 문을 지나치는 짧은 사이, 차혜진이 투덜거렸다.

그런 차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훈이 피식 웃으면서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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