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가지각색 - 3.
황상돈 팀장이 감사팀에 진술한 내용은 곧 시청 내에 소문이 났다.
분명 감사팀에서 흘러나갔을 거로 생각됐지만, 도훈은 딱히 그 이야기가 퍼지는 걸 막지 않았다.
막으려고 해도 직원들이 사람들 시선을 피해 모여서 잡담하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딱히 막을 생각조차 들지 않는 내용이었으니까.
“정말로?”
“네. 감사팀 송 주무관한테서 들었는데요. 좀 더 자질구레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 핵심은 그렇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의도적으로 갑질한 게 아니고 실수한 건데, 그 실수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전한 정신 상태에서 비롯됐고, 또 그 스트레스는 시장이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자기를 의회 사무과에서 쫓아낸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고?”
“법적 대응을 할 거라는 것도 빠트리시면 안 돼죠.”
“... 하아, 나 이런 미친···.”
선배 직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소식을 전한 후배가 비슷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얘기 해줄 때 송 주무관이 딱 지금 선배님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아니, 핑계를 댈 게 따로 있지. 자기가 갑질한 게 정신병 때문이라는 얘기 아냐? 그리고 그 정신병은 시장님 때문에 생긴 거고?”
“그렇죠.”
“그리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하, 나 살면서 이렇게 어이없는 개소리는 처음 들어 봐.”
“동감입니다.”
황 팀장을 알기는 해도 함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 본 적 없는 대부분의 직원 반응은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는 것이었다.
다만, 의회 사무과를 거쳤거나 다른 부서에서 황 팀장과 근무해 본 이들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황 팀장님이 좀 기고만장 스타일이긴 해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네. 괜히 ‘자뻑 과장’으로 불렸던 게 아니죠.”
“왜, 그 ‘황 준의원’이라는 별명도 있었잖아?”
“그랬죠. 행동하는 게 시의원들 못지않게 좀··· 목이 뻣뻣했잖아요.”
“의회에 충분히 오래 있었으니까 인사이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충분히’가 아니라 너무 오래 있었어요. 그리고 왜··· 그때 소문 좀 돌았잖아요. 그 소문대로라면 이동하는 게 맞죠. 본인을 위해서도요.”
지방자치, 지방의회 전문가라고 주변에서도 인정했고 스스로 자부심이 높았기 때문이었는지, 황상돈은 의회에서 오래 재직하면서 시의원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직원들에게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업무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의회 사무과 직원들의 황상돈에 대한 공통된 평가는 별로 ‘동료’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회에서 근무하는 시청 소속 공무원 중 제일 상급자였던 탓도 있겠지만, 꼭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황상돈의 별명은 ‘준의원’, ‘자뻑 과장’, ‘황 상전’ 등 고압적인 태도를 비꼬는 것 일색이었으니까.
“소문은 무슨. 그 양반이 그러고 다니는 거 의회에서 근무하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뭐.”
“하긴 그랬죠. 크게 문제 될 수준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위태위태했었죠.”
황상돈이 과장이 되기 전부터 의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는 건 큰 비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의원들은 대개 재선 이상, 보수 정당 소속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 지방 선거 때 의회가 거의 완벽하게 초선으로 물갈이되다시피 했을 때, 드디어 황상돈도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됐다는 얘기가 내부적으로 있을 정도였다.
“황 팀장님 진술, 완전히 피해의식에 찌든 그런 내용 아니에요?”
“누가 아니래. 미쳐도 곱게 미쳐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참.”
“제3자인 우리도 이런 기분인데 당사자는 어떨까요?”
“누구, 시장님? 그 양반은 이미 경찰에 넘기고 징계위원회 열라고 했을 때 포기하지 않았을까?”
“모르죠. 법적 대응 어쩌고 한 걸 보면 이걸 키우겠다는 얘기 같던데. 혹시 달래려고 하시지 않을까요?”
후배의 말에 선배 직원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자네 사람 보는 눈 좀 키워야겠어. 난 시장님이 콧방귀도 안 뀐다는 쪽에 걸게.”
“쩝. 저도 그쪽일 확률이 99%라고 생각하긴 해요. 하지만, 이런 얘기는 어떤 식으로든 시끄러워지면 시장님께 안 좋은 영향이 간다고요.”
“누가 모르나? 아마 황 팀장이랑 시장님이 제일 잘 알 걸? 그래서 황 팀장은 키우겠다는 심산일 테고, 시장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걸 테고.”
“에효. 속상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시장님, 아무것도 아닌 일로 구설수 겪으신 적 있잖아요.”
미간을 찌푸린 채 말하는 후배 직원을 선배가 다독였다.
“잘 견디셨잖아. 그런 구설수가 한창일 때는 우리도 속 터졌지만, 다 잘 지나갔잖아. 그리고 이번 일 어떻게 될지 아직 몰라. 황 팀장이 본격적으로 떠벌리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던데요.”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그게···.”
후배 직원이 뭐라 말했고 선배가 이내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그런 선배를 보며 후배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보세요. 선배도 그런 표정이 됐잖아요.”
“쩝.
선배와 후배의 시선이 동시에 의회 건물 어느 사무실을 향했다.
굳게 닫힌 그 사무실 문을 바라보는 두 직원의 표정이 점점 더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
도훈이 감사팀의 최종 보고서를 받은 이틀 뒤.
시장 사무실로 안준식이 사전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연락하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요.”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왔죠.”
담담한 도훈의 표정을 바라보며 안준식은 내심 경탄하고 있었다.
시청과 시의회에 소문난 대로라면, 가장 어처구니없고 화가 나야 할 사람이 바로 도훈일 텐데, 속은 몰라도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까.
“CH 신문에 기사 난 거 봤습니까?”
“... 무슨 기사가 나긴 났다고 얘기만 들었습니다.”
“직접 보진 않으셨고요?”
“대충 요약한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안 봤습니다.”
도훈에게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된통 당했던 지역 인터넷 뉴스 CH 신문.
변호사까지 고용해 당시 신문사와 댓글을 단 악플러들에게 대응했었는데, 그 절차가 지난 가을에 끝났다.
신문사로부터 300만 원의 배상을 받았고, 끝까지 공개 사과하지 않은 악플러들은 얼마간의 벌금을 내게 하는 것으로 재판을 2심에서 마무리했으니까.
그 이후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어제 대흥시의 인사 전횡 가능성을 언급한 기사를 올리며 불씨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동시켰느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지만, 사실 그거 황 팀장이라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옮긴 거나 다름없잖습니까?”
“... 잘 아시네요.”
“......”
어디 큰 매체도 아니고 지역 인터넷 뉴스에 올라간 것이니만큼, 기사가 나갔다는 걸 아는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을 터.
다만, 지역 뉴스를 점검해야 하는 시청 직원들이 많이 본 건 가벼운 ‘업무상 재해’ 정도로 여기는 도훈이었다.
“잘 아시면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러십니까?”
이미 황상돈을 비위행위자로 검찰에 고발하도록 지시한 도훈.
그의 주장이 그대로 실린 기사가 나온 게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언론사가 ‘CH 신문’이란 게 좀 의외이긴 했다.
“일이 좀 묘하게 돌아가고 있어서요.”
“묘하게 돌아가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배석했던 두진이 묻자 안 의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일, 시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시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룬다는 게···.”
“말 그대로입니다. 황 팀장을 부르고 시장님도 불러서 양쪽의 의견을 듣자는 거죠.”
“... 이유가 뭡니까?”
두진이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황상돈 팀장의 갑질은 이미 본인도 인정한 일.
이유로 말도 안 되는 것을 들이밀었지만, 그 때문에 직원들부터가 ‘미친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시의회 의원들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시의회에서 다룰 이유가 없질 않은가.
“이유보다 누가 그런 주장을 하는지 말씀드리면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누군데 그러십니까?”
도훈이 물었고, 안 의장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서태기 의원을 비롯한 우리 당 의원들이에요.”
“네?”
도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두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질문을 던졌다.
“설마, 시장님께 타격을 주겠다는···?”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시장님이 아니라 차혜진 의원이거든요.”
“네?”
“그 사람들도 아는 겁니다. 황 팀장이 뭣 때문에 주민센터로 이동했는지를요.”
개개인의 발령에 대한 이유를 댈 필요가 없으나, 황상돈의 주민센터 발령은 의회에서만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대외적으로 돈 이유.
그러나 본인과 의원들, 그리고 당시 의회 사무과에서 근무했던 직원 중 일부는 대자당 쪽 인사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고 정보를 흘리곤 했던 게 이유라는 걸 잘 알았다.
“... 아니, 그걸 왜 의회에서 다룬다는 겁니까? 갑자기 왜 차 의원님을···.”
도훈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리다 뭔가를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중얼거리듯 말하는 도훈의 시선은 벽에 걸린 달력에 고정되어 있었다.
안 의장이 한숨을 푹 내쉬고 답했다.
“맞아요. 총선이 가깝잖아요.”
“......”
“제1야당과 전국적인 전선이야 알아서 그어지겠지만, 지역 이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휴우.”
도훈은 한숨을 내쉬는 안 의장을 잠깐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설마 김 의원이···.”
“그건 아닙니다. 벌컥 화부터 내던 걸요.”
대흥시와 인근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김용진은 초선에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의정활동을 해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었고 개혁적인 인사로 분류되고 있었다.
“문제는 김 의원은 그런 일에 반대하는 데 우리 시의원들은 꽤 적극적이라는 겁니다. 아마 공을 인정받고 싶은 그런 마음인 모양입니다.”
“... 설마 CH 신문에 나간 기사도?”
“이건 제 짐작인데, 서태기 의원이 부추겼을 겁니다. 이번 일에 제일 열성이고 지역 언론사와는 어디가 됐든 관계가 좋은 분이니까요.”
“......”
도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도훈이 취임한 직후, 과거에 시장이나 시의원들에게 줄을 섰던 간부들이 잠깐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했던 건 황상돈 혼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전임 시장이 여당 소속이었던 때문에 여당 시의원들과 필요 이상으로 끈끈하게 지냈던 이들이 더 많았다.
취임도 하기 전에 여당 시의원 당선자들이 만남을 요청해 ‘중임을 맡길만한 인사’라며 자기들과 친한 간부들을 추천하질 않았던가.
그 자리에 서태기와 안준식이 있었다.
안준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만 지켰지만, 서태기는 아주 적극적으로 ‘중용할 사람’과 ‘그러면 안 될 사람’을 구분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 일 관련해서 차 의원이 잘한 건 없지만, 서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죠.”
도훈과 두진, 안 의장이 잠시 말문을 잃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도훈이 문득 생각난 것을 안 의장에게 물었다.
“이 사실, 차 의원도 알고 있습니까?”
“... 물론이죠.”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자기를 표적으로 정치 공세를 꾸민다고 내 사무실에 와서 한참 방방 뛰고 갔어요. 그 양반이 나가자마자 시장님 뵈러 온 겁니다. 혹시나 또 찾아와 그럴까 무섭기도 해서요.”
“... 쩝.”
도훈은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났을 때의 차혜진의 앙칼진 표정과 목소리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아마 시의회와 시청에서 그런 차혜진을 가장 많이 상대한 게 도훈일 터.
특별한 유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좋은 관계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사이.
도훈이야 특별히 유감은 없다고 말하겠지만, 아마 차혜진은 ‘유감이 있어도 대단히 큰 유감이 있다’고 말할 터였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공립 유치원 문제로 당사자의 동생과도 악감정을 쌓질 않았던가.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장님?”
“......”
안 의장이 답답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도훈은 뭐라 답을 하지 않았다.
“시장님?”
답을 재촉하는 안 의장에게 도훈이 담담한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