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가지각색 - 2.
연말연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기.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많은 사람이 조금은 경건하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반성과 다짐을 하는 그런 시기일 터.
다만, 대흥시청 소속 공무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진짜래?”
“그렇답니다. 심심하면 밥 먹자, 술 먹자고 전화해서 불러냈다는데요?”
“얼마나 자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번 그랬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시청 청사나 주민센터의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소곤거렸다.
“뜯긴 게 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합쳐서 셋이래. 매번 한 사람만 부르면 진즉에 일 터졌겠지.”
“세 사람을 번갈아 불러서 얻어먹었다는 거네요?”
“그랬다네. 쯧쯧쯧.”
“와, 그렇게 안 봤는데 황 팀장님 강심장이었네요.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몰랐답니까?”
“단 한 번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그런 적은 없대. 철저히 자기만 즐겼다는 거지.”
“... 하하하.”
업자를 불러내 공짜로 밥값, 술값을 내게 해놓고 혼자만 즐겼다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젊은 직원.
주민센터 산업팀장이 무슨 대단한 권한을 가졌다고 그런 ‘갑질’을 해댔는지에 대해 직원들부터가 무척 비판적이었다.
“뭘 빌미로 뜯어먹은 거래?”
“나도 잘은 몰라. 그래도 무슨 일 생기면 산업팀에 달려가야 하잖아. 거기 팀장인데 업자들이 마냥 거부할 수는 없었겠지.”
“황 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야. 이게 갑질이지 뭐야?”
“그러게 말이야.”
지금은 많이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한때 국민에게 공무원 집단은 고위직이건 하위직이건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강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다.
이젠 그나마 공무원을 무조건 부패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철밥통’의 대명사로 여기며 마냥 고운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공무원들도 그런 국민의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법과 제도의 개혁, 상시적인 관리 감독의 시행, 각종 감찰 등을 통한 개선도 이루어졌지만, 공무원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공정’이 시대적 과제라는 공감대를 폭넓게 얻을 만큼, 중요한 가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런 상황에서 업무상 알게 된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밥과 술을 사게 한 ‘갑질’은 동료 공무원조차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게 하였다.
같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도훈의 직속이 아닌 지구대와 안전센터 직원들은, 문제의 사건이 들통난 뒤 흉흉해진 시청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혀를 끌끌 찼다.
“... 시청은 물론 외부 사업소랑 주민센터들 전부 감찰받느라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던데요?”
“지금 시청은 시베리아래요.”
“내가 듣기로는 북극이라던데?”
“시베리아건 북극이건, 얼어 죽기 직전일 정도로 춥다는 건 틀림없겠죠.”
“상상이 간다. 어휴.”
도훈은 황상돈 팀장의 일을 알게 된 직후, 부시장 전경완을 책임자로 하는 한시적인 특별 감찰 팀을 따로 꾸려 대흥시청 산하 모든 조직의 근무 기강을 긴급 점검하고 있었다.
감찰 팀에는 공무원만이 아닌 일반 시민 지원자 중 선별된 이들을 한시적 감찰위원으로 활동하게 해 감찰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코자 했다.
공금 집행 적절성, 비용 처리의 타당성, 거기에 업무 관련으로 시민과 접촉했던 일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감찰 대상에 시장 비서실도 포함되어 가장 먼저 감찰을 받았다.
도훈도 도훈이지만 비서실장인 두진이 워낙 깐깐하게 비서실 살림을 살아서 문제시할 게 전혀 없었다.
문제는커녕, 특별 감찰위원으로 위촉된 시민들조차 감탄하며 깔끔하고 세세한 처리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
비서실부터가 그렇게 깔끔하게 감찰을 통과하자, ‘미꾸라지 한 마리 나타났다고 우리까지 의심하는 거냐.’고 반발하던 일부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싹 사라졌다.
여하튼, 새해가 되자마자 시작된 이 특별 감찰로 인해 대흥시청 공무원 조직은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였다.
“그냥 안 넘어가겠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김도훈 시장이 좋을 땐 한없이 좋지만, 이런 문제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정도로 냉정하고 원칙적이잖아.”
“듣자 하니 시장님이 화가 많이 났답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 아직 공식적인 언급이 없어서 밖에서는 잘 모르는가 본데, 청사에서 직원들 마주쳐도 인사할 때만 잠깐 웃고 마신답니다. 다른 때는 찬바람 쌩쌩 분다던데요?”
“... 사안이 사안이잖아. 뭐라고 해야 하나. 좀 쪼잔하게 악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긴 하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주고받던 경찰관들이 머릿속에 제각기 전해 들은 비리 내용을 되새기고는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한 경찰관이 ‘평’한 것처럼 쪼잔하게 악질적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 내용이었으니까.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 그런 사람이 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전에는 의회에서 있었다잖아. 그때는 어땠는지 몰라.”
“그때는 의원들한테 얻어먹었으려나요?”
“글쎄. 정치인들이 원래 밥값, 술값 잘 안 내기로 유명하잖아.”
“그럼 거기서 오래 있어서 물이 든 걸까요?”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얼굴 찌푸린 상급자의 말에 후배 경찰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자가 마시던 자판기 커피를 비우고 종이컵을 수거기에 넣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시장님, 이번엔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려나?”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어느 경찰관의 시선이 저 멀리 언덕 위 대흥시청 청사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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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시청 시장실.
시장실 책상에 앉은 도훈은 감사팀의 최종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획감사실 감사팀이 확인한 황상돈 팀장이 받았다는 접대 내용은 이랬다.
- OO 산업 공장장 등 관내에 소재한 기업 간부 혹은 자영업자 등 모두 3인으로부터 약 1년에 걸쳐 14회에 걸친 접대를 받았음.
- 시간은 주로 금, 토요일 저녁에 집중되어 있고 손님이 많지 않은 음식점 등에서 이루어진 것이 주변 시선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판단됨.
- 각 날짜에 최소 54,000원부터 최대 230,000원까지 식대와 유흥비를 상대에게 내도록 한 것으로 확인됨. 14회에 걸친 접대비 총액은 1,225,000원으로 최종 확인됨. (전부 제공자 개인 명의의 현금 및 신용카드로 결제되었음.)
- 식대, 주류대를 제외한 현금은 오가지 않았다고 확인됨.
- 3인을 번갈아 불러 접대를 받음으로써, 한 사람을 너무 자주 부르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했던 것으로 판단됨.
- 향응을 제공한 3인 모두 비위행위자가 먼저 연락해 만났다고 밝혔으며, 향응 제공의 대가로 구체적인 뭔가를 받은 것은 없다고 진술함. 비위행위자 및 해당 팀의 지난 1년 업무 기록을 검토한 결과,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특혜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음.
또로록.
서류를 다 읽은 도훈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미간에 깊게 골이 팬 것이 짜증스러움을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열네 번에 걸쳐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그 대가로 특혜를 베푼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건건이 따진다면 접대 금액이 큰 것도 아니다.
애초에 주민센터 산업팀장의 권한이 대단한 특혜를 허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밥값과 술값을 뜯긴 사람들도 특혜를 받고자 큰돈을 낼 수 있는 능력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금액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지.’
이른바 ‘김영란법’, 정확한 약칭은 ‘청탁금지법’이란 법이 있다.
청탁금지법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하는 게 목적.
이 법에 따르면 공직자 본인은 물론 경제적 이익을 같이 하는 배우자도 법 적용 대상이다.
황상돈 팀장이 영리하게 행동한 때문인지, 1회에 100만 원 초과 혹은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분하도록 한다는 조항은 피해갔다.
하지만, 어떤 법 조항을 적용해 형사처분할지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고민할 일.
반복적으로 불러내 밥값, 술값을 내게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훈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현금이 오가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까?”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도훈의 질문에 담담히 답하는 감사팀장.
감사팀이 이 문제를 발각해낸 것이 아닌 ‘진정’에 의해 사건을 인지함으로써, 이미 도훈은 한 번 실망했다.
엄연히 감사팀이란 조직이 있음에도 부시장을 책임자로 한 특별 감사팀을 구성해 전체 공무원 조직 감찰에 나선 게 그 증거.
황상돈 팀장의 일은 여전히 감사팀이 담당했지만, 이번 특별 감찰에서는 감사를 ‘하는’ 입장이 아닌 특별 감사팀의 감사를 ‘받는’ 처지.
당연히 감사팀장은 반쯤은 자신이 곧 다른 자리로 이동하지 않을까 여기고 있었다.
“황 팀장의 진술은···.”
“뒤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도훈이 서류를 넘겨 뒷장의 글을 읽었다.
감사팀 직원들이 황상돈 팀장에게 최종적으로 사실 확인을 한 내용을 문서화 한 것.
내용을 읽어내려가던 도훈은 어느 대목에서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이거 진짭니까?”
“무얼 말씀하시는지···.”
“사는 재미가 없어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식사나 음주를 함께한 것일 뿐, 갑질을 할 생각은 없었다는 내용 말이에요. 정말로 이렇게 말했어요?”
“네. 그랬습니다.”
“... 하하.”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흘리는 도훈에게 감사팀장의 말이 이어졌다.
“황 팀장이 주민센터로 옮겨가서 어려움을 겪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얘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의회 사무과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주민센터로 옮긴 뒤, 황상돈은 그다지 업무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거나 도훈에게 매우 큰 불만이 있음을 종종 드러냈었다.
주민센터로 나간 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도훈을 욕한 적도 여러 번.
‘술’에 취했어도 맹목적인 비난이나 욕을 반복해서 하는 걸 좋게 볼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그 대상이 ‘일반적으로는’ 평이 좋은 사람이라면 더할 터.
그로 인해, 주민센터에서도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얘기는 센터장을 통해 들은 적이 있는 도훈이었다.
그런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센터장이 잘 중재하라고 넘겼을 뿐, 황 팀장의 언행을 문제시한 적은 없었다.
직원이 문제시하자 오히려 그 직원을 다독인 적은 있었지만.
“좀 더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 장에 나옵니다.”
“... 더 중요한 부분이요?”
“네. 저부터도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인데, 자기가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그 원인이라고 딱 짚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락.
도훈이 종이를 넘기고 내용을 읽다가 눈을 크게 뜨더니 두어 번 깜빡거렸다.
깜빡, 깜빡.
눈을 깜박이고 읽었던 부분을 다시 확인하는 도훈.
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 제가 원흉이네요?”
“휴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훈과 감사팀장의 말에 두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끼어들자 도훈이 읽던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 읽던 두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이 됐다.
“... 그 사람이 정말 이렇게 말했어요?”
“네, 실장님.”
“정말로요?”
“... 사실, 이걸 그대로 옮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로 감사팀 직원들도 저도 어이가 없었습니다만, 황 팀장이 정말 그렇게 말한 것 맞습니다.”
“......”
도훈도 두진도,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한 감사팀 직원과 팀장도 어이가 없었다는 건 이런 내용이었다.
- ... 시장의 부당한 인사이동으로 인해 의회 사무과에서 주민센터로 부서 이동을 해야만 했다.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항의할 수 없었다. 부당한 인사이동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만의 몫이었고, 그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물을 처방받기도 했다.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혹은 다른 정신과적 문제의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은 부당한 인사이동이고, 그러므로 시장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할 말이 없네요.”
“... 그러게 말입니다.”
이보다 더 황당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훈과 두진이 말을 주고받는데 감사팀장이 끼어들었다.
“한 장 넘겨서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 뭐가 또 있어요?”
“네. 정말 황당한 내용이 있습니다.”
“... 참 내···.”
사락.
두진이 서류를 넘겨 마지막 장을 읽다가 와락 인상을 썼다.
“... 왜 그러십니까?”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뭣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요?”
“... 어휴, 정말!”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두진이 서류를 돌려줬고 도훈이 받아 읽었다.
- ...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할 생각이다. 시장의 부당한 인사명령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됐으니, 시장에게 법적, 금전적 책임을 묻기 위해···.
“... 하, 하하.”
도훈이 실소를 흘렸다.
그가 기억하기에 평생 이보다 더 황당했던 적이 있나 싶은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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