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50화 (151/279)

150. 송년 만찬 - 2.

청와대 행정관과 통화를 마친 도훈은 초청에 응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주변 사람의 조언을 구했다.

심각한 고민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헷갈릴 때 조언을 들어서 나쁘지는 않을 테니까.

“당연히 가야죠. 이게 고민이 필요한 일입니까? 저라면 ‘영광입니다.’하고 바로 수락했을 걸요?”

영배는 왜 망설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그건 홍영진도 비슷했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잖습니까? 공식행사에 초청받은 거고 그 행사가 좋은 목적으로 열리는 거니까 문제가 될 게 전혀 없다고 봅니다.”

지연과 두진의 반응은 뜻밖에 비슷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거기 참석한다고 시장님께 안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요? 아무튼, 시장님 편한 대로 하세요. 아, 저도 가고 싶네요.”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시면 되겠죠. 제가 보기엔 시장님은 아무리 남들이 좋게 봐주는 일도 마음 안 내키면 안 하시니까요. 이건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쩝, 제가 대신 갈 수는 없겠죠?”

비서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도훈은 살짝 난감했다.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가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달까?

도훈 스스로도 초청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 느꼈던 게 사실이었다.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송년 만찬에, 정치인 자격으로 초청된 것도 시장 자격으로 초청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초대하는 것이다’라는 행정관의 설명을 도훈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혹시나 네 손에 마이크가 들렸을 때 네 녀석이 어느 정도 수위의 이야기를 할 생각인지가 관건이겠지.

“......”

가만히 있던 조상님이 갑자기 말했고, 도훈은 거기에 답을 못했다.

- 핵심을 찔렀지?

“... 그런 것 같습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송년 만찬이다.

만약 도훈이 현직 시장이 아니라면 별다른 거리낌 없이 참석해 혹여나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했을 터였다.

- 내 느낌에는 네가 거기서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도 그걸로 불이익받을 것 같지 않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 대통령은 원래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총선에 출마하라.’, ‘지방 선거에 출마하라.’는 압력과도 같은 권유를 여러 번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었다.

그의 오랜 동지였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뒤에도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은 계속됐다.

그리고 끝내 정치의 길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됐을 때, 그는 엄청난 비판 혹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지지난 대통령 선거 전에도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도, 그는 항상 보수 정치인과 보수 언론의 집중 타격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비판과 비난 중 ‘사실 왜곡’이 아닌 경우,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인물이니 도훈이 현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하면 수위가 어찌 됐든 불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적었다.

- 그런데 뭐가 문제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게 있다고나 할까요?”

-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뭐가 걸린다고?

“... 그러니까 그게 말로 정리가 잘 안 된다고요.”

그렇게 화요일 늦은 오후까지 도훈이 결정을 못 하고 있는데, 얄미운 사람이 전화를 해왔다.

“... 안녕하십니까, 도지사님.”

- 어라? 왜 갑자기 말이 딱딱해졌습니까?

“... 몰라서 물으시는 건 아닐 테죠? 지사님은 청와대 만찬 초청 건 알고 계셨죠?”

- 초청 대상으로 고려되는 건 알고 있었죠. 그래서 질문을 했던 거고요.

“알고만 계셨던 게 아니라 모종의 사전 접촉 같은 게 있지 않았습니까?”

- 하하. 이게 무슨 선수 뽑는 드래프트도 아니고 사전에 접촉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겁니까?

“... 그건 아니죠. 휴우.”

도훈이 한숨을 내쉬자 강정문이 담담히 웃고는 질문을 던졌다.

- 아직도 참석 여부를 통지하지 않았다던데, 도대체 뭣 때문에 결정을 못 하는 겁니까?

“... 글쎄요.”

- 글쎄요? 말하기 싫어요?

“... 그게 아니고요.”

머쓱해 하던 도훈은 이내 솔직히 말했다.

- ... 그러니까 뭔가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정확히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고요?

“... 네.”

- 하하하! 김 시장답지 않네요. 와! 김 시장도 이럴 때가 있었어요?

“... 청와대 아닙니까.”

- 설마 대통령님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당연히 아닙니다.”

- 그래요. 내 생각에도 김 시장이 대통령이라는 직위나 청와대라는 장소의 권위에 눌려서 그러는 건 아닐 것 같아요. 하하하. 그래서 더 재밌네요.

강정문은 재미를 넘어 즐겁기까지 하다는 듯 아주 ‘작심’하고 웃었다.

듣고만 있던 도훈이 살짝 빈정이 상하려는데, 웃음을 그친 강정문이 말을 이었다.

- 아, 혹시 이런 거 아닙니까?

“... 뭔데요?”

- 김 시장,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님 지지하죠?

“네.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해야 나라도 잘되고 국민이 편안한 거니까요.”

- 흐음. 선거 때도 대통령님 찍었나요?

“네, 그랬었습니다.”

- 오호? 이건 그냥 내 추측인데요. 혹시 이런 마음 아닐까요? 잘하길 바라는 대통령님 앞에서, 그것도 일반 시민이 100명이나 있는 곳에서,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거요.

“......”

- 아마 대통령님 본인이나 다른 참석자들이 없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비판하라면 김 시장도 할 말이 많지 않겠어요?

“... 아마도요?”

- 하하하. 이거 딱 그런 것 같은데요?

“... 뭐 말입니까?”

- 성과는 그리 좋지 않으나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좀 더 열심히 하라고 질책하는 게 직원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직장 상사.

“말도 안 됩니다!”

도훈이 단호히 대답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다 떠나서 직장 상사라니.

‘대통령과 시장이 어디 비교나 되는 자린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젓는데, 강정문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어찌 됐든, 내가 말한 것과 김 시장 마음 상태가 비슷한가요?

“직장 상사 얘기를 빼면 그런 것도 같습니다.”

- 흠. 그렇다면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네?”

- 90분짜리 행사에 100명을 초대했어요. 밥 먹는 시간을 빼도, 산술적으로는 한 사람당 1분씩도 말을 못해요. 안 그래요?

“그렇죠.”

- 아무리 듣기 위한 자리라고는 해도 대통령님도 몇 마디 하시겠죠? 그 시간까지 생각하면 국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냥 전시행사일 뿐이죠. 그렇지 않겠어요?

“... 그럴 것 같습니다.”

- 그런 보여주기식 행사를 지금 청와대에서 할 것 같습니까?

“......”

도훈이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강정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초청에 응해요. 아마, 김 시장이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어떻게요?”

-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고, 어쨌든 김 시장이 꺼림칙해 하는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청와대 의전이라는 게 세밀한 부분까지 다 신경 쓰는 거니까요.

“......”

- 나 믿어 봐요. 다른 거라면 몰라도 이런 것으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지 않아요?

“......”

- 아닙니까?

도훈이 못 이긴 척 답했다.

“그렇다고 해 드리죠.”

- 하하. 내가 지금껏 김 시장한테 들어본 것 중 최고의 칭찬인 것 같네요.

“설마요.”

도훈과 강정문의 통화는 잡담으로 이어졌다가 곧 끝났다.

강정문이 정확히 핵심을 짚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그와 통화를 마친 도훈은 꺼림칙했던 게 상당히 가셨다는 걸 깨달았다.

“... 도지사가 날 이렇게 잘 알았나?”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지켜보던 조상님이 끼어들었다.

- 너 ‘츤데레’였냐?

“츤데레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츤데레가 그런 것 아니었던가? 상대방에게 애정은 있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쌀쌀맞게 행동하는 거.

“예를 잘못 드신 것 같은데요? 애정이 있는 것 맞지만, 쌀쌀맞게 행동하는 게 걸렸던 거 아닙니까?”

- 그런가? 꼭 그런 뜻으로만 쓰는 건 아닌 것 같더라만. 여하튼 요즘 말은 워낙 다양하게 사용하니, 꽤 헷갈려.

피식 웃고 넘어가는 조상님에게서 시선을 돌린 도훈이 업무용 핸드폰에 시선을 줬다.

메시지 보관함에서 찾던 메시지를 확인한 도훈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훈의 얼굴에 더는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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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1주일 정도 남은 12월 말의 금요일, 도훈은 다시 서울을 찾았다.

청와대 인근 길가에서 차에서 내린 도훈이 운전석의 영배에게 인사했다.

“고생했어. 형은 부모님 댁에 갈 거야?”

“그래야지. 와이프랑 애들은 이미 가 있을 테니까.”

도훈은 영배와 함께 서울에 오긴 했지만, 청와대에는 혼자 갈 계획이었다.

시장으로 초청된 거라면 비서 한 사람이라도 동반할 수 있었겠지만, 개인 자격의 도훈만 초청받았으니까.

그래서, 영배는 도훈을 내려주고 부모님 댁으로 직행해 주말을 거기서 보낼 예정이었다.

“싸인 받아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하여튼 밥 맛있게 먹어라. 가능하면 사진은 꼭 찍어.”

“하하. 알았어.”

“간다. 월요일에 보자.”

영배의 차가 떠났고 백 팩을 어깨에 멘 도훈이 걸음을 옮겼다.

송년 만찬의 시작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남은 시각이었지만, 일찍 도착한 것은 행정관의 안내에 따른 것이었다.

곧 도훈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송년 만찬 때문에 왔습니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의 질문에 답하며 도훈이 품에서 초청장을 꺼내 보여줬다.

초청장을 본 경찰관이 손짓하자 다른 이가 도훈을 안내했다.

“절차에 따라 몇 가지 확인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 네.”

그렇게 도훈이 청와대 경내에 들어섰다.

10여 분쯤 뒤.

“... 혹시 김도훈 시장님 아니세요?”

“맞습니다.”

“와, 이거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신분확인과 검색 절차를 마친 도훈은 다른 만찬 참석자 몇 명이 대기 중인 곳으로 안내됐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도훈을 알아봤고, 도훈은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청하는 이들과 악수를 했다.

어떤 용도의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긴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열 명이 채 안 됐고 미리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시장님도 이번 만찬에 초청받으신 줄은 몰랐는데요?”

“저도 제가 초청받을 줄 몰랐습니다. 하하.”

초청자들은 대개 밝은 표정이었다.

대통령을 만난다는 건 웬만해서는 평생 한 번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곧, 가슴에 신분증을 단 청와대 직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조영민이라고 합니다.”

도훈과 통화했던 직원과 정무수석실 행정관이라는 다른 직원 하나.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올려놓더니 말을 이었다.

“만찬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들을 수가 없잖습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청와대 직원들이 여러분과 사전 미팅을 하면서 말씀을 전해 듣는 겁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녹음했다가 녹취록으로 정리해 대통령님께 전해드릴 거고요.”

“어떤 분야가 됐든 좋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고 느끼시는 걸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행정관들의 말에 한 초청자가 웃으며 질문했다.

“혹시 욕하면 그 욕도 그대로 녹취록에 적히나요?”

“하하. 심하지 않다면 그럴 겁니다. 좀 원색적인 욕이라면 XX 표시를 하고 가로 치고 욕 혹은 원색적인 비난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겠죠.”

“이 자리에서만 말하고 이따가 만찬장에서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되는 건 아니겠죠?”

“절대 아닙니다. 발언 기회를 얻으시면 저희랑 했던 얘기를 다시 하셔도 되고 다른 얘기를 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초청된 분들 모두의 이야기를 대통령님께 전하려는 거고요. 내용을 편집한다거나 일부러 뺀다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만찬 시작까지 남은 건 약 한 시간 정도.

이런 형태면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을 터.

미리 행정관에게 설명을 들었었지만,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도훈이었다.

“자, 시작해 보실까요?”

행정관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할 말이 많은 도훈이었지만, 다른 초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모양이었다.

“경제가···.”

“개혁 속도가···.”

“외교는 너무 잘하시는데···.”

사람들의 열띤 참여 속에 사전 미팅은 금방 지나갔고, 도훈을 비롯한 만찬 초청자들이 곧 행사장으로 안내됐다.

그리고, 도훈은 행사장 앞에서 참가자들과 일일이 인사하는 대통령 부부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김도훈 시장님.”

“... 처음 뵙겠습니다, 대통령님.”

담담히 미소 짓는 대통령과 악수하는 도훈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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