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48화 (149/279)
  • 148. 있는 그대로 - 3.

    TV 토론이 방송되고 며칠이 지났지만, 도훈 때문에 어떤 큰 파문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중파 방송국은 물론, 일부 종편 방송국도 정치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거나 기존 방송에 담아냈다.

    그렇게 많은 프로그램 중 하나에 짧게 등장했을 뿐인 도훈의 멘트가 ‘파문’까지 일으킬 수준은 아니었던 것.

    다만, 도훈의 SNS 계정에 다시 방문객이 늘어나는 현상은 있었다.

    - 시장님 말씀 속 시원했어요.

    - 좋긴 했는데, 좀만 더 강하게 비판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 일리 있는 비판이었습니다.

    - 시장님도 균형 맞춘다고 ‘모두 까기’ 하신 건 아닌가요? 조금 실망입니다.

    - 모두 까기였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괜히 엉뚱한 시비 걸지 말자.

    계정에 달린 댓글을 확인한 도훈이 핸드폰을 내려놓자 옆에 앉았던 영배가 잽싸게 낚아챘다.

    “... 몇 개 더 달렸을 뿐인데 그걸 또 일일이 확인해야겠어요?”

    “재미있으니까 읽는 겁니다. 그리고 SNS 관리는 제 책임 아닙니까.”

    “관리할 게 뭐가 있습니까. 드문드문 정책이나 행사 선전하는 게 전분데.”

    “그거 시장님이 안 하시고 제가 하잖습니까.”

    “참, 내···.”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자 자기 책상에 앉은 지연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순탄하게 넘어갔네요. 전 좀 조마조마했는데.”

    도훈이 자료 영상 촬영을 할 때, 비서실 직원들이 다 있었기 때문에 토론 마지막에 도훈의 모습이 다시 등장했을 때 모두 긴장했었단다.

    ‘뻔뻔하다’는 그 말이 나올까 봐서.

    “저도 좀 긴장하긴 했습니다. 문제 안 되게 편집했다는 얘긴 들었지만, 딱 그 앞부분까지 나오게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아마, 그 방송 본 사람 중에 우리만 긴장했을 겁니다.”

    “하하, 네. 그런데 다다음 주에 ITS 특집 토론 또 한다던데요?”

    “네. 저도 들었습니다.”

    ITS 연말특집 생방송 토론은 기획단계에서는 1회 방송이었는데 최종적으로 2회로 늘어났다.

    2회차 방송 때는 좀 변화된 주제로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도훈은 패널이든 자료 영상 출연이든 여기에 섭외 요청을 받지 않았다.

    “연말까지 별다른 일 없겠죠?”

    “그래야죠.”

    첫해는 뭐든 처음인지라 긴장도 더 하고 준비도 더 했다.

    그래도 이제 두 번째로 경험하는 일인지라 예산안 통과나 겨울을 대비한 각종 준비를 점검하는 일에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긴 만큼 일선 부서나 시민과의 접촉면을 늘리긴 해서 시간이 남아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작년보다 훨씬 편하다고나 할까?

    “갑자기 산불이 나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러겠죠.”

    뭔가를 읽으며 대화에 끼지 않던 두진이 툭 던진 말에 도훈과 지연이 웃던 그대로 굳어졌다.

    작년 초겨울,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갑자기 터진 산불로 하룻밤 난리를 쳤던 걸 자연스레 떠올렸으니까.

    게다가 그 뒤에 이어진 뜬금없는 ‘비난’까지.

    “에이, 설마요.”

    “... 그렇죠?”

    시선을 마주한 지연과 도훈이 어색하게 웃는데, 도훈의 개인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위이잉.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이 반가운 표정을 했다.

    - 전데요. 도훈 씨 일정이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도지사님과 같이 대흥에 가려고요. 지사님이 간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시네요. 일정 괜찮아요? (세경)

    “지연 씨, 저 저녁에 특별한 일정 없죠?”

    “네. 오늘은 없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지연의 답을 들은 도훈이 개인 핸드폰을 조작해 전화를 걸며 시장실로 들어갔다.

    띠리리리.

    - 네, 도훈 씨.

    “세경 씨만 오시면 일정이 괜찮고 지사님과 함께 오시면 다른 일정이 생길 수도 있는데요.”

    도훈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뻔히 장난인 걸 알 테지만, 지난달 초에 한 번 본 뒤로 지금껏 만나지 못한 상태니 설사 강정문과 함께 온다고 해도 환영인 도훈이었다.

    - 호호. 듣는 제가 기분은 좋은데 오늘은 도훈 씨가 좀 양해해 주세요.

    “꼭 지사님과 함께여야 합니까?”

    - 네. 지사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봐요.

    세경의 답에 도훈이 아쉬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무슨 일이길래 일부러 대흥까지 오신대요?”

    -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흐음. 알았습니다. 저녁에 봐요.”

    - 네. 이따 봐요.

    기분 좋은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도훈은 그날따라 시계를 자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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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 저녁, 도훈의 단골집인 중국관 뒷방.

    “오호? 그래요? 야, 이거 김 시장 인기가 그렇게 좋은 줄 몰랐네요. 비서실에 광팬을 두고 있다니.”

    “호호, 광팬까지는 아니고 그냥 취미활동일 뿐입니다.”

    “그 취미활동 열심히 하려고 비서실에 지원했고요?”

    “네.”

    “하하하.”

    조금은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강정문에게 지연이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오늘의 술자리 참석자는 강정문, 민세경에 이어 도훈과 영배, 원지연이 전부였다.

    세경만 왔다면 도훈만 나왔겠지만, 강정문이 함께 왔으니 애초에 둘만의 애틋한 시간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도훈은 강정문의 동의를 얻어 비서실 직원 중 희망자에 한해 동석하도록 했고, 지연과 영배가 따라 나온 것.

    “이거 데이트 방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지연 씨. 어차피 도지사님이 오셔서 데이트는 진즉에 물 건너간 걸요. 편히 드세요.”

    “호호, 네.”

    도훈과 세경의 관계는 비서실 직원 전원이 알고 있었다.

    도훈은 지연의 반응을 좀 걱정하긴 했는데, 그녀는 아주 ‘쿨’하게 ‘덕질은 덕질, 연애는 연애.’라고 답해 도훈을 안심시켰었다.

    나름 즐거운 술자리가 얼마간 이어지는데 강정문이 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김 시장, 우리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울까요?”

    “그러시죠.”

    선선히 승낙한 두 사람은 건물 뒤편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강정문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데 도훈이 담담히 질문을 던졌다.

    “하실 말씀이 뭡니까, 지사님?”

    “하하, 짐작했어요?”

    “짐작 못 하는 게 이상하죠. 연말이라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수행원도 하나 없이 세경 씨랑 단둘이 오실 때는 그만큼 조용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짐작했는데 직원들이랑 같이 나왔어요?”

    “세경 씨랑 있는 자리에서 지사님과 그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요.”

    “흠.”

    강정문이 도훈을 말없이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그건 세경이를 아끼는 김 시장 나름의 방식인 거겠죠?”

    “물론입니다. 아무리 세경 씨가 지사님이랑 친척이라고는 해도 세경 씨가 몰라도 좋은 얘기가 있으니까요. 아니, 굳이 알리지 않아도 좋은 얘기가 맞겠죠.”

    도훈의 답에 강정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좋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세요.”

    “지사님이 좋아하시든 싫어하시든 제 맘대로 할 건데요.”

    “어허, 나중에 결혼 승낙받을 때 내 지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때 크게 당할 수도 있는데?”

    “결혼이요? 너무 멀리 나가셨습니다.”

    “그런가요? 하하.”

    담담히 웃고 난 강정문이 말을 이었다.

    뜻밖이어도 아주 뜻밖의 말을.

    “김 시장, ITS에 녹화 출연할 때 방송에 안 나간 말도 했다면서요?”

    “네?”

    “아, 그 토론에 자료로 나간 영상 녹화할 때 좀 더 심한 말도 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아는 수가 있죠.”

    “허, 참.”

    어이없다는 도훈에게 강정문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정치인들, 정확하게는 국회의원들 뻔뻔하다는 얘기였다는 것 같던데, 맞아요?”

    “네, 맞습니다.”

    “그게 안 잘리고 나가길 바라고 말한 거겠죠?”

    “물론입니다.”

    “허허, 역시···.”

    ‘역시’ 뒤에 무슨 말을 생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훈이 강정문을 향해 곱지 않은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그 얘길 어떻게 아셨는지는 말씀 안 해주실 겁니까?”

    “별것 아니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 그 토론 참여자 일부에게 편집된 인터뷰 말고 인터뷰 전체를 보여준 모양이에요.”

    “저만 말입니까?”

    “아뇨. 인터뷰에 등장한 시민들 거 다 말입니다.”

    “... 흠.”

    “아마, 국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참여자들이 요청한 모양인데 김 시장 인터뷰도 그대로 전해졌던 겁니다.”

    “... 그걸 본 분이 저를 두고 뭐라고 한 겁니까?”

    도훈의 말에 강정문이 쓰게 웃더니 답했다.

    “뭐라고 했다기보다는 나한테 좀 다독일 필요가 있지 않냐는 얘기는 하더군요.”

    “그 날 출연했던 여당 의원이겠군요.”

    “글쎄요.”

    강정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담담히 웃었다.

    가만히 강정문을 바라보던 도훈은 자신의 말이 어떤 큰 문제가 되거나 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저 다독이려고 오신 겁니까?”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뇨.”

    “하하.”

    강정문은 가만히 웃더니 질문을 던졌다.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말입니다. 혹시, 또 기회가 오면 속에 있는 말 그대로 다 할겁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듣는 상대가 누가 됐든지 말이죠?”

    “듣는 상대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게 더 이상한 거죠.”

    반문하는 도훈을 빤히 바라보던 강정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강정문의 미소에 문득 경계심이 든 도훈은 얼른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방송에다 대고 그런 말을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신문이고 방송이고 출연하기 싫어하는 거.”

    “알죠. 잘 알죠.”

    강정문이 너무 선선히 답한다 싶은 도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질문을 던졌다.

    “... 뭘 꾸미시는 건데요?”

    “꾸며요? 내가?”

    “... 네. 지사님이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부처님 같은 미소를 보이는 이유가 그래서가 아닌가요?”

    “허허. 사람 잘못 봤어요.”

    “......”

    도훈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지만, 담담하게 웃는 강정문은 도훈의 의구심을 해소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결국, 도훈은 찜찜함을 떨치지 못하고 담배꽁초를 비벼 끈 뒤 말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요. 아, 나 한 대만 더 피우고 갈 테니까 담배 좀 줄래요?”

    “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도훈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강정문은 도훈의 뒤통수에다 대고 빙긋 웃더니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칙.

    “후우.”

    그리고 강정문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을 조작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자, 곧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네. 도지사님.

    “아직 퇴근 안했어?”

    - 하하. 그렇죠, 뭐. 저희 팔자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난 자네 덕분에 일찍 퇴근해서 맛있는 것 먹고 있는데 말이야.”

    - 제 부탁 들어주시는 거니까 그 정도는 얻는 게 있으셔야죠. 그래서 만나셨습니까?

    “그래, 만났네.”

    - 뭐라고 하던가요?

    “언제 어디서 누구를 상대로든, 말이 달라지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답하던데? 내가 그랬잖은가. 그런 사람이라고.”

    강정문의 말에 상대방이 웃으며 답했다.

    - 뭐, 두고 보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초청하면 오긴 할까요?

    “글쎄. 그거야 나도 장담을 못 하지. 들어봤을 거 아닌가? 정치적인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은 웬만해서는 안 하려고 한다는 걸.”

    - 쩝, 그건 그렇습니다만, 초청 수락 여부가 제일 중요합니다, 도지사님.

    “그거야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 아이고! 도와주시는 김에 좀 끝까지 화끈하게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상대방의 하소연에 이번에는 강정문이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초대나 해. 내가 도와주는 건 그 초대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 나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 거절당하면 모양새가 좀··· 그렇잖습니까?

    “모양새는 무슨? 김 시장이 초청받았다고 떠벌리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그걸 거절했다고 소문낼 사람도 아니야. 그런 일로 이득 보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그건 믿어도 돼. 내가 보증하지.”

    - ... 너무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뭘 보고 그렇게 그 친구를 좋게 보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뭡니까, 도대체?

    씨익.

    질문을 받은 강정문이 자기도 모르게 묘한 미소를 짓고 답했다.

    “그건 비밀일세.”

    이런저런 도훈과의 인연을 생각하는 강정문이 마지막에 도훈과 세경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도훈이 어느 모임의 초대 대상 리스트에 최종 확정됐다.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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