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46화 (147/279)

146. 있는 그대로 - 1.

한참 안준식의 이야기를 듣고 난 도훈은 딱딱해진 표정으로 감상을 말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기적인 정책들을 진짜 시의회에서 추진한다고요?”

안준식이 몇 번 경험해보지 않은 도훈의 날 선 모습이었지만, 안준식은 담담히 말했다.

“그 얘기 들은 직후의 제 반응이 딱 지금의 시장님과 같았습니다.”

“... 허. 어쨌든 진짜 대전시 시의회에서 그러고 있단 말씀입니까?”

“시의회 차원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의원 중 일부가 그런 꿍꿍이를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안준식이 이야기한 건, 대전시 의회에서 시에 제안하려고 고민 중이라는 정책 몇 가지로 ‘광역화’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것들이었다.

좋게 말하면, 대전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의 생활에 대전이 큰 영향을 끼치니까 크게 한 덩어리로 묶으면 좋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이건 인근 지역의 소비 수요도 가능한 대전으로 흡수하겠다는 아주 이기적인 정책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제는 꽤 많은 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지역 상품권을 보자.

각종 보조금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보조금을 통해 지원 효과도 얻지만, 그 보조금이 지역 경내에서 소비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를 노리는 것이기도 하자.

안 의장이 말한 것 중, 대전과 인근 지역의 지역 화폐를 통합하자는 게 있었다.

이럴 경우,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지역 내의 보조금 소비 상당 부분이 대전으로 넘어가게 될 터.

당장에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추세가 강해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대흥시만 봐도, 대전에 직장을 가진 인구가 상당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의장님?”

“그렇죠. 애초에 위성도시로 계획됐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지역 화폐로 보조금 지급하는 건 그나마 시 관내에서 쓰였지만, 통합되면 대전으로 흘러나가는 양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책 고민한다는 사람들도 그걸 모르지 않으니까 추진하려고 하는 것일 테고요.”

“허···.”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도훈이 정색하고 물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누구랍니까?”

도훈의 질문에 안 의장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대전시 시의회 의원 중 우리 당 소속 중도파 의원들이 주도한다고 들었습니다.”

“시의회 의원 절대다수가 민의당 소속 아니던가요?”

“맞아요. 비례대표로 당선된 대자당 의원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우리 당 소속입니다.”

“......”

도훈이 말문을 잃었다.

지난 지방 선거 때 여당은 경북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다.

당시 정부 지지율은 비상식적이라고 할 만큼 높았고, 그에 대한 반사이익이 틀림없었다.

그걸 ‘민심의 심판’이라고 하면서, 국민의 선택에 감사하며 더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던 여당이 아닌가.

대전, 충남 지역의 기초단체장 대부분도 여당 소속.

그런데 저렇게 자기 지역에만 이익이 되는 일을 고민한다?

“설마···?”

“그 사람들뿐입니다. 저는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언급한 정책들이 어떤 효과를 낼지 모르지 않을 테니까요. 아마, 대전 인근 단체장들은 다 반대할 겁니다.”

“......”

“그냥 우리 당 내부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창피할 따름입니다.”

“......”

안준식의 표정이 아주 씁쓸한 것으로 변했고, 도훈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의 침묵이 제법 오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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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의 여당 소속 정치인 중 일부가 생각해냈다는 몇몇 정책들.

대전시당 내에서도 반대를 명확히 하는 이들이 있고, 유력한 인사들이 그렇다는 안준식의 말에도 뭔가 개운치 않은 게 남은 도훈이었다.

-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린 건, 분명 어떻게든 시장님도 아시게 될 텐데 너무 화내거나 여당에 실망하지 마시라는 의미로 미리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가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안준식의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참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도훈은 왠지 이 일에 대한 여당 내 인사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 음, 고민하는 건 죄가 아닙니다. 민생 현장을 돌아보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유의미한 방법을 찾는 건 정치인의 의무니까요. 그런 걸 더 열심히 해야 우리 정치의 수준이 높아지겠죠. 하지만, 깊은 고민이 꼭 좋은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죠. 그래서 정치인을 여럿 뽑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단지성의 힘은 정치에서도 필요한 거니까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절대 실행 안 될 테니까요.

지역구 국회의원 김용진은 도훈과 오래간만에 통화하면서 받은 질문에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그렇게 답했다.

- 정신 나간 사람들이에요, 김 시장. 개인적인 처지가 좀 어려워서 그 타개책을 고민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온 모양이던데, 그건 개선이 아니라 최악으로 가겠다는 거나 다름없죠. 대전시장이 알아서 잘 통제할 겁니다. 시장은 처음이지만, 구청장 경력이 있으니까 조정 경험은 충분할 테죠.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을 쓰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강정문 도지사도 장담했다.

- 나도 들었는데 말이에요. 아무리 자기 지역에서 상권 좀 살려보라고 아우성을 듣는다지만, 그렇게까지 상식이 없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상도덕 없는 상인이랑 뭐가 달라요, 그게?

시청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서태기 의원은 대놓고 그런 고민을 한다는 이들을 비난했다.

도훈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역구 주민이나 시민 전체의 복지 향상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훈에게 별의별 꼴을 다 보인 대표적인 시의원이 서태기가 아니던가.

“... 역시 정치인은 믿을 게 못 돼.”

“... 갑자기 웬 봉창 두들기는 소립니까?”

토요일 오후, 시장 비서실.

오늘은 영배가 쉬고 두진, 지연이 도훈과 함께 하는 날이었는데 두진이 영배의 혼잣말을 듣고 반응했다.

“아, 제가 소리 내서 말했군요.”

“네. 멍하니 앉았다가 갑자기 믿네 못 믿네 하는 소리를 하셨어요.”

“하하.”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는 도훈에게 두진과 지연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고 지난번에 안 의장에게 들었던···.”

안 의장이 알려줬던 얘기는 이미 비서실은 물론 시청 직원들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

대흥시가 대전의 위성도시로 계획된 곳이니, 실제 정책으로 입안되고 실행된다면 당연히 영향을 받을 테니 직원들이 관심을 둘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니까.

그 일에 대한 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다는 설명을 듣고 난 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분들 반응하고 정치인은 못 믿는다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시장님?”

“그분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정치인 대부분은 ‘재선’이라는 게 눈앞에 다가오면 못할 게 없다는··· 뭐, 그런 뜻입니다.”

도훈이 안준식에게 전해 듣기로는, 문제의 정책을 고민한다는 시의원들은 그간 자신들을 중도라고 칭하며 그룹으로서 행동해 왔단다.

어느 당이든, 당내에 한 가지 생각만이 있을 수 없는 건 당연한 현실이니 ‘그룹’으로 행동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다만, 야당에 발목 잡히며 대통령과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니, 국회에서도 개혁 입법에 앞장서지 않고 거리를 두는 이들이 있는데 그 국회의원들과 관련이 있다나?

그러니까,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당장 여론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일에 나서지 않고, 지역구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에 좋은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런 중앙 정치인들과 지역 정치인이라는 얘기.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문제는 그 당이 여당이라는 것이고 벌써 그러고 있다는 거죠.”

“시기가 시기니까···.”

두진이 끼어들었고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총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인데요?”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말이죠. 아마···.”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현실이니 국회의원들이야 ‘재선’이 발등의 불이 됐다.

그리고 그런 국회의원들은 각자의 지역구에서 뭐든지 해보려 할 터.

지방 선거 때와는 달리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위기감이 커진 것도 저런 짓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일 테고.

아무래도 그런 지역구 국회의원이 전면에 나서기 전에 동조한 지방 의회 의원들이 운을 띄우는 식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게 어디 대전만의 일이겠는가.

도훈의 설명을 듣고 난 지연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됐든,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올바른 정치인의 모습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러니까요.”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경제 상황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있으니 국민이 정부에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도훈이 판단하기에 최소한 대통령은 임기 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자세로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기에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져도 앞자리 숫자가 3을 기록한 적은 없고, 작지만 호재가 생기면 5자를 찍기도 한다.

문제는 여의도 정치판의 여당 인사들이 그런 지지율에 점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여전히 ‘개혁’이라는 화두는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지만,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여당 내에서도 심심찮게 ‘잡음’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뭐, 보수 야당에는 애초에 기대할 게 별로 없고 말이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놓고 당내에서 그렇게 싸우면서도, 정부 정책 발목잡기에는 ‘한마음, 한뜻’인 모습을 보이니까.

중앙 정치가 지방자치와 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이게 꼭 그렇지도 않다.

중앙 정치판이 오락가락하거나 자치행정 일선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현장에서는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시장님.”

“네.”

“방송에다 대고 너무 세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조만간, 연말 ITS 토론 방송에 나갈 도훈의 자료 영상을 찍을 예정이었다.

지연은 아무래도 도훈이 수위가 높은 비판을 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하, 지금 저 걱정하시는 겁니까?”

“네.”

웃어넘기려던 도훈은 정색하고 답하는 지연의 모습에 머쓱해 했고 두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원 주무관도 시장님 본색을 점점 알아가는가 보네요. 저랑 조 비서관이 그런 걱정을 좀 했었거든요.”

“너무하십니다, 실장님.”

“너무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실없는 걱정은 아닐 테지요.”

“... 하하.”

영배가 제일 잘 알고 두진과 영진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으며 지연도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는 도훈의 성향 중 하나.

- 득이 되든, 실이 되든 실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한다.

대흥시 시민을 대상으로 할 때도 ‘좋게 돌려서’ 말하는 건 잘못하는 도훈이었다.

잘한 걸 뽐내는 건 안 해도, 잘못한 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최소한 없는 걸 지어내서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실 거로 생각하는데요. 아픈 얘기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질 않잖아요.”

“그거야 듣는 사람의 책임이죠. 아무리 아픈 얘기라도 근거를 갖고 예의를 갖춰 하는 비판은 들어야 하는 게 맞아요. 그렇게 말하는 게 옳고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 그래도···.”

지연이 좀 우려된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고, 이 화제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는 도훈이 웃으며 말을 돌렸다.

“생방송도 아니고 녹화니까 방송국에서 알아서 편집하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그렇게 사고뭉치 아닙니다. 하하.”

“... 네.”

“자, 일에 집중하죠. 얼른 마치고 퇴근해야죠.”

“네.”

도훈이 서류에 시선을 줬고 두진과 지연도 각자 하던 일에 다시 집중했다.

시간이 훌쩍 흘러 도훈의 촬영에 이어 생방송 토론 당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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