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35화 (136/279)

135. 벌써 일 년 - 2.

7월의 첫 금요일 오후.

“삼가 명복을 빕니다.”

“... 고맙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상주를 위로하는 도훈은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가가 벌겋고 퉁퉁 부어오른 것이, 많이 울었다는 게 단번에 표시가 났다.

누군가 조문할 때마다, 위로의 말을 건넬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상주의 모습에 도훈은 차마 더는 뭐라 꺼낼 말이 없었다.

“......”

“... 고맙습니다, 시장님.”

“아닙니다. 뭐라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상주 옆에 있는 고인의 아내가 조금은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눈가가 벌겋게 변한 것은 아들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눈빛에서 뭔가 의지가 느껴졌으니까.

“내일이 발인이죠?”

“네.”

“장지는 어디라던가요?”

“고인 고향이 전남이라고 들었습니다. 고향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

수요일 낮에 쓰러진 징수팀장은 대전의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목요일 아침 세상을 떴다.

안타까운 것은,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발견이 늦었다는 것.

고인의 자녀들은 학교에 갔고 안타깝게도 아내도 집을 비운 상태였단다.

볼일을 다 보고 귀가한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을 때 이미 의식이 없었고, 응급실 의사는 발견이 너무 늦어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니까.

“듣자 하니, 몸살이 난 것 같다고 조퇴를 했다고 합니다.”

“조퇴하고 병원에 가실 것이지···.”

“약 먹고 자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겠죠.”

“......”

“저도 아는 사람인데,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장례식장 구석 자리에 앉은 도훈과 두진, 영진 모두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장이 된 후에 장례식에 참여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전에는 직원이 아닌 직원의 연로한 부모가 사망한 경우였다.

한창때인 직원이 갑자기 쓰러져 이렇게 허망하게 명을 달리한 건 처음이었다.

고인의 나이 이제 겨우 마흔여섯.

부인과 고등학생 아들, 중학생 딸을 남기고 눈을 감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닌가.

얼마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도훈은 고인의 가족에게 인사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낮 시간대를 택했는데 적지 않은 조문객이 있었다.

그게 얼마나 가족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썰렁한 것보다는 나을 터.

“대전 병원으로 가죠, 홍 주무관님.”

“네.”

차에 오른 도훈의 말에 영진이 담담히 답하고 승합차를 출발시켰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는 도훈에게 두진이 말을 걸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지만, 참 허망합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

탄식하는 두진에게 도훈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두진도 답을 원하고 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도훈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 어떻게 처리될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고 봐야겠지만, 순직은 힘들 겁니다.”

징수팀장이 쓰러진 직후, 두진이 나서서 그의 최근 생활이 어떠했는지 조사했다.

업무 부담이 지나쳤던 건 아닌지,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일이 있었는지, 업무가 많아 피로가 쌓인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쓰러진 징수팀장은 이번 하반기 정기인사 때 징수팀으로 발령받아 업무 파악에 분주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업무가 많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술이나 담배를 지나치게 했던 것도 아니고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가족조차 특별한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니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도 허망하다고 할밖에.

“이번에 알았는데, 일반 공무원이 순직으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더군요.”

“... 네. 그건 전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 위험과 관련된 일에 노출되는 일이 잦은 특수한 직종을 제외하고 일반 공무원의 죽음이 순직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재난 구조 중 사망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 공무원의 죽음은 순직이 아닌 ‘공무상 사망’으로 처리되는 게 절대다수였다.

순직과 공무상 사망은 유족 보상은 물론 명예와 관련한 부분에서도 그 처우가 많이 달랐다.

“같은 공무원인데도 순직 처리에 차별을 두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두진의 말에 도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지금 병문안 가는 분들은 더 심하죠.”

“... 네.”

도훈은 지금 대전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환경미화 차 사고 때 중상을 입은 두 사람의 병문안을 가는 중이었다.

각각 전치 14주, 전치 12주 판정을 받고 입원 중인 두 사람은 정식 공무원이 아니었다.

이른바, 무기계약직.

고용의 안정은 보장되지만, 급여의 안정은 보장되지 않는 공공기관이 고용한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

흔히 무기계약직 공무원이라고 불리지만 이들이 공무원이 아니라는 건, 공무원 연금에 가입되지 않고 일반 국민처럼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도훈이 시장이 되고 은연중에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시에 고용된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

처우 개선에 관한 도훈의 의지야 강력했지만,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한계도 분명했다.

당장 급여를 대폭 인상하는 건 불가능했고, 근무 환경 개선 등 우회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장애가 남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일단 그런 우려는 크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부상자들은 팔과 다리가 골절되어 전치 10주 이상의 진단이 나오긴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머리나 목, 허리 등의 부위를 다치지는 않았다.

“만나보면 알겠죠.”

“... 네.”

원래는 좀 더 일찍 병문안을 올 예정이었는데, 징수팀장이 갑자기 쓰러지고 사망한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도훈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가운데, 승합차가 대전으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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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시장님.”

“앉아 계세요. 그냥 계시라니까요.”

같은 다인실에 입원한 두 사람이 도훈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도훈이 얼른 다가가 만류했다.

곁을 지키고 있던 보호자들과도 인사한 도훈이 두 사람의 침대 사이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두 사람의 전신을 꼼꼼히 살피고 난 다음에야 도훈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었다.

“휴우, 사고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만하시길 천만다행입니다.”

“아이고, 그럼요. 차가 옆으로 넘어졌다는 소리 듣고 저는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옆에 앉은 보호자가 지금도 떨린다는 듯 가슴 어름에 손을 얹고 말했고, 도훈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 역시, 커다란 환경미화차량이 옆으로 넘어졌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에는 ‘최악’을 생각하질 않았던가.

“부러진 곳 말고 어디 통증이 있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살짝 까진 곳이 있긴 한데, 빨간약만 발라도 나을 정도인데요, 뭐.”

다리가 부러진 40대 직원이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고, 도훈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퇴원해도 괜찮은데···.”

“절대 안 됩니다.”

옆 침대의 팔이 부러지고 전신타박상을 입은 다른 직원의 말에 도훈은 단호하게 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가해자가 아니잖아요. 입원비나 기본 치료비는 상대 쪽 자동차 보험이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산재처리도 할 거고요. 그러니까 의사 지시를 꼭 지키세요. 퇴원한다고 바로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시잖아요.”

“... 예.”

두 사람과 보호자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고, 도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게···.”

“부담 없이 말해보세요. 두 분이 잘못한 일이 아니질 않습니까.”

도훈이 재촉하고 두진도 거들어 두 부상자 중 한 사람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저희가 12주, 14주 진단을 받았잖습니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 몇 달씩 일을 못 할 상황이니···.”

“그게 왜요?”

담담한 표정으로 도훈이 묻자 직원이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누가 그러는데··· 잘리는 거 아니냐고···.”

“잘려요? 두 분이요?”

“... 네.”

“누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 저희 얘기를 듣고 어제 퇴원한 어느 환자 보호자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요.”

“......”

도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잃었고, 두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훈이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 대흥시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 그렇죠?”

“물론이죠. 두 분은 업무를 수행하다 다치신 거잖아요. 이런 경우, 병가도 180일, 그러니까 6개월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걸요. 산재보험 규정대로 보상도 받을 수 있어요.”

“... 그, 그렇습니까?”

“네. 그리고 누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라도 두 분은 퇴직이나 해고를 당하지도 않아요. 업무수행 중 다쳤다면 상해 기간 동안 퇴직, 해고가 금지되니까요.”

“... 네.”

“급여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규정이 있습니다만, 저희가 두 분에게 유리한 쪽으로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 물론 어떤 방식이 됐든, 사전에 두 분과 상의해서 결정할 겁니다. 이 점은 믿으셔도 돼요.”

도훈이 차분히 설명하자 두 부상자와 보호자들의 얼굴이 표나게 밝아졌다.

듣고만 있던 두진이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위생팀 오 주무관이 하루에 한 번씩 들르지 않나요? 그 친구한테 물어보지 그랬습니까.”

“... 왠지 물어보기 어려워서요.”

“뭐가 어려워요, 직장 동료인데.”

“... 그게···.”

머쓱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직원의 모습에 도훈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했다.

아무리 ‘같은 직원’ 운운한다지만, 정식 직원과 이들에 대한 처우는 판이한 게 사실.

도훈이 무기계약직 직원의 처우 개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만, 그런 현실적 ‘차이’는 두 집단의 융합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문병 오셨는데, 음료수도 하나 안 드리고.”

“괜찮습니다.”

“그래도 예의가 아니죠.”

직원 부인이 화제를 돌리려는지 사양하는 도훈과 두진의 손에 극구 음료수를 한 병씩 들려줬다.

도훈은 얼마간 더 머물며 직원, 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에, 두 가족이 직장 문제로 걱정하지 않도록 일부러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당장은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 잘 받으세요. 급여나 병가, 보상 등에 관한 건 잘 정리해서 오 주무관을 통해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장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건 두 분에게 제가 꼭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의무.”

“... 그래도요.”

“걱정하지 말고 쉬세요. 그리고 혹시 오 주무관에게 하기 어려운 얘기가 있다면, 제게 연락하세요. 제 번호 아시죠?”

“네.”

몇 번이고 사람들을 다독인 뒤에야 도훈은 병실을 떴다.

복도로 나온 도훈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졌다.

일하다가 다쳤다.

잘못해서 다친 것도 아니고 실수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교통사고의 피해자였을 뿐.

그런데도 잘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 말도 안 돼.’

이를 악문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직원은 정직원 나름, 무기계약직은 무기계약직 나름의 불만과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 전 병실에서 느낀 건 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도훈에게는 그걸 개선은 해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었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다고는 해도, 그는 겨우 초짜 시장일 뿐이었으니까.

‘... 시장씩이나 돼서도.’

대흥으로 돌아가는 내내, 도훈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에 관한 도훈의 고민은 생각보다 오래 계속됐다.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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