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31화 (132/279)

131. 과유불급 - 1.

6월 중순의 어느 날 대흥시청 시장실.

도훈, 두진과 전경완 부시장에 자치행정과장까지 네 사람이 시장실 소파에 모여 서류를 검토하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 이 분은 좀 빠르지 않습니까?”

“아, 그 사람은 근속 승진이 아닙니다. 직무수행능력 우수자로 특진 대상자입니다. 고과 점수가 우리 시청 직원 중에 가장 높습니다.”

“그렇군요. 최저 연수는··· 채우셨네요.”

“하하, 아무리 특진이라도 최저 연수도 안 채우고 승진하는 건 좀 그렇죠. 엄연히 규정이 있는 걸요. 근속 승진이든 특진이든, 이번 승진 대상자 중 최저 연수 안 채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 네.”

도훈은 자치행정과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중하게 서류를 검토했다.

이 회의의 안건은 2019년 하반기 정기인사안 중 승진 대상자를 검토하는 것.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도훈도 이 안건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았기에 담당 부서장과 부시장까지 참석해 논의하고 있다.

단순 인사이동이 아닌 승진의 경우는 ‘심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심사위원회 위원장은 도훈이 아닌 전경완 부시장이었기에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도훈은 위원회에 상정할 안건의 검토단계에서부터 부시장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 분은 징계기록이 있네요?”

“아, 오강록 주무관이요? 10년 가까이 됐는데, 음주운전 적발돼서 면허정지 100일 처분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 징계가 있었고 그 징계 건으로 두 번 승진 누락 됐습니다. 이후 다른 징계는 없습니다.”

“음.”

승진과 관련한 회의는 30분 조금 넘게 이어졌고, 그 부분의 검토가 끝나자 자치행정과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다른 세 사람은 더 논의할 게 있었고, 논의를 이어가기 전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만든 영상에 출연하셨다면서요?”

“아, 예.”

새로 내린 원두커피를 마시며 전경완이 묻자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도훈은 준수가 요청한 찬조 출연에 끝내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의 마지막에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응원합니다’를 외쳐야 했다.

그 답례로 ‘다음 선거 때···.’ 어쩌고는 극구 사양해서, 그럴 일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나중에 도훈이 필요할 경우 초등학생 16명에게 ‘한 번 도움을 요청할 권리’를 받아냈다.

어쨌든, 도훈의 ‘짤’은 그렇게 여전히 유행하는 중이었다.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전경완이 도훈을 향해 몸을 구부리더니 저만치 창가에서 전화 통화하는 두진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주말에 세경이랑 데이트하다가 ‘짤방남’이라는 소리도 들으셨다던데요?”

“... 세경 씨가 그 얘기도 하던가요?”

“하하, 네. 서점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좀 당황스러웠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 쩝, 그런 일이 있긴 했습니다.”

지난 주말, 도훈은 처음으로 민세경과 데이트를 했다.

낮에 만나서 차 마시고 밥 먹은 뒤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는 코스로.

정장이 아닌 캐주얼한 옷차림을 했는데도 이따금 도훈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좀 당황스럽긴 했다.

웃긴 건, 알아본 사람들이 ‘김도훈 시장이다!’라고 하는 게 아니고 ‘짤방남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장’이라 알아본 게 아니고 어디선가 돌아다니는 영상 속의 ‘짤방’만 봤다는 뜻.

“엉뚱한 것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십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속으로 자주 하는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허허. 제 집사람은 번듯한 이미지라고 호평하던 걸요.”

“호평이든 악평이든 얼른 다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하하하.”

전경완이 웃는데 두진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고 각 부서에서 제출한 인사이동 안을 놓고 다시 회의가 이어졌다.

“이 사람은 건설교통과에 배치하기 좀 그렇군요. 숙부가 건설회사 이사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그럼 배제해야죠.”

“복지기획팀 인력 충원은 이번에 가능하겠네요.”

“자리 빈 지 거의 석 달만이로군요. 그래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최종 검토가 간부회의에서 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동을 걸러내는 수준의 논의만 오갔다.

30분 정도 이야기한 끝에 모든 부서에 대한 개략적인 검토가 끝났다.

전경완이 식은 커피를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번에 고정임 주무관이 동사무소로 나가네요?”

“네. 비서실 근무가 2년이 훨씬 넘었으니까요. 그간 너무 잘해줘서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계속 비서실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고 주무관 커리어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니까요.”

“허허, 섭섭하시겠습니다.”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전대 시장 대부터 비서실에 근무했던 정임은 두진을 통해 이번 정기인사에서 근무지 변경을 신청했다.

도훈의 스타일에 잘 따라줬고, 도훈이나 영배가 모르는 것들을 세심하게 챙겨줘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정임 본인의 긴 공무원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볼 기회를 주는 게 옳았다.

“그럼 고 주무관 자리는 누가 대신하는 겁니까?”

“조 비서관하고 고 주무관에게 맡겼습니다.”

“네?”

“아마, 내일 공고가 나갈 겁니다. 비서실에 자리가 비니까 생각 있는 사람은 지원하라고요. 저는 실장님께 맡겼는데, 실장님은 1차로 조 비서관하고 고 주무관이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전경완의 시선이 두진을 향했고, 두진이 웃으며 답했다.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고 주무관이 잘 알 테고, 조 비서관은 아무래도 고 주무관 후임과 가장 많이 어울리게 될 테니까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최종 결정에는 저도 참여하겠지만요.”

“흠. 시장님은요?”

“저도 최종 결정에만 참여할 생각입니다.”

“하하, 이거 지원자가 몰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요. 야근이랑 주말 근무 때문에 비서실 고생한다는 소문 진즉에 시청에 쫙 돌았는데요. 지원자가 전혀 없을까 봐 걱정입니다, 저는.”

“제 생각대로라면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전경완이 장담했고 두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요?”

“글쎄요. 다만, 제 생각에 공감하는 직원이 훨씬 많을 거라는 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

“진짭니다. 아마 너무 많아서 고르는 과정이 쉽지 않기가 쉬울 걸요?”

“... 글쎄요.”

도훈이 여전히 ‘설마’하는 표정인 가운데 전경완이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번만큼은 제 말이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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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비서실 근무 지원에 대한 공고가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뿌려졌다.

그리고 원래 3일간 받을 예정이었던 지원은 급하게 다음 날 오전에 마감하기로 변경됐다.

“여덟 명? 확실한 겁니까?”

“네. 3분 전에 확인했을 때, 제게 메일을 보낸 사람이 여덟 명이었어요.”

정임의 말에 도훈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람들 다 조건에 맞아요?”

“당연하죠.”

“... 흠. 이상하네.”

“뭐가요?”

정임이 묻자 도훈이 조금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게 좀 그렇잖아요. 비서실은 야근도 많고 번갈아 주말 근무도 해야 하는 데다가, 제 일정 변경에 영향을 받으니 예상 못 한 상황에서 자다가 달려 나와야 할 때도 있고···. 외부 일정 수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고···. 근무 조건이 좀 나쁜 것 아닌가요?”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그렇다고 비서실 근무했다고 고과가 플러스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정임 씨도 이번에 승진 못 하잖아요.”

“에이, 비서실 근무하다 나갈 때 선심 쓰듯 승진했던 게 더 이상한 거죠.”

현재 8급인 정임은 이번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승진 없이 이동만 할 예정이었다.

과거, 비서실에서 오래 근무하며 시장과 손발을 잘 맞췄던 이들이 대개 이동과 동시에 승진했던 것과는 달랐다.

도훈은 정임에게 그런 ‘관행’을 깨고 싶다고 직접 설명했고, ‘여장부’인 정임은 흔쾌히 이에 동의했다.

“득 될 게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지원자가 많은 겁니까?”

“글쎄요. 야근이나 주말 근무하면 수당 나오고, 근무여건이 좀 불규칙적이긴 해도 마음은 편할 테니까?”

“마음이 편하다는 건 무슨 얘깁니까?”

“시장님이 직원들에게도 예의 차리는 분이고, 괜히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분은 아니라는 걸 직원들도 다 아는 거죠.”

“......”

이제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도훈은 여전히 직급의 고하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에게 존대하며 항상 적절한 예의를 갖췄다.

지난 기간, 도훈이 화를 낸 적도 있고 질책한 적도 있었지만, 항상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었고 뒤끝 없이 직원을 대했던 터라 도훈의 ‘성품’에 대한 직원들의 평은 아주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시장님이 공사를 너무도 뚜렷하게 구분하시는 것도 직원들에게는 좋게 보일 겁니다. 공사 구분 잘못하는 시장, 저도 겪어봤는데 정말 골치 아픕니다.”

두진이 웃으며 덧붙였고 도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찌 됐건, 지원자가 많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1차로 고를 겁니까?”

“내일 오전까지만 지원받는다고 메일을 다시 보냈으니까 일단 내일 오전까지 기다리고요. 저랑 조 비서관이랑 머리 맞대고 한번 거르고 그다음에는 후보 확정해서 면담하려고요.”

후임자 고르는 작업이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정임의 모습에 도훈은 다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정임에게 영배가 비슷한 모습으로 말했다.

“최종적으로 셋 정도로 후보를 줄인 다음에 실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장님도 그때 한번 확인해보세요.”

“알았어요. 두 사람이 잘 선택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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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까지 비서실에 지원한 사람은 최종적으로 12명.

8급 이하 직원 중 여성을 대상으로 했기에 그 조건에 해당하는 시청 직원을 생각하면 지원율이 꽤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정임과 영배는 당일 오후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검토하더니 열두 명을 여섯으로 줄였고, 다음날 그 여섯 명과 차례로 면담까지 해서 다시 셋으로 최종 후보를 줄였다.

그래서 화요일에 공고가 나간 비서실 신규 직원의 최종 후보 세 명에 대한 서류가 금요일 아침, 두진을 통해 도훈에게 전해졌다.

“... 빠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도훈과 두진은 시장실 소파에 마주 앉아 후보 세 명의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상태.

여섯 명을 셋으로 줄일 때 인사기록을 살피기 위해 두진이 함께 했기 때문에, 두진은 셋 중 아무나 골라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이미 한 뒤였다.

“실장님은 어떤 분이 제일 좋을 것 같으세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래도요. 누가 눈에 띄거나 하셨을 거 아닙니까?”

“글쎄요. 시장님 비서잖습니까?”

서류 중 세 사람의 지원 동기를 읽고 있던 도훈이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두진을 빤히 바라봤다.

“제 비서이긴 하지만, 실장님 직원이기도 합니다.”

“하하. 일단 다 읽어보고 얘기하시죠.”

도훈은 세 사람의 서류를 차분히 살폈다.

딱히 특출난 건 없었다.

세 사람 다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졌고, 나이도 비슷했으며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지원 동기에 잘 나와 있는 게 공통점.

“이 분은 신혼인데요?”

“네. 작년 가을에 결혼했습니다. 시장님께서 소소하게나마 축의금도 보내셨죠.”

“아니, 신혼부부라면 6시 ‘땡’ 하면 집으로 달려가고 싶을 때 아닙니까?”

“글쎄요. 면접 때 물어보니까 남편도 야근이나 주말 근무 이해해준다고 했다던데요.”

“......”

“부부가 선거 때 시장님 찍었답니다. 아, 그때는 예비부부였겠네요.”

두진의 말에 도훈은 뭔가 감이 왔다.

“... 혹시···.”

“이 세 사람은 확실하고 아마 대부분 그랬을 겁니다.”

“......”

“제가 먼저 물어본 거 아닙니다. 자신들이 밝힌 겁니다.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 시장님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고요.”

지난 선거 때 도훈이 받은 표의 상당 부분은 젊은 연령대와 여성에게서 나왔을 거라고 도훈과 영배는 자체적으로 판단한 적이 있었다.

이번 비서실 직원 공모는 아무래도 선거 때부터 지지해 온 이들이 주로 지원한 모양이었다.

그런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공무원 사회에서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열혈 지지자’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

‘난감하네.’

도훈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두진이 속내를 짐작한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냥 서류만으로는 힘드시죠?”

“... 당연하죠.”

난감하다는 표정의 도훈에게 두진이 말을 이었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세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안 그래도 저도 실장님이랑 같이 면담 참여할 걸 하고 후회하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안으로 10분 정도씩 면담할 수 있도록 시간을 잡겠습니다.”

“네.”

그렇게 도훈은 직원 중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정도로 ‘열렬한’ 이들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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