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30화 (131/279)

130. 짤방 스타 - 2.

2019년 6월 세 번째 주 금요일 오후, 대흥시청 문화체육과 공보팀 사무실.

띠리리리.

“네, 공보팀 원지연입니다.”

책상 위 전화가 울리자 직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네. 그 짤방이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용건은 요즘 들어 익숙한 요청.

“음, 시장님의 기본적인 방침은 상업적 광고가 아니라면 어디에도 사용해도 좋다는 겁니다. 아,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욕하려는 용도도 안 되고요. 네.”

직원이 최근 열 번이 넘게 반복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고, 상대는 자신이 ‘짤방’을 사용하려는 용도에 관해 설명했다.

“그런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는데, 나중에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짤방 중에 시장님 결정에 반하는 것들은 다 내려달라고 요청할 거고요. 그래도 안 내려가면 법적 조치를 밟으신다고 하셨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직원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옆자리 동료가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래?”

“그냥 개인 미투번데요. 자기가 만든 영상 중간에 짤방 넣어도 되냐고 그러네요.”

“어떤 영상인데?”

“국회의원들 일 좀 제대로 하라는 영상이랍니다. 비방 목적은 아니고 비판이래요.”

“흠. 미투브에서 시사나 정치 다루는 사람들은 좀 수위가 높을 텐데···.”

동료의 걱정에 직원이 자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겨 조금 전 통화한 사람의 개인 미투브 채널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막 욕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법적 조치 얘기했더니 알아서 조심하겠다고 했어요.”

“뭐, 그렇다면야···.”

동료가 고개를 돌렸고, 직원은 미투브 영상 중 하나를 클릭했다.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는 현장.

화염이 충천한 건물에 물을 뿌리고 장비를 맨 소방관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이었다.

영상의 제작자는 자기 큰형이 소방관이라는데, 고생하는 큰형과 동료 소방관을 응원하기 위해서 영상을 만들었단다.

- 소방관의 기도.

소방관과 관련해서 제법 많이 알려진 시 하나가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영상 위에 천천히 흘러갔다.

짧은 영상의 마지막에 영상 제작자로 보이는 사람의 음성이 들리고 갑자기 화면에 도훈이 등장했다.

- 응원하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도훈의 모습이 순간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영상이 곧 끝났다.

“또 봐?”

옆의 동료가 말했지만, 원지연은 눈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그냥 있길래 봤어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영상을 보는 그녀는 조금만 과장하면 모니터에 빠져들 것 같은 모습.

아주 개인적인 평가지만, 수십 번 수백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영상이었다.

“난 그 짤방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죠. 딱히 특별한 게 없으니까요.”

동료에게 답한 원지연은 인터넷 창을 끄며 얼른 표정을 바로 했다.

도훈의 ITS ‘라이브 초대석’ 출연은 그다지 반항이 크지 않았다.

사립 유치원과 관련된 얘기가 워낙 많이 다뤄지기도 했고,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도훈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이들이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국민에게 호소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방송에 많이 나왔었으니까.

그런데 출연 마지막 부분의 ‘응원하겠습니다’는 장면을 짤방으로 만든 이들이 있었다.

사립 유치원에 문제가 많으니 그 대안으로 공립화를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어느 학부모 단체.

그 단체에서 국회의원과 지자체 단체장들에게 자기 구역 유치원 공립화에 노력해달라는 의미로, ‘응원하겠습니다’라는 짤방을 만들어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의 공식 SNS 계정에 짤방을 댓글로 다는 운동을 했다.

그 단체에서 시작한 운동은, 자기 지역에 공립 유치원이 생기길 바라는 학부모들의 호응을 받았다.

특히, 법안 통과를 끝까지 시비 걸던 보수 야당의 의원들은 ‘정신 차리고 공립화에 나서라’는 식으로 짤방 테러까지 받았다.

그렇게 정치권 유력인사들 수백 명의 공식 계정에 그 짤방이 갑자기 범람하니 당연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법안 개정에 앞장섰던 여당 국회의원도 ‘응원하겠습니다’ 짤방을 만들었고, 법안 개정에 찬성하고 ‘공립화 확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유력인사들도 비슷한 짤방을 만들기 시작한 것.

그렇게 갑자기 응원한다는 짤방이 넘치고 공립 유치원 확대에 호응하는 반응이 커지니 교육부는 무척 좋아했다.

뭐, 온라인 여론이 곧바로 현실적인 힘이 되는 게 아니니 반대론자들에 대한 실질적 압박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좀 더 눈치를 보게 한 건 사실이니까.

사실, ‘입 닥치고 국민의 뜻을 따르라.’는 내용의 댓글과 ‘응원하겠습니다’ 짤방이 100개가 넘게 달리면 웬만한 선출직 공무원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 않겠나.

띠리리리.

“네, 공보팀 원지연입니다.”

- 안녕하세요.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요.

“말씀하세요.”

- 그러니까···.

원지연은 다시 ‘짤방’ 사용에 관해 문의하는 상대와 통화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젠 별의별 곳에서 다 전화를 하네.’

이번에 전화 건 사람은 워킹맘인 자기 아내의 생일파티 때 쓸 축하 영상에 도훈의 짤방을 써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도훈의 뉴스 출연은 공립화 정책을 응원한다는 것이었지만, 응원한다는 내용의 짤방은 꼭 그 주제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게 아니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내용이면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

화재 진압 현장의 소방관이나 격무에 고생하는 경찰관, 365일 휴일이 없는 군인 등을 응원한다는 글에도, 고생하는 부모님께 전하고 싶다는 글에도, 학교생활에 고생하는 전국의 고3을 응원한다는 영상에도, 기타 다양한 목적의 ‘응원’을 목적으로 한 글과 영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응원이 아닌 비아냥거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도 있지만, 그야말로 소수.

당사자인 도훈은 이 상황을 무척 황당하고 난감해하다가 결국에는 포기해버렸다.

- 상업적 목적, 누군가를 비난 혹은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후에 점검은 할 거고 제가 제시한 목적이 아니라면 내려달라고 할 겁니다. 좀 심하면, 법적 조치를 밟을 생각도 있습니다.

그렇게 공보팀에 태도를 결정해 주고, 공식 SNS 계정에도 그런 내용의 글을 올리고 만 것.

응원하겠다는 짤방이 무슨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만연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당연히, 당사자의 의사와는 반대로 도훈의 인지도는 또 높아졌다.

‘아무리 봐도 우리 시장님은 유명해지는 게 싫으신 것 같던데. 시장치고 참 별나.’

사용 목적을 설명하는 어느 열혈 ‘남편’과 통화하며 원지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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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늦은 시간, 시장 비서실.

- ... 경연대회를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OO 중학교 합주반 친구들을···.

- ... 응원합니다.

영배가 핸드폰 속 영상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는데, 소파에 앉은 도훈이 불만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하하. 그 말씀, 한 번만 더 하시면 천 번쯤 하셨겠어요.”

“휴우.”

정임의 말에 도훈은 한숨을 내쉬고 투덜거렸다.

“전 정말 진지하고 재미없게 촬영에 임했단 말입니다. 아주 교과서적으로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재미는 1도 없죠.”

“그런데 그 재미없는 영상이 왜 저렇게까지 돌아다니냔 말이죠.”

“말 그대로 재미가 없으니까요.”

“... 하.”

인상을 팍 쓰는 도훈을 두진이 웃는 낯으로 다독였다.

“진지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은 좋은 의미, 좋은 의도 이외에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뜻도 됩니다. 사실, 지금 그 ‘짤’이 쓰이는 용도 대부분이 그렇잖습니까.”

“... 그렇죠.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죠.”

“그러니 그만 포기하세요. 이러다 또 새로운 흥밋거리가 생기면 금방 그 짤은 묻힐 겁니다.”

“포기는 진즉에 했습니다. 이해를 못 하는 거죠.”

갑자기 ‘짤방’ 스타가 됐고, 그게 영 이해가 안 가는 도훈.

신문이 됐든 방송이 됐든 도훈은 ‘매체’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시장 당선 직후, 인터뷰 좀 하자는 기자들을 뭣도 모르고 전부 상대해주다가 깨달은 게 있었다.

재미 혹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인터뷰하는 기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나빠진다는 것.

기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못 끌 것을 예감하기 때문일 터.

그 깨달음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기자를 상대해야 할 경우, 초지일관 정석 혹은 교과서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재미라는 걸 1은커녕 0.00000~1도 느낄 수 없도록.

그 방침은 제법 효과가 있어서 그간 짧게 도훈에 관한 관심이 확 불타올랐더라도, 오래지 않아 시들시들해지곤 했다.

이번 ‘짤방’은 빼고.

“이거, 미투브 한국 지사에 시장님 출연료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오늘의 새로운 짤방 검색을 마친 영배의 말에 도훈이 말없이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왜 눈에 힘을 주십니까? 제가 그 짤을 만들어 퍼뜨린 것도 아닌데.”

“... 휴우.”

느물대며 말하는 영배를 잠시 노려보던 도훈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예 말을 말자는 표정으로 정임에게 물었다.

“오늘 회식은 김치찌개 집이라고 했죠?”

“네. 금선면에 있는 곳이에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비서실 회식.

영배가 기분이 좋은 건 도훈의 짤방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도 해서였지만, 공식 회식날인 때문이기도 했다.

전에는 술 마시면 담배 생각난다고 술도 확 줄였는데, 이제는 담배 줄이는 데 적응해서 술을 마셔도 담배가 마구마구 당기지를 않는다나?

“얼른 가서 매콤한 국물에 소주나 진탕 마셔야겠습니다.”

“호호, 기대하세요. 저도 가봤는데 괜찮더라고요.”

“네.”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킨 도훈이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퇴근 시간 5분 전인 걸 확인한 도훈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정리하고 나가죠.”

“네.”

“알겠습니다.”

시장실로 돌아온 도훈이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이잉.

발신인을 확인한 도훈이 액정을 터치해 전화를 받았다.

“어, 진주야.”

- 삼촌, 나야!

“준수구나.”

준수가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삼촌 곧 너희 집에 갈 건데.”

- 응? 왜?

“삼촌 오늘 회식이거든. 순심이 좀 맡기려고.”

- 진짜? 얼른 와!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거야. 너희 집 말고는 순심이 맡길 데가 마땅치 않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 아, 맞다.

순심이 얘기만 나오면 정신이 팔리는 녀석인지라 주의를 환기시켜야 했다.

괜히 전화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 있잖아. 그 응원한다는 짤.

예상 못 한 말에 도훈의 미간이 자동으로 찌푸려졌다.

“... 그게 왜?”

- 우리 반에서 아빠, 엄마들 선물로 보낼 영상 만들기로 했거든?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반 아이들이 전부 함께하는 거야. 몰래 만들어서 아빠, 엄마들 핸드폰으로 보내는 거지.

“... 몰래?”

- 응. 몰래. 그래야 선물이 되니까.

“음, 그런 목적이면 안 물어보고 써도 되는데.”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응원하는 영상을 선물하겠다는데 ‘쓰지 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말 안 하고 썼다가 나중에 알았다고 해도 화낼 수 없는 경우였다.

그래서 너그러이 허락해줬는데, 준수의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 그 짤을 그대로 쓰겠다는 게 아니고···.

“... 그럼?”

- 우리 영상 마지막에 우리가 모두 함께 ‘아빠, 엄마 응원할게요!’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거든?

“... 어. 그런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도훈은 ‘설마’ 혹은 ‘부디’ 하는 심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 그 장면에 삼촌이 찬조 출연 좀 해주면 안 될까?

“... 찬조 출연?”

- 응. 우리 반 애들이 나 삼촌이랑 친한 거 다 알거든. 그래서 나한테 꼭 삼촌 섭외해오래.

“......”

- 삼촌 요즘 정말 핫한 짤방 스타잖아. 우리가 언제 또 스타랑 영상을 찍겠어.

“......”

- 아직 우리에게 투표권은 없지만, 찬조 출연에 응해주면 다음 선거 때 아빠, 엄마한테 꼭 삼촌 찍으라고 운동하기로 약속했어, 출연료 대신으로 말이야.

“......”

- 삼촌, 찬조 출연해 줄 거지?

“......”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고, 출연료 대신이라는 건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은 상황.

- 삼촌? 삼촌? 여보세요?

“......”

- 큭큭큭큭큭!

준수의 당돌한 요청에 도훈이 말문을 잃은 가운데, 뒤편 허공에서 누군가가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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