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29화 (130/279)

129. 짤방 스타 - 1.

5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대흥시청 시장실.

“무조건 공립화를 고민했던 건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의견도 들었고, 사립 유치원 측의 요구도 들어봤습니다. 준비 단계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건 당연한 절차니까요. 다만, 결론은 생각보다 쉽게 공립화로 모이더군요.”

“반발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일부 반발은 있겠지요.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정책은 찾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유치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님들은 절대다수가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훈의 담담한 대답에 질문하던 기자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했고, 도훈이 슬그머니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 설마 이 사람도 그 얘기를 들었나? 도대체 어디서 그 얘기를 들은 거야?’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기자가 질문을 이었다.

“공립 유치원 확대가 아동 보육 정책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혹시, 다른 정책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네. 이번에 대흥시 사립 유치원 하나가 국립으로 전환되는데, 시 입장에서는 예산 부담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동 보육 분야에 다른 지원책을 고민할 수 있는 여력이 있죠.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정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인터뷰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장님.”

“기자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교환한 뒤 한숨을 내쉬는 도훈.

주제가 정해져 있는, 미리 질문지도 받아본 뒤에 하는 인터뷰라지만 꼭 질문지에 있는 질문만 하는 건 아니다.

방금 끝난 인터뷰에도 기자가 ‘불쑥’ 던진 질문이 두 개 있었다.

화제가 될만한 자극적인 답변을 노린 질문이었는데, 도훈은 정석 같은 무리 없는 답변으로 잘 피해 갔다.

아무튼, 그런 질문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아무리 ‘말빨’이 좀 선다는 도훈이라도 긴장을 할 수밖에.

기자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시장님, 생각보다 인터뷰 잘하시네요. 아주 능숙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소문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인터뷰를 그렇게 기피하신다고 하던데, 전혀 아니었네요.”

“하하, 차라리 울렁증이 있다고 믿어주세요.”

이번 주 들어 세 번째로 하는 방송국 인터뷰.

여러 신문사 기자들과 함께했던 기자 간담회까지 포함하면 사흘 만에 네 건이나 된다.

그간 신문이 됐든 방송이 됐든 인터뷰를 극구 거절해왔던 바로 그 김도훈 시장이 하는 인터뷰다.

주제는 ‘공립 유치원 확대로 본 아동 보육 공공성 강화’ 혹은 그 비슷한 것.

“저기 오프 더 레코드로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됩니까?”

“아뇨. 사양하렵니다.”

“에이, 분위기 좋게 인터뷰하시고 왜 이러십니까?”

“그러니까 분위기 좋게 마무리하려는 겁니다. 기자님들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누가요? 그 사람 기자한테 사기라도 당했대요?”

“그 사람 본인이 기잔데요.”

“... 하, 하하.”

머쓱하게 웃은 기자와 웃으며 듣고 있던 카메라 기자가 나갔고, 지켜보던 비서실 직원들이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장님.”

“수고하셨어요.”

“휴우, 힘들어 죽겠습니다. 차라리 한꺼번에 해치우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요.”

“아무래도 언론사가 먼저 달려든 게 아니라 교육부가 주선한 것이니까요.”

대흥시 사립 유치원 하나가 국립으로 전환되는 게 확정되면서, 교육부 장관 비서실에서 한 가지 협조를 요청해 왔다.

그건 바로 도훈이 언론 인터뷰에 좀 나서달라는 것.

- 장관님이 직접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더 일목요연하고 집중력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장관님은 아무래도 작년 말부터 언론 노출이 많으셔서요. 같은 주제라도 화자(話者)가 달라야 식상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장관님도 동의하셨고요.

- ... 많이 해야 합니까?

- 글쎄요. 저희 쪽에서는 주요 방송과 언론 정도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 예산도 거의 들이지 않고 공립 유치원이 생겼는데, 인터뷰에 나서서 교육부 정책 좀 홍보하고 두둔해 달라는 얘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책이 틀렸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최소한 사립 유치원을 매입해 공립으로 전환하는 정책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언론에 노출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도훈이 연달아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기운 내세요, 시장님. 이따가 동생분 방송국에서도 온다면서요.”

“그거 한 다음에 내일 하나만 더 하면 일단 끝이니까 기운 내야죠.”

교육부가 주선한 방송국과의 인터뷰는 두 개가 더 남았다.

차라리 신문사들처럼 한 번에 다 모여 인터뷰하는 식이라면 좋겠는데, 방송국 생각인지 교육부 생각인지 몰라도 한꺼번에 왕창 내보내는 게 아닌 순차적으로 뉴스에 내보내는 방식을 택한 듯했다.

길게 인터뷰해봤자 몇 장면 나가지도 않고 전과는 달리 전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교육부의 협조 요청에 응하기로 했으니 나름 성실히 응하고 있는 도훈이었다.

“잠깐이라도 쉬십시오. 오늘 점심은 외부 일정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두진이 직원들을 데리고 나갔고, 소파에 앉은 도훈은 옆에 웅크린 순심이를 쓰다듬으며 긴장을 풀었다.

개인 핸드폰에 메시지가 온 건 그때.

딩동!

핸드폰을 집어 올린 도훈은 메시지를 읽다 피식 웃고 말았다.

- 오늘 나도 오빠 인터뷰 팀에 합류해서 대흥에 가. 딴 게 아니고 우리 서로 아는 척하지 말자고. 승범 선배가 안 가니까 다들 우리 관계 몰라. 협조 부탁해.

‘오케이’라는 답문을 보낸 도훈이 순심이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속삭였다.

“순심아, 이따가 언니 온단다. 아는 척하지 말아 달래. 협조해라.”

끼잉.

알았다는 뜻인지 어쩐지 모를 대답을 흘리는 순심이를 쓰다듬는 도훈은 간만에 동생을 만날 생각에 담담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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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이가 포함된 ITS 사회부 취재팀은 약속된 시각에 맞춰 대흥시에 도착했다.

도착하긴 했는데···.

선임 기자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도훈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아닙니다, 시장님. 녹화가 아니고 8시 뉴스에 생중계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린 것 맞습니다.”

“원래 계획은 그게 아니었잖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원래 라이브 인터뷰를 하기로 한 분이 펑크가 났다고 오던 중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뉴스 방송까지 세 시간도 안 남았는데 다른 분 섭외를 아직 못 했답니다.”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도훈이 선임 기자 뒤에 선 도연을 흘끔 했다.

도연이도 난처한 표정인 것이 아무래도 ‘계획적’인 건 아닌 듯했다.

- 응, 아니야. 진짜로 난처해 하고 있다.

‘...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 동생 회사 아니냐. 그리 어려울 것 없는데 한 번 해주지 그러냐?

‘... 글쎄요.’

결정을 못 한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녹화해서 내보낼 수는 없는 겁니까?”

“그 코너 이름이 ‘라이브 초대석’입니다. 어렵긴 한데, 단 한 번도 녹화로 내보낸 적이 없다는 게 8시 뉴스팀 자랑이거든요.”

“... 흠.”

“부탁드립니다, 시장님.”

뉴스에 내보낼 인터뷰를 녹화하는 것과 짧은 코너라도 라이브로 뉴스에 출연하는 건 당연히 수준이 다르다.

녹화 인터뷰는 아무리 길게 해도 다 자르고 앵커의 멘트에 이어 단 몇 초간 도훈의 얼굴이 나갈 뿐이지만, 라이브 출연은 앵커가 말하는 순간에도 도훈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니까.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미 허락한 인터뷰라도 십중팔구 거절했을 도훈이었다.

하지만, 선임 기자보다도 더 울상이 된 동생이 눈앞에 서 있질 않은가.

선임 기자와 도연을 번갈아 바라보던 도훈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그렇게 도훈의 ITS 8시 뉴스 라이브 출연이 결정됐고, 취재팀과 비서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방송이라 예행연습이 더 중요했다.

취재팀이 시청 소회의실에 카메라 세팅을 하는 사이 도훈은 시장실에서 도연과 단둘이 마주 앉아 질문과 답변을 연습했다.

수습 딱지는 진즉에 뗐고, 이제 제법 기자 티가 나는 도연이었지만 전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동생의 모습에 도훈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 어허, 시장님. 지금 사담 나눌 때가 아닌데요? 이거 무척 중요한 인터뷰라고요. 그것도 라이브.

오빠가 자신을 챙기는 얘기를 하려는 걸 동생이 그렇게 차단하자 도훈은 쓰게 웃고 말았다.

기자 생활 열심히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잘 먹고 ‘적당히’ 요령껏 하라고 짧게 말하는 것으로 긴 잔소리를 대신했다.

예행연습을 마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자 곧 뉴스 출연시간이 됐다.

- 충남 대흥시의 김도훈 시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시장님, 나와계시죠?

“안녕하십니까. 김도훈입니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앵커의 말에 답하는 도훈은 아주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어진 질문에도 도훈은 최대한 교육부 정책의 순기능을 녹여내려 애쓴 답변을 했다.

교육부 관계자들이 보면 좋아하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서 다룬 내용이기도 하니 그다지 큰 화제가 되지 못할 터.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큰 주제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순탄하게 이어지던 인터뷰가 곤혹스럽게 변한 것은 끝을 30초 정도 남기고 앵커가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원래 예정되지 않았던 그런 질문.

- ... 논의 과정에 사립 유치원 관계자들과 의견 대립이 심하게 있었고, 다음 지방 선거 때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시청 내부 관계자에게 들은 얘기니 거짓은 아닐 겁니다. 시장님의 대응이 인상적이었다고 들었는데요?

“... 하하, 글쎄요.”

도훈은 이 질문이 나올 거라 반쯤은 예상했기에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속으로 ‘또야?’라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 ‘옳은 일 하고 불이익당하는 거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던데 아닙니까?

“비슷한 이야기이긴 했습니다만, 그다지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담담히 답하는 도훈은 속으로 그 얘기를 외부에 흘린 시청 빨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원망스러웠다.

- 다시 한 번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같은 태도를 고수하실 건가요?

“네.”

- 선거라는 민감한 시기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한 데도 말이죠?

꿈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앵커 때문에 조금 발끈한 도훈.

“무슨 말씀을 듣고 싶은 걸까요?”

- 음, 전국의 많은 기초단체장들이 시장님과 비슷한 처지에 있고, 공립화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분들께 응원 메시지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이미 넘겼지만, 앵커는 도훈의 반문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받아쳤다.

발끈한 마음에 도훈은 ‘까짓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말을 이었다.

“이 정책의 필요성은 유치원에 아이들 보내는 부모뿐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공무원부터가 실감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책의 당위성은 국민의 높은 지지로 설명됩니다. 현실적 어려움, 작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에게 봉사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지지를 보내는 국민을 믿고 뚝심 있게 풀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응원하겠습니다.

- 오늘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지금까지 충남 대흥시 김도훈 시장이었습니다.

도훈 정면의 카메라 옆에 있는 TV 화면에서 도훈의 모습이 사라졌고, 내내 침묵하고 있던 선임 기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컷!”

“휴우.”

한숨을 내쉰 도훈이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 수고하셨습니다.”

웃는 낯으로 손을 내미는 선임 기자와 악수하고 다른 취재팀과도 인사한 도훈이 소회의실을 나섰다.

도연이가 취재팀과 함께 바로 돌아가야 해서 눈빛으로만 인사를 건넨 뒤였다.

“끝났다!”

“하하, 잘하셨습니다. 이제 내일 한 번만 더 하시면 되겠네요.”

후련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도훈에게 두진이 말했다.

“네. 이젠 정말 더는 못하겠습니다. 다들 왜 그렇게 집요한지···.”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부분이니까 그렇겠죠.”

“어휴. 자극적이니까 그런 거죠.”

“그렇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내일이면 끝입니다. 이 정도면 교육부에서도 더는 출연해달라고 얘기 안 하겠죠.”

“아마도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시장실로 돌아가는 도훈과 두진.

두 사람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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