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My Way - 1.
대흥시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시청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고 누군가는 경악하고 누군가는 분노에 치를 떨 무렵, 도훈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 교육부 차원에서도 중점 추진하는 것이고, 각 교육청도 같은 입장이지만 기초단체가 나서서 사업 추진하는 곳은 많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어요, 김 시장.
“알고 있습니다, 도지사님. 모난 돌이 되기 싫은 거겠죠.”
- 네. 현실적으로 사립 유치원 원장님들의 연합체가 힘이 꽤 세잖아요. 전국적으로 움직이는 건 국민의 눈에 쉽게 걸려들겠지만, 지역적으로는 얘기가 다르니까요.
강정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도훈이 말을 이었다.
“뭐, 대흥시의 경우 좀 형편이 다르긴 하지만 저도 충분히 고민하고 꺼낸 얘깁니다.”
- 어련하겠어요. 어쨌든, 도 차원에서의 지원은 걱정하지 마요.
“네. 교육지원청장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 하하, 어쨌든 잘 해봐요, 김 시장. 내 기대 하겠습니다.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은 책상 위에 놓인, 어제 관내 사립 유치원에 일괄적으로 보낸 공문 사본에 시선을 줬다.
의례적인 인사에 이은 본론은, 정부 차원의 공립 유치원 확대 계획에 하나로 대흥시에서도 공립 유치원 확대를 고민하고 있는데, 사립 유치원 중 이에 호응할 곳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공립 유치원을 신설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립 유치원 중 정부 방침에 호응하는 곳이 있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존의 사립 유치원을 정부나 지자체가 아예 사들여 운영 주체를 개인에서 공공기관으로 바꾸는 것이 고, 다른 하나는 유치원을 법인화하고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는 대신 법인이사 과반을 개방이사로 선임해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각각 ‘매입형’, ‘공영형’으로 불리는 이 방식의 장점은 기존의 사립 유치원의 시설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새로 짓는 건 아무래도 땅도 사고, 건물도 짓는 등의 비용 부담도 있고 개원까지 적잖게 시간이 걸리니까.
도훈은 사립 유치원 원장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공립 유치원을 신설할 수도 있는데 그 전에 매입형이 됐든, 공영형이 됐든 공립화 계획에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다시 말해, 사립 유치원 원장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들었던 요구들을 수용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셈이랄까.
이 공문을 보내기 위해 ‘은밀히’ 여러 곳에 연락해 얼마 남지 않은 하반기에 대흥시에서 시행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했다.
- 저희야 반갑죠. 의지를 가진 시장님이 먼저 나서주시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돕겠습니다.
- 대환영입니다.
교육부 담당자와 교육지원청 교육장과의 통화는 환영 일색이었다.
좀 힘 있는 자치단체, 다시 말해 서울이나 광역시, 도 등의 단체에서는 국, 공립 유치원 확대가 쉽진 않아도 뚝심 있게 추진되고 있으나 군소 시, 군에서는 좀 사정이 달랐다.
아무래도 지역 유력자, 줄여서 ‘유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보니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눈치를 더 살피는 형국이랄까.
그런 와중에 도훈이 먼저 공립 유치원 신설 혹은 확대 계획을 문의해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강정문조차 좀 우려하긴 했지만 ‘실행’하기로 하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조금 전 재차 확답했다.
도훈은 사립 원장들의 요구를 확인한 직후, 공립 유치원 확대를 고민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모든 연락은 담당 부서를 거치지 않고 비서실에서 직접 했다.
혹시나 외부로 이런 얘기가 흘러나갈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도훈과 비서실 직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 가능 여부와 규모를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것.
- 진짜로 추진할 생각이십니까?
도훈이 처음으로 얘기를 꺼냈을 때 두진은 올 게 왔다는 표정의 비서실 직원들 한가운데 서서 아주 진지하게 물었고, 도훈은 간단히 ‘가능한지 알아보자’라고 답했다.
사립 유치원의 반발을 우려하는 비서실 직원들에게 도훈은 간단히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직원들은 우려를 완전히 거두지는 못했지만 도훈의 생각이 옳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만이 움직여 사정을 알아보고 최종적으로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똑똑.
도훈이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되새기고 있는데 누군가 시장실 문을 노크했다.
“네.”
모습을 보인 건 두진.
담담한 표정이지만, 그게 ‘연출’된 거라는 걸 도훈은 모르지 않았다.
“공문이 도착한 모양이네요.”
“네. 조금 전부터 사회복지실에 확인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리고요?”
“반응이 제각기인 것 같긴 한데, 충격받았다는 건 공통적이랍니다.”
두진은 조금 전 사회복지실에 다녀왔다.
공문을 받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원장은 그런 중요한 사안을 자기들과 상의도 안 하고 결정했다고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하더군요.”
“어땠기에 엄청난 분노라고 표현하시는 겁니까?”
“실장이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그렇게 축약해서 설명했습니다. 막말을 막 한 것 같지는 않고 화를 심하게 내긴 한 모양입니다.”
“흠. 사회복지실 직원들에게 좀 미안하네요.”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긴 해도요.”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검토’ 단계에서 ‘공립 확대’ 방침이 외부에 알려지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 터.
담당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두진이 ‘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는 말로 도훈을 설득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회복지실장 및 보육팀장에게는 검토 사실을 알리려던 도훈은 마음을 바꿔 비서실 인원만으로 1차 검토를 거쳤던 것.
“공립 유치원 하나 늘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 항의전화뿐이 아니라 아마 절 화형 시키려 들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아마 당장 만나자고 할 겁니다. 이번에는 저쪽이 사정이 급하니까요. 거부하면 분명 뭔가 행동을 취할 테고요.”
“그럴 테죠.”
남 일이라는 듯 담담히 말하는 도훈의 모습에 두진이 짧게 헛웃음을 짓고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자면 만나죠, 뭐.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대화가 기본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사립 원장들 지금 각자 아는 시의회 의원들에게도 연락해 닦달하고 있을 겁니다. 시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말이 되냐고, 당신 입장이 뭐냐고 말이죠.”
“괜찮습니다. 시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일도 아니고, 시의회 동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 그렇긴 합니다만···.”
도훈과 두진이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데, 도훈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네.”
- 시장님, 사회복지실장 전화입니다.
“돌려주세요.”
- 네.
정임에 이어 사회복지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공립 유치원 확대와 관련해 논의하자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비서실에서 일정 확인해서 가능한 날짜와 시간 정해 알려드릴게요.”
-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훈이 통화를 마치자 두진이 말없이 바라봤고, 그 의미를 알아챈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올 게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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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시 관내 모든 사립 유치원 원장들과 시장과의 간담회가 열린 건 공문이 도착하고 사흘이 지난 금요일 오후.
원장들은 당장에라도 만나자고 성화였지만, 도훈은 ‘미리’ 계획된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금요일로 날을 잡았다.
일부 간부들은 이번에도 시장이 참석하지 않길 권유했다.
분명 험한 소리가 나올 텐데, 그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굳이 시장이 참석할 필요가 있냐는 논리였다.
부시장 전경완도 거기에 동의했고, 잠시 소외됐으나 앞으로는 주되게 이 일에 관여해야 할 담당 실장과 팀장도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도훈은 참석을 고집했다.
- 험한 소리가 나올 테니까 제가 참석하는 게 맞죠. 검토도 제가 했고 결정도 제가 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상황이 됐든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성사된 사립 원장들과 시장의 간담회 자리.
시작도 하기 전부터 아주 싸늘한 분위기였다.
당장 만나자는 요구에 ‘금요일에나 가능하다’고 답했던 것도 이유일 테지만, 애초에 논의할 내용부터 그들은 ‘쌍심지’를 켜고 있으니까.
“간담회 시작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사회복지실장의 말에 상대가 전의를 다지는 게 똑똑히 보였다.
‘... 떼로 몰려오지 않아도 되는데···.’
보육교사까지 참여해 스물에 가까운 이들을 마주한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뒷줄의 보육교사들이 그냥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면, 전부는 아니나 앞에 앉은 원장들 대부분에게서는 ‘적의’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중 대표 격인 ‘차혜은’이 도훈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것 같달까.
“저희 입장을 먼저 말씀드리죠.”
“그러시죠.”
차혜은의 말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이런 중대한 결정을 저희와 아무런 논의도 없이 내렸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어요. 안 그래도 우리 시에는 단설 도립 유치원에, 초등학교 병설 공립 유치원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사립 유치원들이 고전하는 환경이란 말이죠. 상황이 이런데도 또 공립을 늘린다는 건 저희에게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 계속하시죠.”
“솔직히 더 화가 나는 부분은, 1차 간담회를 통해 저희 요구를 수렴한 다음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는 거예요. 혹시, 앞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이며 저희를 다독이면서 뒤로는 미리부터 공립 확대를 준비한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쏘아붙이는 묻는 차혜은에게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제가 공립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1차 간담회의 영상을 모두 본 다음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습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상관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상관없다’는 도훈의 말에 차혜은은 물론, 원장들의 눈빛이 한층 살벌해졌지만, 도훈은 ‘그게 뭐 어때서?’라는 표정이었다.
“지금 저희랑 싸우자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지금 시장님 말씀하시는 태도가 일부러 저희 화를 돋우는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도훈의 모습에 차혜은이 잠시 이채롭다는 눈빛을 보냈다.
언니 차혜진에게 ‘보통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인정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간’ 하나는 엄청 큰 것 같았으니까.
잠시 회의실 내 침묵이 감돌다 양 모라는 원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공립 유치원이 늘어나면 사립 유치원의 경영이 더 어려질 거라는 건 이해하시나요?”
“그럴 수도 있겠죠.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 누가 봐도 뻔한 문제 아닙니까?”
상대가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도훈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공립 유치원 확대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몇 %인지 아십니까?”
“... 글쎄요.”
“제가 기억하는 여론조사가 제법 되고 최고 수치가 7 아니면 8자로 시작하는 것도 여럿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모든 조사 결과 과반은 훨씬 넘습니다.”
“... 그래서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건데요?”
“왜 공립 유치원 확대를 국민이 요구하는 걸까요?”
“......”
상대가 침묵하자 도훈도 말을 잇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양쪽 모두가 이유는 잘 안다.
유치원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 그리고 사립 유치원 관계자들, 거기에 교육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로 폭로가 나오기도 했고 내부 고발을 통해 여론이 끓어 관련 부처에서 개선책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유치원 연합회 측이 온갖 로비를 하고 시간을 끌며 강력히 대응해 번번이 개선책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지 않았나.
작년 국정감사에서 국민적 공분이 모이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터.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차혜은.
“지금 저희를 죄인 취급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말 안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차혜은의 말에 도훈이 반박했다.
“그럼 원장님들은 저와 시청 직원들을 마음 착한 후원인 정도로 보시는 겁니까?”
“네?”
“어떤 요구가 됐든 다 들어줘야 하는 그런 후원인 말입니다.”
“... 그럴 리가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저희도.”
분위기가 한층 싸늘해진 가운데 다시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차혜은이 깼다.
“시장님.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쩌시려고요?”
“못할 게 없게 되겠죠. 시장님을 욕하고 규탄하고, 저희 얘기를 들어주는 곳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이 상황을 널리 알리겠죠. 그리고···.”
“... 그리고요?”
싱긋.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차혜은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을 잊지 않고 있다가 다음 선거 때 뭐라도 하게 되겠죠. 아마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내려고 절실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까요?”
“아니, 지금···!”
차혜은의 말에 두진이 발끈했지만, 도훈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피식.
실소를 머금은 도훈이 차분히 답했다.
“그러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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