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정답은 없어도 … 1.
저녁 7시경, 대흥시 운계면의 한 카페.
유치원 학부모들과의 미팅을 위해 이곳을 찾은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은 차에서 내린 직후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난장판을 목격하고 굳어져 있었다.
“아, 하지 말라니까요!”
“당장 사퇴해! 사퇴하라고!”
“도대체가 말이야! 뭐가 우선인지도 모르고, 헛바람만 잔뜩 들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당신이 책임질 거야? 어?”
유리벽 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날카로운 음성에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수의 중년 여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시청 직원 둘과 몇몇 사람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상황.
어른들이 소리를 지르니 아이들이 울고 부모들이 커피숍 구석에서 그런 아이들을 달래는 상황.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글쎄요. 저도 이거···.”
영배와 정임, 영진이 얼른 안으로 들어갔고 밖에 남은 도훈과 두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목소리를 높이던 여자들이 유리벽 너머 도훈을 발견했다.
그리고 눈에 쌍심지를 켠 그들이 갑자기 몸을 돌려 카페 밖으로 나왔다.
“어? 이쪽으로 옵니다.”
“... 저도 보입니다.”
벌컥.
문을 열고 나온 여자들은 도훈 앞에 멈춰 서더니 흥분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시장님! 왜 공립만 지원하고 사립은 외면하는 건가요?”
“이렇게까지 대놓고 차별할 수 있는 거예요? 최소한의 형평성은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이건 너무하잖아요! 사립 유치원들 다 망하라는 거랑 뭐가 달라요!”
깜빡, 깜빡.
갑작스럽게 격렬한 항의에 부딪힌 도훈은 눈만 깜빡거렸다.
영문을 모르니 뭐라 답할 말이 있을 턱이 있나.
“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도대체 이유가 뭐냔 말이에요!”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요!”
비서실 직원 셋과 담당 직원 둘이 질겁하고 달려 나와 도훈과 여자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중년 여인들이 말은 격하게 하고 있었지만, 도훈의 몸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었는데 안에서는 그것까지 보이지 않았나 보다.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말로 하셔도 돼요. 오늘 의견 들으려고 만든 자립니다.”
직원들의 만류에 여자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씩씩거리는 여자들과 유리벽 너머 당혹하고 분노한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난장판인지 누가 설명 좀 해주세요.”
여자들 앞을 막고 있던 담당 직원이 돌아섰다.
“그게 말입니다, 시장님.”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이어가는 그의 말에 도훈은 물론, 비서실 직원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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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카페 내부.
목청을 높이던 중년 여자들은 돌아갔고, 도훈과의 미팅을 위해 모였던 학부모 중 일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잔뜩 인상을 쓴 채 돌아갔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상황을 정리하고 도훈과 마주 앉은 학부모는 20명이 채 안 됐다.
그리고 그중에 학부모가 아닌 도립유치원 원장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제가 참가하는 걸, 시청에서 사립은 빼고 공립만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오해했나 봅니다.”
자신이 소동의 원인이라는 듯 굳어진 표정으로 사과하는 도립유치원 원장.
‘도립’이긴 하지만, 대흥시에 있고 대흥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니 당연히 시에서도 일부 예산지원을 받는다.
시 예산에서 지원받는 건 사립 유치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다 보니 지원금액이 가장 큰 곳이기도 했다.
“그건 저희가 부탁드린 거잖습니까.”
“... 그래도 제가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 한 게 아닌가 싶어요.”
도립유치원 차원에서 학부모들에게 시청의 지원확대 계획을 안내하고 어떤 지원이 좋겠는지 의견을 구했다.
이건 시청에서 요청해서 진행된 일로, 유치원 원장이 참석한 건 취합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말에 도훈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 원장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격렬하게 항의하던 몇몇 여자들은 모두 대흥시에 있는 크고 작은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오늘 학부모 미팅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던 건, 시청에서 공립유치원만 지원할 계획이라고 여겨서였단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도훈이 도착하기 얼마 전에 나타난 이들은 도립유치원 원장이 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여겨 그녀에게 사퇴하라느니 물러나라느니, 책임지라느니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시청에서 유치원에 무슨 지원을 하려고 한다던가요?”
“그것까진 듣지 못했습니다. 뭐가 됐든 아니라고,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믿지를 않더라고요.”
원장에 이어 학부모들이 입을 열었다.
“무슨 벽창호도 아니고, 말이 통하질 않더라고요. 아기가 놀라서 우는데도 전혀 목청을 줄이질 않더라니까요.”
“오해고 뭐고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고 해도, 아기들 울리는 건 너무하잖아요.”
“내 참, 누군 소리 지를 줄 몰라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나.”
학부모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훈이 머릿속에 뭔가를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여기 계신 학부모님들 중에 혹시 사립 유치원에 아이 보내는 분 계십니까?”
학부모들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도훈이 곁에 있던 계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사립에 애들 보내는 학부모님들도 오시기로 했던 것 맞죠?”
“네. 지금 이 주무관이 오지 않은 학부모들에게 연락하고 있습니다.”
“흐음.”
아무리 봐도,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찾아와 항의한 것과 사립에 아이들 보내는 학부모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 사이에는 분명히 연관이 있어 보였다.
도훈이 고개를 돌리자 유리벽 너머에 핸드폰을 들고 계속 통화하는 담당 주무관이 보였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사립 유치원에 아이들 보내는 학부모들이 ‘그냥’ 늦는 건 아닌 듯싶었다.
“어떻게 하죠, 시장님?”
두진이 묻자 도훈이 담담하게 답했다.
“일단, 오늘은 공립유치원 원장님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미팅으로 진행하죠. 사립 유치원 원장님들이나 그쪽 학부모님들과 얘기하는 건 차후에 사정을 확인하고 다시 추진하도록 하고요.”
두진에게 답한 도훈이 학부모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런 식으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물론이에요.”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은 뒤 간담회가 시작됐다.
“수당도 좋긴 한데, 유치원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지원도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예를 들면···.”
“동감이에요. 하지만, 시 예산을 투입한다는 걸 고려할 때···.”
학부모들이 다양한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도 담당 주무관은 여전히 전화기를 붙든 채 돌아오질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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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화요일, 퇴근 시간이 살짝 지난 대흥시청 비서실.
도훈은 어제 미팅을 함께했던 담당 계장 및 주무관과 비서실 소파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비서실 직원들도 듣는 가운데, 계장과 주무관은 자기들이 알아온 이야기를 도훈에게 전하는 중이었다.
“... 정말입니까?”
“네.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 허허.”
말없이 듣고만 있는 도훈 대신 질문을 던졌던 두진이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열 오른 표정과 목소리로 영배가 끼어들었다.
“아니, 작년 말에 사립 유치원들이 역풍 맞은 건 자기들이 했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비판받은 거잖아요. 국회에서 지지부진했던 것과는 별개로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유치원 운영에 국가가 개입해서 비리를 뿌리 뽑고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괜히 그랬겠습니까?”
“맞아요. 그간 일부 관계자 외에는 잘 몰라서 조용했던 거지, 그게 맞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던 게 아니에요. 터질 게 터졌는데 왜 무조건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건데요?”
영배에 이어 정임도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아무래도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보니 체감하는 정도가 훨씬 셀 테니까.
“흥분하지 마세요. 오 계장님과 이 주무관님이 그쪽 편 드는 것도 아닌데.”
“아.”
“어머, 죄송합니다.”
도훈의 말에 영배와 정임이 실태를 깨닫고 두 담당자에게 사과했다.
계장이 괜찮다는 듯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대흥시는 의외로 조용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기회를 벼르고 있었나 봅니다.”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어제 말입니다. 사립 원장님들이 시에서 공립유치원 지원한다고 오해해서 그랬다는데, 제 생각엔 오해한 게 아니고 오해한 시늉을 한 것 같았거든요.”
“... 그 말씀은 일부러 그랬다는···.”
“그냥 제 느낌이긴 한데··· 그랬던 것 같아요.”
도훈의 말에 누군가는 ‘설마’하는 표정이 됐고, 누군가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얼굴을 찌푸린 두진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이거 동대문서 뺨 맞고 남대문서 화풀이하는 식이네요.”
작년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는 다름 아닌 유치원 비리.
소수의 유치원 학부모와 여당 국회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서 유치원들의 비리 내용과 그 명단을 폭로했을 때, 그 내용에 충격받지 않고 화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국가 보조금이 투입된 유치원 예산으로 명품에 고급술을 사는 등 마음대로 썼던 것부터, 교구나 급식 관련한 부정, 친인척을 채용해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고액의 급여를 주는 경우마저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돼도 근거가 없어 법적 처벌이 불가하다는 말에 헛웃음을 짓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여곡절 끝에, 법이 통과되고 유치원 운영에 국가가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견제 장치가 만들어졌다.
폐원 운운하며 버티던 유치원 연합회가 끝내 물러난 건, 정부가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한 것도 있으나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너무도 싸늘해서였다.
그렇게 전국의 유치원들과 학부모들이 들썩거릴 때 대흥시는 조용했었다.
규모가 큰 도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 사립 유치원의 입김이 작아서 그런 거라고 판단했는데, 오늘 같은 반전을 노리는 것일 줄이야.
어쨌든, 어제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간담회장에 나타나 소란을 피운 것은, 시청의 지원 예산이 공립보다 사립에 더 많이 배정되게 하기 위한 ‘포석’이란다.
사립 유치원 원장들은 시에서 청소년 지원확대를 고민할 때부터 유아, 유치원 아이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나?
안 그래도 도립유치원이 있어 ‘흡족한’ 수익을 내지 못하던 상황에서, 국가 감시가 가능해져 원장이나 설립자들의 기대 수익은 더 떨어졌다.
당연히 시청이 지원을 고민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이렇게 말하면 욕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분들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주무관이 조심스럽게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다른 지역 유치원 원장들은 비슷한 규모로 훨씬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데, 대흥시에 있는 이들은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박탈감 같은 게 있겠죠.”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곤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죠. 어떤 때는 사명감 가진 교육자라고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고, 어떤 때는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소연하면 누가 그 사람 말을 믿겠습니까.”
도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자, 주무관이 얼른 말을 이었다.
“저도 시장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원장이 그러지 않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무관이 원장들이 의기투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원장 한 사람이 양심 고백을 했기 때문이라니까.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장님?”
두진이 묻자 모두 도훈을 바라봤다.
뭔가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사립 유치원 원장님들 전원들과 간담회를 잡아주세요.”
“... 원장이요? 학부모가 아니라?”
“네. 원장님들이요. 그분들이 학부모들께 하소연해서 간담회 참가를 막았다니, 다시 학부모 간담회를 열어도 순조롭게 추진될 것 같지가 않네요.”
“...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영배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묻자, 도훈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원하는 게 뭔지 들어보고, 우리 대응방식을 결정해야죠.”
“... 원하는 걸 들어주시려고요?”
“정책 방향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요?”
정임이 반문하자 도훈이 담담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 미소의 의미를 잘 아는 영배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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