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원치 않은 스포트라이트 - 2.
“네, 죄송합니다. 그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 안 하시겠다는 게 시장님 결정이라서요. 네? 아, NBC 뉴스에 보도된 건 맞지만, 거기에도 시장님은 인터뷰 단 1초도 안 하셨습니다. 네.”
상냥하게 통화하는 건 정임.
“하하, 예능이요? 글쎄요. 뉴스 인터뷰도 안 하시겠다는 분이 예능에 출연이라··· 이건 제가 생각해도 가능성이 희박한데요. 아, 그 프로요? 그럼 일반적인 성격의 예능은 아니네요. 하지만, 아마 출연 안 하실 겁니다. 네. 지금 다 거절하는 중이라서요.”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통화하는 건 영배.
“저,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는 알겠습니다만, 비서실장이 시장을 위해서 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명도 높일 좋은 기회라는 말씀은 백번 맞는데 본인이 싫다고 하시는 걸 제가 어떻게 마음을 돌리겠습니까? 지역 방송이라고 괄시하는 게 아니라요. 전국 방송이고 언론사고 다 거절하는 중입니다.”
물고 늘어지는 상대에게 오히려 하소연하는 것 같은 건 두진.
“안 하시겠답니다. 시장님 방침입니다. 네, 전달은 하겠습니다. 하지만 죄송한데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담하고 기계적으로 거절하는 영진.
네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전화에 매달린 건 공보팀 단독으로는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각 언론과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나 섭외 전화가 밀리기 때문이었다.
공중파 방송국 뉴스라고는 해도 시청률과 화제성이 많이 낮아졌으니 괜찮을 거라던 도훈의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뉴스가 나간 이후, 나흘이나 지난 화요일 오전까지 이렇게 전화가 계속 오는 걸 보면 말이다.
“휴우, 진짜 끈질기네.”
“그러게 말입니다.”
통화를 마친 정임이 한숨을 내쉬었고 거의 동시에 통화를 마친 영배가 맞장구쳤다.
“인터뷰 요청이 말 그대로 빗발치네요. 이거 좀 심한 것 같지 않으세요?”
“네. 심한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구 얘기 들어보니까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정임의 말에 답한 것은 역시 막 통화를 끝마친 두진이었다.
“어떤 팟캐스트에서 요즘 정치 뉴스가 너무 나쁜 것 일색이었는데, 별것 아니더라도 미담 뉴스가 나오니까 관심이 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어머, 실장님 팟캐스트도 들으세요?”
“조 비서관이 들려줘서 들었어.”
“... 흠, 다른 건 몰라도 정치 관련 뉴스에 관심 안 가는 게 맞긴 하네요. 저부터 그러니까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만으로 2년이 안 됐다.
출범 직후에는 여러 면에서 인간적이고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높은 지지율을 얻던 대통령.
적폐 청산과 개혁을 염원하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정상’이라 할 정도로 지지율이 높았었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으니 여당의 지지율도 높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지난 지방 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수 있었다.
지금도 대통령은 여전히 초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국정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의 성과 부족이라든가 사사건건 야당에 발목이 잡혀 개혁의 속도가 늦춰진 것, 북미 관계 정상화가 계속 미국에 의해 지연되는 것 등으로 지지율은 간신히 50%를 넘는 수준이고 여당의 지지율도 많이 떨어졌다.
지지율이 떨어지니 제1 야당의 태도는 더욱 완강해져서 국회에서 법안 하나 ‘순조롭게’ 논의되고 처리되는 일이 없었다.
정쟁이 강화되니 지켜보는 국민의 짜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이런저런 정치인의 스캔들이나 일탈 등이 더해져 짜증을 넘어 화를 돋우는 상황.
이런 모습이 몇 달이나 계속되고 있으니 지방 소도시 시장과 관련한 미담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는 그런 분석이었다.
한 마디로 ‘봐도 짜증 안 나는 정치인, 혹은 정치권 뉴스’를 오래간만에 접한다는 것이랄까.
“기자들만 극성인 게 아니라 시사, 예능 프로에서까지 나섰으니···. 이거 언제나 잠잠해지려나 몰라.”
두진의 말에 영배가 답했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예상보다는 길 것 같은데요. 시장님 SNS 계정도 그렇고 시청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그렇고 말입니다.”
“... 하기야 거긴 극성이 아니라 아우성이지. 아니, 난린가?”
금요일 밤부터 도훈의 공식 SNS 계정과 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네티즌들이 말 그대로 몰려들었다.
SNS 계정은 개인적 멘트를 올리는 일이 거의 없이 정책 홍보가 주였고 홈페이지는 더 딱딱한 곳이었지만, SNS는 주말과 월요일인 어제까지의 방문객이 대흥시 인구의 몇 배나 됐고 자유게시판에도 엄청난 글이 새로 올라왔다.
아주 간혹 ‘삐딱선’을 타는 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칭찬 일색의 댓글과 글들.
작년 말 ‘소 어쩌고’ 하며 비아냥거리던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도훈과 시청의 대응을 칭찬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잠시 잠잠하던 유선전화가 다시 울렸고 정임이 한숨을 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대흥시장 비서실입니다. 아, GBS요. 죄송합니다만···.”
용건을 듣기 전에 거절부터 하는 정임을 보고 영배가 기분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우리나라에 방송국이랑 언론사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어제오늘 합해서 비서실에 도훈에게 인터뷰 혹은 출연 요청을 목적으로 걸려 온 전화는 진즉에 100통을 넘어섰다.
공보실에서 해결한 것까지 치면 아마 200통은 훨씬 넘게 전화가 걸려왔을 터.
그 모든 섭외 요청을 일일이 거절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 무작정 거절한다고 조용해질 것 같지 않은데···.’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에 유일하게 질리지 않은 영배가 굳게 닫힌 시장실 문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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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이야 전화로 난리가 났건 말건, 도훈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외부 일정이 대폭 축소된 때문에 청사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어 조금은 느긋하기까지 한 표정.
대한민국의 언론사와 방송사가 애타게 찾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 흠, 두어 놈 늘어난 것 같다.
“......”
- 안 들리냐? 두어 명 늘었다고.
“... 신경 껐습니다.”
창가에서 시청 청사 현관을 바라보며 타박하는 조상님에게 도훈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 야, 저놈들 다 너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그냥 둘 거야?
“신경 껐다니까요?”
- 하, 거 참.
조상님이 바라보고 있는 청사 현관 인근에는 낯선 사람이 몇 명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 외에 주차된 차 안에 있는 사람, 혹은 청사 입구가 보이는 다른 곳에 자리한 사람까지 치면 최소 열 명은 될 터.
도훈이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으니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겠다는 생각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이었다.
도훈이 외부 일정을 대폭 줄인 건 어제 오후에 시청 현관에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한참을 꼼짝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검찰에 소환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우르르 몰려드는 기자들에 식겁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쪽에서 일정이 있으니 비켜달라고 해도 ‘잠깐이면 된다’며 물고 늘어지는 이들에게는 통하질 않았다.
오죽하면 도훈이 어제 야근한 뒤에 늦게 퇴근할 때 옷까지 갈아입고 ‘변장’ 비슷하게 해야 했을까.
업무가 방해된다는 이유로 청사 안으로는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주차장에서 진을 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 너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한다.
“...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다른 애들은 몰라도 도연이는 못 이기는 척 인터···.
“절대 그럴 생각 없습니다.”
- ... 매정한 놈. 하나뿐인 동생인데···.
조상님의 말에 도훈은 한숨을 푹 내쉬고 서류를 내려놓은 뒤 엎어놓은 업무용 핸드폰을 뒤집었다.
- 부재중 전화 23통.
- 새 메시지 32통.
확인한 지 두 시간이 채 안 된 사이에 새로 걸려온 전화와 메시지가 저만큼.
너무나 떨어대는 통에 도훈 대신 핸드폰이 몸살 날 것 같아, 아예 무음에 무진동 상태로 해놓고 엎어놓은 핸드폰이었다.
개인 핸드폰은 아예 꺼놨다.
친한 지인도 많지 않은 도훈인데,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중학교 동창부터 시작해서 이름도 전혀 모르는 대학 선배까지 ‘껄끄러운’ 연락이 드문드문 오기 때문이었다.
잠잠할 때 주로 통화하던 아버지나 도연, 친구들에게는 당분간 개인 핸드폰으로는 연락 못 한다고 미리 메시지를 보낸 뒤,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잠깐씩 켜서 확인만 하고 있었다.
“이 난리 판국에 도연이한테만 인터뷰해줬다가는 제가 다른 기자나 방송 종사자들에게 욕먹는 만큼 도연이도 난처해질 걸요?”
- 난처해져? 왜?
“도대체 무슨 인연이길래 걔한테 특별대우하는지 궁금해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저랑 도연이가 남매라는 거 들통나는 거 순식간일 겁니다. 그러니까 걔도 개인적으로는 연락을 안 하는 거겠죠.”
- 아···.
도연이가 근무하는 ITS 보도국에서 연락은 왔어도 도연이의 직접적인 연락은 ‘대왕 치사빤스’ 메시지가 끝이었다.
“그건 도연이도 원하는 게 아니겠죠.”
- ... 딴은 그러네.
“그러니 좀 진득하게 계세요. 저 안 튀려고 노력 중이라는 사실,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 쩝. 아쉬워서 그러지.
“뭐가요?”
- 아직은 네가 정치에 뜻이 없는 것 같다만, 나중에 혹시 마음이 바뀔 때를 대비해 이럴 때 좋은 이미지 쌓아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 헐.”
도훈이 어이가 없어진 건 그간 조상님이 도훈에게 정치 해보라는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
지금이야 사람들에게 ‘시대를 앞서간 위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조상님은 생전에 아주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다 떠나서, 그가 썼다는 대표적인 저서들은 대개 유배지에서 쓴 것들이 아닌가.
- 인마, 그렇게 째려보지 마. 너한테 정치하라는 건 아니니까. 네 마음이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일 뿐이야.
“... 지금부터 가만 계시면 그 말 믿어드리겠습니다.”
- 오냐. 알았다. 쩝, 내가 후손 눈치 보기 싫어서라도 가만히 있으마.
조상님을 침묵시킨 도훈이 다시 서류를 집으려는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
“휴우, 네.”
한숨을 내쉰 도훈의 말에 이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건 영배.
“... 왜요?”
“어, 그게 도청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도청? 혹시 도지사님입니까?”
“아뇨. 홍보기획실장인가 팀장이라는데 중요한 일이랍니다.”
“... 중요한 일요?”
“네. 그렇다네요. 뭔지 물어봤는데 직접 말씀드리고 싶다고···.”
영배의 말에 도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설마, 도청 홍보를 위해서 언론사 인터뷰에 응하라던가 이런 얘기는 아니겠죠?”
“설마요. 아무리 시장님이 요즘 ‘핫’하다고 해도 대흥시장에게 충청남도 홍보까지 부탁하겠습니까?”
“그렇죠?”
“혹시 모르죠. 도지사님 인맥이나 홍보팀장인지 실장인지 인맥을 타고 섭외 요청이 온 것일 수도···.”
“... 쩝, 돌려주세요.”
“네.”
영배가 나갔고 곧 책상 위의 유선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
“김도훈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장님. 충남도청 홍보기획팀장 나일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심드렁하게 답한 도훈은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설마, 섭외 요청하러 전화하신 건 아니죠?”
- ... 맞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와락.
미간을 찌푸린 도훈은 한바탕 퍼부어주고픈 강한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안 그래도 여러 사람이 그 때문에 고생 중인데, 같은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그 고생을 덜어줄 생각은 못 하고 청탁 전화까지 하다니.
길게 통화해봤자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 도훈은 짧게 거절하려 했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절대 인터뷰고 출연이고 안 합니다. 그런 줄···.”
- 그런 거 아닌데요, 시장님.
“... 네?”
- 하하, 오해하신 모양인데 신문사, 방송국 섭외 청탁 드리러 전화한 게 아닙니다.
“......”
깜빡, 깜빡.
방금 섭외 때문에 전화했다고 해놓고 이 무슨 소리인가.
- 섭외는 맞는데, 광고 섭외입니다.
“... 광고요?”
- 네. 광고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싶어 도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팀장의 말이 이어졌다.
- 인터넷이나 극장, 기타 여러 곳에서 사용할 용도로 충청남도 홍보 영상 제작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 충청남도요?”
- 네. 지역 축제나 관광지,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그런 거죠. 말하자면, 공익광고입니다.
“......”
- 그 공익광고에 등장해서 멘트를 하는 분으로 시장님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요.
“......”
잠시 말문을 잃었던 도훈이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 대개 그런 멘트 지사님이 하시지 않습니까?”
- 그렇긴 한데, 지사님이 가장 적극적으로 시장님을 추천하셨습니다.
“......”
- 광고 컨셉도 ‘젊고 활기찬 충남’으로 잡아서 전국 최연소 기초단체장인 김 시장님이 ‘딱’이라고 강조하시던데요.
“......”
- 여보세요? 시장님?
황당한 표정으로 말문을 잃은 도훈의 뇌리에 얄밉게 웃는 강정문 도지사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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