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15화 (116/279)

115. 악성 민원인 - 3.

도훈이 나눔 장터에서 민원인에게 고추장 물벼락을 맞았다는 사실은 당일로 시청 전 직원이 알게 됐다.

“헐, 진짜로?”

“네. 그랬답니다.”

“... 허, 이건 무슨···.”

“더 놀라운 건 시장님은 자기 얼굴에 물뿌린 양반한테 아무 소리도 안 하셨다는 거죠.”

“... 아이고···.”

“그냥 말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 씻고 옷 갈아입고 돌아가서 점심 드시고 오셨다는데요?”

“... 우리 시장님··· 그냥 부처님이네. 나 같으면 절대 그렇게 못 했다.”

“아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걸요? 그 민원인은 무시하고 시장님 주변에 있다가 물 튄 사람들한테 사과까지 하셨대요.”

누군가는 어이없어하고 누군가는 분개했고, 민원실 직원들은 자신들 대신에 시장이 민원인의 표적이 된 걸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어쩐지 요즘 조용하다 싶더라니···.”

“우리가 아니라 시장님을 노렸나 봐요.”

“어떻게 해요.”

“쩝, 이거 정말 고소가 됐든 고발이 됐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행사장에 사람이 많았던 관계로 시장이 물벼락을 맞았던 사건은 시민들 입에도 오르내렸다.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도훈이 누군가에게 물벼락을 맞고도 의연하게 대처했다는 정도의 얘기.

당연히 사연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제법 됐지만, 시청에 전화해 ‘시장이 왜 그런 일을 당했나?’고 묻는 시민은 없었다.

어쨌든, 도훈은 그 일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지구대장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통화를 했을 뿐.

나눔 장터 둘째 날에도 도훈은 장터에 갔다.

정임, 영진과 함께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했고 주민들의 매대에서 순심이를 위해 애견용품도 샀다.

장터에 매대를 꾸린 시민과 상인들은 대부분 어제 사건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장터를 관리하는 주민센터 직원들이 도훈과 서민우라는 민원인의 사연을 잘 알았고, 도훈이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라는 걸 설명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보다 거의 배는 양이 많은 잔치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장터 마지막 날인 오늘.

“안녕하세요, 시장님.”

“네, 안녕하세요. 많이 파셨어요?”

“호호! 흑자에요!”

“하하, 다행입니다.”

첫날보다 둘째 날, 둘째 날보다 셋째 날, 도훈을 알아보고 도훈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이리저리 인사하느라 잠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도훈은 한 매대에서 순대국밥을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마지막 날까지 날씨가 좋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또 있으면 그때도 장터를 해야겠습니다.”

“그러게요. 아예 정기적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으세요, 실장님?”

“네. 너무 자주는 좀 그렇고 상반기 하반기에 한 번씩?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한번 생각해보죠. 장소는 옮겨야 하겠지만, 다들 즐거워하는데 유쾌한 행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밥과 오뎅을 선택한 두진과 마주 앉은 도훈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영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훈이 순대국밥을 사 온 매대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기, 시장님.”

“아, 네. 왜 그러십니까?”

도훈이 자세를 바로 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어, 왜 그러세요?”

놀란 도훈과 두진이 얼른 일어났고, 도훈이 남자의 양팔을 붙들고 상체를 세웠다.

미안함 가득한 눈빛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 엊그제 시장님께서 물벼락 맞으신 거, 민우 아저씨가 저희 매대에서 고추장이랑 물이랑 떠다가 만드신 거거든요.”

“아, 전 또 뭐라고···. 사장님이 뿌리신 거 아니잖아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훈은 일순 놀라 놓치고 말았지만, 옆에 있던 두진은 그렇지 않았다.

두진이 입을 열었다.

“엊그제 그분, 잘 아십니까?”

“민우 아저씨요?”

“네, 서민우 씨요.”

“제가 그분 건물 1층에서 장사하거든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어머니 때부터 따지면, 거기서 장사한 게 10년 가까이 됐죠.”

“아, 네.”

여전히 미안한 기색인 남자의 말에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많이 친하신가 봐요?”

“좀 그런 편입니다. 건물주긴 해도 세입자 형편 고려하는 다정하고 인심 많은 분이셨거든요.”

“... 셨다고요?”

도훈이 묻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까지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세입자가 건물주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흔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저씨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은 다 아저씨라고 불러요. 그것만 봐도 그분 성품은 대충 아시겠죠?”

“... 좀 의외긴 하지만··· 네.”

“원래는 그런 분이셨는데, 작년 가을쯤? 그때부터 좀 짜증도 많아지고 화도 많이 내시고··· 그렇게 변하셨어요.”

“......”

전혀 뜻밖의 이야기인지라, 도훈과 두진은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보고를 통해 서민우라는 이름의 악성 민원인의 개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얘기는 포함되지 않았었으니까.

도훈은 월요일 장터에 다녀온 직후 서민우라는 남자의 가족과 접촉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서민우를 고소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을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좋게 풀어보고 싶어서.

그런데 부인은 몇 년 전 사망했고, 자식들도 분가해 나가서 혼자 살고 있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얘기만 들었다.

도훈이 순대국집 사장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을 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잠깐 괜찮으시면 서민우라는 분에 관해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잠깐이라면요.”

자리에 앉은 도훈과 두진은 사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차분하게 시작된 대화에 곧 영배가 합류했고, 한 사람을 주제로 한 이 대화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순대국이 식을 때까지 제법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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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시청 비서실.

“에이, 설마요. 석 달이 넘게 민원실에 출근하는 진상이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얘기는 이럴 때 쓰는 거겠죠? 제가 그럴 리가 없다, 도저히 못 믿겠다고 하니까 순대국집 사장님이 자기 어머니랑 통화도 시켜줬어요. 그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영배의 질문에 정임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영배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서민우 씨가 어머니께는 예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 가게 처음 열었을 때는 장사가 잘 안 돼서 월세도 몇 달씩 밀렸었는데, 장사 안되는 걱정은 해줘도 월세 독촉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래요.”

“... 말도 안 돼.”

정임이 중얼거렸고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듣고만 있던 영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앞 아파트에 살잖습니까. 저는 그 서민우라는 사람을 잘 모르는데, 어제 퇴근하다가 마침 마주친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물으니 그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 하하.”

“장터에서 그 양반이 우리 시장님께 그런 짓을 했다는 얘기를 안 믿더라니까요, 글쎄. 그 좋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

영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민원봉사과장의 보고도 그랬고, 민원실 직원들의 한결같은 평가도 그랬으며, 민원실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 속에서도 서민우는 험악하게 인상 쓰고 폭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사유재산인 자기 건물의 망가진 수도 배관을 고쳐주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기 건물 세입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한결같이 받는다?

뭔가 이상했다.

이상해도 아주 많이 이상했다.

‘지난가을에 갑자기 우리 시청에 무슨 원한이라도 생겼을까요?’

- 그놈이랑 엮인 일이 없다잖아. 수도관 동파된 것 12월이라며?

‘... 그렇죠.’

-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해지기도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혹시 이놈은 반대인 거 아니냐?

‘... 좀 지나친 악담 아닙니까?’

- 네가 하면 악담이겠지. 하지만 난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 뭐.

‘......’

모두가 한참 말이 없는 가운데, 조상님과 짧은 대화를 마친 도훈이 말을 꺼냈다.

“아드님과 통화했어요, 정임 씨?”

“서울 사는 장남이랑 통화는 됐는데요. 낮에 근무 중이라 바쁘다고 퇴근하고 전화한다고 하더라고요.”

“흠, 그럼 혹시 모를 개인 사정은 저녁이나 되어야 알 수 있겠네요.”

“네.”

정임의 말에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우리끼리 이러고 있어 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일이나 하죠. 저 다음 일정 보건소 가는 거죠?”

“네. 소장님과 2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지금 나가면 딱 맞겠네요. 가시죠.”

도훈은 두진, 정임과 함께 청사를 나와 영진이 모는 승합차로 보건소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시장님. 소장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곧바로 보건소장 방으로 안내된 도훈은 20여 분간 소장과 대화를 나눴다.

소장이 면담을 청한 이유는 몇몇 사업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데 예산지원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도훈은 서류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직접 만나기로 한 터였다.

“제 생각으로는 셋 중의 둘은 시의회에 얘기를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판단이 잘 안 되네요.”

“네. 저도 그 건이 제일 찜찜했습니다. 사실, 보건소에서 전담할 만한 건도 아니고요.”

도훈과 보건소장이 추진을 주저하는 사업은, 반려동물 의료 협동조합.

대흥시 관내에 있는 동물병원의 반려동물 진료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는 좋지만, 관공서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긴급하고 꼭 필요한 사안이라면 시에서 예비비를 써서라도 사업을 추진하겠지만, 그런 사안이라고 하기도 뭐하니까.

“일단 제가 시의회 의장님께 운은 띄워보겠습니다만,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장님.”

“이거면 얘기할 건 다 했죠?”

“네. 아, 한 가지 시장님께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의아해하는 도훈에게 소장이 씨익 웃고는 말을 이었다.

“조영배 비서관이 금연을 시도하고 있다면서요?”

“... 금연이요? 아닌데요.”

“어?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금연은 아니고요. 흡연량을 확 줄이라는 지엄한 명을 받아 실천 중이긴 합니다. 와이프와 약속한 거라고 그거 지킨다고 초반에는 스트레스 좀 받는 것 같더군요. 요즘엔 적응됐는지 나아졌죠. 그런데 그게 왜요?”

도훈이 묻자 소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전 조 비서관이 금연한다고 들어서··· 이참에 시장님도 금연하시는 게 어떤가 싶어서요.”

“... 아.”

“우리 보건소 금연프로그램 아주 좋습니다.”

“... 하하하.”

도훈은 어색하게 웃었고, 두진과 정임도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다.

취임 직후, 도훈이 흡연자라는 걸 알고 가장 먼저 ‘타의 모범’ 운운하면서 금연을 권했던 게 바로 보건소장이었다.

금연‘씩’이나 하면서 ‘타의 모범’이 될 생각이 없었던 도훈은 단박에 거절했는데, 소장은 아직도 잊을만하면 이렇게 금연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하긴, 흡연자인 시장이 사람들에게 금연하라고 얘기하면 우스꽝스러운 모양인 건 맞을 테니.

도훈이 보건소장에게 투덜거렸다.

“... 소장님도 참 끈질기십니다. 제 몇 안 되는 낙을 없애려 하시다니···.”

“괜히 보건소장인 게 아니죠. 누구를 대상으로든 금연 캠페인 하는 건 보건소장의 의무입니다, 의무.”

“쩝, 그래서 제가 ‘싫다’는 말 말고는 안 하는 거죠.”

“하하. 뭐, 다음에 또 말씀드리죠. 흠, 조 비서관 부인을 먼저 공략해야 하려나요?”

능청스러운 보건소장의 모습에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보···. 아, 참.”

자리를 뜨려던 도훈은 문득 조상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을 때가 되면 착해진다는데, 그놈은 반대인가?’라는 말.

“저기, 소장님.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사람 성격이 갑자기 변하는 그런 병도 있습니까?”

“... 성격이 변해요?”

소장이 되묻자 도훈 대신 두진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고 부연 설명했다.

“확실한 건 아닌데 주변 사람에게 주로 ‘착하다’, ‘인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건물 주인인데 세입자에게 예수님, 부처님과 동급으로 평가받던 그런 사람이에요.”

“... 그런데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고 짜증이 늘고 폭언을 하며 죄 없는 사람 얼굴에 고추장 물까지 뿌리는 그런 변화라고나 할까요? 하하.”

두진은 별로 기대 같은 게 없었고, 도훈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질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소장이 답을 했다.

“그런 병이 있긴 있습니다.”

“... 있어요?”

“네, 있습니다. 여러 증상 중의 하나가 성격의 갑작스러운 변화죠.”

“......”

도훈과 두진, 정임도 예상 못 한 소장의 말에 잠시 말문을 잃고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병입니까?”

이어진 도훈의 질문에 보건소장이 조금 전과 달라진 엄숙하기까지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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